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한 '증강 인류'를 창조하는 우생학

2014-07-02     자크 테스타르

 

1978년 영국에서 처음으로 시험관 아기가 태어난 후, 지금까지 36년 동안 약 5백만 명의 신생아가 시험관 아기(IVF)로 태어났고, 특히 선진국의 경우 그 수가 전체 신생아 중 약 3%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기술은 이렇게 끝없이 퍼져가고 있는데, 생명윤리 규제는 계속해서 느슨해지고 있다. 이대로는 의학 기술로 인간을 ‘개량’하는 시대에 접어들게 될지도 모른다. 인간 개량과 관련해서는 여러 가설들이 있지만, 그중 가장 큰 두 가지를 꼽자면 복제인간과 우생학적 유전자 변형을 들 수 있다.

홀로 번식하는 복제인간이 될 것인가, 얼굴도 모르는 부모일지라도 우수한 유전자를 물려받기 위한 우생학을 지지할 것인가. 대립 관계에 있는 이 두 개념은 실제로 상호 배타적인 정반대 선상에 놓여있다. 첫 번째 가설인 복제인간은 자신의 게놈에 타인의 유전자를 섞어 오염시키는 것을 피하고, 자신과 동일한 유전자 세트를 그대로 지닌 또 다른 인간을 만들어 번식하는 경우를 의미한다. 다만 자신의 복제를 원하는 지극한 나르시시스트(자기 자신에게 애착하는 사람-편주)들에게는 애석한 일이지만, 복제인간은 생물학적으로 볼 때 실현 불가능한 개념이다. 진정한 복제인간은 생물학적 요소들이 동일하게 복제될 때만 가능한데, 이것이 쌍둥이 형성 과정에서 수정란이 분열되는 경우 외에는 전혀 일어나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대두되는 가설은 유전적으로 우수한 일부 사람들을 선별하고, 그들의 유전자를 그대로 또는 필요에 의해 변형 후 번식시켜 다음 세대를 만들어내는 경우다. 실제로 축산업에서 종축(번식용 가축)을 선별하고 있는 것처럼, 이 가설은 기술적 실현이 가능하다. 대표적인 예로, 전 세계적으로 널리 퍼져 있는 프랑스 젖소 품종 프라임 홀스타인도 지금은 수백만 마리에 이르지만 처음에는 다섯 마리의 소에서 시작됐다. 이같이 새로운 형태의 우생학은 우리가 민주주의라고 이름 붙인 이 사회 시스템에서도 시행될 수 있지만, 효율적인 시스템을 위해 오히려 감시하고 억제하는 수단이 될지도 모른다. 우생학적 선인(善人)들이 원치 않았지만 강압적인 도구로 쓰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소극적 의미의 우생학은 이미 우리 곁에 다가와 있다. 예를 들어 생물의학에서는 난자 제공자에 유전학적으로 올바른 정자를 착상시키도록 하고 있고, 체외수정에서는 아직도 의학적으로 정당화할 수 없는 요구에도 배아 선별검사를 시행하고 있다. ‘합의된 도구화’라고 부를 수 있는 이러한 상황은 영국의 작가 올더스 헉슬리가 1931년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에서 묘사한 것처럼 실험실에서 태아를 만들어내는 생명정치(biopolitics)의 세계로 우리 사회를 끌어갈지도 모를 일이다.

생명정치 세계의 가능성

과거와 달리 앞으로는 생명정치를 통한 독재사회를 그리는 데 픽션 소설까지도 필요하지 않다. ‘사회적 당위성’에 의한 의료기술의 보조 범위만 확대해도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이 사회적 당위성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의문 제기가 마땅하다. 의료기술을 통해 아이를 가질 권리를 주장하는 것, 특히 불임이 아닌 경우에 이러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어떤 당위성을 지니는가? 인공수정이 공생(共生)을 위한 것이라는 내용의 인류애적 답변을 요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생물의학기술이 유일한 해결책인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현대에 들어 무르익어가는 자유주의의 특징인 ‘모든 것에 대한 소비 충동’과 ‘아이를 가지고 싶은 욕망’ 간에 어떤 관계가 있지는 않은가.

생산제일주의 사회가 이제는 수요를 만들어내 국민들의 자율성을 가로막는 하나의 기계가 됐다. 사람들이 노화(심지어는 폐경)를 막거나 이성(異性)에 등을 돌리고, 미리 유전자 진단을 통해 태아까지 선택한다. 모든 사람에게 부모가 될 권리를 주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평등주의적 주장들도 결국은 맞춤식 보조생식술(ART, 예:인공수정 시험관 아기-편주)과 대리모 등을 합법화하여 ‘좋은’ 출생과 ‘바른’ 태도를 통제해 ‘적합한 아이를 가질 권리’ 주장에 힘을 실어주게 될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전적으로 디지털 혁명에 근거한 것이다. 삶의 다른 순간들처럼, 난자도 처음부터 정보과학기술의 알고리즘을 따라 진단하게 될 것이다. 삶의 첫 순간을 이렇게 시작한다는 것은 결국 앞으로의 일도 예고하는 셈이다. 동성동물 간 수정이나, 이른바 세포 재프로그래밍 기술로 일반세포부터 자성생식세포, 즉 난자까지 마음대로 만들어내려는 연구 등이 동물들에게 시행되고 있는데, 이런 실험들이 완성되어 새롭게 시장에 나타나게 된다면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일이다.

‘정상아’를 가질 권리라는 것이 여전히 인류에 대한 규정들과 모순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배아 선별을 통하면 체외수정 시에도 모체를 호르몬 치료, 의료적 통제, 난소 채취 등의 테스트로부터 자유롭게 해줄 수 있기 때문에 결국 배아 선별이 점차 일반화될 것이다. 이대로라면 현 세기가 지나기 전에 모든 사람들이 시험관에서 아이를 선택하는 날이 올 것이다. 또한 같은 맥락에서 볼 때, 유전자풀(한 생물종 내에서의 유전 정보 전체) 중 우수한 일부는 정자은행에 저장되고 그 외의 유전자는 쓸모없는 것이 되므로, 불임수술이 일반화되어 의무적인 피임이 사라질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모든 사람의 고유한 특성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개인, 의사들, 산업계가 목소리 높여 새로운 행동을 요구하고 있지만, 보험회사, 보건 전문가, 경쟁 경제 신봉자들의 우려에 자주 부딪히고 있다. 배아의 유전적 선별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각 개인이 자신의 만족과 욕망의 주체가 되면서 생겨나는 모든 윤리적 문제들은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덮을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만들어진 신생아의 ‘품질’은 경쟁력의 문제와 연관되므로 제도적 통제가 필요할 것이다. 또한 우리의 결정이 전 인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모든 인간 개개인을 아우르는 인류의 권리를 규정하는 것이 시급하다. 생명윤리 규제의 효율적인 해답도 바로 여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트랜스휴머니즘적인 보조생식술

보조생식술이 배아 선별과 유전자 진단이라는 방향으로 접어들었지만 성행하는 의료관광이 보여주듯 이렇다 할 국제적 규제안은 만들어지지 못했고, 이제는 금전적·이데올로기적인 문제로만 여겨지고 있다. 생식이라는 근본적인 기능에 도움을 주어 난점들을 보완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이제는 성(性)과 노화 등 인간이라는 생물종이 지닌 특성을 ‘뛰어넘기’ 위한 도구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의료보조를 통한 생식이 지금까지는 예측 불가능한 분야로 여겨졌던 출산의 일반적인 대안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1) 한편 보조생식술이 최근 점점 더 트랜스휴머니즘적인 성격을 드러내고 있다. 트랜스휴머니즘(과학과 기술을 이용해 사람의 정신적‧육체적 성질과 능력을 개선하려는 지적‧문화적 운동-편주)에서 내세우는 ‘증강인류(augmented humanity)’란 생물·무생물이 혼합된 스마트 기기들과 뒤섞인 존재로, 폭력이나 성이 없고 자가 복제로 번식이 가능한 인류를 말한다.(2) 증강인류는 유전자 지문, 카메라, 전자칩(RFID·무선주파수태그) 등의 각종 신원확인 및 감시 장치가 지배하는 사회의 피조물이다. 생명의학의 배려하는 듯 강압적인 제안대로 아이를 만들면서 맞게 될 미래, 선별된 DNA를 신체에 받아들이려고 애를 쓰다가 마주하게 될 우리의 미래가 이 얼마나 뒤틀린 모양새인가.

2013년 1월 28일, 프랑스 드롬 지방에서는 양 축산업자들이 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였다. 유럽 전역의 양 농가를 대상으로 플라스틱 이름표를 RFID 칩으로 바꾸라는 ‘전자칩 이식’이 의무화된 데 반대하기 위해서였다. 사실 이전에도 다른 의무사항들이 있었다. 면양이 감염될 수 있는 블루텅(blue tongue)병을 예방하기 위해 모든 암양에 백신을 의무적으로 맞히라는 지침도 있었지만, 사실 블루텅병은 인체 감염의 위험도 없으며 감염 시 대처가 크게 어렵지 않은 병이다. 뿐만 아니라 이 직전에는 암양들을 유전학적으로 선별된 숫양과 인공수정하도록 하는 또 다른 의무 방침이 내려오기도 했다. 전자칩, 백신, 정자 시장에 이익을 가져다주는 이러한 잇단 규격화 정책들로 현 사회는 프랑스의 경제철학자 세르주 라투슈가 ‘메가머신’이라고 명명한 모습으로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 우리가 동물에게 행하는 일들은 곧 인간에게도 행해질 것이다. 죽음이라는 것이 점차 의학의 영역으로 바뀌어가고 있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인간의 출생과 삶, 죽음은 ‘기계 사회’의 규격성과 절차성이 두려워하는 대상인 ‘사람과 사람 사이’의 범위에서 이내 벗어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지나치게 앞서가 버린 ‘인류를 초월’하려는 계획들에 제동을 걸 수 있는 것은 어쩌면 생명윤리 규범들이 아닌, 경제적 후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경제적 후퇴만을 기다리다가는 반발 의지의 근거인 번뜩이는 이성마저도 물질적·사회적으로 쇠퇴해 버릴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가 처한 비극적 난관들을 너무 늦게 인식한다면, 많은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해결책을 내놓기는 점점 더 어려워진다. 기술의 자율성과 인류의 절제력 사이의 싸움은 이미 시작된 것이다.

글·자크 테스타르 Jacques Testart

생물학자. 체외수정술(IVF)의 선구자적 역할을 해왔다. 현재 프랑스 국립보건의학연구소(INSERM)의 명예연구국장. 저서로는 <미래의 아이를 만들다>(Seuil, 2014) 등이 있다.

번역·김보희 sltkimbh@gmail.com

고려대 불문과 졸.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졸

 

(1) Cf. <Des hommes probables. De la procréation aléatoire à la reproduction normative>, Seuil, 파리, 1999년

(2) Philippe Rivière, ‘Nous serons tous immortels... en 2100’,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9년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