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 왕실의 실상
<배척받은 어느 왕자의 일기> 물레이 히캄
30년 이상 숙부 하산 2세와 그의 아들인 사촌 모하메드 6세와 격렬한 다툼을 벌인 물레이 히캄은 50세의 나이에 모로코 왕실 멤버로서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을 하기로 결심했다. 바로 모로코 왕실의 내부 이야기를 그대로 쓰는 일이었다. 그것도 ‘동방의 군주정치와 식민지배에서 물려받은 관료주의 폭정’의 개념으로 왕실을 바라보는 글을 쓰기로 한 것이다.
하산 2세의 막내 동생 물레이 압달라의 장남으로 태어난 물레이 히캄은 이미 <르몽드 디플로마티크>(1)를 필두로 언론에 여러 번의 기고를 통해 주목을 받은 인물이다. 히캄의 저서 <배척받는 어느 왕자의 일기>(2)는 단순히 모로코 군주제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보는 책이 아니라 백성들과는 그 어떤 것도 실제로 나누지 못한 채 단절된 왕실 사회에 대해 소개하고 이 같은 소개를 위해 히캄은 자신이 개인적으로 걸어 온 길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첨으로 왜곡된 세상인 왕실에서 자란 히캄은 어려서부터 왕자들에게 흔히 준비된 동화 같은 삶을 살지 못했다. 레바논 공화국 가문 출신으로 성격이 강한 어머니 밑에서 주눅이 들었고 숙부 하산 2세의 권위적 태도에 아버지의 부재를 느끼면서 살아온 것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히캄은 정신착란은 아니더라도 정신분열이 여기저기를 지배하는 가식적인 왕실 속에서 연기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최근에는 권력이 집중되는 군주제에 관한 의견이 펼쳐지는 에세이와 기사가 여러 가지 소개되기는 했지만 모로코 엘리트층이 고집스럽게 매달리는 시스템의 이면을 묘사한 책은 히캄의 저서가 처음이다. “모로코 엘리트층은 힘도, 자율성도 없고 무기력한 상황을 바꾸는 일에 관심도 없다.” 히캄이 저서에서 쓴 글이다. 히캄은 왕실의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히캄은 모로코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보다도 정치라 생각하고 있다. 모로코 왕실만큼 모로코의 정치 역시 오랫동안 부패를 키우고 투명성과 민주주의 제도가 들어오지 못하게 막고 있어 모로코의 근대화는 요원하다는 생각이다. 군주제가 어떠한 대가를 치러서라도 개혁에 나설지 지켜봐야 할 일이다.
히캄이 기억하기로 모로코에서 유일하게 일어난 저항은 2011년 ‘아랍의 봄’의 모로코 버전이라 할 수 있는 2월 20일 시위다. 하지만 히캄은 저서에서 단체와 민간 언론에 대해서는 다소 부당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모로코 인권 협회는 권력의 견제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이에 대해서는 제대로 다루고 있지 않고 민간 언론에 대한 탄압도 잘 다루고 있지 않다.
어쨌든 히캄의 저서는 엘리트층에게 결코 환영받는 책은 아니다. 주간지 <텔 쿠엘> 외의 신문들은 히캄의 저서를 비판한다. 겉으로 보기에 왕실은 이 같은 비판을 부추기고 있다. 마침 모하메드 6세는 4월 7일 탕제에서 여러 저널리스트를 초대해 언론행사를 열었다. 히캄의 저서가 파리 출간을 앞둔 바로 전 날의 일이다. 과연 우연일까.
글·이냐스 달 Ignace Dalle
아랍세계 전문 기자. AFP 모로코 특파원 역임
(1) ‘아랍의 군주제, 다음 타깃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3년 1월호
(2) Moulay Hicham El Alaoui, <배척받는 어느 왕자의 일기(Journal d'un prince banni)>, Grasset, 파리, 20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