참여 민주주의, 포르투알레그레에서의 실험
2014년 월드컵이 열린 브라질. 포르투알레그레는 지방 자치단체들의 잠재적 민주주의의 상징이다. 포르투알레그레의 참여 예산은 아직까지 세계적으로 시도한 전례가 없는 새로운 사회적, 정치적 경험으로 가는 길을 열었다. 시민과 제도권 기구 사이의 권력 배분의 또 다른 형태도 실현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했지만 차후에는 그 결과도 긍정적이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포르투알레그레는 1989년 오로사멘토 파르티시파티보(OP)라는 참여예산을 시도했었다. 이 참신한 시도는 2001년 브라질의 리우그란데두술에서 열린 제1차 세계 사회 포럼(World Social Forum, WSF)(*)에 참여하려고 모인 탈세계화주의자들을 고취시켰다.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이들은 민주주의에 대해 이처럼 신선한 개념이 시민의 사회 정치적 역할을 재정의하게 될 것으로 기대한 것이다. 그 이후 ‘참여예산’이라는 제도는 차츰 전 세계적으로 추종자들을 만들어냈다. 참여예산 제도의 긍정적인 힘의 원천을 밝히기 위해서 시간을 거슬러 원류부터 추적해 본다.
수십 년의 독재시대가 지난 후, 1980년대 말부터 시작된 브라질 민주화 과정에서 포르투알레그레 주민 연합(Uampa)의 후원 아래 지역 단체들이 결성된다. 1988년 단체장 선거에서 승리한 올리비오 두르파의 노동자당(PT)과 협력해 시예산을 주민들이 통제하는 기구를 결성했다. 그 이후 매년 총 15만 명의 인구가 거주하는 포르투알레그레 17개 지역의 시민들이 지역 총회에 참석한다. 이 총회 기간 동안 그들은 자기들과 관련된 투자 부분의 우선순위를 결정한다. 이들은 또한 1년 임기 원칙에 따라서 주민 10인당 한 사람의 대표자를 선출한다. 선출된 대표자는 그 지역이 가장 긴급하게 필요로 하는 것들을 결정하며 실시할 프로젝트를 구상한다. 그 외에도 지역별, 주제 포럼별로 4명의 의원을 선출한다.(1) 이들은 참여예산 위원회(COP)의 위원으로 위촉된다. 최종적으로는 고전적인 대의 민주주의가 이 과정의 마침표를 찍는다. 포르투알레그레의 의회가 참여예산을 승인하는 것이다.
정치학자 퍼트남의 사회적 자본이론에서 착안
처음에는 주민의 호응이 크지 않았으나, (특히 가용 자원의 분배에서처럼) 실제 힘을 갖게 되자 호응이 많아졌다. 참여자가 1990년 976명, 2001년 18,583명, 2011년 15,000명으로 계속 증가했다.
이러한 열정적인 호응은 구체적인 결과로 증명되었다. 1989년에는 주민의 70%만이 하수도 망이 정비된 지역에서 거주했으나 2004년에는 84.3%로 상황이 호전되었다.(2) 1989년에서 2004년 사이 53만 가구가 토지 소유권과 새로운 주택 건축을 합법화했다.(3) 물론 포르투알레그레 의회가 참여 예산의 투자 요구를 모두 다 적용하여 예산을 책정하지는 않았지만, 대부분의 요구는 수용되었으며 주민들이 보기에도 적법한 과정으로 협력했다.
1998년 대통령 선거에서 포르투알레그레는 우파인 페르난도 엔리케 카르도소에 패한 루이스 이나시오 다 실바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요한 지표 중의 하나였다. 몇몇 불공정한 처사들을 시정하면서도 참여예산 제도는 빈곤계층이 사회의 일원으로 공민성을 획득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예산을 스스로 관리하면서 주민들이 주민의회를 가동시키는 데 필요한 원칙을 스스로 만들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6년 동안 포르투알레그레의 시장을 배출했던 노동자당은 2004년 선거에서 패했다. 권력의 노쇠화, 중간계층의 불만, 참여예산 제도를 계속 유지하겠다는 야당의 약속도 부분적으로는 패배를 초래한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12개 당파가 연합으로 정권을 획득해서 인민사회당(PPS)의 호세 포가사가 시장으로 선출되었다.(4) 외관상 참여예산은 유지되었으나 지역예산통합관리(GSL)라는 새로운 제도에 편입되었다. 이 제도는 미국의 정치학자 로버트 퍼트남(하버드대 교수. 시민참여와 시민 사회, 사회적 자본 주장-편주)의 사회적 자본에 관한 이론에서 착안한 것으로, 개인의 역량을 강화하고 공동체의 주변 이웃, 연합회, 기업, 공공서비스 등과 같은 다양한 구성체 사이의 사회적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공식 담화에 의하면 이 제도의 목표는 시민 의식과 신뢰를 획득한다는 것으로 참여예산 제도와 같다. 그런데 포가사 정부는 참여예산이 너무 많은 갈등을 일으키며 사회의 어떤 구성원들이 배제된다고 주장했다. 어떤 구성원이 배제된다는 것인가? 주로 자신들의 투자로 지역 통합 예산의 대부분을 충당하는 기업들이라 한다. 동시에 참여예산폭도 10%에서 4.1%로 축소되었다.(5)
2008년 참여예산국 소속 대부분의 의원들은 지역예산통합관리국의 활동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고 확인했다. 심지어 몇몇 의원들은 그 주목적이 참여예산 제도를 약화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예컨대 당신이 회사의 사장인데 탁아소 건축 프로젝트에 관해 시장과 협상을 한다고 합시다. 협상은 매우 은밀하게 이루어집니다. 민간인 파트너가 있는 프로젝트는 전원 참석 모임을 가질 필요도, 협상을 위해서 시민들을 소집할 필요도 없습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시민들은 아무것도 모르게 되죠”라고 한 의원이 푸념을 늘어놓았다.(6)
지지층 표심 잡기용 인기 전술이 부활한 것인가? 2008년 연정 정부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60%가 자신들의 주요 요구가 충족되었다고 판단했다. 1988년에서 2004년 사이, 구 인민전선 연정 지지자들 중에서는 12%만이 자신들의 요구가 충족되었다고 답했다.
월드컵 앞두고 빈민촌 이주에 활용, ‘사회적 청소’ 비난도
포가사 행정부는 주민들의 불만 누적으로 낮아진 참여율을 끌어올리려 시도했다. 때로는 억지스러운 수단들도 동원되었다. 전원 참여 연례 총회에 버스를 제공하기도 하고 점심 도시락을 돌리기도 했으며, 도로 구간 정비사업 같은 소규모 사업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한 시민은 “연례 총회에서 지지자들만이 발언권을 독점해 다른 시각을 가진 시민들이 발언할 기회조차 봉쇄되는 새로운 현상이 생겨났다”고 비난했다.
포르투알레그레는 2014년 월드컵 개최도시 중 하나다. 많은 대규모 공사가 진행되었다. 특히 공항 확장 공사와 베이라 리오 스타디움으로 이어지는 트론코 대로 확장 공사가 대표적인 공사였다. 수도 인근 도시인 카노아스와 포르투알레그레에서 대략 1만 가구가 공사 때문에 이사를 가야 했다. 현지어로 ‘파벨라스’라고 불리는 판자촌의 거주민을 대표하는 위원회가 보상으로 새로운 주택과 편의 시설을 요구했다. 게다가 이들은 너무 멀리 떨어진 곳이 아닌 주변지역을 원했다. 2011년 초 강제이주 당한 초콜라타오 판자촌 주민들과 같은 신세가 되는 것을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넝마주이들이 거주하던 초콜라타오 판자촌은 포르투알레그레의 시내에 있었다. 쓰레기더미가 널려있고 위생 시설도 빈약했던 판자촌과 이를 둘러싸고 있는 형태의 거대한 자치정부 청사가 그 당시에 큰 대조를 이루었다. 참여예산의 범주에서 주민들은 2007년에서 2010년 사이에 새로운 주택, 교육 시설, 그리고 직업 교육을 요구했다. 시는 주민들의 의사에 반하여 레스테 지역에 말끔하게 새로 지은 거주지로 이주시키기로 결정했다. 위생 조건도 훨씬 양호했다. 그러나 일자리와 기타 서비스는 매우 부족했다. 일종의 ‘게토화’가 형성된 것인가? 판자촌의 주민들이 활성화시킨 블로그는 일종의 ‘사회적 청소’를 고발하고 있다. 이 사회적 청소는 오직 국제축구연맹(FIFA)을 만족시키고 시의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몇몇 자치단체 책임자들의 사임, 해당 주민들이 결집되지 않은 것, 조그만 일자리를 정치적 특혜로 분배하는 것들이 이러한 주민의 이주를 용이하게 했다. 더욱이 이주와 관련된 주요 협상이 참여예산 범주 밖에서 이루어져 부처 간 협력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현저하게 약화시켰다. 단, 프로젝트 참여예산 위원회(COP)의 승인을 거치도록 함으로써 시민 참여라는 모양새를 그런대로 유지하긴 했지만 위원회의 의원 다수는 친정부 쪽이었다.
제도화와 시민사회 자율관리 사이의 딜레마
현재는 예산의 고삐를 쥐고 있는 사람들이 참여예산의 요구를 통제할 수 있다. 브라질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생겨난 자치단체들이 보다 큰 자율권을 행사했던, 참여예산 제도 시행 초기에는 가능하지 않았던 일이다.
적어도 최근 10년 동안 포르투알레그레의 참여예산 제도는 특정계층의 이익이나 계층 간 대립을 극복하는 데 유용했다. 오늘날에는 지지층 표심을 확실하게 하려는 인기전술로 활용되어 의미가 퇴색하고 그 활용도가 떨어지고 있다. 예컨대 2008년 대부분의 참여예산 의원들이 주민 대표자와 토론과정을 거칠 것을 의무적으로 규정한, 예전의 참여예산 실행과 위원회 내부 세칙 개정에 찬성표를 던졌다.
이 시행세칙의 개정은 주민들의 정보접근 가능성을 제한하면서 동시에 의원들 간의 권력 집중 현상을 야기했다. 게다가 이 집중 현상은 최근 전혀 개선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초기에는 자율관리가 주민의 권력을 강화하는 쪽이어서 특히 소외의 경계에 있는 계층의 권력을 강화했으나, 그 이후 약화되어 오히려 정치적 협상에만 우호적으로 작동되고 있다.
포르투알레그레의 참여예산 제도는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다. 경제 엘리트와 공권력에 의한 제도화로 가든가, 시민사회가 진정한 활동 수단을 다시 부여하는 쪽으로 가든가 하는 기로에 서 있다. 두 번째 방향을 지지하는 쪽에게는 여러 가지 경로가 있다. 헌법과 같은 위상을 갖는 소위 1990년 4월 3일자의 “조직법”이라 불리는 포르투알레그레의 주요 법안은 자치정부가 대중의 참여를 실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말 그대로의 참여예산은 그 어디에도 언급이 없다. 포르투알레그레의 의회에서 적법성을 인정받았던 것인가? 법이 국회의원으로 하여금 참여예산에 너무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권력의 분립을 보장해야 할 것이다. 새로운 연방법도 자치 도시에 참여예산을 통해 요청된 요구들에 부분적으로 응답하는 것을 제한 할 수 있다. 관건은, 1990년대 초에 시작된 민주 사회 혁명이 계속 전진할 것인가 아니면 정체상태에 빠질 것인가이다.
(*) 세계사회포럼(World Social Forum, WSF)은 세계경제포럼으로 불리는 다보스포럼이 세계화를 지향하는 선진국 중심의 국제회의로서, 개발도상국과 제3세계 국가들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에서 출발했다. WSF는 반세계화, 대안세계화 활동가들이 매년 여는 국제 행사이다. 이 행사에서 각국의 활동가들이 모여 국제적 활동을 어떻게 벌일지, 대안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지를 의논하고 국제적인 행동의 방향을 결정한다.
2001년 1월에 열린 다보스포럼과 때를 맞추어 브라질 리우그란데두술 주(州)의 포르투알레그레에서 제1회 포럼을 개최했다. 매년 열리는 포럼의 주요 골자는 부의 집중, 빈곤의 세계화, 지구의 파괴를 앞당기는 다보스포럼을 중단시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개발도상국의 부채 탕감, 아동학대 금지, 여성운동 활성화, 인종주의 청산, 유전자변형식품 금지, 민주주의의 개혁, 농산물 수출보조금제 폐지, 국제 투기자본 규제를 위한 토빈세 제정 등 분야별로 주제를 정해 다양한 워크숍·토론회·세미나 등을 개최했다. 국제인권연맹, 국제사면위원회, 그린피스 등 국제비정부기구(NGO)와 프랑스의 농민연맹, 미국의 지구의 친구들, 말레이시아의 제3세계 네트워크 등 다양한 단체가 참가한다. 그밖에 미국의 언어학자 N.촘스키, <노동의 종말>의 저자 J.리프킨, 해방신학자 L.보프, 멕시코 사파티스타민족해방군(EZLN) 지도자 마르코스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학자, 정치인들도 포럼에 참여하고 있다.(역주)
글·시몬 랑즐리에 Simon Langelier
몬트리올 퀘벡 대학 정치학 박사, 정치학자
번역·이진홍
에세이스트. 파리7대학 불문학 박사. 한국외국어대 강사. 저서로는 <앙리 미쇼와 존재의 문제>, <여행이야기>, <자살> 등이 있다.
(1) 6개의 주제별 포럼이 있다. 도시 계획, 교통, 건강과 사회 복지, 교육 스포츠 여가, 문화, 경제 발전, 세금제도와 관광
(2) Adalmir Marquetti, Geraldo Adriano de Campo et Roberto Pires(sous la dir. de), Democracia participativa e redistribuição : Análise de experiências de orçamento participativo, Xamã, São Paulo, 2008년
(3) Sérgio Baierle, Lutas urbanas em Porto Alegre : Entre a revolução política e otransformismo, Cidade, Porto Alegre, 2007년
(4) 2010년 포하사는 리우그란데두술 주 주지사에 출마하기 위해 포르투알레그레 시장직을 사임했으나 전 포르투알레그레 시장이었던 노동자당(PT) 소속의 타르소 헨로에게 1차 투표에서 패했다. 부시장인 민주 노동자당(PDT)의 호세 포르투나티가 시장직을 승계했다.
(5) De Olho no orçamento, Cidade, Porto Alegre, avril 2009년
(6) 당사자와 직접 인터뷰, 200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