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적 예외'는 언제까지 FTA의 안전지대인가
최근 위키리크스는 미국, EU 및 20여 개 국가들 사이의 자유무역협정(FTA)을 둘러싼 뒷거래 일부를 폭로했다. 범대서양거대시장(GMT)은 점점 더 우려를 낳고 있지만 프랑스 사람들은 ‘문화적 예외’가 제외될 것이라며 안심하고 있다. 과연 그럴 것인가.
전투는 불굴의 의지를 가지고, 비타협적으로 단호하게 치러졌다. 범대서양거대시장(GMT)을 둘러싼 전투에서 유럽 문화부 장관들은 ‘원한다면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 보이며 승리했다. 문화적 예외(1)는 지켜질 것이다. 그리고 그 ‘나머지’ 협상이 이어질 것이다.(2) 사람들은 그 전투가 호머의 서사시처럼 웅장했다고 전한다.
2013년 5월 13일, 전선이 형성되었다. 오렐리 필리페티 문화통신부 장관은 유럽 문화부 장관 13명과 함께 유명인사 5천 명이 서명한 탄원서가 첨부된 서신을 유럽연합 의장단과 집행위원회에 전달했다. 문화부 사이트에 게재된 이 서신은 “문화 상품이 전적으로 시장의 법칙에 굴복하게 내버려 두기에는 너무나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문화적 예외’를 존중할 것”을 주장했다. 니콜 브리크 당시 국제무역부 장관은 공식성명을 통해 “문화적 예외는 고수해야 하는 한계선”임을 힘주어 강조했다. GMT가 세심하게 준비하고 있는 사회적 덤핑에 대해서는 한마디 언급도 없었고, 투자자와 국가 사이의 분쟁 조정정책을 마련함으로써 다국적기업에 유리하게 만들어진 법에 국가가 굴복하게 되는 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일언반구도 없었다.(3)
한 달 후인 6월 14일, 필리페티 장관은 “프랑스는 EU-미국 동반자협정 협상에서 시청각 서비스의 예외를 얻어냈다”며 승리를 외쳤다. 항의하던 사람들은 정부에 감사를 표하며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렇지만 ‘시청각 서비스는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올리비에 슈마레크 프랑스 시청각최고심의회(CSA) 회장에 따르면, 시청각 서비스는 소리와 영상을 결합한 것, 즉 TV, 영화, 인터넷을 말한다. 그런데 프랑스 시청각에는 프랑스 작품 의무방영 쿼터제와 프랑스 국립영화센터(CNC)를 통한 제작 및 배급 지원 시스템이 존재한다. 이 시스템은 저작권과 사회법 등을 존중하도록 되어 있다. 그 모든 것이 협상으로부터 구조되었다는 말인가?
사전제작지원 혜택 보는 뮤지컬업계
1992~93년에 관세무역일반협정(GATT) 협상에 문화를 포함시키는 문제를 두고 유럽의회에서 처음으로 거대한 전투가 벌어진 이후 ‘문화적 예외’라는 개념을 통해 국제협정, 특히 1995년 창설된 세계무역기구(WTO) 내에서 체결된 협정들에서 문화는 제외될 수 있었다. 이는 시청각분야에 국한되지 않고 문화 영역 전반에 걸쳐 적용되었다. 연극, 음악, 출판 분야에서 프랑스의 문화적 예외는, 예를 들면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에 대해 노동법, 쿼터제 등 수많은 비관세장벽으로 대처해 왔다. GMT 내에서 문화적 예외가 극히 부분적으로나마 존중된다면 그 영향은 상당할 것이다.
한 가지 예로, 지원금의 경우를 보자. 공연은 국가와 지방 등 후원당국으로부터 지원금을 받는다. 그런데 EU 집행위원회 협상 위임사항 23조를 보면 ‘내국민 대우’ 원칙이란 것이 있다. 이것은 “자국의 서비스 제공자에게 주어지는 것과 동일한 권리와 혜택을 모든 협정서명국의 서비스 제공자에게 부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지원금은 경쟁이라는 게임을 불공평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아예 없어질 수도 있고, 모든 사람들에게 지급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지금보다 훨씬 더 민간영역 전체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훨씬 더 광범위한 혜택’이 가능해지리라고 보는 것은, 문화적 상황이 GMT보다 더 빨리 변화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고, 설령 그렇지 않다 해도 최소한 손쉽게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뮤지컬 제작업체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이미 미국과 유럽의회의 ‘사전제작지원’ 혜택 대상에 올라 있다.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 고전적인 ‘텍스트’ 연극과 달리 뮤지컬은 많은 수익을 올리는 경우가 있다. 뮤지컬산업 관계자들의 말을 빌리면, 프랑스가 일부 ‘시대에 뒤진 고리타분한’ 점들만 벗어던진다면 훨씬 더 많은 수익을 올릴 것이라고 한다. 암스테르담에 본사를 두고 유럽 뮤지컬 분야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스테이지 엔터테인먼트는 세계 10대 공연기획사에 들어간다. 이 회사는 프랑스에 모가도르 극장과 홀리데이 온 아이스 프랑스 등 2개 계열사를 보유하고 있다. 2006년 <카바레>(몰리에르 상 6개 부문 후보)를 공연한 것도 스테이지 엔터테인먼트 프랑스이고, 공연 시작 이래 매일 2천 좌석 판매를 기록했던 <미녀와 야수>를 제작하기도 했다.
이 기획사는 공식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유럽에 있는 우리 계열극장에서 국제적인 메이저 제작자들의 예술작품을 소개하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들이 말하는 국제적 제작사 중 톱클래스는 디즈니 영화 프로덕션이다. 이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 제작사는 주로 흥행에 성공한 영화들을 각색한다. 에밀 아돌리노가 감독하고 우피 골드버그가 출연한 <시스터 액트>(1992년)는 스테이지 엔터테인먼트가 판권을 사들여, 원작에 ‘지방색’을 입혀 각색한 후 런던, 함부르크, 비엔나, 밀라노, 파리 등 유럽 각지에서 공연됐다. 지역의 입맛에 맞게 햄버거 맛에 변화를 준 맥도날드와 어느 정도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GMT는 이런 유형의 변화를 장려함으로써 문화의 ‘탈국가화’를 완성시키는 지역화의 궁극적 단계에 다다를 수 있게 해줄 것이다.
GMT가 급격한 변화를 가져오기보다 기존현상을 가속화시킬지도 모를 또 다른 분야가 있다. 바로 사회적 권리의 약화다. 협상 위임사항 22조는 “투자 자유화와 보호”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프랑스에서 공연은 ‘간헐적으로 문화 분야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을 위한 체제’로 분류되어 왔는데, 체제의 법적 정당성을 박탈하고 임시직으로 편입시키려는 수많은 공격을 전부터 받아온 상황에서 GMT 협상이 이루어지면 이 체제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무역자유화가 문화적 예외를 위태롭게 한다는 사실은 서점의 경우를 보면 명백하게 드러난다. 1981년 자크 랑 장관의 보호 아래 제롬 랭동의 제안으로 통과된 서적 정찰제법으로 소매서점들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정가의 5%까지는 할인이 허가돼 있기 때문에 대량 구매자가 상당히 유리하다. 온라인 예매 전문업체인 FNAC은 사전에 미리 구매가격을 협상할 수 있었고 전반적으로 할인된 가격으로 서적을 제공할 수 있었다.
아마존의 공세에 직면한 프랑스 출판산업
아마존이 그들의 시스템을 시행하면서 ‘랑 법’은 새로운 공격을 받고 있다. 온라인 사이트는 정가의 5% 할인을 시행하는 데다 여기에 덧붙여 무료배송을 제공한다. 정찰제가 시행되는 나라에서만 허가되는 자유다. 프랑스 출판노조(4)는 온라인 판매가 진행되는 전체 국가에서 판매서적에 대한 무료배송비가 약 30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FNAC의 온라인 서점에서도 시행되고 있는 이런 변형된 할인판매를 통해 인터넷 업체들이 서적분야에서 수익을 올리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단골고객을 확보하고 경쟁업체를 고사시킬 수 있다. 영업 이익이 극히 적은 동네 서점은 이런 덤핑(5)에 버텨낼 수가 없다. 2013년 10월 하원에서, 그리고 2014년 1월 상원에서 채택된 법안은 무료배송과 판매가 할인을 동시에 할 수 없게 금지한다. 하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이 법은 아직까지 공포되지 않고 있다.
미국에서는, 래칫 크랭크(한쪽 방향으로만 회전을 하고 반대 방향으로는 회전하지 않는 톱니바퀴)와 같은 기계장치가 이미 작동하고 있다. 지난 봄, 아마존은 프랑스 아셰트 그룹의 미국 계열사인 아셰트 북(Hachette Book), 그리고 독일 출판사 보니어(Bonnier)와 전투를 시작했다. 아셰트 사가 출판한 책들이 돌연 온라인 서점에서 구입할 수 없게 되거나, 구매자에게 도착하기까지 엄청난 시간이 걸리게 됐다.
이 대결 게임은 출판업자와 유통업자 사이의 수익배분 문제와 관계가 있다. 자신의 헤게모니를 구축하기 위해 오랫동안 손해를 감수하면서 판매활동을 해온 아마존은 이제 미국 내 서적거래의 30%를 점유하고 있고, 출판업자에게 돌아가는 몫을 줄여 자신의 이익을 회복하려 하고 있다. 종이책의 운명을 넘어서, 산업가들은 출판업자의 역할이 줄어드는 디지털 경제상황을 준비하고 있다. 아마존은 중간 유통업자를 거치지 않고 저자가 자신의 작품을 전자책 형태로 직접 출간하도록 제안함으로써 출판업자가 된 것이다.
양쪽에서 협공 당하는 프랑스 서점의 미래가 이 경제전쟁에 달려 있다. 출판 산업은 프랑스 문화산업 전체 매출의 반을 차지한다. 그리고 아셰트 사 매출의 반은 미국에서 얻는 것이다. 그럴 확률은 적지만, 출판 산업이 GMT 협상에서 제외된다고 해도 서적 정가제는 안전하지 않다. 예외적으로 보호받는다 해도 문화적 예외는 시장의 일반적 관례 속에서 흐지부지될 위험이 크다.
‘잊어버려야 할 낡은 것’으로 분류될 또 다른 프랑스적 특성은 바로 저작권이다. 저작권 조정과 현대화를 목표로 2013년 12월 5일부터 2014년 2월 5일 사이 EU 집행위원회가 발표한 공식 협의내용은 혼란을 가중시킬 여지가 있다. 관련서류는 유럽 법에 어긋나게 영어로만 작성돼 있고, 무엇보다도 설문지에는 저작권과는 거의 관계가 없다고 할 수 있는 카피라이트(copyright) 또는 상업적 권리만 언급돼 있다.
미국, 영국, 아일랜드 등지에서 시행되고 있는 카피라이트는 창작 자금을 부담하는 사람을 저자로 규정하고, 작품은 비디오나 전자문서 등의 실현매체를 통해 물질적으로 한정되어 있어야 한다고 정해놓고 있다. 하지만 저작권은 처음 창작단계에서 각 개인과 관계가 있는 것이고 물리적으로 고정될 것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말하자면 저작권은 안무에도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저작권은 자산이라는 측면(흥행수입에서의 비율, 유산 상속자에게 70년 이상까지 적용) 외에 도덕적 측면도 포함한다. 카피라이트는 이 모든 것을 무시한다(카피라이트와 저작권을 조정하려 시도했던 1971년 베른협약 당시 미국은 이러한 권리에 관계되는 부분에 서명을 거부했다). 이 도덕적 권리는 작품 공개 가능성을 오직 저자에게만 국한시키고 또한 창작물 전체를 온전하게 존중할 것을 요구한다. 인터넷 시대에 이런 점들은 일부 사람들에게 확실히 난관이 된다. 그 일부에는 “소규모 창작자들을 보호하는 것은 바로 우리”라고 거침없이 말하는 구글 프랑스도 포함된다. GMT는 이런 식의 시각을 더 장려할 수 있다.
그런 이유로 범대서양 협약에 반대하는 운동에 예술가와 지식인도 참여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문화적 예외가 구조되면 예술가와 지식인은 나머지 계획에 동조할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더 큰 프로젝트의 일부일 뿐인 GMT가 실패한다고 해서 과연 그보다 더 광범위한 프로젝트가 궤도를 이탈할까?
가격전쟁을 예고하는 넷플릭스의 유럽 진출
왜냐하면 협정 체결 여부와 관계없이 또 다른 변화가 문화적 예외를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용물의 ‘탈선형화’, 다시 말해서 TV 방송사처럼 프로그램을 만드는 매체가 영향을 상실하고, 수요자 중심의 음악 청취나 편집영상을 제공하는 유튜브 같은 플랫폼으로 나아가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 분야의 선두업체는 VOD 서비스 부문 세계 1위 넷플릭스(Netflix)다. 서비스는 유료이며, 수천만 명에 이르는 서비스 가입자가 서버나 TV, 태블릿, 컴퓨터 등을 통해 영화와 시리즈물을 시청할 수 있다. 넷플릭스는 주로 시리즈물을 제공하는데, <하우스 오브 카드>와 <오렌지 이즈 뉴 블랙> 같은 시리즈를 자체 제작하기도 했다. 하지만 넷플릭스는 고몽 그룹의 제1고객이기도 하다(2013년 매출 기준). 판권 확보를 위해서 다수의 제작사와 협상을 벌였고, 작품 제작을 위해 스튜디오와 협상을 완료했다. 가을에는 프랑스를 포함해 유럽 5개국에 진출할 예정이다.
프랑스 VOD 서비스 제공자들은 총매출의 15%를 유럽과 프랑스 작품에 투자해야 한다는 규제를 받는다. 암스테르담에 본사를 두게 될 넷플릭스는 이런 의무규정을 따를까? 넷플릭스는 프랑스 영화제작자금의 30%를 부담하고 있는 카날 플뤼스(Canal Plus)와 경쟁하게 될 것이다. 법으로 정해진 의무규정 덕택에 유료 TV 채널인 카날 플뤼스는 연간 2억 유로에 달하는 금액을 프랑스 영화에 출자하고 있다. 게다가 유럽 및 프랑스 제작 작품 방영 의무 쿼터를 존중할 수밖에 없다. 카날 플뤼스보다 가입비가 훨씬 싼 넷플릭스의 진출은 이런 자원을 궁지에 빠트릴 가격 전쟁을 예고하면서 ‘시장’의 선택만을 제공할 것이다.
어쨌든 이런 전망에 대해 프레데릭 브르댕 CNC 회장은 크게 우려하지 않는 것 같다. 브르댕 회장은 “프랑스 영화와 시청각은 여전히 프랑스에서 부상하고 있는 분야에서 더 크게 성장할 수 있을 것”(6)으로 확신하는 것 같다. 세르주 투비아나 시네마테크 국장 겸 2014년 CNC 사전지원위원회 회장은 “프랑스 영화가 ‘과잉지원’ 상태”이며 “프랑스에서 미국의 재정지원과 더불어 찾아 낼 모델이 있을 것”(7)이라고 평가했다.
시장의 문제에 대해서는 시장의 해결책이 있어야 한다. 프랑스 3대 TV 그룹(TF1, Canal Plus, M6)은 2월 11일에 문화부 장관에게 서신을 보내 “유럽에서 사례를 찾아볼 수 없는 과중하고 복잡한 1980년대식 규제”를 비난했다. 프랑스 영화제작자연합(UPF)은 넷플릭스와 그 유사 업체들이 “우리 프랑스 그룹은 합법적으로 자신들의 의무를 재검토하도록 만들 것이며 이것은 역학적으로 우리 문화모델의 폭발을 가져올 것”(8)이라고 경고했다.
문화적 예외와 관련하여 카렐 드 휴흐트 EU 집행위원은 “집행위원회는 문화적 예외를 포함한 새로운 협상 지침을 요구하기 위해 차후 유럽이사회에서 다시 논의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글·에블린 피에예 Evelyne Pieiller
언론인. 문화와 학술 전문기자
번역·김계영
파리4대학 불문학 박사. 저서와 역서로 <청소년을 위한 서양문학사>(2006), <르몽드 세계사3>(2013) 등이 있다.
(1) 세르주 르구르, “문화적 예외를 위하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1993년 11월호
(2) “열강들이 다시 그리는 세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4년 6월호
(3) 브누아 브레빌 & 마르틴 뷜라르, “국가를 강탈하기 위한 법정”,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4년 6월호
(4) 클라리스 노르망, “무료배송 : SLF, 아마존의 덤핑 고발”, <리브르 엡도>, 파리, 2013년 9월 26일
(5) 장-밥티스트 말레, “아마존, 막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3년 11월호
(6) “프레데릭 브르댕, ‘CNC는 넷플릭스가 멋대로 하게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Les Echos.fr, 2014년 5월
(7) “세르주 투비아나, ‘영화의 은하계는 기능하다’”, <리베라시옹>, 2014년 2월 14일
(8) “넷플릭스, 오렐리 필리페티 장관과 프랑스 진출을 토의하다”, L'Express.fr, 2014년 3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