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의 맥박을 담은 테크노

2014-07-28     앙투안 칼비노

대중음악 이벤트들은 단순히 몰아(沒我)와 소모의 순간만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레이브라는 저항문화와 대형 테크노 파티들은 ‘임시자치구역’으로 표현되는 정치적 유토피아를 전하기도 한다. 

올해 6월 말 베를린 북부에 위치한 옛 소련군 공항터에서 ‘퓨전’이라는 연례 축제가 개최되었다. 이 행사는 확고한 반(反)자본주의를 기조로 삼은 유럽의 대표적인 테크노 페스티벌(1)로서 6만 명의 참가자들은 입소문을 통해 축제 소식을 듣고 일찌감치 입장권 예매를 마쳤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 축제는 늘 매진을 기록하는 데다가 주최 측은 언론에 홍보조차 하지 않기 때문이다. 소개자료에 따르면, 관객들은 나흘 동안 ‘공산주의적 휴가’를 즐기면서 단돈 80유로로 최고의 테크노 아티스트들을 만났다. 아티스트들은 모두 20여 개의 ‘사운드 시스템’(2)을 구성했는데, 각 사운드 시스템을 연결하는 통로에는 혁명가의 이름이 붙어 있으며 여기에서 광고는 일절 찾아볼 수 없었다. 행사의 일환으로 서커스와 카바레 공연도 펼쳐지고 반(反)세계화 단체들의 부스도 차려졌다. 일반적으로 테크노는 온전히 유흥을 위해 존재하며, 가사가 없기에 내재된 의미도 없고, 기계적인 박동 때문에 심지어 인간소외적이라는 평가까지 받는다. 그런 테크노에 과연 정신이라는 것이 있을까?

30년 전 등장한 저항문화 테크노는 초창기부터 줄곧 어떤 메시지를 전해왔다. 전자 음악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독특한 파티인 레이브(3)가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유럽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테크노는 언론에 비친 레이브의 그저 쾌락주의적인 이미지를 초월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테크노의 ‘자유로운 축제’는 유례없는 장소에서 펼쳐졌고 그만큼 이색적인 성격을 띠었다. 여느 콘서트와 달리 테크노 공연에서는 무대가 아닌 댄스 플로어에 있는 이들이 주인공이 된다. 참가자들은 밤새도록, 심지어 며칠 밤을 새워가며 강력한 반복적 리듬에 몸을 내맡긴 채 무아지경에 빠지는 집단적 체험을 한다. 그리고 그 효과는 황홀감을 주고 공감작용을 촉진하며 음악에 대한 민감도를 높여주는 마약인 엑스터시의 도움으로 증폭되기도 한다.

이리하여 기존의 상업적인 형태와 구별되는 새로운 유흥문화가 등장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시간을 초월한 놀이터 같은 곳에서 집단적으로 몰아상태에 빠지면서 마치 모든 사회적 차별이 철폐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 사용된 방법이 어떻든 간에 그들이 느끼는 감정의 진정성은 부인할 수 없다. 또한 그 경험이 어찌나 강렬한지 심지어 그곳에 일종의 사회적 유토피아를 투영해보기도 한다. 그리고 그 유토피아는 나라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변주된다.

디트로이트 흑인사회의 투쟁적 전통에서 탄생

모든 것은 1980년대 중반 시작되었다. 펑크와 유럽의 일렉트로팝이 미국 디트로이트의 흑인사회와 만나면서 테크노가 탄생한 것이다. 자동차 산업의 몰락으로 황폐해진 도시 디트로이트에는 많은 아티스트들, 특히 언더그라운드 레지스탕스(Underground Resistance) 레이블 소속 음악인들이 모타운 레코드사의 투쟁적 전통을 계승하고 있었다. 자동차의 도시 디트로이트에서 탄생한 모타운 레코드사는 마빈 게이, 스티비 원더 등의 음악인들을 배출했다. 이들은 마틴 루터 킹 목사와 말콤 엑스의 피살사건 여파로 폭동이 발생한 후 점차 정치적 성향을 띠게 되었다.

초창기 테크노 음악인들은 레이건(4) 집권기에 백인 기득권층에 저항했던 랩그룹 퍼블릭 에너미로부터 영향을 받기도 했다. 연주자이자 DJ인 로버트 후드는 당시를 회상하면서 “그룹 리더인 척 디가 우리에게 귀감이 되었다. 우리 음악이 비록 기계를 많이 사용하기는 했지만 우리는 음악 제목, 음반 커버, 그리고 말을 통해 매우 분명한 투쟁의 메시지를 전파했다”고 말했다.(5)

그 무렵, 시카고와 뉴욕의 흑인 동성애자 클럽을 중심으로 하우스 음악이 등장했다. 디스코에서 파생된 장르인 하우스도 편의상 ‘테크노’라는 일반적 용어로 부르기도 했다. 대표적인 초기 하우스 음악으로는 조 스무스의 <Promised Land>, 마셜 제퍼슨의 <House Nation>, 래리 허드의 <Can You Feel It?> 등이 있다. 이 곡들은 모든 사람이 인종, 종교, 성별, 성적 선호도에 따른 차별을 받지 않고 조화롭게 사는 천국들을 노래했다.

테크노는 미국에 소수의 애호가만을 남긴 채 유럽으로 가서 큰 인기를 얻게 되었는데, 1988년 영국이 두 대륙 간 경유지 역할을 했다. 대형 스피커와 엑스터시가 같은 시기에 도입되면서 새로운 차원의 테크노가 전개되었다. 당시 영국 클럽들은 법 규정상 새벽 2시까지밖에 영업을 할 수 없었고, 아쉬운 손님들은 클럽을 등지고 레이브를 찾아 떠났다. 레이브는 당국의 규제를 비웃기라도 하듯 들판이나 버려진 창고에서 판을 벌이고 있었다. DJ 로랑 가르니에는 “레이브의 본질은 바로 자유였다. 갈증을 느낄 때까지 음악에 맞춰 마음껏 춤추겠다는 의지가 바로 그것이었다”고 회고했다.(6) 이러한 물결은 순식간에 영국 젊은이들을 사로잡았다. 다양한 사회계층의 젊은이들이 하나의 움직임에 몸을 실었다. 이러한 현상은 1967년 샌프란시스코 출신 그룹인 플라워 파워가 발표한 노래 제목을 따서 ‘제2의 사랑의 여름(Summer of Love)’이라 불리기도 했다.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일종의 부족을 형성하고는 무언가를 공유하고 있다는 느낌을 확인하기에 이르렀다. 마치 펑크족, 라스타파리안(서인도제도 출신 흑인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했던 레게 음악을 수용했던 무리-편주), 로커, 심지어 훌리건들이 그렇듯 말이다. 그들은 더 이상 우드스톡 페스티벌처럼 세상을 바꾸겠다는 거창한 목표를 지향하지 않고 그저 혼란스러운 대처 총리(7) 집권기에 에덴동산(8)을 꾸며보겠다는 소박한 꿈을 품었다. 1994년 타블로이드 신문들이 대대적으로 전개한 마약퇴치 캠페인의 여세로 영국 의회는 ‘형사처벌 및 공공질서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에 따라 100명 이상이 즉흥적으로 모여서 반복적인 음악을 듣는 것이 금지되었다. 머지않아 레이브 주최자들은 행사를 포기하거나 대륙으로 도피해야만 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클럽들은 당국으로부터 연장 영업 허가를 얻어내어 다시금 호황을 누리며 테크노 바람을 되찾아왔다. 이후 테크노는 클럽을 중심으로 극도로 상업화되었고, 각종 광고와 인기 스타로 등극한 DJ들에 힘입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장르로 자리 잡았다.

언더그라운드 클럽에서 이뤄진 동서독의 통일

1990년대 초에는 벨기에, 네덜란드, 독일에까지 테크노 열풍이 불어왔다. 특히 통일을 이룬 독일에서는 이 현상이 각별한 의미를 띠게 되었다. 동베를린에서는 장벽이 무너지면서 마을 곳곳이 개방되었고 유적지 건물들은 정부의 통제를 피해 펼쳐지는 수많은 축제의 장으로 변모했다. 동독과 서독의 젊은이들은 댄스 플로어에서 몸으로 통일을 느낄 수 있었다. 레이브 애호가인 애니 로이드는 “1991년 진부하지만 ‘사랑의 여름’이라는 표현은 실제 상황이었다. 예전에 미처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었다. 우리가 세상을 움직이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동서독의 통일을 언더그라운드에서 실제로 이루었으니까. 다른 어느 곳도 아닌, 바로 클럽에서 이루었다”고 회고했다.(9) 그런데 1992년 테크노는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화려한 조명과 거대한 스크린, 전국적 홍보, 민간 후원사들을 앞세운 대형 레이브 페스티벌인 ‘메이데이’가 탄생하면서 상업적인 대형 테크노 축제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1989년 즉흥적 음악 축제인 ‘러브 퍼레이드’가 생겨난 지 3년 후 출범한 ‘메이데이’로 독일 베를린 시내에는 100만 명의 인파가 운집했다.

그 즈음 인도 서부의 휴양도시인 고아에서는 또 다른 형태로 테크노의 꿈이 실현되고 있었다. 1960년대 이후 히피들의 메카로 자리 잡은 고아에서는 한층 선율을 중시한 형태의 테크노가 각광받기 시작했다. 프로그레시브 록 선율의 영향을 받아 프랑크푸르트에서 탄생한 이 장르는 바로 ‘트랜스’였다. 고아의 온화한 기후와 낮은 물가, 풍부한 마약과 당국의 방임 덕분에 트랜스는 무법지대와 반순응주의 전통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면서 널리 인기를 얻게 되었다. 하지만 이곳에 관한 충격적인 보도를 접하고 솔깃해진 수많은 관광객들이 밀려오면서 공동체 정신은 변질되었고 도를 지나친 행각들로 경찰이 출동하는 일이 빈번해졌다. 결국 2002년부터 야간 축제는 금지되고 말았다.

프랑스에서도 통제로 인해 상황이 달라졌다. 초창기만 해도 레이브 파티들은 당국의 감시망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93년 봄 파리 라빌레트에서 개최된 레이브 페스티벌을 두고 어느 기자가 쓴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기사가 파문을 일으켰다. “수천 명의 젊은이들이 환각제를 흡입하면서 자신을 파괴하는데도 어느 누구도 이를 지적하지도 않고 알지도 못하고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10) 이후 다른 많은 언론들이 이에 동조하는 기사를 실었고, 2년 뒤 프랑스 내무부는 ‘레이브 파티, 위험천만한 잔치’라는 제목의 공문을 각 시·도에 배포하면서 이러한 행사를 저지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일 것을 명령했다. 당국은 공연장 대여를 금지하고 무력으로 파티를 중단시키면서 테크노 파티의 얼굴을 바꾸어놓았다.

“테크노는 관습에 대한 도전과 자유지상주의”

영국에서 추방된 런던 출신 레이브 집단 스파이럴 트라이브는 도시 밖에서 합법적으로 ‘프리 파티’를 개최하면서 길을 개척했다. 이들은 누구든 공짜로 자유롭게 입장할 수 있는 파티를 열었고 참석자들은 카키색 옷을 입고 하드코어 테크노를 들었다. 사회학자 리오넬 푸르토는 “제도화된 저항세력이 등장하고 테크노 파티가 외압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려고 애쓰기 시작하면서부터 테크노는 관습에 대한 도전과 자유지상주의라는 아우라를 누리게 됐다”고 지적했다. 테크노는 심지어 게릴라 같은 형태를 띠기도 한다. 결국 “레이브의 불법성에서 비롯된 초기의 부수적 측면들이 핵심적 요소로 자리 잡은 것이다.”(11) 사회 주변부에 머물러야 헸던 프리 파티 무대는 스스로의 입장을 이론화하기에 이르렀다. 프리 파티는 미국 작가 하킴 베이가 18세기 불법적 유토피아에서 영감을 받아 1990년 창안한 개념인 ‘임시자치구역(Temporary Autonomous Zone)’에서의 자치를 주장했다.(12) 2001년 프랑스는 영국의 사례를 본 따 ‘일상생활 안전에 관한 법률’을 통과시켰고, 이로써 당국은 대규모 불법 집회의 저지에 필요한 수단을 보장받게 되었다. 언론은 미심쩍은 이유로 꾸준히 ‘마약 축제’ 운운하며 이러한 집회들을 보도했고, 집회는 호기심이 발동한 구경꾼들로 넘쳐나게 되었다.

테크노 유토피아의 미래는 이제 어떻게 전개될까? 일반 대중과 접촉하면서 테크노 집회의 정통성은 희석된 게 사실이다. 그러나 테크노 탄생의 기반이 된 가치들은 지금도 무대의 중심을 지키고 있다. 영국 언더그라운드계는 여전히 ‘형사처벌 및 공공질서법’을 우회해가는 동시에 이 법의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독일, 특히 베를린에서는 지금도 수많은 테크노 파티 주최자들이 이윤이 아닌 열정을 원동력 삼아 활동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레이브 파티의 상당수가 고급 페스티벌로 전환되면서 자유지상주의적 성격은 상대적으로 약해졌다. 끝으로, ‘퓨전’을 비롯하여 조용히 치러지는 몇몇 특별한 행사들이 테크노 파티가 늘 지향해온 더 나은 세상을 매년 며칠 동안이나마 구현해 보이고 있다.

 

글·앙투안 칼비노 Antoine Calvino

전자음악 전문기자 겸 사진작가

번역·최서연 qqndebien@naver.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역서로 <르몽드 세계사2>(공역)(2010) 등이 있다.

 

(1) 퓨전 페스티벌은 6월 26일부터 29일까지 베를린에서 개최 www.fusion-festival.de

(2) 원래 음향기기 자체를 가리키지만 이를 이용하는 팀, 즉 연주자, 엔지니어, DJ 등으로 구성된 집단을 지칭하기도 한다.

(3) ‘열광하다’라는 뜻의 영어 단어 ‘rave’의 어원은 ‘배회하다’, ‘방황하다’, ‘방종하다’라는 뜻의 옛 프랑스어 ‘raver’이다.

(4) 로널드 레이건은 1981년부터 1989년까지 미국 대통령을 지냈다.

(5) 2014년 5월 3일 로버트 후드와 가진 인터뷰 중

(6) Laurent Garnier, David Brun-Lambert, <Electrochoc. L’Intégrale, 1987-2013>, Flammarion, Paris, 2014

(7) 마가렛 대처는 1979년부터 1990년까지 영국 총리로 재임했다.

(8) ‘에덴(Eden)’은 프랑스 최초 테크노 팬진(fanzine)의 이름이며, 1990년대 말 파리 테크노계를 배경으로 미아 한센 뢰베 감독이 연출한 영화(2014년 가을 개봉 예정)의 제목이기도 하다.

(9) Felix Denk, Sven von Thülen, <Der Klang der Familie. Berlin, Techno und die Wende>, Guillaume Ollen-dorff가 프랑스어로 번역, Allia, Paris, 2013

(10) Magali Jauffret, ‘레이브 현상, 고독과 마약의 혼합(Le phénomène rave, mélange de solitude et de drogue)’, 프랑스 일간지 <L’Humanité>, 1993년 6월 15일

(11) Lionel Pourteau, <Techno. Voyage au cœur des nouvelles communautés festives>, CNRS Editions, Paris, 2009

 

(12) Hakim Bey, <TAZ, zone autonome temporaire>, Editions de l’Eclat, Paris,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