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과 카타르가 두려운 사우디아라비아

2014-07-28     알랭 그레쉬

예멘과 이라크 등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들과 갈등을 빚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는 자국의 상황을 ‘태풍의 눈’ 속에 있다고 표현하고 있다. 특히 이란의 급부상으로 생존마저 위협받고 있는 처지에 미국과 이란 사이의 핵협정 체결이 가시화되고 있어 이란이 오랜 고립을 끝내고 국제무대에 복귀할 준비를 하고 있다. 사우디의 대응책은 무엇인가? 

“이란은 항상 사우디아라비아 문제에 간섭해왔다. 2003년 알 카에다가 리야드에서 자행한 테러(1)도 이란이 승인한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대학교의 한 교수는 알 카에다 테러에 이란이 관련되어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서로에 대한 증오를 숨기지 않는 시아파 정권과 수니파 조직의 조합은 설득력이 약해 보이지만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은 우리가 만난 리야드 대학교 교수만이 아니었다. 사우디 왕가 소유 일간지인 아스-샤륵 알-아스와트의 영향력 있는 논설위원 타렉크 호메이드는 최근 칼럼에서 “미국은 이란이 오사마 빈 라덴이 만든 조직을 후원했다는 것을 인정하라”고 요구했다.

사우디의 지도층이 이처럼 확인되지 않은 말을 하는 것은 점점 고립되어 가는 사우디의 상황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 대학 교수는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들과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고, 그 갈등 뒤에는 항상 이란의 검은 손이 숨어있다”고 덧붙였다. 먼저, 사우디 왕가는 이라크의 누리 알-마리키 정부와 관계를 거의 끊다시피 했고 2011년 3월에는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촉발된 ‘아랍의 봄’의 영향을 받아 일어난 바레인 반정부 시위에 군대를 파견해 진압해 버렸다. 이란이 바레인을 혼란에 빠뜨리기 위해 사주를 해서 시위가 일어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예멘 북부에서 일어난 후티의 반란(주도자인 후세인 바드르 에딘 알-후티의 이름을 인용)은 예멘 내부의 문제로 촉발된 것인데도 사우디는 “이란 혁명 수호자들의 검은 공작”이라고 비난했다.(2)

시리아와 레바논 문제에서도 지역 맹주인 사우디와 이란의 대립을 확인할 수 있다. 이란은 시리아와 레바논 헤즈볼라(시아파 무장단체)를 지원하고 있고, 사우디는 아랍에미리트, 바레인 그리고 레바논의 전 장관 사드 하리리가 이끄는 3월 14일 운동과 동맹을 맺고 있다.

사우디의 근심은 걸프만 6개 국가가 회원으로 있는 걸프협력회의(GCC, Gulf Cooperation Council)(3)의 내부 균열이 커지고 있는 것과 관련이 있다. 2013년 12월 초, 오만은 사우디가 제안한 걸프연합 창설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강력하게 표명했고,(4) 그 결과 6개 회원국의 군사력을 결집하는 걸프합동사령부(Gulf Military Command) 창설 계획도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사우디와 바레인을 제외한 나머지 GCC 회원국은 모두 2013년 11월에 합의된 미국과 이란의 핵협상을 환영했고, 이란 외무부 장관의 자국 방문을 수락했다. 쿠웨이트의 경우는 헌법에 명시된 자유보장 규정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사우디가 주도하고 있는 국가안보에 관한 GCC 협정에 서명하는 것을 현재 거부하고 있는 상태다.(5)

이런 불안한 상황 속에서도 사우디아라비아는 지난 3월 5일 아랍에미리트와 바레인에 뒤이어 주 카타르 대사를 소환하겠다고 밝혔다.(6) 물론 걸프지역의 수장인 사우디와 그 옆 작은 토후국인 카타르는 양국 모두 와하비파(이슬람 원리주의 살라피즘을 기초로 한 18세기 보수주의 운동. 사우디아라비아의 건국이념)에 속해 있으면서도 한 번도 순탄한 적이 없었다. 1992년에는 국경분쟁으로 군사적으로 충돌한 적까지 있었고 1995년에는 왕세자 하마드 빈 칼리파 알-타니가 쿠데타를 일으켜 왕위에 오르자 양국의 관계는 더욱 악화되었다. 사우디는 2002년에도 자국 대사를 소환한 적이 있었다. 카타르에 본사를 둔 위성채널 알자지라의 쿠웨이트 지부가 사우디 왕국을 창건한 이븐 사우드 국왕에 대한 비판 프로그램을 방영한 것에 항의하는 조치였다. 카타르로부터 알자지라의 비판수위를 낮추게 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후 2008년에야 대사를 다시 파견했다.

‘아랍의 봄’ 이후 골이 깊은 사우디와 카타르

사우디와 카타르는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군사적 지원을 포함해 다방면으로 시리아 반군을 지원하고 있지만 ‘아랍의 봄’ 이후 양국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카타르는 변화를 지지했고 변화의 열매를 수확하는 데 무슬림형제단에 많은 기대를 걸었던 반면, 사우디는 무바라크 대통령의 축출로 큰 상처를 입었고, 지역이 혼란에 빠지는 것을 두려워해 무슬림형제단을 ‘테러조직’으로 규정했다.

무슬림형제단과 사우디는 과거 오랫동안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1990년대부터 무슬림형제단이 사우디 왕국을 적극적으로 비판(7)하자 사우디 왕가의 주요 탄압 목표가 되었다. 물론 사우디 왕가의 탄압은 무슬림형제단뿐 아니라 민주주의를 촉구하는 사우디 시민정치권리협회(ACPRA)의 공동 창립자인 모하메드 알-카타니와 압둘라 알-하미드에게 중형을 선고하는 데서도 볼 수 있듯이, 자유주의 지식인에게도 가해지고 있다. 올해 2월 초 사우디 왕가는 “종교 그룹이나 지식인 그룹에 속하는 자, 국내외에서 테러리스트로 규정된 모임이나 단체에 속하는 자, 그들의 사상이나 견해에 지지를 표하거나 그들에게 우호적인 언사를 하는 자는 3년에서 20년형에 처해질 수 있다”라는 강력한 국왕 칙령을 신문을 통해 발표했다. 여기서 말하는 ‘테러리스트’에는 무신론자, 이슬람 근본주의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포함된다.

칙령은 우선적으로 무슬림형제단을 겨냥하고 있지만 시리아 내전에 참가한 사우디인들이 사우디로 돌아오도록 유도하는 목적도 가지고 있다. 시리아 내전에 참전한 사우디 군인들의 공식적인 수치는 1,400명이지만 6,000~1만 명이라는 설이 더 유력하다. 사우디 미디어가 시리아 정권을 연일 거세게 비난하고 있는데 걱정할 이유가 있을까? 사우디는 1980년대 아프간 전쟁에 참전했다가 돌아온 수천 명의 군인들에 대한 악몽에 아직도 시달리고 있다. 걸프 지역 한 외교관은 “사우디의 대(對) 시리아 정책은 갈수록 ‘대(對) 테러’ 정책으로 변하고 있고 특히 사우디 내무부에서 이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8)고 밝혔다. 사우디 정부는 주 터키 대사에게 터키를 경유하는 사우디인들을 소환하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하라고 공개적으로 명령하기도 했다.

사우디의 주요 국가정책은 여전히 90세의 압둘라 국왕이 결정하고 있다. 하지만 목표가 분명한 대 시리아 정책의 실행 임무는 두 왕자에게 맡겨졌다. 내무부 장관이며 2003년 이슬람 봉기를 진압했던 무함마드 빈 나이프 왕자의 최우선 정책은 ‘테러 전쟁’이며 2012년 7월부터 정보국장을 맡고 있는 반다르 빈 술탄 왕자도 이슬람전선의 살라피스트 그룹을 지지하는 등 나름대로 알-아사드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한 효과적인 방식을 모색했었다. 하지만 미국으로부터 무기 이동에 대한 감시가 소홀하다는 지적을 받았는데 작년 4월 15일 술탄 왕자가 ‘사임’을 한 이유가 그 때문이라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다.

시리아 반군에 대한 지원은 사우디 전체가 찬성하고 있지만, 물론 소수인 시아파를 제외하고 반대로 2013년 7월 이집트 대통령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의 축출을 지원한 것에 대해서는 논란이 일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저명한 한 기자는 “이슬람교도인 대통령을 축출하는 것을 우리가 지지해야 하느냐, 우리도 심각한 주택, 빈곤문제로 고통을 받고 있는데 수십억 달러나 되는 돈을 이집트에 쏟아 부어야 하느냐 등의 비난이 처음으로 들리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전에는 들을 수 없었던 불만들이 SNS 상에서 표출되고 있고 사우디 정부는 막으려 하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전통적인 아랍 강국이었던 이라크, 시리아, 이집트는 힘을 잃어가고 있고 국내 문제에 더 몰두하고 있기 때문에 지역의 시선이 점점 사우디에게 모아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답을 제시할 능력이 없다. 시리아 내전은 말할 것도 없고 이라크나 바레인 위기에도 우리는 힘을 쓰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미국과 이란 핵협상에 사우디 불안감 커져

미국의 정책변화도 사우디의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데 한 몫을 하고 있다. 지난여름 오바마 대통령은 시리아에 폭격하는 것을 거부하고 대신 시리아와 화학무기 폐기 협상에 합의했다. 이에 대한 사우디의 대응 방식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사우디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비상임 이사국이 되기 위해 수년 동안 노력을 기울인 끝에 이사국에 선출되었지만, 이사국 지위를 포기했고 외무부 장관인 사우드 알-파이잘 왕자는 시리아 사태에 아무런 조치를 취하고 있지 않은 유엔에 항의의 표시로 유엔 총회 연설을 거부했다.

이후 오만에서 열린 미국과 이란의 비밀협상이 알려지고 2013년 11월에 핵협상 타결이 발표되면서 사우디는 미국이 아랍 국가들을 버리고 이란과 손을 잡을 것이라는 오랜 공포를 다시 경험하게 되었다. 전 정보국장이었던 투르키 알-파이잘 왕자는 2010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란과 미국 때문에 사우디의 국익이 크게 손상될 수 있다는 것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핵을 보유하고 있는 이란과 이스라엘 사이에서 꼼짝할 수 없게 될 것이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이란의 대통령이 아흐마디네자드인 것을 신께 감사한다”고 덧붙였다. 물론 아흐마디네자드 이란 전 대통령이었다면 미국과의 핵협상은 상상할 수도 없었겠지만(9) 어쨌든 지난 6월 선출된 하산 로하니 정권이 과거로 회귀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사우디는 미국과 이란의 핵협정의 내용보다도 협정을 맺었다는 사실, 그리고 국제 사회에서 이란의 고립이 끝났다는 것을 더 두려워하고 있다.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관계는 언제나 사연이 많았고, 남녀관계처럼 더 많이 사랑한 사람은 버림받지 않을까 걱정해야 했다. 양국의 관계는 무엇보다도 국익에 따라 변하는 전략적인 것이었다.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1990~91) 때나 2009년 11월과 12월에 있었던 예멘 후티파 반군과의 전투에서 증명되었듯이, 사우디는 절대적으로 미국의 군사력을 필요로 하고 있고, 미국은 종종 대형 무기구매계약으로 자국의 군수산업을 먹여 살려주고 세계 석유시장 안정을 보장해주는 사우디가 필요하다.

올해 3월 28일 오바마 대통령이 사우디를 공식 방문한 것도 이 원칙을 상기시키고 사우디 정치지도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목적이었다. 하지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는 못한 것 같다. 그날 알자지라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사우디 시사평론가가 인정한 것처럼 오바마 대통령의 우선정책은 이란과 핵협상을 마무리하는 것이고, 반면 사우디는 걸프 지역에서 이란의 개입을 막는 것이다. 사우디 왕가는 변화된 상황에 적응해야 할 것이다.

또 다른 분석가는 사우디 일간지에 “누구도 이란이 평화적인 나라라고 얘기할 수 없을 것이다. 사우디는 국가안보를 최우선으로 여기고 있으며 누구도 우리의 방어권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라는 글을 기고했다.(10) 그렇다면 사우디의 대안은 무엇인가? 미국의 입김에서 벗어나 바레인의 반정부 시위를 진압하거나 이집트의 군사정권을 대대적으로 지지할 수도 있다. 하지만 미국이 시리아 반군에 대한 지대공미사일 지원을 여전히 승인하지 않고 있는데 사우디가 감히 미국의 말을 어길 수는 없을 것이다. 사우디와 이스라엘은 이란과 관련해서는 공동전선을 구축하고 있다. 그리고 두 나라 지도자들의 ‘우연한’ 만남이 사우디 언론에 언급되기도 했다.(11) 그렇다고 두 나라가 정치적으로 공조를 하지는 않을 것이다.

쉽지 않은 수니파 공동전선

지금까지 제대로 부각되지는 않았지만 사우디 체제는 구조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다. 사우디 왕국의 정당성은 순전히 종교, 보수주의, 비정치성에 기반하고 있다. 그리고 와하비즘과 살라피즘(초기 이슬람시대를 모범으로 회귀해야 한다는 수니파 사상)은 군주에 대한 복종을 강조하고 있고, 종교적 이단자들을 벌하는 방법은 알고 있지만 ‘정치적 이단자’들과 싸우는 데는 무능하다. 사우디는 1950~60년대에 가말 압델 나세르 이집트 대통령과 그가 주창한 아랍 민족주의에 맞서기 위해 무슬림형제단의 힘을 빌려 정치적 틀과 의제를 설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무슬림형제단을 탄압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이데올로기의 부재에 직면하게 되었다. 여러 위성채널에서 방영되는 살라피즘 선전 프로그램만을 보더라도 정치가 배제된 보수주의 찬양인지 반시아파 연설인지 아니면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순수한 종교적 설교인지 주제가 확실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아파와 이란의 위협’에 맞서 ‘수니파 공동전선’ 구축도 쉬워 보이지 않는다. 같은 수니파면서도 터키는 정당성 없는 이집트 군사정권을 비난하고 있고 모로코, 요르단, 쿠웨이트 같은 나라는 무슬림형제단이 국내정치에 중요한 변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형제단 활동을 금지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현재 사우디와 카타르는 3월 말부터 협상을 재개하면서 가시적으로 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2013년 6월 25일 아버지인 전 국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타밈 빈 하마드 알-타니가 입장을 급선회할 가능성은 낮다. 그리고 60세에 스스로 왕좌에서 물러나 겨우 33세인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준 카타르 전 왕의 행동은 대부분 노인들인 사우디 왕가에는 모욕이나 다름없었다. 조금이나마 사우디를 위로할 만한 소식이 있다면 무슬림형제단과 동일 노선을 표방한다는 이유로 카타르 내에서도 비난이 만만치 않았던 알자지라가 다소간 노선 변경을 시도할 것이라는 것이다.

반면 이란은 적극적인 외교정책을 펼치고 있다. 남미의 좌파정부(베네수엘라와 브라질)부터 세속조직인 팔레스타인 해방인민전선(PFLP)까지 다양한 국가와 조직과 동맹을 맺고 있으며 카리스마가 넘치는 외무부 장관을 아랍에미리트와 오만에 파견하기도 했다. 우리가 인터뷰한 한 사우디 지식인은 아랍지역에서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는 이란을 걱정스러워하기는 하지만 그보다 사우디 정부의 무능력에 더 비판적이었다. “문제는 이란이 아니다. 이란은 정치, 외교, 지역 정책을 펼치며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문제는 우리에게는 그런 정책을 세우고 펼칠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글·알렝 그레쉬 Alain Gresh

언론인. 블로그 ‘누벨 도리앙(Nouvelles d'Orient)’ 운영자

번역·임명주 myjooim@gmail.com

 

(1) 이때부터 특히 수도 리야드에서 알 카에다가 자행한 테러가 수시로 발생했다. Stéphane Lacroix, <Les Islamistes saoudiens. Une insurrection manquée(사우디 이슬람, 실패한 봉기)>, Presses universitaires de France, 파리, 2011년

(2) Pierre Bernin, ‘Les guerres cachées du Yémen(예멘의 숨겨진 전쟁)’,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9년 10월호

(3) GCC의 회원국은 사우디아라비아, 바레인, 아랍에미레이트, 쿠웨이트, 오만, 카타르이다.

(4) Marc Cher-Leparrain, ‘La fronde d’Oman contre l’Arabie saoudite(사우디아라비아에 반기를 드는 오만)’, 2014년 1월 22일, www.orientXXI.info

(5) Yazan Al-Saadi, ‘GCC Security Pact : Kuwait holding back’, <Al-Akhbar English> 베이루트, 2014년 3월 1일

(6) ‘Grave crise entre les émirats du Golfe(걸프 토후국들의 위기)’, <Nouvelles d’Orient>, 2014년 3월 7일, http://blog.mondediplo.net, Olivier Da Lage. ‘Arabie saoudite alliée objective du Qatar(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중립적인 동맹국)’, 2014년 3월 17일, www.orientXXI.info

(7) ‘Les islamistes à l’épreuve du pouvoir(권력에 저항하는 이슬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2년 11월호

(8) ‘Islamist threat at home forces Saudi rethink on Syria’, <Arab Time>, 리야드, 2014년 2월 12일자에서 인용

(9) ‘Pékin et Riyad rouvrent la route de la soie(중국과 사우디, 다시 열린 비단길)’,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1년 1월호

(10) <Al-Riyad>, 리야드, 2014년 3월 29일자

 

(11) 투르키 알-파이잘 왕자가 <Al-Riyad> 2014년 2월 13일자에 이란 지도자들과 면담에 대해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