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참여 민주주의의 값진 승리

2014-07-02     올가 빅토르

지배계층과 인기영합 전술만이 병존하는 무력한 민주주의 앞에서,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실험들이 프랑스의 지방 자치 지역에서 계속 시도되고 있다. 실제로 여론조사에만 민감하고, 정당성을 상실해버린 정치 앞에서 지역 자치의 경험은 더 효과적인 것으로 판명되며 보다 나은 삶의 질을 원하는 열망에 부응하는 것으로 비춰진다.

“우리 모두는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를 이해하고 또 활력을 불어넣을 능력이 있다. 그렇지만 수많은 기술과 재정에 관련해 잔뜩 쌓인 서류들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뒹케르크 교외 지역에 위치한 그랑드-생트 시청의 사회개발 서비스 프로젝트 팀장인 잔느 풀렝은 열정적인 어조로 참여민주주의의 어려움과 열망을 전했다. 프랑스에서는 1970년대부터 이 분야에서 일련의 새로운 시도들이 계속되어 왔다.

대개의 경우는 도시 주민들이 다양한 형태로 자신들의 거주 구역 정비 사업과 같은 문제에 때로는 문화·사회 분야에 해당되는 중요한 계획들도 검토할 수 있는 권리를 획득했다. 곳곳에서 지방자치단체는 지역을 함께 관리한다는 명분으로, 대부분 한계가 있는 형태를 띠었지만 시민의 의견을 참조하는 정치적 새로운 실험을 실행해 왔다.

그러나 처음에는 정치적 결정에 관한 새로운 형태로 지역생활의 새로운 활기가 되었던 이러한 시도들이 지속적으로 행해지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이 같은 위기에 대처하려고 가장 적극적인 지자체인 생드니가 2000년 5월 3일 시민의 권리에 대한 유럽헌장을 채택하기도 했다.(1)

주민 참여의 단위는 대개의 경우 일상생활의 주요 기본 단계인 구(區)에 근거한다. 이처럼 생드니에서는 대중의 개입이 필요할 때, 시청이 관련 주민들의 의견을 청취한다. 부시장 아래 이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7명의 시장보 중 한 사람인 올리비에 후비우는 “해당 주민들에게 선택에 관한 모든 요소를 알게 하고, 마지막 결정에 의견을 말할 수 있게 장기 계획까지 검토의 기회를 준다”고 설명했다. 시장보들은 자문위원회의 위상을 부여받는데 그 위상으로 시의회에 제안을 할 수 있다. 시장과 시 행정부 곁에서 주민과의 중계를 담당하는 이 인적자원들은 구의 삶을 활성화시키는 실용적인 역할도 한다. 예컨대 매주 월요일 오후, 가족수당 기금국(CAF) 자문위원은 대부분 이주민 출신인 주부그룹을 만난다. 아동 복지를 담당하는 후비우에게 이 일은 단순히 시민과 통치하는 자들 사이의 중재가 아니라 지역별, 부분별로 새로운 형태의 행정과 작동시스템이 잘 가동되도록 조정하는 것이다.

지역 내 주민의 삶의 질을 개선하려는 목적이 참여 민주주의의 주요한 동기 중의 하나라면, 대의 민주주의의 허점이 만드는 구멍을 메우려는 의도가 주민들의 자문위원회 창설로 이어졌다. 스트라스부르의 대중 교육 담당 시장보인 장-클로드 리세즈는 투표권을 갖지 못하는 외국인 성인이 지역 주민의 15%를 차지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문제는 정치적 실상과 실제 인구 구성 실제 사이에 중대한 편차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1993년 스트라스부르 시는 주민 자문위원회가 생겨나기 이전에, 13~17세 청소년을 위한 지역위원회와 외국인 이주민을 위한 자문위원회를 가동시켰다. 또한 노인들을 위한 시자문위원회도 만들었다. 전체적으로 이 도시는 거주민들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파악하고 새로운 전입자들을 위해서도 많은 신경을 썼으며 지역의 의견을 청취하기 위한 노력을 쏟았다. 푸와투 사량트의 조그만 모범도시인 파르트네는 시내의 공공장소 13곳에서 접속이 가능한 인터넷 사이트를 제공하고 있다.

주민의 참여는 매우 조직화된 형태를 띤다. 예컨대 24,000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는 조그만 노동자 도시인 그랑드-셍트 시는 지역 위원회가 이미 있었지만 도시계획 작업실(ATU)을 발족시켰다. 도시 정비를 검토하기 위해 두 달에 한번씩 50~60명의 주민이 의원들과 건축가, 도시계획 전문가, 조경사 등의 전문가들과 함께 이틀 동안 토론을 한다.

시간이 좀 지난 후에는 작업실이 각 지역별로 구성되었으며 토론도 각 주제별로 분화되었다. 이렇게 3년 동안 계속된 진정한 공동 작업 후에 알베크 지역의 광장은 완전히 새로운 모습을 띠게 되었고, 주민들의 제안도 수용되었다. 상가 건물에 지붕이 얹어지고 신체 장애인들에게 주택이 생겼으며 소형 슈퍼마켓도 생겨났다.

도시정비 분야에서도 작업실은 활기찬 성과를 일궈냈다. ‘중계자’란 이름 아래 모인 주민들이 작업실에 참여한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작성한 정비계획이 시청 공모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이것은 시민들의 참여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는 공적 공간을 다시 정비하는 멋진 본보기가 된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시민의 참여 역량은 몇 가지 조건 아래 가능하다. 작업실 내부적으로는 주민들이 전문가를 초빙하여 모임을 갖는다. 교육도 받고 정기적인 연수로 프랑스는 물론 외국의 도시도 방문한다. 시청이 주민들 스스로 습득하기 어려운 복잡한 문제들에 대해 새 역량을 계발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랑드-셍트의 쿠르헹 지역 주민인 미셀은 “작업실 내에서는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는다. 그것이 가장 유쾌한 일이다. 일원이 된다는 것은 단지 명함 한 장이나 종이에 이름 올리는 것으로 요약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주민들의 참여 동기와 구조적 대표성 문제

2000년 이래로 그랑드-셍트 시는 주민 안전에 관한 새로운 작업실을 설립했다. 특히 학교 건물 내에서 발생하는 폭력의 문제를 안건으로 채택한다. 자문 성격의 제언이나 제안 외에도 작업실은 의원, 주민, 해당 분야 전문가들과 공동 작업으로 프로젝트가 구상되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타의 절차와 마찬가지로 대표성의 문제가 발생한다. 실제로 안전에 관한 작업에는 10여 명의 주민들만이 참여했으며 이 과정에서 청소년은 전혀 참석하지 않았다. 지역 단위에 있어서 주민의 참여는 때로는 실망스럽기도 하다. 셍-드니 시의 파트릭 브라우젝 시장의 최측근인 피에르 그리보는 현재 약 30~100명이 참석하는 각 지역별 모임에 많은 수의 주민이 참석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젊은 층도 수용하기를 기대했다.

주민들의 참여 동기와 현재 가동되고 있는 구조 자체가 갖는 대표 적법성의 문제, 이것이 가장 큰 고민거리 중 하나이다. 17세의 무니아 케디르는 스트라스부르의 청소년 자문위원 대표로서 임기를 마쳤다. “사람들은 내가 청소년을 대표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런데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우리 청소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그리고 무엇을 하는지에 대해서 확신이 없었다.”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 청소년 대표로서의 임무를 수행하는 어려움을 간접적으로 토로했다. 프로젝트에서 청소년의 자문기능이 문제가 되는 것이라 한다면, 청소년 역시 모임에 보다 많이 참석하지 못한 것을 유감으로 생각한다. 게다가 지역 생활에 활기를 불어넣는 단체나 모임 역시 지역 주민 전체를 대표한다는 점에 문제성을 포함하고 있으며 때로는 하나의 권력화를 지향하기까지 한다. 또 다시 전 주민의 일부 계층, 즉 엘리트들이 표현 수단을 독점한다는 비판이 있지 않을까 의문이다.

그러므로 시는 하나의 전체로서 존재한다는 시각을 잃지 말아야 한다. “자신들이 거주하는 지역만 생각하면, 시의 나머지 지역을 전혀 고려하지 못한다”고 그리보가 지적했다. 일 년에 한번씩, 시장은 시장보 몇 사람을 대동하고 주민들을 만나 그들과 함께 환경, 교통, 주택문제 등과 같은 일반적인 안건이나 시 예산에 관해 토론한다. 그럼에도 “주민들은 일반적으로 다소간 멀리 떨어진 곳의 정비와 관련되거나 장기적 사업보다는 자기 집 앞 보도블록이나 근처 공원과 관련된 문제에 더 집중한다”고 그리보는 지적했다.

그렇지만 자발적인 경향이 강한 몇몇 자치시에서는 시민단체들이 보다 더 깊숙이 참여하고 있다. 정치권의 힘을 약화시키는 맥락에서 공적인 결정에 대한 투명성과 적법성을 주시한다. 파리 근교 지역인 모르상-쉬르-오르즈에서는 투자 지출이 결정되면 예산의 일부가 지역위원회에 할당되어 이들이 사용처의 방향을 정한다. 대개의 경우, 주민에게 할당된 금액은 근린 정비계획에 사용된다.

더 진일보한 경우의 예로는 파트네 시를 들 수 있다. 의원들이 동수로 구성된 시민위원회가 임시 예산 투입을 결정한다. 이 도시는 그야말로 실험적인 시도를 하고 있다. 대외 국제협력 담당관인 스테판느 마르타얀은 ‘참여 민주주의’보다는 ‘능동적인 시민참여’란 용어를 선호한다. 그는 “‘이 모든 것이 반드시 시청을 거쳐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는 개념에서 시작된다. 시민의 창의적인 발상에서 비롯되는 일련의 계획들도 가능하다. 모든 계획에 시민들의 참여가 이루어지도록 비어있는 공간을 마련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주민들의 창의적인 제안에 맡겨진 분야에서는 공적인 역할은 본질적으로 동반자이자 촉매로서 작용한다. 예컨대 문화 분야에서처럼, 시는 엄밀하게 말하면 시 자체 프로그램은 거의 없는 편이다. 이 점에서는 아주 불량한 시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매년, 40여 개의 조직이 이미 전국적으로 또는 국제적으로 잘 알려진 축제 말고도 150여 개 정도의 행사를 주최한다. 앞서 언급한 위원회는 문화 예산의 방향만 설정하고, 시의회에서 표결에 부쳐진다. 그 다음에는 여러 행사 중 지원할 행사를 선택하게 된다. 시가 제시하는 선택의 기준은 간단하다. 창조성을 가장 잘 표출하는 프로그램에 보조한다. 비록 다수의 참여를 동원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창의적인 프로그램에 보조를 주저하지 않는다.

파트네 시에서 문화와 스포츠 분야 단체의 개입은 체계적이며, 숫자도 많고 능동적이다. 반대로 사회, 교육, 경제와 같은 여타 지역 개발 분야에서는 예산이 책정되면 해당위원회에 의해 산발적으로 자문이 이루어지는 실정이다. 제도적으로 강력한 동반 사업 주체가 있는 사회분야와 교육, 사학 분야에서는 단체의 참여가 대체로 미미한 편이다.

과도한 참여 주체로 권한이 분산돼

주민 참여 분야에서 ‘바로 이것이다’ 할 만한 확실한 모범 사례는 없다.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으려면 인적, 경제적 자원이 필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먼저 공민적, 나아가서 정치문화에 있어서 새로운 형태의 실행을 개발하려는 의지와 마음가짐이 우선이다. 스트라스부르의 리세스 시장보는 임기 초기에 열정을 가지고 설치했던 수많은 조직이 결국은 사라진다는 것을 되새겼다. 새로운 형태의 실험이 대개의 경우 지역단위에 근거하기 때문에 활력이 제한된다. 셍-드니와 그랑드-셍트 시는 강한 투쟁의 전통이 있는 시들이다. 그랑드-셍트의 도시계획 작업실에는 예전의 조합원들이 많이 포진되어 있다. 1991년 스트라스부르에서도 가장 활동적인 10여 개의 지역 단체들이 열성적으로 가동되었다.

참여 민주주의가 정당성을 상실한 정치의 위기에서 생겨난 것은 그만큼 민주주의를 향한 열정이 강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지역, 사회 교육과 정치를 위한 단체들은 새 정치가 “다양한 참여주체를 인정하고 결정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권한의 분산”에 근거한 새 통치모델을 가능케 해야 한다고 믿는다.(2) 참여 주체들은 새로운 문화의 출현은 정치에 신뢰성을 회복시켜 줄 것이며, 시민들로 하여금 개인주의를 버리고 새롭게 공동의 이익을 위한 길에 참여하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참여 민주주의는 시민에게 공적인 것을 우선해야 한다는 가능성을 제공한다. 해당 지역의 대의제도를 대신할 사명을 갖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마지막 단계를 손질하는 것은 선거에 의해 선출돼 정당성을 갖는 정치의 몫이다. 그런 의미에서 의원들은 이러한 접근 방식을 가장 잘 수용할 수 있는 주민들의 말을 경청하려는 의지를 보여야 할 것이다. 왜냐면 현재로서는 신념 말고는 강요할 아무런 제도가 없기 때문이다.

 

글·올가 빅토르 Olga Victor

비영리 단체 <연대사회를 위하여> 대표

번역·이진홍

 

(1) 스페인의 바르셀로나가 이 프로젝트에서 선례적인 역할을 한다.

Attac, 〈지역단위에서 행동하라, 생각은 글로벌하게 하라〉, Mille et une nuit, Paris, 2000년

(2) Philippe Depaquit et Gilles Vrain, 《지역 통치의 세 가지 지렛대》, 〈지방시대〉, Paris, 407호, 2000년 4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