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의 키르치네르주의는 종말을 맞을까?

2014-07-28     호세 나탄손
   
 

지난 6월 16일, 미국 대법원은 부에노스아이레스가 헤지펀드를 갚아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채권단은 자신들이 보유한 아르헨티나의 부채담보채권의 가치에 대한 협상 자체를 거절한다. 이 같은 뉴스가 보도되자, 2011년 대선 1차 투표에서 재선에 성공한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의 입지가 더욱 흔들리며, 그녀의 추억도 가물가물해지고 있다.

2014년 3월 1일 부에노스아이레스, 최근 정치적 행보를 다시 시작한 아르헨티나 여성 대통령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가 19세기 말에 지어진 국회의사당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스 로마의 추억을 간직한 이 건물은 농산물 수출 쪽으로 완전히 방향을 튼 아르헨티나의 황금기를 상징한다. 키르치네르 대통령은 이날 국회 개회 연설을 했다. 전통적으로 대통령은 중대발표를 소규모 모임에서만 했던 터라, 국회연설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중요한 것은 대통령이 3시간에 걸친 연설 동안 2만 3,326단어를 사용한 사실이 아니라, 그녀의 연설 강도였다. 과거 키르치네르 대통령은 야당과 미디어, 기업 사주 등 정적들을 와해시키고, 자신의 결정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이런 기회를 이용했었다. 그러나 이번엔 예전과 달리 신중함과 온화함이 풍기는 연설을 했다. 의원들은 심지어 그녀가 야당 의원들을 칭찬하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1983년, 민주주의 체제로 전환된 이후 가장 긴 정치 사이클이 지속되고 있는 아르헨티나 정치사에 새로운 전환점이 시작된 것일까? 아니면, 일부의 주장처럼 “키르치네르주의(Kirchnerisme)의 종말이 시작”된 것일까?(1) 그렇다고 단언하기엔 아직 이르지만, 정권이 약화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키르치네르주의’란 도대체 무슨 뜻일까? 키르치네르주의는 2003년부터 계속해서 대통령에 당선된 두 명의 키르치네르, 즉 네스토르 키르치네르(2010년에 사망한 현 대통령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의 남편)와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가 지향해온 정치철학을 뜻하는 말이다.

좌파 페론주의에서 탄생한 이 정치세력의 특징은 우파 페론주의가 주창하는 신자유주의와의 단절이다. 또한 중산층 공고히 하기, 서민층을 위한 복지 프로그램 개발, 기업인과 언론에 대한 강력한 통제를 통한 힘 있는 국가로의 회귀 등을 들 수 있다. 이 같은 전략은 놀라운 경제성장을 가져왔지만 경제위기가 축적되면서 몇 달 전부터 성장률도 한풀 꺾였다.

외환보유고 급감에 불안해진 정부

우선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면, 2013년 말, 아르헨티나의 경제 상황은 10년 전 네스토르 키르치네르가 정권을 잡은 이후 처음으로 대통령궁의 통제를 벗어난 것처럼 보였다. 심각한 경제 침체 징후와 함께 중앙은행의 지불준비금은 바닥났다. 2013년 12월, 중앙은행의 지불준비금 규모는 270억 달러에 불과해 6개월간의 수출대금을 감당하기에도 벅찼다.

2001년 디폴트(국가부도) 선언 이후,(2) 아르헨티나는 좌파 정부가 들어선 다른 남미 국가들과 달리 거의 국제 신용대출을 받지 못했다. 따라서 아르헨티나는 남은 외환 보유고를 가지고 자신의 만기부채를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 덕분에, 부에노스아이레스는 국제 통화기금(IMF)과 국제 금융시장으로부터는 자유로웠지만, 2008년 금융위기가 발발한 이후 경제상황이 살얼음판을 걷는 신세가 되었다. 2003부터 2008년 사이 중국과 맞먹는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던 아르헨티나의 경제성장률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3%대로 주저앉았고, 30%로 치솟은 인플레이션은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3) 키르치네르 경제 모델의 핵심 동력인 소비 및 투자전망도 최근에 하향 조정되었다.

2012년, 중앙은행의 지불준비금이 완전히 바닥날까봐 불안해진 아르헨티나 정부는 엄격한 외환보유고 통제에 들어갔다. 그러나 역효과가 났다. 중산층이 서둘러 자본을 해외로 유출하거나 집안의 매트리스 밑에 감춰버린 것이다. 경제난이 닥치면 아르헨티나인들은 흔히 달러 지폐를 매트리스 밑에 보관한다. 지난 30년 동안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1988년과 1990년 두 차례 초인플레이션, 1989년과 2001년 두 번의 대대적인 은행 예치금 몰수, 6번에 걸친 화폐 평가절하 사태를 이미 겪지 않았던가? 수도의 상업 지역 교차로에는 아르헨티나 일상에서 자취를 감추었던 이른바 ‘아르볼리토스(arbolitos)’라 불리는 암달러상들이 다시 등장해 온종일 고객을 맞고 있다.

달러를 받고 자신의 콩을 해외에 판매하는 주요 콩 생산업체들은 달러의 가치를 배가시키기 위해 경제위기를 틈타 페소화의 평가절하를 요구했다. 아르헨티나 전체 수출규모의 40%를 차지하는 콩 수출량의 84.4%를 7개 업체가 차지하고 있다.(4) 이들 생산업체들은 콩밭에 콩을 쌓아두고 정부를 압박했다. 2013년 말, 전국을 다니면서 도로변 펜스 쪽에 산더미처럼 쌓인 수출용 콩을 볼 수 있었다. 2014년 1월,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은 20%의 화폐 평가절하에 합의했다. 그러나 중앙은행이 이 같은 결정을 단행한 것은 국제 금융정세가 변하거나 대규모 수출업자들의 압력과 같은 경제정세 요인들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르헨티나의 경제는 콩, 밀, 옥수수, 광물과 같은 원자재 수출에 달렸다. 그러나 아르헨티나의 산업(농산물 가공업과 관련된 일부 분야를 제외한 모든 산업)은 비단 경제력만 갖추지 못한 게 아니라, 무역수지도 구조적인 적자를 드러내고 있다. 사실, 아르헨티나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현지에서 생산되지 않는 중간 물품을 대량으로 수입해야 한다. 경제 사이클상으로 산업이 발전하면 더 많은 중간 물품의 수입이 필요한데, 이 수입 대금은 농업부문의 무역흑자로 메워졌다. 이 부문의 흑자 규모로 감당이 안 될 때까지 수입은 지속되었다. 경제학자 알도 페레르는 “어떤 측면에서 보면, 농업부문의 무역흑자가 아르헨티나의 산업 팽창, 즉 경제 성장, 직업 창출, 복지 등에 장애가 된다”고 분석했다.(5)

내일을 위해 오늘 굶을 준비가 안돼

한편, 신자유주의자들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시장에 맡겨 진짜 경쟁력 있는 경제부문이 무엇인지 결정하자고 주장한다. 이를테면 농산업과 이 산업에서 파생된 금융 및 부동산 부문을 시장경제에 맡기자고 주장하는 셈이다. 물론 과거엔 농산업 부문이 아르헨티나를 남미 최고의 복지국가로 발전시키고 많은 중산층을 배출했다지만, 현재는 이 부문의 활동이 4천만 명을 웃도는 모든 국민의 복지를 보장해주지는 못한다. 게다가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내일 먹을 빵을 얻기 위해 오늘 굶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아르헨티나는 한국이 걸었던 길, 즉 지난 수십 년간 발전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국민에게 고통 분담을 요구하던 길을 선택할 수도 없다.

키르치네르 정부의 전략은 농업 부문에서 생성된 부의 일부를 보호무역 조치나 농산물 수출세 등과 같은 다양한 유형의 정부 개입을 통해 산업 쪽으로 돌리는 게 목적이었다. 따라서 이 정부는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던 기간 동안 파괴되었던 일부 작물 산업을 복구하고 남미의 다른 지역(세계 언론의 칭찬이 자자한 브라질과 페루)에서와 마찬가지로 최대한 빨리 경제 속에서 원자재의 비중을 줄여나갔다.(6) 2003~13년 동안 아르헨티나의 원자재(콩, 기름, 광물) 수출 규모는 아르헨티나 전체 수출 규모의 약 48% 수준을 꾸준히 유지한 반면, 브라질의 원자재 수출은 46%로 상승했다.(7) 이러한 상황 덕분에 이 기간 아르헨티나 경제성장률은 브라질 경제성장률의 2배에 달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 농업부문의 흑자가 다른 산업 무역수지의 적자를 메우는 데 충분치 않은 것으로 드러나며, 정치적 긴장감이 다시 고조되고 있다.

왜냐하면 정부의 어려움이 비단 회계부문에만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부의 생산이 위축될 때면, 만성적인 부패와 정실주의가 국민을 한층 더 화나게 한다.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 대통령이 2011년 대선 1차 투표 때 54%의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했던 것과 달리, 그녀의 정당인 정의당(PJ)이 2013년 총선 때 30%의 득표율밖에 기록하지 못한 것은 성난 민심 때문이었다. PJ가 국회에서 다수 여당이 되긴 했지만, 이런 상황은 헌법상 3선 출마가 금지되어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가 출마하지 못하는 2015년 대선을 앞두고 현 대통령의 레임덕 현상을 복잡하게 할 수 있다.

후임 대선후보 3명 모두 우파인 난제

현재, 남미 좌파 대통령들은 자신들의 연임을 위해 두 가지 시나리오를 가동시켰다. 우선 이들은 베네수엘라, 니카라과, 볼리비아처럼 헌법을 개정해 재선 출마했다. 다른 방법으로는 2006년 칠레 대통령 리카르도 라고스와 2010년 브라질 대통령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가 미셸 바첼레트와 지우마 호우세피를 각각 자신의 후계자로 지명했듯이, 후계자를 미리 지명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이도저도 할 수가 없다. 이 두 가지 시니라오를 쓰려면, 지도자가 국민들로부터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자신의 정당도 장악해야 하는데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 대통령은 그렇지 못하다.

물론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 대통령에 대한 국민 지지율이 40%나 되어,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라면 부러워할 숫자다. 이러한 그녀의 인기 수치는 라고스나 룰라에 비해 그리 많이 뒤처지지도 않는다. 또한 페론주의 정당(키르치네르가 이끄는 정의당을 지칭)은 제도적인 의사결정 기구를 갖추고 있지 못해 명확한 이데올로기 노선을 선보이지 못하고 있다. 이 정당은 멕시코의 제도 혁명당(PRI)처럼 지자체의 불확실한 유기적인 결합, 즉 온갖 이데올로기가 뒤섞여 있어 본질적으로 실용적인 측면이 강조될 수밖에 없는 결합에 의존하고 있다.

따라서 페론주의 정당은 2014년에 개최될 전당대회 때 대선 후보를 뽑아야 한다. 다니엘 시올리 부에노스아이레스 주지사가 온건한 경제정책과 안전부문에 대한 자신의 우파적인 입장을 통해 두각을 나타내며 각종 설문조사에서 가장 유력한 차기 여당 대선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그는 세금인상을 거부한 채, 사유재산 침해에 대해 강경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한편 극보수당인 공화주의 제안당을 이끌고 있는 마우리시오 마크리 부에노스아이레스 시장과 내각의 지나친 좌편향을 문제 삼으며 내각을 떠난 키르치네르 정부의 전 관료 세르지오 마사가 야당의 유력한 차기 대선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예컨대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 대통령 후임으로 거론되는 대선 후보 3명 모두 이데올로기적으로 우파 인사들인 셈이다.

심각한 경제 상황과 정치 불안, 그리고 노후화된 국가 기반 시설을 현대화하는 데 늑장을 부리는 정부 측의 태도 등이 국민의 불만을 초래하고 있다. 2013년 12월엔 경찰들이 많은 도시에서 파업을 하며, 약탈사태가 빚어졌다. 2014년 3월엔 교사들의 시위로 인해, 지방의 많은 학교들이 20일간 휴교에 들어갔다. 지난 4월, 일부 노조가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24시간 동안 총파업을 선언했다. 이런 사태는 키르치네르가 정권을 잡은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키르치네르주의의 종식을 선언하는 것은 시기상조일 수도 있다. 현 정부는 많은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수의 상·하원들로부터도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지난 1월 진땀을 흘리긴 했지만 보유 중인 콩을 시세보다 싼 가격에 처분해, 달러시세를 안정화하는 데 성공했고, 심지어 부족한 외환보유고도 원상회복을 해나가고 있다. 이와 함께 대통령궁은 광범위한 복지 정책을 펼쳤다. 가난한 집안의 자녀들을 위한 아동복지지원 정책과 서민 주택 마련을 위한 융자 프로그램을 도입해, 약 350만 명과 40만 명이 각각 혜택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젊은이들이 중등교육을 마칠 수 있도록 학자금을 대출해주는 제도가 도입되어 30만 명의 청년들이 신청했다. 또한 노인의 약 90%을 위해 남미 최대 규모에 해당하는 연금제도를 도입했다. 이후, 실업률은 전례 없는 수준(7%)으로 낮아졌고, 노사위원회는 임금 인상을 결정해 실제 인플레이션을 상쇄시켰다.

지금까지, 키르치네르주의 세력은 좌파 정책을 펼치며 위기의 순간을 극복했다. 2001년의 경제위기 여파로, 집권 초반 어려움에 직면했던 이들은 미결제 해외부채에 대한 탕감 협상에 나섰고, 콩에 부과했던 새로운 세금을 철폐시켰다. 2008년 세계 경제위기가 한창일 때는 연금제도를 국유화시켰다. 농산업 부문과 마찰이 생기자, 이들은 보편적인 복지정책과 동성결혼을 승인하는 법안을 도입했다. 2010년, 에너지 위기가 닥치자, 이들은 석유회사(YPF)를 국유화시켰다.(8) 이들은 지금 새로운 난관에 직면해 있다. 위기에 처한 이들이 자신의 기반인 지방과 대도시에서 전열을 다시 가다듬어 부활할 수 있을까?

글·호세 나탕송 José Natanson

번역·조은섭 chosub@hanmail.net

 

(1) Anne Denis, <아르헨티나 금융위기 회귀와 키르치네르주의 종식의 시작>, Slate.fr, 2014년 1월 29일

(2) Maurice Lemoine, <채권자 앞에서 뻔뻔한 아르헨티나와 위축된 그리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2년 4월호

(3) 아르헨티나 통계청(INDEC)의 공식 지표

(4) ADM, Bunge, CHS Argentina, Dreyfus, Cargill, Nidera y Toepfer

(5) <El pecado original de la economía argentina>,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코노 수르판, 2014년 3월호

(6) Anna Bednik, <페루의 모든 금을 위하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4년 3월호

(7) 남미 유엔 경제위원회(CEPAL)의 지표

(8) José Natanson, <석유를 되찾은 부에노스아이레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2년 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