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단체 로비의 장이 된 유럽의회

2014-07-28     레오 놀레티

수개월에 걸친 비밀 협상 끝에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지난 3월 범대서양거대시장(GMT)을 둘러싼 불투명성에 종지부를 찍겠다고 약속했다. 이제부터 ‘공개 협의’를 통해 투명성을 확보한다는 것이다. 각자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7월 6일까지 20개 언어로 의견 교환 캠페인이 전개되었다. 유럽 시민들은 현재 토의 중인 범대서양 무역투자동반자 협정의 12개 사항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었다.(1)

사람들을 진정시키려 했던 이 절차는 시작되자마자 도리어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이 절차는 무엇보다도 먼저 GMT의 여러 양상 중 한 가지, 즉 ‘투자자 보호’ 및 기업과 국가 사이의 분쟁조정 대책마련에 국한돼 있었다.(2) 어떤 문제-예를 들면 ‘수용’의 문제-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려면 자신의 선택을 정당화하기 위해 EU 집행위원회 측이 제공한 설명과 자료를 고려해야 했다. ‘보고 배우는 식’의 전제조건이 붙는 셈이었다. 이 절차에 대해 제기되는 이견은, 의견 제기의 기술성이나 방향에 있어서 자유무역, 민영화 또는 GMT의 원칙 자체에 대해서는 그 어떤 반대 입장도 표명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런 이유로 시민지원을 위한 국제금융거래 과세연합(Attac)은 “이 협의가 실제로는 민주적 과정이 완전히 배제된 채 겉으로만 민주적인 절차”이며 “집행위원회가 무역을 전체적으로 관리하려는 본래의 목표를 장려하기 위한 흉내에 불과하다”고 비난하고 있다.(3)

애매모호한 시민사회의 협의

이 일화는 유럽의회가 “시민사회의 협의”라고 부르는 것의 모호성을 드러낸다. 이 애매모호한 표현은 몇 년 사이 유럽연합 당사자들의 담론과 관행에 필요불가결한 것이 되었고, 유럽연합 권리에도 도입됐다.

2001년, 유럽 관할권에 관한 백서를 발간하면서 EU 집행위원회는 유럽연합 체제에 대한 광범위한 견해를 개진한 바 있다. 비정부기구(NGO), 비영리단체, 기타 ‘시민대표자들’의 의견을 정기적으로 수렴한다는 발상도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이러한 태도는 국민의 목소리를 더 잘 수용하여, 유럽연합이 오래전부터 이미 겪어왔던 ‘신뢰의 위기’에 대처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 그러나 이 제안은 자체적으로는 전혀 참신한 것이 아니었다. 적어도 1970년대부터 소비자협회, 환경보호협회, 자유수호협회 등 각종 단체들이 의사결정과정을 추적하고, 서류 담당책임자들을 만나고, 로비활동을 고발해 왔기 때문이다.

새로운 점은 리스본협약(2005년 프랑스와 네덜란드가 국민투표로 부결한 유럽연합 헌법을 대체하기 위해 EU가 마련한 조약-편주)이 2007년에 공식화한 이런 관행을 일반화하고 제도화한다는 점에 있다. 그때부터 수백여 개에 달하는 비정부기구들은 ‘참여적 위상’으로 몇몇 결정기관의 의사결정에 참석할 수 있는 허가를 얻었다. 이들은 때로 토론에 참여하고 의견서 형태로 제안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모든 대규모 문안 협상은 이제 ‘시민사회’ 출신 그룹들을 참여시키는 대화의 절차를 따르고 있다.

유럽의회에는 주로 경제적 이익단체들이 포진해 있다. 따라서 신인들은 막후로비에 개입한다. 2014년 3월, 유럽의회에 직접 출입할 수 있는 허락을 받은 인사 중 26%는 NGO 직원이었다. ‘로비스트 명부’(4)라 부를 만한 페이지에는 그린피스, Attac, 국경없는 의사회 등 널리 알려진 기구들의 이름이 올라 있다. 열성활동가들의 입을 통해 종종 들을 수 있는 독특한 표현대로, “권력이 있는 바로 그곳에서 권력을 찾기 위해” 이들은 모두 브뤼셀에 사무실을 가지고 있다.

각각의 주제를 두고 행정당국과 조직적 운동 사이의 비공식적 만남이 정기적으로 이루어진다. 경제 로비활동과 마찬가지로 비정부기구들은 날마다 EU 집행위원회 집행부를 찾는다. 유럽 지도자들 입장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제각기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어야 한다는 다원적이고 열린 자세를 보여줄 수도 있으며, 잠재적으로도 유용한 정보를 수집할 수도 있다.

EU 집행위원회와 마찬가지로 유럽의회 의원들은 이런 식으로 제공된 참석자들을 활용한다. 몇몇 단체는 의원들을 위해 문안 작성을 제안하기까지 하고, 의원들은 이를 통해 무료 서비스를 상당히 누리기도 한다. 그렇게 해서 개선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한편으로 NGO들은 유럽의회에서 더 큰 가시성을 확보하게 되고, 다른 한편으로 의원들은 자신들의 입장에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그룹들과 관계를 맺음으로써 명성을 구축한다. 훌륭한 절차를 교환하고 장르가 뒤섞이는 불분명한 중간지대에서 대화가 피어난다.

이익단체가 NGO 행사 경비 부담

유럽의회의 로비는 강연이나 업무상 조찬, 칵테일파티가 수반되는 전시회 등에의 초대로 분주하다. 게시판과 엘리베이터 벽에는 수백 개의 만남을 알리는 안내문이 항상 붙어 있다. 의원 개인의 후원으로 진행된다고는 하지만 이 만남들은 이익단체가 전적으로 주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이들이 물자를 제공하고 이벤트 행사 비용을 부담한다. 이런 활동은 의원과의 관계를 강화해줄 뿐만 아니라, 인권전문 NGO 책임자의 말처럼 “결정권자에게 가장 가까이 갈 수 있게 해주고, 단번에 실현가능한 방법”이다.

하지만 제도화되기 무섭게 NGO의 존재는 회유의 대상이 되었다. 2008년 초부터 심 칼라스EU 집행위 부위원장은 ‘사이비 NGO’를 경계했다. 오래전부터 각국 정부는 그들 업무 일부를 단체에 위임해왔다. 정부의 자금지원을 받는 단체들은 은밀하게 그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했다. ‘세계 민주주의 진흥’을 목표로 삼고 1983년 창설된 미국 민주주의 기금(National Endowment for Democracy, NED)의 경우가 그렇다. 백악관으로부터 상당한 활동지원을 받는 이 단체는 미국 외교를 대신하는 강력한 중개자가 되고 있다.(5)

유럽의회 역시 이런 그림자 연극을 피해가지 못한다. 유럽의회 내에서 우리는 어김없이 ‘공고(Gongo)’를 접할 수 있다. 공고란, ‘Government organized non-governmental organization’의 약자로, ‘정부의 비정부기구’를 말한다. 전문가들은 이런 기구를 손쉽게 알아보지만, EU 내에 존재하는 사법제도의 숫자만큼이나 많은 나라와 많은 언어가 그들을 식별하기 어렵게 만들고 혼란을 부추긴다. 그런 이유로 칼라스 부위원장이 브뤼셀에 있는 기구들의 활동목표와 자금조달을 보다 더 투명하게 밝혀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이익단체 로비 대행하는 사이비 NGO

‘꾸며낸 시민운동’(astroturf, 시민에 의한 민주주의에 반대되는 개념-편주)은 또 다른 변장의 형태다. 원래 ‘astroturf’라는 영어 표현은 천연잔디를 모방해 깔아놓은 인조잔디를 말한다. 그 이미지에 대해서는 더 설명할 필요도 없다. 바탕 자체가 다른 이런 NGO들은 경제적 이해집단의 자금지원을 받으며 PR기업에 의해 운영된다. 유럽의회에서 ‘시민사회’가 점점 더 정당성을 인정받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단체들은 아마 가장 능수능란한 경제 로비의 해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작업이 제대로 기능하면 이들은 해당 산업체 자격으로, 그리고 관련 시민 자격으로 토론에 두 번 개입할 수 있게 된다.

유럽의회 내에서의 로비활동을 감독하는 유럽관측소는 꾸며낸 시민운동의 경우를 정기적으로 보고하고 있다. 가스 생산업체들의 플랫폼 격인 유로가스에 소속된 몇몇 기업들이 눈가림 단체로 에너지책임 시민연합(Responsible Energy Citizens Coalition)을 만들었다.(6) 이 단체의 목표는 셰일가스 추출에 대한 유럽의회의 투표가 진행되기 전에 수압파쇄법을 장려하려는 것이었다. 이 단체는 ‘원자력 로비’를 비난하는 동시에 ‘셰일’은 은폐하면서 가스의 ‘청정’ 성격을 강조하고, 유럽의회 강당 맞은편에 위치한 홀에서 호화로운 칵테일파티를 개최했다. 몇 주 동안이나 이 단체 회원들은 유럽의회 로비에서 입에 발린 소리들을 쏟아냈다.

‘단체’라는 이름을 내건 이런 속임수는 어제의 주변인을 권력의 끈이 되게 해주지만 미묘한 문제들을 제기한다. 이 단체들의 대표성은 무엇인가? EU 집행위와 협상을 하게 될 기구들은 어떤 기구들인가? 그들은 어떻게 선별되었는가? 모든 기구들이 유럽의회에 지속적으로 참여하는 데 필요한 인적·물적 지원을 펼쳐 보일 수는 없다. 모든 기구들이 그걸 원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끊임없이 계속되는 회의, 숨죽인 협상, 기나긴 의견서에 합의 등을 쓸데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회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절차에 찬동하는 일을 내켜하지 않는다.

참여단체들이 계속 늘어나면 EU 집행위는 그들이 이끌어 갈 ‘항구적인 공개 대화’를 홍보할 수 있을 것이고, 연합한 NGO들이 그들의 새로운 파트너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부드러운 어조를 채택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들의 순진함이 환멸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말이다. 지난 3월 31일, EU 집행위가 시작한 GMT(거대 범대서양 시장) 관련 ‘협의’에 참여했던 두 명의 활동가가 <파이낸셜 타임스>에 보복성 서신을 게재했다. “이런 실망이 또 없다! 우리는 그 협의라는 것이 단지 GMT 내에서 ‘투자’의 필요성을 유럽 여론이 수용하게 하려는 목적을 가진 것임을 알게 되었다. 진정한 협의란 시민들에게 표현의 공간을 열어주어야 하는 것이지만, 이 과정은 표현의 공간을 열어주기보다 GMT 관련 공개토론의 부재라는 상황으로 촉발된 불길을 들쑤시는 격이다.”(7)

글·레오 놀레티 Leo Noleti

번역·김계영

파리 4대학 불문학 박사. 저서와 역서로 <청소년을 위한 서양문학사>(2006), <르몽드 세계사3>(2013) 등이 있다.

 

(1) “범대서양 무역투자 동반자협정(TTIP)에 있어서 투자 보호 및 투자자 국가 분쟁 해결(ISDS) 방법에 관한 공개 협의”, http://ec.europa.eu

(2) 브누아 브레빌 & 마르틴 뷜라르, “국가를 강탈하기 위한 법정”,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4년 6월호

(3) “범대서양 협약 : 집행위원회가 공개협의 흉내를 시작하다”, Attac France, 2014년 3월 27일, http://france.attac.org

(4) Cf. http://ec.europa.eu/transparencyregister

(5) 에르난도 칼보 오스피나, “존경할 만한 재단은 언제 CIA의 뒤를 이을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7년 7월호

(6) “시민연합인가 위장조직인가? 은밀한 셰일가스 로비 유럽의회 입성”, 유럽공동관측소, 2012년 11월 25일, http://corporateeurope.org

(7) 에마 우드포드 & 레오나르도 팔룸보, “TTIP 공적관심사를 경청하다”, <파이낸셜 타임스>, 런던, 2014년 3월 3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