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담 후세인 흉내 낸 이라크 총리의 오판
‘이라크·레반트 이슬람 국가’의 공격에 놀란 자가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미군 철수 이후 이라크의 변화에 무심했던 자들뿐일 것이다. 이라크 중앙정부의 무능력과 친시아파 정책이 바로 수니파 저항의 촉매제가 됐다.
최근 이라크 북서부 일대를 중심으로 등장한 수니파 지하디스트들의 부각은 문자 그대로 한 편의 쇼를 방불케 했다. 마치 저속한 풍자극의 한 장면을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단 이번 편에서는 이라크의 벽장 안에 숨어든 것이 다름 아닌 테러리스트였다. 난데없이 테러리스트가 무대 위에 등장하자, 시아파 출신 총리 누리 알말리키는 기겁하는 표정을 아주 실감나게 연기하며, 황급히 집 안에 자객이 들었다고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암살자를 빨리 밖으로 쫓아내 달라고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실상 자신의 집 대문을 활짝 열어 지하디스트를 집에 들이고 먹을 것까지 대령한 것은 다름 아닌 총리 자신이었다. 물론 총리의 우군들, 특히 이란 동지들 역시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는 건 아니었다. 다만 지금은 그들도 총리의 연기에 장단을 맞춰주는 것이 이익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을 뿐이었다. 어쨌거나 평생 자기 사람으로 남을 친구의 실수를 덮어주기 위해 테러리스트는 너무나도 좋은 핑계거리였던 셈이다.
올해 6월, ‘이라크·레반트 이슬람국가(ISIL·아랍 약어로는 DAASH라고도 불림)’라는 이름을 내걸고 활동하는 수니파 지하디스트들은 별 큰 전투도 치르지 않고 손쉽게 이라크 북부 도시 모술을 점령했다. 모술은 이라크에서 두 번째 혹은 세 번째로 큰 도시에 속한다. 한편 모술뿐 아니라, 수니파 아랍인들이 지배하는 이 지대에 속한 기타 지역들 역시 이라크 정부의 치안체계가 무너지면서 반군에 급속히 함락됐다. 이라크 정부는 미국에게 제공받은 군사차량을 비롯한 군수장비들을 내버린 채 도망가거나, 수많은 포로들(대개 무차별 불법 체포한)을 내팽개치고 줄행랑을 쳤다. 심지어 적군이 쓸 수 있는 노획물까지 남겨놓았다. 한 중앙은행 지점에 예치되어 있던 무려 5억여 달러의 막대한 자금이 적의 수중에 들어간 것이다. 한편 비교적 덜 급진적인 무장 세력들도 반군에 합류해 최근 전투에서 자신들이 세운 공적을 실제 이상으로 과도하게 부풀렸다. 또한 피난을 떠나지 않은 일부 주민들은 ‘해방’이니, ‘봉기’니, 심지어 ‘혁명’까지 운운하며 반군의 승리에 환호했다.
쿠르드족은 절호의 기회를 틈타 또 다른 이라크 주요 도시 키르쿠크를 장악했다. 키르쿠크 지역은 석유자원이 풍부한 데다, 수년째 이 지역의 통제권을 놓고 이라크 정부는 물론 기타 소수 민족들과 첨예한 갈등을 빚을 정도로 쿠르드족에게는 민족 정체성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다. 그러나 쿠르드족이 거둔 이 두 번째 쾌거에 대해서는 모두들 비교적 잠잠한 편이다. 사람들의 관심이 온통 지하디스트들의 부상에 쏠려 있기 때문이다. 알말리키 총리나 그의 시아파 동지와 정적들, 미국 정부와 대부분의 언론에 따르면, 지하디스트들은 도무지 거스르기 힘든 막대한 공세를 퍼붓고 있다. 모두 저마다 지하디스트들이 결국 사마라의 시아파 왕가의 묘소들을 점령해 파괴하고 새로운 종교 전쟁을 일으키거나 혹은 수도를 정복한 뒤 이라크와 시리아 일대 광대한 지역에 걸쳐 이슬람 수장국을 수립할 것이라고 우려의 목소리를 높인다.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알말리키 총리는 자기 진영 내에 병력을 총동원하기에 나섰다. 총리의 도움으로 세를 불린 각 종파의 민병대와 일부 시아파 인사들도 총리의 행보를 뒤따르고 있다. 이란 정부도 지원군을 급파해 민병대 조직을 지원하거나 사실상 그들 곁에서 함께 전투에 참여하고 있다. 미국도 이라크에 다시 항공모함 2대를 파견했다. 파견 지역은 2011년 이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그토록 완전 철수를 위해 애를 썼던 군사작전지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그렇다고는 하나 이번 사태를 둘러싸고 몇 가지 기본적인 의문점들이 남는다. 대체 전체 인구 약 2천5백만 명 가운데 100만 명이 무장을 했을 정도로 전 세계에서 소문났던 이라크의 치안체계가 어떻게 이처럼 지하디스트들의 진격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진 것일까? 게다가 지하디스트들에 대한 지지도가 예전보다 상승한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과거 알카에다 계열의 이 지하디스트들은 2007년 모술을 점령하고 길거리에서 아무나 마구잡이로 목을 베어내며 시민들에게 끔찍한 공포의 기억을 남기지 않았던가? 더욱이 알말리키 총리의 동맹자인 누제이피 가문을 비롯한 시아파 출신의 지역인사들은 어찌하여 지하디스트들을 막아내기 위해 어떤 지원에도 나서지 않는 것일까? 마지막으로 정말 중대한 질문이 남아 있다. 최근 총선 승리에 힘입어 3선을 노리고 있는 현 총리에 대해 우리는 과연 어떤 평가를 내릴 수 있을까?
‘테러와의 전쟁’으로 독재 시도
알말리키는 본래 이슬람 시아파 군소정당인 알다와에 소속된 별 영향력 없는 인물에 불과했다. 그랬던 그가 타협적인 인물이라는 이유로 2006년 총리직에 올랐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아무도 위협하지 않을 인물로 보인 덕분이었다. 당시 수니파 무장단체와 시아파 민병대 사이에는 내전이 치열하게 벌어졌다. 원래 두 조직은 모두 미국 점령에 함께 맞서 싸우던 동일한 저항조직에 속했다. 그러나 이후 서로 간에 피해의식과 원한이 깊어지면서 분열의 길을 걸었다. 이런 상황에서 총리는 수니파 무장조직의 편에 섰다. 시아파 민병대를 몰아낼 보충 병력으로 수니파 무장조직을 활용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러나 2008년 총리의 이미지가 180도로 돌변했다. 총리가 표방한 정치 전략 역시 급변했다. 당시 미국의 뜻에 따라 이라크 정부가 알카에다와의 전투를 치르기 위해 수니파 민병대를 조직했던 것이다. 이라크 정부는 수니파 민병대를 점점 더 통제 불능으로 변해가는 시아파 민병대를 견제하는 수단으로 삼길 원했다. 물론 실질적인 측면에서 알말리키의 역할은 미약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이를 계기로 알말리키 총리는 내전 논리를 뛰어넘어 이라크를 안정적인 나라로 이끈 지도자라는 명성을 얻게 되었다.
알말리키는 이후에도 줄곧 사담 후세인과 유사한 이미지를 표방하며 구원자 역할을 구현했다. 시아파 지지자들은 그가 사담 후세인과 비슷한 이미지를 표방하는 것에 대해 그다지 큰 우려를 나타내지 않았다. 사실상 지난 고통은 전 정권에서 빚어진 비극에 불과하다고 생각했고, 난폭한 이라크의 민족들을 통치하기란 결코 만만하지 않다는 이유도 있었다. 시아파 지지자들은 어쩌면 옛 독재자에 버금가는 지도자, 다만 이번에는 자신들과 같은 종파에 속한 지도자의 등장을 은연중에 갈망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테러와의 전쟁’은 금세 알말리키 총리에게 허울 좋은 핑계거리가 되어 주었다. 알말리키 총리로서는 온갖 목표를 단번에 추구할 수 있는 명분을 얻은 셈이었다. 덕분에 알말리키 총리는 한층 더 중앙집권적인 권한을 쥐게 되었고, 미 점령자들이 남기고 간 엄청난 치안조직의 통제권까지 손에 넣을 수 있었다. 2010년 12월 이후 알말리키는 총리직은 물론, 최고사령관에 이어 국방장관, 내무장관까지 줄줄이 겸직했다. 한편 권력 공백에 대한 우려에 휩싸인 미국과 이란은 알말리키 총리에게 모든 정권 교체 시도에 대한 첩보 사실을 사전에 알려주거나, 때로는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었다. 2008년 대통령에 오른 버락 오바마는 하루 빨리 이라크에서 철군하기를 희망했다. 한편 이란도 자국의 이익에 반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안정적으로 이라크를 이끌 수 있는 이라크의 지도자감을 원했다.
물론 ‘테러와의 전쟁’이 알말리키만의 전유물이라고 볼 수는 없다. 아랍 세계에서는 거의 모든 지도자들이 테러와의 전쟁을 온갖 추악한 부정행위를 정당화하는 명분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현 시리아 대통령의 부친 하페즈 알아사드, 1990년대 알제리 군부, 리비아의 카다피, 튀니지의 벤 알리 등이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물론 예멘의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 역시 2012년 권좌에서 물러나기 전까지 알카에다의 위협을 명분으로 삼아 장기집권체제를 확립하기도 했다. 2011년 ‘아랍의 봄’이라 불리는 민중봉기가 일어나 온갖 종류의 적의와 불만, 열망에 직면한 정권들 역시 거의 모두가 어김없이 테러와의 전쟁을 부르짖었다.
수니파 탄압이 대규모 저항 초래
그러나 이라크 총리는 이 방식을 무차별적으로 애용했다는 점에서 다른 지도자들과는 차별화된다. 알말리키 총리는 수니파를 의도적으로 철저히 소외시키는 한편, 수니파 조직을 괴멸하는 식으로 국가조직을 약화시켰다. 그가 세력면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더욱 더 이해할 수 없는 처사였다. 물론 시리아에서도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이 2011년 이후 비슷한 행태를 보이기는 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시리아 민중이 현 정권의 몰락을 공공연히 지지하는 외부세력의 지원을 등에 업고 대규모 저항을 일으켰기 때문이었다. 반면 알말리키는 아주 냉정한 판단에 입각해 미국으로부터 승계한 수니파 민병대(대개 종파가 아닌 일종 부족으로 구성된 민병들)를 배제·해체하는 한편, 더 나아가 종파적 성격이 한층 강화된 더욱 부패한 안보인력을 운용하기에 이른다. 그는 모든 형태의 수니파 저항을 ‘테러’로 간주하고, 무차별 체포와 불법 구금, 온갖 만행을 일삼았다.
이라크 수니파들은 한편으로는 2011년 인접국들에서 일어난 민중 봉기에 한껏 고무되어 정부의 부당한 처우에 항거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시리아 반군의 무장화 사태를 지켜보며 잔뜩 사기가 저하되기도 했다(물론 최근 내전에서 경험한 뼈아픈 패배의 기억 역시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2012년부터 이라크 수니파들이 한데 결집해 평화적인 방식으로 불만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라크 수니파 도시들의 광장을 점거하고 침묵 연좌시위를 벌였다. 그들의 요구는 언제나 그렇듯 수니파에게도 정당한 기회를 주는 균형 잡힌 국정 운영이었다. 그러나 알말리키 총리는 수니파의 요구를 묵살했다. 서서히 폭탄테러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알말리키 총리는 폭탄테러 증가를 일종의 경고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오히려 기존의 입장을 고수하는 명분으로 삼을 뿐이었다.(1) 수니파 내부에 그동안 별로 탐탁지 않게 여기던 폭력이라는 선택지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일부 강경파를 넘어 조금씩 확대되기 시작했다.
한편 시리아 사태가 알라위파 정권과 수니파 반군 간의 종파 전쟁으로 치닫자 알말리키 총리는 결국 알라위파인 알아사드의 편에 섰다. 인접국 시리아에서 반군에 대한 탄압이 점차 극렬하고 거세지는데도 알말리키 총리는 이에 대해 일절 비판을 삼갔고, 중재 역할에 있어서도 소극적이었다. 알말리키 총리는 이란의 지원 하에 시리아 전쟁터로 향하는 지원병들에게 이라크 국경을 활짝 개방했다. 언젠가 세상이 종말하고 새로운 메시아가 등장할 것이라는 종말 사상을 추종하는 이 지하디스트들은 이제 별 어려움 없이 바그다드 공항이나 시리아행 고속도로(민감한 두 사회기반시설은 현재 이라크 정부군이 철저히 통제하고 있음)를 무사통과했다. 그런데 그들은 단순히 이라크를 거쳐만 가는 것이 아니었다. 이라크 내에서도 종파 간 증오심을 조장하거나 거리 시위를 벌이거나 민병대를 조직했던 것이다.
한마디로 내전을 종식하겠다던 자가 실은 기를 쓰고 내전의 불씨를 되살리는 형국이 아닐 수 없었다. 강력한 힘을 지닌 미국이나 이란의 대사들은 대체 이 사태에 대해 어떻게 반응했을까? 적어도 모술 장악 전까지 양쪽 모두 이라크 정부에 무한한 지지를 보낸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했다. 그러나 여기저기 재앙을 알리는 징후가 포착되기 시작했다. 사실상 수니파 무장단체와 시아파 민병대가 재출현한 것만으로도 이미 경고음을 울리기에는 충분했는지 모른다.
국가조직보다는 절대적 군림에만 관심
하지만 더욱 심각한 징후는 국가조직의 쇠퇴였다. 국가조직의 쇠퇴는 오늘날 이라크가 직면한 끔찍한 상황을 일찌감치 예고하고 있었던 것이다. 알말리키 총리가 치안조직을 정치적 목적에 이용하는 한편, 바나나 공화국(주로 미국 등의 외국 자본 지배 아래 부패한 독재자와 그 부하가 정권을 장악하고 있는 정치적으로 불안한 작은 나라를 가리키는 경멸조의 표현-편주)에나 어울릴 법한 부정부패를 용인하면서 치안조직의 역량이나 결속력이 더욱 약화됐다. 이라크의 치안조직은 급기야 권력 분배의 수단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알말리키 총리는 의회의 역할을 축소하고 모리배들에게만 둘러싸인 채 자신의 공약을 헌신짝처럼 내던지면서 결국 위기관리를 위한 모든 정치적 수단을 잃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사법시스템 역시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는 제도로 전락했다. 경제적 측면에서도 석유 이권 차지에만 골몰한 결과, 거의 모든 개발 정책이 수포로 돌아갔다. 요컨대 알말리키 정권은 생존전략에만 혈안이 된 나머지 이미 취약해질 대로 취약해진 국가조직의 기반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버리고 만 셈이었다.
그럼에도 국가조직의 해체는 수많은 이라크 세력에게 이익으로 돌아갔다. 가령 총리의 정치적 동맹자들은 자기 몫의 파이를 챙길 수 있어 이득이었고, 총리의 정적들도 경쟁자가 세력이 약화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을 수 있어 좋았다. 한편 이라크 정권이 최대한 이리저리 쉽게 휘둘리는 취약한 조직으로 변해갈수록, 이란 정부나 시아파 민병대, 쿠르드 지역정부의 입장에서도 모두 이득이었다. 한편 미국은 이라크 사태를 수수방관했다. 미국은 10여 년에 걸친 군사 점령을 종식하고 마침내 이라크에서 완전 철수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그저 일이 잘 풀리기만을 어렴풋이 바라며 이라크 철군을 지체시킬 수 있는 모든 상황에 눈을 감아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알말리키 총리가 더욱 과격하고 무능해질수록, 한마디로 실패를 거듭할수록, 총리의 입지가 더욱 공고해지는 결과가 나타났다. 사실 2012년 말 수니파 시위가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알말리키의 재선 여부는 불투명하기 그지없었다. 특히 시아파 내부적으로 총리에 대한 실망감이 팽배했다. 당시 이라크는 비교적 안정적인 정국을 유지했지만 더 이상 발전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1년이 지난 뒤 이라크는 또 다시 유혈 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2006~07년 암흑기 때처럼, 매월 1,000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그러나 그 덕에 이라크 실력자의 지지도는 수직상승했다. 수니파의 모술 장악 이후, 총리의 조기퇴진 가능성은 한층 더 희박해졌다. 시아파가 그의 편에 섰고, 이란 정권이 그에게 신뢰의 제스처를 보냈다. 애매모호한 입장에 있는 자들 사이에서도 권력 공백에 대한 우려감이 고조됐다.
권력 유지에 악용되는 ‘테러와의 전쟁’
현 이라크 사태는 많은 문제점을 제기하고 있다. 그렇다고 모두가 아는 뻔한 결론에 만족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를테면 이번 사태의 책임이 미국에 있다든지, 혹은 현 사태를 알말리키 개인 차원의 문제로 환원한다든지 혹은 ‘테러리즘’의 위협이 고조되고 있다는 식의 해석에만 그쳐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사실 많이 이야기되고 있지는 않지만 진정 중요한 문제는 바로 이 국정운영방식과 국가조직의 성격이다. 사실 총리 개인의 인격은 부차적인 사안에 불과하다. 총리가 지금처럼 행동하도록 이끈 것은, 또 그로 인해 어떤 보상을 받게 만드는 것은 바로 총체적 상황이 작용한 결과에 불과할 뿐이다. 가령 2014년 3월 알말리키 총리가 ‘테러와의 전쟁’을 주제로 대규모 국제회의를 개최하였을 때 국제연합(UN)이 그 쇼에 참석해 알말리키에게 박수갈채를 보낸 것도 바로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해볼 수 있다.
한편 현 사태는 지역적 차원의 문제이기도 하다.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의 일방통행식 강경책이 성공을 거둘수록 문제의 근원보다는 오히려 해법으로 여겨지는 듯하다. 지난 6월 이후 압델 파타 알 시시 사령관 역시 군사정보기관에서나 나올 법한 조처를 취했어도 이집트 대통령에 당선됐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이미 외부 세계로부터 면죄부를 부여받은 것처럼 보인다. 바레인에서도 지배왕가가 단 한 발짝도 양보하지 않았지만 어떤 부정적 피해도 입지 않았다.
오늘날 많은 중동 국가들이 이런 식으로 국정을 운영하며 국민국가 차원에서 나라를 통치하려는 과제를 포기하고 있다. 각 정권은 이제 더 이상 이데올로기를 통해서도, 개발을 통해서도, 혹은 심지어 탄압을 통해서도, 사회 내부의 분쟁을 극복하려 애쓰지 않는다. 그들은 오히려 분열을 조장 또는 심화하거나 분쟁을 더욱 부추길 뿐이다. 사회의 일부 구성원을 과격화하면서, 그들은 다른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서 입지를 강화한다. 그리고 모든 건설적인 계획들을 방기한다. 오로지 정권 교체에 대한 두려움만 있으면 충분히 권력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각 국가제도들이 지닌 국가적 성격을 약화하려 한다. 각 국가기구의 자율성을 없애고 자신들 스스로가 없어서는 안 될 절대적 존재로 군림하려고 한다. 그리고 ‘테러와의 전쟁’을 명분삼아 외국에 자신들을 세일즈하기에 여념이 없다. 이때 ‘민주주의’ 선거는 그들에게 더없이 큰 힘이 되어 준다. 그러나 민주주의 선거라 해봤자 실상 일부 사회 구성원들만이 열렬히 투표에 참여할 뿐, 나머지 비통함에 젖은 구성원은 투표에 불참하는 비루한 현실만이 도사리고 있을 뿐이다.
이라크는 이런 식의 국정 운영 방식이 어떤 결과를 몰고 올지 우리에게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러니 이런 의문을 가질 수밖에. 대체 이 같은 게임판에 뛰어들 이유가 과연 무엇인가?
글·피터 할링 Peter Harling
중동 프로그램 프로젝트 이사. 이라크와 시리아, 레바논에 역점을 두고 활동하고 있다.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서울대 불문학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1) Feurat Alani, ‘이라크로 번지는 시리아의 갈등’,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4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