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중동의 평화 협상은 항상 실패하는가?

2014-07-28     알랭 그레쉬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 협상이 어떤 성과도 없이 종결되었다. 미국 특사들조차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강경한 자세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이 이스라엘 지지를 재고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부 반대에 처한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은 팔레스타인 재통합을 위해 하마스와 손잡을 수밖에 없었다.

“정착촌 건설을 막고자 하는 결정에 의해 평화협상이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스라엘의 연립정부 때문에 성과를 얻을 수 없었다고 생각했고 따라서 협상을 그만뒀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상 실패에 관한 기사(1)를 준비하던 이스라엘 일간지 예디오트 아하로노트의 유명한 언론인 나훔 바르네아로부터 질문을 받자, 익명의 미국 관계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는 네타냐후 총리가 연정을 유지하기 위해 정착촌 건설 입찰을 이용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우리는 또한 정착촌 건설 지속으로 연정 장관들이 협상의 성공을 아주 효과적으로 방해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협상 실패 후 지금에 와서야 우리는 정착촌 건설(14,000 주택)이 대규모 토지수용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스라엘인들이 협상 진행상황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놀랐는가?”라는 질문에 오바마 정부의 관료는 “그렇다. 모셰 얄론 이스라엘 국방장관이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원하는 것은 노벨 평화상을 받는 것, 단 한 가지라고 했을 때 미국이 받은 모욕은 정말 끔찍했다. 우리는 이스라엘을 위해 노력하고 있었는데 말이다”라고 답했다.

바르네아 기자의 취재원은 모두 익명이었지만, 미국의 모든 관계자를 접촉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오바마 대통령에 의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협상 중개를 맡았던 마틴 인디크도 포함되었다. 중요한 논거는 단 두 단어로 요약된다. “우리(미국 측)는 몰랐다.” 우리는 정착촌이 의미하는 바를 몰랐다, 우리는 이스라엘 정부가 협상에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것이다.

과연 이것을 믿을 수 있을까? 이스라엘의 주요 동맹국으로 40년 전부터 ‘평화 과정’에 동참해온 미국이 과연 ‘몰랐을까’?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이 여타 국제 문서를 고려하지 않은 채 수십 번 바다를 건너고, 수백 시간에 걸쳐 막후 거래와 전화통화, 화상회의를 하고, 그 지역 지도자 대부분과 만남을 거듭했는데 어떻게 몰랐다고 믿겠는가.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그같이 엄청난 노력을 들인 끝에 이스라엘인들이 협상에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미국이 “이제야 깨달았다”고 하는 것을 과연 단순하게 믿을 수 있을까? 이스라엘 정착촌의 무게에 짓눌려 ‘오슬로 협정’이 묻힌 지 10년이 넘었다. 1993년 이후 요르단강 서안과 동예루살렘에 유대인 35만여 명이 정착했다. 그런데도 미국은 여전히 알지 못했다고 한다.

“당신들 눈에는 우리가 보이지 않는다”

과연 케리 국무장관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그렇게 끈질긴 이유는 뭘까? 진짜로 ‘몰랐을까’? 사실 케리 장관과 오바마 대통령, 그리고 미국의 전임 대통령들은 모두 이스라엘과 동일한 시각을 가지면서 더 이상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팔레스타인의 입장도 이해하지 못한다. 팔레스타인 협상 대표 사에브 에레카트는 이스라엘 측에 “당신들 눈에는 우리가 보이지 않나 봅니다”라고 말했다. 에레카트의 지적은 미국에도 완벽하게 적용된다.(2) 미국과 이스라엘은 모두 오래된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내 것은 내 것이고 네 것은 협상의 대상이다.” 1967년 이스라엘이 점령한 땅은 ‘분쟁 지역’이며 동예루살렘, 정착촌, 안전, 난민, 물 등 어떤 문제이건 간에 팔레스타인 민족의 모든 권리는 협상가능하다. 따라서 모든 양보는 피점령자인 팔레스타인의 몫이지 점령자인 이스라엘의 몫이 아니다. 이스라엘이 이스라엘의 안보와 땅에 대한 ‘유대 민족’의 권리 등을 문제 삼으며, 고통스럽게 요르단강 서안지구의 40%를 양보하기로 할 때 이스라엘은 큰소리를 낼 수 있었다.

이 같은 태도로 인해 이스라엘 정부는 더 많은 걸림돌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이 하나를 양보하면 또 다른 양보를 요구하지만, 어느 것 하나 만족스럽지는 않을 것이다.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했다면(이스라엘도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집트나 요르단, 그리고 네타냐후 총리의 첫 번째 재임기간(1996~1999)에 팔레스타인 민족에게 요구되지 않았을 유대민족의 특성에 대한 인정이 팔레스타인 민족에게 요구된다.(3)

그렇지만 이번에는 이스라엘의 거만하고 완고한 태도가 미국 측 책임자들을 불쾌하게 만들어 미국 측이 수차례 불만을 터뜨린 바 있다. 그들 가운데 일부(오바마 대통령 포함)는 유서 깊은 팔레스타인 땅에서 한 개의 국가가 아닌 두 개의 국가를 인정하는 것 이외에 다른 해법은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케리 국무장관 본인이 ‘인종차별’ 체제에 대한 경고를 보냈다. 비록 금방 철회했지만.(4)

미국은 초반에는 협상이 이루어지는 데 대해 만족감을 표시했다. 2013년 7월에 시작된 협상은 9개월간 계속되었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국제법적 합법성에 비추어 여러 면에서 양보를 받아들였다. 향후 팔레스타인 국가의 비무장화, 5년간 유르다인 계곡에 이스라엘군 주둔 후 미군으로 교체, 예루살렘 정착촌을 이스라엘 주권 하에 두기, 요르단강 서안지구 정착자의 80%를 이스라엘 국가로 편입시키는 영토 교환이 그 양보이다. 마지막으로 난민의 귀환은 이스라엘의 동의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5) 압바스 팔레스타인 수반처럼 많이 양보한 팔레스타인 지도자는 없었다. 그리고 향후 이를 받아들일 또 다른 지도자도 거의 없을 것이다.

(다른 시각으로 보면 후퇴일수도 있는) 이 모든 진전사항에 대해 이스라엘은 아주 강하게 “NO”라고 반응했다. 나훔 바르네아의 미국 취재원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요르단강 서안의 안전 확보가 필요하다며 영토 전 지역의 통제권을 요구했다(1967년 11월 UN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242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점령’이라는 표현을 절대로 쓰지 않는다). 이는 팔레스타인 민족에게는 이스라엘이 요르단강 서안을 항구적으로 지배하겠다는 의지의 표출로 보였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정부 간의 안보협력이 이처럼 긴밀했던 적은 없다. 이스라엘인의 안전이 보장되었는데도, 팔레스타인은 영토 분할로 인해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 지구에서 끊임없는 통제로 모욕을 당하고, 주기적으로 희생자가 나오는 양보 속에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점을 상기해야만 한다. 2013년 사살된 팔레스타인인은 36명인데, 이는 이전 해보다 3배 증가한 수치라고 이스라엘 인권단체 브첼렘(B’tselem)이 발표했다.

이스라엘 협상 방식에 불쾌한 미국

2014년 4월 29일 협상 시한 만료 몇 주 전에 네타냐후 총리가 단지 시간을 벌려고만 했다는 사실이 명확해졌다. 우선 1993년 이전부터 구금해온 팔레스타인 포로들을 4차 석방하겠다는 약속을 저버렸다. 그러자 팔레스타인 당국은 이스라엘 정부가 1967년 이래 거리낌 없이 위반하고 있는, 특히 점령국의 의무를 규정하는 제네바협약을 비롯한 몇몇 국제 조약을 비준하며 반격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당국은 일단은 국제형사재판소(ICC) 협약을 비준하지 않았다. ICC 협약은 이스라엘 지도자들을 전쟁 범죄, 반인륜적 범죄로 기소할 수 있다. ICC에 따르면 점령 지역에 정착촌을 건설하는 것은 전쟁 범죄에 해당한다.

이스라엘 정부가 요르단강 서안을 ‘영원히 언제까지나’(성경, 다니엘 7~18) 통제하겠다는 결정을 확고히 하자 파타당(팔레스타인 온건파-역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마흐무드 압바스 수반은 2007년 이래 팔레스타인의 입장을 약화시켜온 분열에 종지부를 찍을 때가 됐다는 결단을 내렸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양측의 조건이 무르익었다. 이스라엘과 이집트 신정부의 공동 봉쇄, 이집트가 조직한 극렬한 반(反)팔레스타인 캠페인으로 약화되고, 이슬람 지하드 같은 훨씬 급진적인 조직들과 알카에다를 표방하는 단체들에 의해, 내부의 반대에 맞닥뜨린 하마스(팔레스타인 무장 정파-역주)는 압바스 수반의 의견에 동조했다.

이에 따라 지난 4월 23일 압바스 수반이 이끄는 ‘전문가’ 정부의 설립, 6개월 이내에 총선 이행, 그리고 대통령 선거 실시 등이 합의됐다.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는 또한 내부 선거를 실시해 그간 따로 행동했던 하마스를 통합하게 될 것이다. 이 합의에 의해 2011년 카이로에 이어 2012년 카타르 도하에서 합의한 양측 화해 방안을 이행하기로 했다.

팔레스타인에 양보를 더 요구하는 이스라엘

이스라엘은 미국이 비난하지 않고 유럽연합(EU)이 환영을 표시한 파타당과 하마스의 통합을 기회로 삼아 어쨌거나 궁지에 몰린 막후 거래를 끊기로 했다.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총리는 “압바스 대통령은 이스라엘과의 평화, 하마스와의 화해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6) 그는 지난 수개월간 압바스 수반이 가자 지구를 통제하지 못한다며 그의 ‘대표성’에 의문을 제기해왔다. 이에 대해 압바스 수반은 “향후 통합정부는 전문 관료와 독립 활동가로 구성될 것”이라고 응수했다. “이스라엘은 이렇게 묻는다. 팔레스타인 정부는 이스라엘을 인정하는가? 나는 물론 그렇다고 대답한다. 팔레스타인 정부는 테러리즘을 포기하는가? 물론이다. 팔레스타인 정부는 국제법률상 합법성을 인정하는가? 물론이다.”(7)

네타냐후 총리와 그의 연립 정부(연정), 그리고 나프탈리 베네트가 이끄는 유대인 가정당(이스라엘 의회 의원 120명 중에 유대인 가정당 소속 12명) 같은 연정에 참여하는 극우 정당들에게 이 질문을 바꾸어 물을 수 있을 것이다.(8) 과연 이들이 1967년 이래 팔레스타인을 독립국가로 인정 또는 유엔 결의안을 인정하는가? 물론 그렇지 않다.

그러나 협상이 계속 중단되면서 미국과 이스라엘은 피해를 보고 있다. 미국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경제 제재를 가할 경우 이스라엘에 대단히 구체적이고 즉각적인 위협이 있을 것이다. 경제 제재가 부메랑이 되어 팔레스타인 정권이 붕괴되고 이스라엘군이 250만 팔레스타인인들의 목숨을 관장하게 될 수도 있다. 팔레스타인 재정을 지원하는 국가들이 지원을 중단하게 되면 이스라엘 재무장관이 이에 필요한 30억 달러를 부담해야 할 것이다.”(9)

다른 한편으로는 이른바 ‘평화 회담’이 지속되는 한, 이스라엘에 대한 제재와 보이콧을 요청하는 목소리의 신뢰도가 떨어진다(줄리앙 살랭그의 기사 참조). 회담 중단 이후 독일 정부가 수십억 달러에 이르는 이스라엘의 독일 잠수함 구매에 대해 보조금을 지원하지 않겠다고 결정했다면 이는 우연이 아니다.(10) 그리고 EU는 이스라엘에 대해 수많은 망설임과 배려 끝에 제재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스라엘이 그동안 수없이 국제법적 합법성을 위반했을지라도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지원은 굳건했다는 점이다. 최근 인디크가 말한 바와 같다. “이스라엘과 미국의 관계는 근본적으로 변했다(1973년 10월 전쟁 이후). 나처럼 내부 상황을 알 수 있는 사람들만이 두 나라 간의 관계가 얼마나 공고한지 증언할 수 있다. 오바마 미대통령이 자랑스럽게 ‘견고한’ 양국 관계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는 자신이 말하는 바를 생각하고 자신이 무엇에 대해 말하는지 알고 있다.”(11) 1973년 10월 전쟁 이후 헨리 키신저 당시 미 국무장관이 한편으로는 이스라엘, 다른 한편으로는 시리아, 이집트와 협상할 때 진행됐던 상황과는 달리, 오바마 대통령은 당시 닉슨 대통령이 했던 것처럼 이스라엘과의 군사적 관계를 중단하지 않을 것이라고 인디크는 덧붙였다.

미국의 입장은 ‘팔레스타인 국가는 내일 언제나 내일’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미국은 어떠한 압력 없이는 중동 평화를 이룰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팔레스타인 민족이 ‘예루살렘에서의 새해’를 맞을 수 있도록 전 세계 여러 국가가 공동으로 채택한 이스라엘에 대한 강력한 제재 조치와 시민 사회가 주도하는 보이콧이 필요하다.

 

글·알랭 그레시 Alain Gresh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중동 이해를 위한 100가지 열쇠>(Cent Clés du Proche-Orient>(2006)의 저자

번역·조승아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1) Nahum Barnea, «Inside the talks’ failure: US officials open un» www.ynetnews.com, 2014년 5월 2일

(2) Cité par Martin Indyk, <The Pursuit of Middle East Peace: A Status Report>, Washington Institute for Near East Policy, Washington, 2014년 5월 8일

(3) Sylvain Cypel, <‘유대인 국가’ 불가능한 정의 L’impossible définition de l’“Etat juif”>, OrientXXI.info, 2014년 5월 5일

(4)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이스라엘을 인종차별국가로 규정했다고 반박”, Lemonde.fr, 2014년 4월 29일

(5) Charles Enderlin, “미국은 이스라엘에 대한 실패의 책임을 거부” 참조, Blog Géopolis, 2014년 5월 3일

(6) Herb Keinon, “Netanyahu: Abbas must choose, peace with Israel or reconciliation with Hamas”, JPost.com, 2014년 4월 23일

(7) 2014년 5월 8일자 팔레스타인 위성TV에서의 인터뷰를 BBC Monitoring이 방영, 런던, 2014년 5월 10일

(8) Yossi Gurvitz, “Israël도 역시… ” 참조, Manière de Voir, n° 1 34, “극우의 새로운 얼굴들”, 2014 4-5월호

(9) Nahum Barnea가 인용, op. cit.

Barak Ravid, “Germany nixes gunboat subsidy to Israel, citing breakdown of peace talks”, Haaretz, Tel Aviv, 1948년 5월 15일

(10) Martin Indyk, <The Pursuit of Middle East Peace: A Status Report>, Washington Institute for Near East Policy, Washington, 2014년 5월 8일

 

(11) “팔레스타인 국가는 내일 언제나 내일…” 참조,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1년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