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 불평등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
불평등이 갈수록 심화되는 21세기 자본주의를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
‘피케티 열풍’의 진원지 프랑스에서도 그의 저서 <21세기의 자본>을 둘러싼 논쟁은 계속되고 있다. 최근 프랑스 국영방송 2TV는 저자인 토마 피케티와 사회학자인 엠마누엘 토드의 대담을 마련, 현대 자본주의의 나아갈 길을 진단했다. 피케티는 프랑스 혁명 이후 프랑스가 금융재산과 부동산 등의 기록을 시작하여 자신이 그 기록을 토대로 경제적 불평등의 연구를 진행할 수 있었고, 이 책의 발간을 이룰 수 있었던 배경을 소개했다. 피케티는 자산의 불평등이 다시 돌아오고 있으며, 세습 자산의 증가율이 경제성장률을 앞질러 경제적 불평등을 악화시키는 점을 강조했다. 본지는 두 사람의 방송 대담이 독자 여러분의 피케티 저서 이해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주요 내용을 간추려 소개한다. <편집자>
사회자 : 토마 피케티! 경제 전문학교 설립자이며 불평등 전문가이고 노벨상 경제학 수상자인 조셉 스티글리츠가 최근 발간한 책에서 당신에게 경의를 표했다. 당신은 얼마 전 <21세기의 자본>이라는 책을 발간하였다. 1,000페이지에 이르는 이 책은 15년간 20여 개국을 연구한 결과이다. 이 책에서 당신은 우리 사회가 1세기 전과 마찬가지로 상속자들의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엠마누엘 토드! 우리는 당신이 1,000페이지에 이르는 피케티의 책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고, 훌륭하다고 생각하지만 피케티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고 하여 이 자리에 초대했다. 우리가 무엇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지 시청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책에 대해, ‘상속자들의 사회’에 대하여 좀 알아보자. 이 책에 따르면 하위 50%가 차지하는 부(富)가 전체 부의 5%밖에 되지 않는 반면, 상위 10%가 전체 부의 60%를 차지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는 비단 프랑스뿐만 아니라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한 세기 전에도 지금도, 프랑스과 독일뿐만이 아니라고 했다. 전 세계 어디에서든, 시대를 막론하고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토마 피케티 : 세습재산은 항상 소득보다 한 곳에 집중되는 경향이 훨씬 강하다. 오늘날 새로운 점은 전 세계적으로 세습재산이 다시금 비대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대전 후, 전체 자산 규모가 급작스럽게 크게 줄어드는 시기가 있었다. 전쟁으로 인한 파괴 등 비극적 사건들로 인해 유럽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황폐한 곳이 되어 버렸고 결과적으로 전체 자산 규모가 줄어든 것이다.
그 이후 자산을 재건하는 시기가 너무나 오래 지속되면서 우리는 이러한 시기가 언제까지나 지속될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영광의 30년 동안 우리는 재산 불균형이 과거의 것이라고, 이미 끝난 것이며, 우리 사회가 자본 없는 자본주의 혹은 자산 없는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단계로 넘어 갔다고 믿은 것이다. 자본 없는, 자산 없는 자본주의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런 자본주의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후 이제 다시 자산이 증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해, 지금 파리나 대도시에서 아파트를 사려면 그 가격이 어마어마하다. 1960~80년대에 태어난 세대의 상황은 1930~40년대의 베이비붐 세대의 상황과 완전히 다르다. 베이비붐 세대는 어떻게 보면 스스로 형성된 세대로 좀 특별한 상황의 세대라 할 수 있다.
나는 이 책에서 19세기부터, 만약 자료가 허락한다면 더 멀리 18세기부터의 자본과 재산, 부의 분배 역사를 보여주고자 했다. 이 작업은 공동 작업으로 토니 애킨슨, 엠마누엘 사에즈, 장-로랑 로즌탈 등 수많은 학자들이 참여하여 수많은 자료, 특히 프랑스의 상속과 관련된 기록들을 수집했다. 프랑스 혁명이 이상적인 국가를 만든 것은 아니지만 아주 훌륭한 소위 ‘재산 관측소’를 만들어 냈다. 즉, 혁명 후부터 프랑스는 금융 재산, 부동산 등을 기록하기 시작했고 적어도 현재 그 기록들을 연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미국이나 영국에서는 1세기나 더 늦게, 1910년대부터 상속세법이 만들어졌고 이때부터 ‘흔적’을 남길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자료가 없었기 때문에 연구자들은 오랫동안 적당한 자료도 없이 부의 불평등에 대해 언급해 왔던 것이다.
책은 우선 이러한 자료를 보여주면서 자산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현대 사회의 새로운 세습재산화 움직임, 자산의 회귀는 자연스러운 것으로, 그 자체가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사실 자본은 유용한 것이다.
단지, 우리가 사라져버렸다고 믿어 왔던 불평등을 세습재산화가 다시 가져온 것이다. 과거, 예를 들어 사회·경제발전의 황금기였던 ‘영광의 30년(1945~75년)’처럼, 우리 모두가 불평등이 단지 노동자, 고용주, 관리자 등 직업에서 기인한다고 믿었던 시기가 있었다. 즉, 어느 정도 납득 가능한 임금 불평등으로 이러한 불평등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지만 같은 직업 인식 안에서 공감을 형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현재는 자산에 기인한 불평등이 다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 유럽이 소유하고 있는 재산 총합을 말해보자. 요즘 부채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여기서는 개인 부채, 국채는 제외하기로 하자. 프랑스의 금융, 부동산 자산은 모든 국채 및 개인 부채 총액의 6~7배에 달한다. 프랑스 자산의 총합은 국내총생산 6~7년의 총합에 달한다. 이는 ‘벨 에포크’ 시대(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과거에 볼 수 없었던 풍요와 평화를 누린 시대. 예술·문화가 번창하고 거리에는 우아한 복장을 한 신사 숙녀가 넘쳐흘렀던 시절-역주)에 버금가는 영화이다. 1950년대에는 국내총생산 2~3년의 총액, 1960~80년대는 국민총생산의 4~5년 총액 정도였다. 즉, 굉장히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역사가 중요한 것이다.
사회자 : 당신은 자산 혹은 자본 성장률이 생산 평균성장률, 간단히 말해서 소득 증가율의 5~6배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소득 증가율은 1~1.5%로 한 세기 가까이 같은 수준을 유지했다. 물론 중국이나 벨 에포크 시대의 프랑스처럼 예외의 경우도 있으나, 오랜 기간 동안 비슷한 수준을 유지해 온 것이다. 그런데 자산 증가율은 매년 4~5%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토마 피케티 : 맞는 말이다. 그것은 변함없는 현실이지만 20세기 내내 우리가 잊고 지냈던 것이다. 19세기 성장이 무척 느리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볼 때 매년 1%는 비교적 빠른 성장률이다. 한 세대에 걸쳐, 즉 30년 동안 30~35%의 경제가 재생되는 것이다. 18세기까지는 이보다 더 느렸다. 단지 성장률 1%가 자본 수익보다 낮다는 것이다. 자본 수익률은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재산이 1년 동안 가져다주는 이익이다. 예를 들어 10만 유로 가치의 아파트를 월 400 혹은 500유로에 임대한다고 가정해 보자. 1년에 약 5,000유로이며 이는 아파트 가치의 5%에 해당한다. 주식이라면 수익률이 더 크고, 리스크가 더 높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현재 성장률이 1% 혹은 겨우겨우 2%가 될까 말까 한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과거 재산이 자본으로 환원되는 속도가 생산증가 속도보다 빠르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니 상황을 이해하기가 굉장히 힘들어졌다. 과거가 미래를 압도해 버리는 상황이다. 과거의 소산인 자산이 무모할 정도로 커져 버렸다. 논리적으로 볼 때 피할 수 없는 결과이다. 단지 오랫동안 잊고 있었을 뿐이다. 영광의 30년 동안, 성장률은 5%에 달했고 (자산증가와 성장 사이의) 균형이 어느 정도 유지되었기 때문이다. 직업만을 가지고도 설명을 할 수 있었다. 또한 과거에서 비롯된 자산 자체가 가혹하고 무시무시한 충격(예를 들어 전쟁)으로 한 순간에 무너져 내려버렸다. 전쟁과 같은 충격은 과거와의 단절을 낳았고, 전쟁과 함께 그 후 이어진 재건 기간 동안 이러한 현실에 대한 인식을 잃어버린 것이다.
사회자 : 바로 그러한 상황이 얼마나 기득권층의 입장을 강화시켰는지, 불평등을 심화시켰는지를 보여주는 예로, 당신의 책에서는 릴리안 베탕쿠르(로레알 그룹 상속녀-역주)를 들었다. 30년 동안 베탕쿠르의 재산은 빌 게이츠와 같은 기업가의 재산이 증가한 만큼 증가했다. 알다시피 기업가들은 엄청나게 일하지만 상속녀 베탕쿠르는 일을 하지 않고 있다.
토마 피케티 : 우리 모두 알다시피, 빌 게이츠의 재산이 더 빠르게 증가하길 바라는 것이 사실이다.(웃음)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자산이 어느 수준을 넘게 되면 재산은 스스로 증식한다. 베탕쿠르의 예가 흥미롭고 놀라운 것은 사실이다. 그녀의 아버지 외젠 슈엘러는 진정한 기업가로 1902년 획기적인 헤어 제품을 개발하면서 로레알이라는 세계적 기업을 세웠다. 이 기업이 최초로 개발한 모든 헤어 제품들은 놀라울 따름이다. 그러나 1세기 후, 2013년 그의 딸 릴리안 베탕쿠르는 일도 하지 않으면서 여전히 세계 최고 부자 중 한 명이다. 여기에는 어떠한 논리가 있다. 사실, 사회에는 기업과 제품을 만드는 사업가가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집중화가 어느 단계를 넘어버리면 그 후 모든 것이 비생산적으로 되어 버린다. 즉 그래서 우리는 기업가들이 기업을 만든 수 있도록 하는 동시에 부의 집중이 어느 한도를 넘지 않도록 하는 메커니즘을 필요로 한다. 20세기의 이 메커니즘은 바로 전쟁과 엘리트 계층에 적용된 재정정책이었다. 저절로 생기는 자연적인 메커니즘은 없다. 이것이 중요하다. 마르크스는 자본의 중요성을 등한시한 면이 있지만 자유주의자들은 성장이 그 자체로 모든 것을 해결할 것이라고 믿었다. 성장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확실히 0%보다는 1%라도 성장이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그 성장 자체는 한 번 형성된 재산이 성장률보다 더 빠르게 재생산되는 과정의 균형을 맞추기에는 역부족이다.
사회자 : 상속자들의 세상이다. 책에서 해결책으로 제시한 것은 세금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금을 줄이는 것이다. 즉 노동에 대한 세금은 줄이고 재산에 대한 세금을 대폭 늘리자는 것이다. 자산 정도에 따라 차등을 두어 높은 세금을 부과하고 단지 프랑스, 유럽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 차원에서 이렇게 세금이 부과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토마 피케티 : 해결책을 제시하는 부분에서 나는 이상적 해결에서 출발하여 현실적 해결책을 제시하려고 했다. 이상적인 해결책, 즉 세련되고 합리적인 해결책은 점진적이고 지역 사정에 적합한 방식으로 재산에 부과되는 세금일 것이다. 지역이란 유럽을 말하지만, 중국이나 미국과도 현재 논의 중인 여러 가지 국가 간 프로젝트를 통하여 가능할 것이다. 예를 들어 국가 간에 은행 정보를 자동으로 양도하는 프로젝트를 들 수 있다. 이러한 프로젝트를 통하여 누가 무엇을 어디에 얼마만큼 갖고 있냐 하는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가능하고, 정부나 공공기관이 금융자본주의를 통제하고 조절할 수 있는 권위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현재는 국가 정부도 자신들의 기업을 누가 실질적으로 소유하고 있는지 모르는 상황이다. 출자금, 주주 간 매매계약 등으로 내부적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누가 무엇을 소유하고 있는지도 모르며 그렇기 때문에 세금을 제대로 부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 국내에서 착실하게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세금 부과를 잘하면서, 투자 등 자산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는 세금 부과가 잘 안 되고 있다. 국내로 불러들이려 오히려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는 형국이다.
해결책은 우선 “자 봐라, 전 세계 상위 자산은 현재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30년 동안 전 세계 자산 증가율은 인플레이션의 7~8%를 웃도는 높은 증가율을 보여 왔다. 거부(巨富)는 많지 않으니 그 아래 수준의 재산가들의 재산가들을 가진 사람들을 예로 들어도 마찬가지이다. 이들은 거부 보다 수가 더 많고, 재산 수익률이 인플레율 보다 조금 더 높은 5~6%에 달한다. 이를 세계 평균의 경제 성장률, 즉 1~2%과 비교하면 이렇게는 지속될 수가 없다. 이러한 흐름이 30년 이상 지속된다고 가정하면 논리적으로 큰 문제에 부딪칠 수밖에 없게 된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은 점진적으로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다. 재산을 늘리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단지 당신의 재산이 세계경제 규모보다 빠른 속도로 증가하면 곤란하다는 것이다. 실질적으로 세금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도 있다. 예를 들면 자본 통제나 다양한 성격의 보호주의 등을 통한 해결이다. 그러나 내가 제안한 해결책이 유토피아적이고 이상적으로 보이는 게 사실이나 다른 대안들과 비교하여 교역 개방성과 금융 개방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자 : 피케티의 책에서 세금문제가 마음에 걸리지 않나?
엠마누엘 토드 : 아니다. 세금 문제가 걸리는 것은 아니다. 우선 정말 훌륭한 책이다. 책의 전반부라 할 세 개의 섹션에 대해서는 공감한다. 앞에서 언급된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하고 그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다. 언급된 국가도 있고 그렇지 않은 국가들도 있지만 정말 많은 비교 분석도 담고 있는 등 매우 뛰어난 책이다.
피케티의 책은 역사학자들에게 진정한 도전이라 할 수 있다.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모델은 자본의 재축적이라는 장기적 흐름을 보여준다. 책을 통해서 역사학자들은 자본 붕괴를 야기한 우발적 사건들을 이해할 수 있다. 19세기 연구는 특히나 매력적인 대목이다. 역사학자들에게 있어서 19세기는 민주주의 복지국가, 보통선거, 제3공화국 등 민주적 자유주의의 힘이 커지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평등의식이 고조되는 한편 자본은 지속적으로 축적되어 19세기 말에는 자본축적 수준이 초기보다 훨씬 높아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별안간 전쟁으로 인해 자본이 붕괴되었다. 민주주의 성장에 얼이 빠져버린 부르주아들이 민주주의를 피해 전쟁에 돌진했고 프랑스인들은 독일인을 증오하기 시작했다.
이는 현재 우리가 도달한 상황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현재의 분위기는 평등 의식이 훨씬 약해진 상황이다. 19세기에 고조되었던 강한 평등주의 분위기가 없어진 것이다. 오히려 이와는 반대의 상황이다. 즉 불평등 의식이 고조되고 있다.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당연히, 자산에 과세해야 하고, 당연히 이는 더 기분 좋은 해결책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문화적 분위기는 흐름이 완전히 반대로 돌아서버렸는데, 다시 말해 평등주의 의식은 낮아지고, 국가의 역할은 붕괴한 마당에 어떻게 과세를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모두가 “아 그건 안 될 것이야, 세금 같은 해결책은 불가능해. 현재 흐름에 역행하는 거야”라고 말한다.
정말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경제 위기가 어떠한 형태를 띠게 될 것인가를 예측해보는 것일 것이다. 내가 보기에 책은 “우리는 지금 파국을 향하고 있다. 어떠한 파국일지는 모르지만 예상해 보는 일은 굉장히 흥미로운 일이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토마 피케티 : 20세기는 우리가 보통 선거, 의회 민주주의와 비슷한 다양한 제도를 만들 수 있다는 교훈을 준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평등의 심화와 이와 관련한 긴장감의 고조는 용인되어서는 안 된다. 독자들에게 벨 에포크 시대 경제학자들의 저서를 다시 읽기를 권장한다. 이 시대 몇몇 경제학자들이 결코 용인되어서는 안 되는 불평등을 정당화하기 위해 열성적으로 모든 것을 어느 정도 수용하고 받아들이려고 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엠마누엘 토드보다 조금 더 낙관적이 되려고 했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경험을 쌓아 왔다. 이러한 경험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아무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사이에 지금까지 유럽인들이 큰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사회적 모델을 만들었다. 유럽인들은 이 사회적 모델과 이에 적합한 세제 시스템을 보호하기 위해, 위에서 언급한 그러한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나서고 힘을 합쳐야 한다.
그런데 조세피난처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더욱 적극적으로 해결책을 모색하고 나서는 것은 오히려 미국이다. 이것이야말로 정말 모순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유럽이 정치적 분산으로 인해 무능한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사회적 모델에 덜 종속되어 있는 미국이 이러한 새로운 금융자본 통제를 위해 유럽보다 더욱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엠마누엘 토드 : 나는 이 책에서 하고 있는 이러한 비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유럽과 미국 사이 균형상태가 정말 중요하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러한 균형상태가 유럽 상황을 더욱 비관적으로 만들고 있다. 유럽인의 국가관은 소득 불평등이 낮은 사회적 국가이다. 그러나 세습재산의 축적은 미국에 비해 훨씬 속도가 빠르다. 미국은 우선 인구 증가속도가 빠르다. 그리고 앵글로 색슨과 미국인들은 수입 불평등에 있어 세계최고라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불평등은 고소득에 의한 불평등이다. 미국인들은 재산의 세대 간 세습에 무관심하거나 적대적이다.
토마 피케티 : 각각의 지역 블록은 지역 특징에 맞는 각자의 자본 통제 방식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은 지속적인 인구 증가를 통해 통제한다. 프랑스나 미국 혁명 시기 미국의 인구는 3백만 명이었지만 현재 3억 명이다. 더 이상 예전과 같은 국가가 아니다. 반면 프랑스 인구는 혁명 시기 3천만 명이었고 현재 6천만 명이다.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성장하고 변하기는 했지만 규모는 거의 비슷한 수준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에서 비롯된 세습재산이 2세기 동안 인구가 두 배 증가한 국가보다, 인구가 10배 증가하고 결과적으로 모든 것이 새롭고 ‘과거’가 존재하지 않는 국가에서 규모가 작을 수밖에 없다. 지금도 지속적으로 인구증가가 높은 미국에 비해, 이와 반대로 인구감소 국면에 접어 든 유럽에서 세습재산이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수준으로 증가하고 그 비중도 엄청나게 커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이 책에서 제시한 새로운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미국식 불평등만을 걱정해 왔다. 유럽의 재세습재산화는 우려가 되는 현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좋은 소식이기도 하다. 유럽은 부유하다는 것이다. 전 세계 다른 어떠한 지역보다도 훨씬 큰 부를 소유하고 있다. 반드시 이 점을 명심하고 있어야 한다. 유럽은 부유하다. 다른 곳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다. 내가 말한 좋은 소식이란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기관들이 제대로 기능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적 기반은 좋은데 기관이 문제라는 것이다.
엠마누엘 토드 : 기관이 제대로 작동 안 한다는 것이 좋은 소식이라니요? (웃음)
토마 피케티 : 아니 맞다, 좋은 소식이다. 기관을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기관들은, 역사적으로 볼 때, 과거에 전혀 예상치 못한 일들을 한 적이 많다. 앞으로 어떠한 일들이 일어날 지 다 알 수는 없다. 어떠한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예로, 이러한 성장 단계에서 유로화 전환은 전환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베를린 장벽 붕괴는 독일의 통일이 없었으면 확신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국가를 초월하는 통화가 생겨난 것이다.
엠마누엘 토드 : 나는 그런 통화에 대해 비판적이다. 개념적 차원에서 국가 없는 통화에 동의하지 않는다. 통화는 국가의 한 부분이다. 즉, 유로화로 전환하기 시작하면서 프랑스 일부분을 독일에 양도하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이 문제는 정말 중대한 문제이다.
토마 피케티 : 전 세계적 차원에서 보았을 때, 프랑스와 독일은 세계 경제에서 작은 국가에 속할 것이다. 독일과 프랑스를 구분하는 요소는, 두 국가를 가깝게 하는 요소나 모델에 비해 아주 미미하다. 전 세계에는 수없이 많은 또 다른 형태의 자본 통제 모델이 있다. 유럽과 미국은 이미 언급했고, 중국은 또 다른 모델을 갖고 있다. 당신이 중국에서 재산을 늘렸다 하자. 당신이 중국을 떠나려 한다면 재산은 더 이상 당신의 재산이 아니게 된다. 당신이 중국에 투자를 하려 한다면 중국은 “투자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당신은 주식 과반 이상을 소유할 수 없다”라고 할 것이다. 러시아 역시 자국 사정에 맞는 또 다른 모델을 갖고 있다. 이렇듯 수많은 모델이 존재한다. 단지 나는 점진적 과세가 조금 더 세련되고, 법치국가에 적합하고, 유럽차원의 계획에도 좀 더 부합하는 해결책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훨씬 더 효과적이다. 중국과 러시아의 불평등은 어마어마하여 이를 자본 통제로 유지하려고 하는 것 자체가 환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 누구도 불평등과 관련하여 내부 정책 등 내부에서 어떠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어찌 되었든 간단한 해결책은 없다. 내가 제안한 해결책, 특히 유럽을 위해 제시한 해결책은 다른 대안들보다 우려가 적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사회자 : 다른 대안이라 하면 전쟁이나, 경제 위기, 혁명 등 이러한 것들을 말하는 것인가.
토마 피케티 : 만약 자국 내 기업, 국내 소수 지배자들에게 다시 집중하고 싶다면, 자국 시장으로 후퇴할 수도 있고, 보호주의적 해결책들도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자국 내 기업들과 소수 지배자들이 외국기업보다 특별히 좋거나 나쁘지도 않다. 이렇게 국내 시장으로 다시 중심이 옮겨갈 위험이 있다.
엠마누엘 토드 : 일반적 의미의 보호주의에 대해서 말하지는 않겠다. 말하고 싶은 것은 내가 수년 간 ‘유럽형’ 경제 보호주의와 싸워 왔다는 것이다. 이것은 진짜 에너지 낭비다.
토마 피케티 : 아니다. 낭비가 아니다.
엠마누엘 토드 : 낭비가 맞다.
토마 피케티 Thomas Piketty
프랑스 경제학자.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의 연구 지도자이며 파리경제학교 교수이다. 저서에 <21세기의 자본>(2014) 등이 있다.
엠마누엘 토드 Emmanuel Todd
역사학자, 인구학자, 사회학자. 프랑스 파리정치대를 졸업하고 영국 캠브리지대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국립인구학연구소(INED) 연구책임자로 있다. 첫 저서인 <최후의 추락: 소련권의 해체(La chute finale: Essai sur la décomposition de la sphère soviétique)>(1976)에서 소련의 해체를 예견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경제적 환상(L’Illusion économique)>(1998), <제국 이후: 미국 체제의 해체(Après l’empire: Essai sur la décomposition du système américain)>(2002) 등이 있다.
번역·김수영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