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인기총리, '데몰리션맨' 마테오 렌치

2014-07-28     라파엘레 라우다니
   
 

 어제의 구세주가 우리를 실망시킨 후에는 항상 또 다른 희망의 사나이가 나타난다. 가장 최근에 나타난 사람은 이탈리아의 마테오 렌치. 그가 이끄는 정당은 지난 5월 25일 유럽의회 선거에서 그의 정당이 큰 격차로 이탈리아 최고 성적을 얻으며 사람들의 부러움을 샀다. 젊고 카리스마 넘치는 마테오 렌치가 벼랑 끝에 몰린 유럽 사회민주주의를 구제하기 위한 열쇠를 쥐고 있는지도 모른다.

유럽의회 선거결과가 최종 발표되던 지난 5월 25일, 뛰어난 선거 성적표로 언론의 이목을 집중시킨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다. 현직 정부수반 중에서는 드물게 이번 투표로 입지가 더 강화되는 효과를 누린 인물이다. 이번 선거에서 득표율 41%를 기록한 이탈리아 민주당(PD)은 1976년 총선에서 엔리코 베를링구에르의 이탈리아 공산당(PCI)이 세운 좌파 정당 최고득표율 34%를 갈아치운 것은 물론, 2013년 자체 득표율보다 15%를 더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지난 3월, 프랑스 투자은행가 마티외 피가스(1)는 영감을 주는 인물로 렌치를 이미 지목했다. 피가스가 소유주로 있는 잡지 <레 쟁로큅티블(Les Inrockuptibles)>(미국드라마 ‘언터처블’의 불어 제목 ‘Les Incorruptibles’의 발음을 꼬아 만든 이름-역주)’은 전직 피렌체 시장이기도 한 렌치 총리를 “젊고 야심차며 과감하고 대단히 활동적인” 인물로 평하면서 “이탈리아를 부활시킬 수도 있는 지도자”(2)라고 소개했다. 5월 25일 이후, 렌치는 프랑스의 경제지 <레 제코>(3)가 꼽은 “유럽 개혁의 최대 기대주”, 스페인의 <엘 파이스>(4)에서는 “재론의 여지가 없는 유럽의 리더” 반열에 이름을 올렸다. 극우세력의 부상을 막고 유럽연합에 대한 지지를 되살릴 새로운 ‘모델’이 마침내 나타난 것이다.

<르몽드>는 “조국을 잠에서 깨우고, 사상적 분열을 가뿐히 뛰어넘어 정부와 기업을 화해시키며 국가적 자존심과 유럽연합의 가치를 결합시킬 역량을 갖춘 지도자”(5)에 대한 열광을 숨기지 않았다. 5월 31일, 단추를 풀어헤친 셔츠에 청바지 차림으로 소파에 걸터앉은 렌치 총리의 모습은 프랑스의 <르몽드>를 비롯해 영국의 <더 가디언>, 이탈리아의 <라 스탐파>, 독일의 <쥐트도이체 차이퉁>, 스페인의 <엘 파이스> 1면을 동시에 장식했다. <가디언>은 “마테오 렌치가 유럽의 영혼을 구원할 인물인가?”라고 묻는 기사를 실었다.

청바지 차림 39세 총리의 인기 몰이

그러나 렌치의 이번 승리가 빛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이탈리아에서 민주당이 정상에 오르기는 했지만, 이는 예전에 마리오 몬티가 이끌었던 중도연정이 해체되면서 그 표를 민주당이 흡수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집권 중인 중도좌파 연정의 비중은 선거 후에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또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의 전진이탈리아당(1년 사이에 5% 하락)과 지우세페 그릴로(별명 베페 그릴로)의 오성운동당이 좋은 성적을 못 낸 것도 민주당의 인기 상승 덕분이라기보다는 기권표 증가(41%로 2009년 대비 6% 상승)와 더불어 우파의 북부전선(프랑스 국민전선과 유사)이나 좌파의 ‘치프라스와 함께하는 새로운 유럽’(6) 등 두 EU 반대 정당의 약진 때문이라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즉 렌치가 받은 성적표는 정당 간 세력 균형이 회복되면서 연정정부의 내부구도가 정돈되었음을 증명한다.

렌치 총리의 ‘개혁가’적 이미지에도 미묘한 뉘앙스가 숨어있다. 물론 주요 관직을 60대 인구가 점령하고 있는 이탈리아가 노인정치 경향이 심한 나라인 것은 분명하다. 2012년 칼라브리아 대학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이탈리아의 사회지도층 평균연령은 유럽 국가들 중 가장 높은 59세로, 분야별로는 대학교수가 평균 63세, 장관은 64세, 은행경영자는 67세였다.(7) 이런 상황에서 39세의 렌치 총리와 같은 젊은 피의 등장은 부정부패로 얼룩진 지도층에 질린 유권자들을 매혹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렇지만 렌치가 제안하는 개혁은 그의 개인적 내력이나 좌파의 논리와는 별 관련이 없다. 사실 렌치 총리는 좌파의 전통에 문외한이나 다름없다. 그는 이탈리아 공산당을 거치지 않았고, 공산당의 후신인 좌파민주당 출신도 아니다. 토스카나에서 기독민주당 계열 정치인의 아들로 태어난 렌치는 온건카톨릭 성향의 마르게리타당을 통해 정계에 입문했다. 2007년 마르게리타당과 좌파민주당이 합병하여 민주당이 탄생하면서 렌치는 얼떨결에 이탈리아 좌파의 계보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따라서 렌치가 중앙당 사무국 후보를 상대로 피렌체 시장 민주당 경선에 나섰던 것은 자신을 이방인 취급하는, 그리고 자신에게도 낯선 정당에 대한 일종의 공개매수 선언으로 볼 수 있었다. 2014년 4월, 작전은 구체화되었다. 그는 정치력 행사를 통해 당 동료인 엔리코 레타 총리를 밀어내고 그 자리를 꿰찼다. 선거를 통해 국민의 인정을 받지 않고는 권력을 잡지 않겠다고 수없이 공언했던 그가 스스로 약속을 깨뜨린 것이다.

사람들이 그토록 열광하는 변화는 결국 렌치의 약속 이행능력 여부가 아니라 전적으로 이미지와 정치적 소통의 산물인 셈이다. 적당한 허세와 자신감이 묻어나는 직설화법을 구사하고 TV와 뉴미디어(특히 트위터)를 능숙하게 이용하며, 제도와 규칙의 파기를 즐기는 취향도 드러냈다. 광고회사 출신이기도 한 그는 청바지 차림으로 이탈리아 정치를 쇄신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 렌치를 자신의 후계자로 기대

이런 점에서 보면 그는 언론을 주물러 꿈과 희망의 사나이로 자리매김하는 법을 완벽히 알고 있었던 베를루스코니의 후예이다. 2010년 두 사람의 첫 만남 때부터 ‘일 카발리에레(베를루스코니 총리의 별명. 이탈리아어로 ‘기사’라는 뜻-역주)’는 “렌치가 다른 좌파 늙은이들과는 다른 인물이며, 가지 않은 길을 갈 능력이 있다”며 자신의 젊은 후계자에 대한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중도우파 연정의 수장으로 렌치를 앉히려 할 정도였다.(8)

렌치의 재능은 베를루스코니의 영향력과 그릴로의 오성운동당에서 얻은 교훈을 하나로 엮어내는 데서 드러났다.(9) 렌치는 민주당을 비롯해 오로지 자기들의 이득에만 혈안이 된 기득권층과 싸울 ‘싸움꾼’이자 ‘데몰리션 맨(파괴자)’ 역할을 스스로 맡았다. 대부분 정치경험도 없고 무게감도 부족한 인물들을 남녀 동수로 채워 내각을 구성한 것이 그 증거다. 이탈리아 민주당이 유럽의회 선거에 제출한 모든 명단은 중앙당의 지시에 따라 여성이 관리했으며, 이들 중에는 대중적 인지도가 거의 없는 여성도 있었다. 이런 방식은 베페 그릴로가 오성운동당을 운영하는 권위주의 체제와 닮았다. 그는 카리스마적 지도자로 군림하면서 소속 의원들을 자기 기분에 따라 승진시키기도 하고 파문시키기도 하며 의원들을 ‘관리’하고 있다. 렌치와 그릴로에게 있어 소속 의원들은 언제라도 교체 가능한 존재인 듯하다. 의회의 존재 자체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생각이 기저에 깔려 있는 것이다.

취임 초부터 렌치 총리가 추진하는 변화는 크게 두 가지이다. 즉, 선거제도의 ‘개혁’과 정치가 집단의 특권 축소이다. 정부의 홍보전략도 이 두 가지 우선순위에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성과가 미미하다. 사회지도층의 생활수준에 대한 문제제기의 일환으로 알파 로메오와 마세라티 등 관용차량이 경매에 넘어갔다.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된 이 조치는 상징적인 수준의 성공을 거두었고, 경매에 나온 관용차는 불티나게 팔렸다. 이탈리아 국민들은 정치인에 대한 신뢰는 없지만 닮고 싶은 마음은 있기 때문이다.

피에트로 그라소 상원의장은 “선거제도와 상원을 개혁하는 사업이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다”고 주장했다. 구스타보 체그레벨스키를 비롯한 이탈리아 법률가들은 가뜩이나 상원의 역할이 약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37% 득표율만 달성하면 하원 630석 중 340석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다수당 특혜 도입은 위헌에 가까운 수준이라고 지적했다.(10)

반면 경제 및 사회 분야에서는 큰 동요가 없다. 소득이 1,500유로 미만인 근로자 1,000만 명을 대상으로 수개월간 월 80유로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정책은 렌치 총리가 전임자들과의 연속성을 감추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 주는 상징적인 사업으로 보인다. 그 정도로 재정이 무너지지는 않는다. 보조금 지급 덕분에 렌치 총리는 유럽연합이 부르짖는 긴축정책을 경멸하는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했고, 유럽연합 선거운동 중 이를 자랑스럽게 내세울 수 있었다.

하지만 보기와 달리 사실 싸움꾼인 렌치 총리는 정통 사민주의와는 무관한 전통적 블레어 노선의 주창자를 자청한다. “일자리 법”이라 이름 붙인 최근의 노동법령을 통해 특별한 사유 없는 기간제 근로계약의 기간을 12개월에서 36개월로 연장하고 8회까지 계약 갱신을 허용하면서 사실상 직업불안정화 경향은 더 두드러졌다. 마찬가지로 렌치 정부는 몬티 정부에서 승인했던 퇴직연금 개혁을 겉으로는 반대하면서도, 이를 개정할 의사를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지안카를로 파도안 경제장관은 심지어 “고령층이 젊은이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는 것은 거짓말”이라며 “은퇴연령의 점진적 연장을 지지한다”고 밝히기도 했다.(11)

신자유주의적 개혁 성과가 과제

렌치 총리는 절대적 신뢰를 받고 있다. 전임자들이 실현하지 못했던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과감히 밀어붙일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에 대한 국내외 언론의 관심도 상당하다. 명품브랜드 토즈의 디에고 델라 발레 회장, 재계 거물 플라비오 브리아토레나 카를로 데 베네데티를 비롯해 명망 있는 주요인사의 지지도 확보하고 있다. 최근에는 피아트의 CEO인 세르지오 마르치오네가 “렌치의 정책만이 유일한 희망이다. 그에게 귀를 기울여야 한다”(12)고 나서기도 했다.

렌치 총리는 취임 후 부자 지지자들에 대한 감사 표시를 잊지 않았다. 데 베네디티 가문이 소유한 소르제니아 그룹은 세금 2,300만 유로를 감면받았다. 데 베네디티 가는 일간지 <라 레푸블리카>가 소속된 언론사 에스프레소 그룹도 경영하고 있다. 어쩌면 <라 레푸블리카>가 렌치 총리에게만 유독 우호적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법하다.

렌치 총리가 중요시하는 ‘데몰리션 맨’의 이미지는 그가 추진하는 변화에도 완벽하게 적용된다. 자동차와 폐가전 제품에 대한 보조금 지급이 사실상 기업의 숨통만 터주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약속된 ‘변화’ 또한 곧 퇴색될 일회용 단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렌치는 어려운 정치적 악보를 보고 음악을 연주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소외계층의 생활여건에 대한 실질적 개선책을 내놓으면서도, 그의 리더십을 떠받치는 대주주들의 다양한 이익도 보장해야 한다. 특권을 포기할 의향이 없는 좌우파 정치인, 금융기업, 변호사집단 등이 그들이다. 그러면서도 신자유주의의 교리를 너무 멀리해서는 안 되며, 트로이카 채권단(유럽연합, 유럽중앙은행, IMF를 일컬음-역주)의 지시사항도 따라야 한다. 렌치 총리에게는 시간이 없다. 그가 실패한다면 그의 적극적인 후견인들도 피해를 면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 라파엘레 라우다니 Raffaele Laudani

볼로냐대학 역사인류지리학과 연구원 역임

번역· 김혜경 hyekyung3@gmail.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1) 크리스틴 르쥬, “마티외 피가스(라자르드) ‘긴축정책으로 경기회복에 성공한 나라는 없다’”, <라 트리뷘>, 파리, 2014년 3월 29일

(2) 올리비에 뮐러, “마테오 렌치, 당신은 대체 누구인가”, <레 쟁로큅티블>, 2014년 4월 6일

(3) “유럽의 ‘투우사’ 신드롬과 마테오 렌치”, <레 제코>, 파리, 2014년 6월 4일

(4) «“Si hacemos reformas creíbles, el populismo ya no tendrá futuro”» <엘 파이스>, 마드리드, 2014년 5월 30일

(5) “마뉘엘 발스는 꿈꾸고 마테오 렌치는 실현하다”, <르몽드>, 2014년 6월 11일

(6) 알렉스 치프라스는 그리스의 좌파 계열 시리자 당 대표이며 지난5월 유럽의회 선거에서 유럽좌파당 후보로 출마했다.

(7) Maurizio Tropeano, «Abbiamo i potenti più vecchi d’Europa - Politici e manager sfiorano i 60 anni», <라 스탐파>, 토리노, 2012년 5월 17일

(8) Francesco Bei, «Renzi-Berlusconi ad Arcore - Il Cavaliere : “Tu mi somigli”», <라 레푸블리카>, 로마, 2010년 12월 7일

(9) “하늘이 이탈리아에 보낸 또 한 명의 사나이”,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2년 9월호

(10) «Zagrebelsky : “Renzismo? Maquillage della Casta. E il Colle favorisce la conservazione”», Il Fatto Quotidiano, 로마, 2014년 3월 9일

(11) «Pensioni, Pier Carlo Padoan : “Sono favorevole a un graduale aumento dell’età pensionabile”», <허핑턴 포스트>, 2014년 5월 31일, www.huffingtonpost.it

(12) «Marchionne : “L’agenda Renzi è l’unica possibile, spero lo ascoltino”», <라 스탐파>, 2014년 6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