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 '어른 아이'들의 만화에 대한 추억
20세기 초 미국에서는 거물급 언론매체 사이에 독자를 확보하기 위한 치열한 ‘신문 전쟁’이 벌어졌다. 여기에서 ‘그래픽 문학’ 또는 만화가 탄생했고, 아이와 어른을 오랫동안 즐겁게 해줄 인물들이 탄생했다.
1896년 뉴욕의 주요 신문인 <선데이 월드>에 잠옷처럼 생긴 긴 노란색 셔츠 차림에 귀가 둥글고 큰 어린아이가 등장했다. 도시외곽지역에 사는 이 아이의 노란 셔츠에는 그때그때 아이의 생각이 래퍼들이나 내뱉을 만한 속어로 적혀 있었다. 레몬을 연상시키는 색깔은 우연히 탄생한 것으로 보인다. 파업이 일어나자 윤전기를 능숙하게 다루지 못했던 비노조원들이 윤전기를 돌렸던 것이다.
대중은 곧 이 만화 속 인물에 열광했고, 이 아이는 ‘노란 꼬마(Yellow kid)’라는 별명으로 유명해졌다. 어떻게 보면 중국 아이처럼 보일 수도 있었지만, 원작자가 처음 그려낸 이 노란 꼬마는 당시 미국의 대도시 뉴욕의 빈민가에 넘쳐나던 수많은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아일랜드인이었다. 작가가 일요신문 만화 속에 담아낸 거리는 ‘호건의 골목길(Hogan’s Alley)’로 불렸다. 가을이 되면서 노란 옷의 아이는 한 컷으로 등장하는 게 아니라, 예를 들면 <옐로 키드와 새 축음기>에서처럼, ‘말풍선’ 속에 말이 들어간 여러 컷의 연속화면으로 변하게 된다. 만화가 탄생한 것이다.
미국만화가연합회(National Cartoonist Society)의 데이비드 파스칼이 스위스 그래픽아트 잡지에서 ‘본질적으로 미국적’이라고 규정했던 이런 현상을 만들어내기 위해 ‘혁신과 신화’가 절묘하게 결합했다. “위대한 세기가 완성됐다. 혼란의 20세기는 멸망 직전의 발명품들을 주워 모아 신세계에 옮겨 심었다. 그곳에는 새로운 모든 것에 호의적이었던 자본, 실용주의, 그리고 야망으로 가득한 개인주의, 그 모든 것들이 옮겨 심은 것들에 열매를 맺게 할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1)
당시 뉴욕에서는 비정한 세계에서 힘을 갖기 위한 부자들의 전쟁이 맹위를 떨치고 있었다. 하워드 필립 러브크래프트가 “사악한 위엄의 기라성”이라고 묘사했던 이 거대한 도시의 중심에는, 오손 웰스의 <시민 케인>의 모델이 된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가 헝가리 이주민인 조셉 퓰리처(이후 권위 있는 저널리즘 상의 이름이 됨)와 제임스 고든 베네트(이후 자동차 경주의 이름이 됨)와 함께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경쟁하고 있었다. 존 도스 패소스는 현대 미국의 연대기라 할 수 있는 그의 작품 <빅 머니>의 한 장(章)을 신문계의 거물 허스트에게 할애하면서, 운 좋게 캘리포니아 금광을 찾아낸 탐광자의 아들로 뉴욕에 와서 출판제국을 건설한 “너무나도 부유하고 불쌍한 아이”라고 표현했다. 아버지가 물려준 애너콘다(Anaconda Co)의 돈으로 그는 <모닝 저널>을 사들였다. “그리고 대중의 감정을 겨냥해 누가 돈을 더 많이 벌어들이는지 알아보려고 퓰리처와 경주를 시작했다.”(2)
만화가 먼저 이 열띤 경쟁의 무기가 되었다. 한 선전 플래카드에는 “웃고 싶습니까? 정보를 얻고 싶습니까? 놀라고 싶습니까? 최신 소식을 알고 싶으십니까? 그러면 비교할 수 없이 새로운 페이지 구성으로 8페이지에 달하는 화려한 만화 부록이 들어있는 <선데이 월드>를 읽으십시오”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허스트는 리처드 펠튼 아웃콜트가 퓰리처의 <월드>를 위해 만들었던 ‘노란 꼬마’를 엄청난 금액에 스카우트했다. 긴 앞니를 가진 새 인물은 이렇게 말했다. “기억하세요. 다음 주 일요일, 우리의 신문 <저널>에 주간 만화가 등장합니다. 8페이지짜리 채색만화입니다. 4페이지는 채색, 나머지 4페이지는 흑백이지만 총 8페이지입니다. 무지개처럼 총천연색입니다.”(4) 그러나 허스트의 관행에 실망한 아웃콜트는 이후 베네트의 <헤럴드>로 옮겨가 <푸어 릴 모스(Pore Li’l Mose)>의 흑인 어린아이 캐릭터를 만들어냈고, 나중에 유명한 ‘버스터 브라운(Buster Brown)’을 만들었다.
“웃고 싶습니까? 정보를 얻고 싶습니까? 놀라고 싶습니까? 최신 소식을 알고 싶으십니까? 그러면 대단한 <선데이 월드>를 읽으십시오!”
일요판 신문의 패권을 확고하게 하기 위해 허스트는 독일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 출신으로 시카고에 자리 잡은 만화가 루돌프 덕스에게 도움을 청했다. 덕스는 1865년 독일에서 빌헬름 부슈가 펴낸 그림동화 <막스와 모리츠>를 모델로 유쾌한 악동 커플을 만들어낼 생각을 했다. 그는 자신이 만들어 낸 인물들에 ‘카젠야머네 아이들(The Katzenjammer Kids)’라는 독일 느낌의 이름을 붙였다. 각각 금발과 갈색 머리의 한스와 프리츠는 엄마, 선장, 학교관리자와 함께 전 세계의 어린이들을 즐겁게 해준다.
덕스의 만화는 1897년 12월 12일에 허스트의 <뉴욕 저널>에 처음 등장했다. 그 만화들이 프랑스에 도입되면서는 <꼬마 샤페르셰의 장난>, <꼬끼오 선장>, <푸슈트로프 선장>, 그리고 가장 유명한 <핌팜품(Pim Pam Poum)> 등 여러 다른 제목이 붙었다. 베네트의 <헤럴드>는 당시 노동자 주급의 6배에 달하는 주급 60달러에 오하이오 출신의 일러스트레이터 윈저 맥케이를 고용했다. “이 나라에서 당신의 재능에 가장 잘 어울리는 뉴욕이라는 도시와 신문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당신이 작업한 몇 가지 샘플을 서신으로 보내주기 바랍니다.”(5) 그 당시에는 그런 식으로 계약이 진행됐다. 맥케이는 폭식증을 보이는 소녀 ‘헝그리 헨리에타(Hungry Henrietta)’, 폭풍 재채기를 하는 ‘리틀 새미 스니즈(Little Sammy Sneeze)’ 같은 어린이 캐릭터에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멕케이는 1905년에 아르누보 스타일로 <슬럼버랜드의 리틀 네모(Little Nemo in Slumberland)>의 놀라운 세계를 만들어냈다. 그 이듬해 <리틀 네모>는 7개 국어로 번역됐다. 아웃콜트와 마찬가지로 맥케이는 주급 500달러를 받고 연극계로 진출했다. <리틀 네모>는 브로드웨이 뮤지컬로 상연됐고 보스톤, 피츠버그, 시카고 등지에서도 공연됐다. 맥케이는 부자가 됐고, 저택을 사들였으며, 운전기사 경호원을 고용했고, 자신의 소중한 창작도구인 손과 눈에 엄청난 액수의 보험을 들었다.
1905년 맥케이는 아르누보 스타일로 <슬럼버랜드의 리틀 네모>의 놀라운 세계를 만들어냈다.
성공과 경쟁, 대중의 취향과 독자 확보를 위해서 기상천외한 자리바꿈과 이동이 이루어졌다. 작가와 신문 소유주는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소송을 벌이며 소유권과 캐릭터 사용권을 두고 싸웠다. 작가는 제목을 변경하는 조건 하에서 자기가 만들어낸 캐릭터들의 모험을 계속할 수 있는 권리를 얻어냈다. 신문 소유주는 원래의 만화 제목으로 다른 만화가가 계속 시리즈를 그려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확보했다. 결국 맥케이는 허스트를 위해서 <멋진 꿈나라의 리틀 네모(Little Nemo in the Land of Wonderful Dream)>를 그리게 됐고, 덕스는 퓰리처를 위해서 <선장과 아이들(The Captain and the Kids)>을 그리게 됐다. 허스트가 소유권을 가진 <카젠야머네 아이들>은 독일 출신 이주민의 아들인 해럴드 H. 크너에게 맡겨졌다. 그리고 같은 인물들이 등장하는 두 시리즈는 나란히 약 70여 년 동안 계속되었다.
미국에서 지적재산권을 규제하는 카피라이트는 저작물을 이용하는 사람에 유리하게 저작자의 권리를 축소하고 있었다. 신문 판매부수를 엄청나게 늘려 준 그래픽 작품들은 국경을 넘어서 신디케이트가 관리했다. 허스트의 주도로 1912년 창설된 최초의 신디케이트 인터내셔널 뉴스서비스(INS)는 이후 킹 피쳐스 신디케이트(King Features Syndicate)로 이름이 바뀌었다. 그 뒤를 이어 1919년에 ‘캡틴’ 조셉 M. 패터슨이 창설한 시카고 트리뷴 & 뉴욕 뉴스 신디케이트(CTNYNS), 그리고 <월드> 및 벨 맥클루(Bell-McClure), 메트로폴리탄 뉴스페이퍼 서비스가 통합된 유나이티드 피쳐스 신디케이트(UFS) 등이 있었다.
맥케이가 베네트의 신문을 그만둘 생각을 하고 있던 즈음인 1910년 5월 1일부터 연재한 <화성의 리틀 네모>의 상징적 여행에는 힘 있는 사업가들에 대한 그의 생각이 드러난다. 어린 몽상가는 사람들이 들이마시는 공기와 발음하는 단어까지 사들여야만 하는 세계를 발견한다. 한 화성인은 “그래, 부자들은 연설을 할 수 있지. 가난한 사람들은 그저 침묵할 뿐이야”라고 말하면서, 동시에 몇 마디 말로 ‘화성의 위대한 주인’인 G. 고슈라는 엄청난 부자가 소유한 부의 비밀과 아메리칸드림이라는 만능열쇠를 알려준다. “모든 게 그의 소유야. 8천 년 전에는 그도 가난한 소년이었을 뿐이었는데….”, “늙은 고슈가 도둑놈이라는 걸 너희들도 모르진 않겠지…. 그렇지 않다면 그가 여기서 모든 걸 소유하지 못할 거야.”
미국에서 만화는 ‘코믹’ 또는 ‘퍼니(funnies)’로 불린다. 순전히 흥미 위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1924년에 캔자스 주와 미주리 주에서 진행된 조사에 따르면 만화가 도시 청소년들의 제1오락거리로 나타났다. 하지만 대중을 위해서 만들어진 만화는 미국에 거울을 들이댔고, 필요한 경우 사회적 비판도 잊지 않았다. 노란 꼬마는 빈민굴에 사는 아일랜드 어린이였고, 캐치(카젠야머네 아이들)는 독일 출신임을 드러내는 억양을 가지고 있었으며, 조지 맥매너스의 <브링 업 파더(Bring Up Father)>의 주인공들은 아일랜드 출신의 벽돌공과 복권에 당첨돼 부자가 된 세탁부 가족이었다. 세탁부였던 아내는 오로지 사교계에 들어갈 생각만 하고, 남편은 카페에서 예전 동료들과 카드게임을 하기 원하는 사람이다.
일요판 신문이 아닌 일간지에 등장한 최초의 만화 <머트 앤 제프(Mutt and Jeff)>는 1907년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Chronicle)>에 연재됐는데 경마장에 자주 드나드는 인물과 예전에 정신병원에 입원했던 인물을 등장시킨다. 1920년대와 30년대에는 ‘고아 리틀 애니(Little Orphan Annie)’, ‘리틀 애니 루니(Little Annie Rooney)’, ‘떠돌이 피트(Pete the Tramp)’ 등 고아나 부랑자 캐릭터가 대중의 인기를 얻었다. 가난과 세계의 불행을 등장시키는 것이 반드시 저항의 동의어만은 아니라는 사실은 ‘샤를로(Charlot)’(찰리 채플린이 연기한 캐릭터-역주)를 통해서도, 또 ‘포파이(Popeye)’의 작가 E.C. 세거가 이미지로 보여주었던 것에서도 알 수 있다.
1920년대 말 극심한 불경기를 맞으며 만화는 근본적으로 변화한다. 그때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공간에서 벌어지는 모험 이야기, 즉 별나라 탐험, 이국적인 나라, 탐정물 등으로 전개되면서 일상적인 것에서 멀어지게 된다. 에드거 라이스 버로스의 소설을 만화로 각색한 할 포스터의 힘센 <타잔>과, 레이 브래드버리의 유년시절의 친구로 혹성여행 로켓과 광선총을 가진 <25세기의 벅 로저스>가 1929년 1월 같은 날 출간됐다.
알 카포네의 도시 시카고에서는 1931년 체스터 굴드가 정의감에 불타는 형사 딕 트레이시를 탄생시켰다. 이 시리즈가 얼마나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던지 허스트는 대응책을 마련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몰타의 매(Maltese Falcon)>의 작가이자 샘 스페이드라는 형사 캐릭터를 만들어낸 가장 훌륭한 탐정소설작가 대실 해밋에게 도움을 청했다. 광고의 덕을 톡톡히 보며 <비밀요원 X-9>가 시장에 나왔다. “이토록 강렬하고 조마조마한 서스펜스, 그리고 새롭고 위대한 연재만화의 감동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은 대실 해밋밖에 없다.” <비밀요원 X-9>으로 해밋은 미 연방수사국(FBI)의 조사를 받게 된다. FBI는 존경할 만한 경찰제도가 만화에 등장하는 것을 우려했던 것이다. 연방수사국은 샌프란시스코 지부에 해밋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명령했다. 보고서는 다음과 같은 결론으로 끝을 맺는다. “수집한 정보들에 따르면 해밋은 자신의 전문분야에서 아주 자리를 잘 잡았다. 이 지역 기자들은 그를 잘 알고 있고, 그들의 말을 빌리면, 해밋은 이 탐정 이야기로 많은 돈을 벌어들였다고 한다.”(6) 정보를 제공한 한 여성은 해밋의 고용주가 어쩌면 ‘빨갱이’일 수도 있다고 귀띔했다고 한다.
<비밀요원 X-9>은 1934년 1월 22일에 처음 출간됐다. 선발대회를 거쳐 선발된 만화가는 알렉스 레이먼드였다. 다작 작가였던 그는 <타잔>에 대응해 <정글 짐>을 제작했고, 세계 종말과 함께 시작되는 <플래시 고든(Flash Gordon)>으로 <벅 로저스>에 웅대한 도전장을 내밀었다. 같은 해 프랑스에서는 폴 윙클러가 KFS를 모델로 삼아 오페라 문디 대행사를 세우고, 청소년을 위한 새로운 형태의 만화잡지 <주르날 드 미키(Journal de Mickey)>를 창간했다.
<비밀요원 X-9>으로 해밋은 미 연방수사국(FBI)의 조사를 받는다. FBI는 존경할 만한 경찰 제도가 만화에 등장하는 것을 우려했다.
‘청소년 주간지’ <주르날 드 미키>는 월트디즈니의 동물캐릭터 외에도 <정글 짐>, <리틀 애니>, <핌팜품>(<프티 파리지엥>의 부록으로 1911년 최초로 프랑스에 등장), 포스터의 <용감한 왕자(Prince Valiant)>, 그리고 수많은 다른 캐릭터들을 소개했다. 이후 4년 동안, 약 15개의 유사한 정기간행물들이 탄생하며 성공을 거듭했다. 윙클러(Winkler), 에디시옹 몽디알(Editions Mondiales), 리브레리 모데른(Libraire Moderne), 잡지 <레파탕(L'Epatant)>과 함께 1908년부터는 그 유명한 <도금된 발들(Pieds Nickelés)>을 출간한 오펜스타트(Offenstadt) 출판그룹이 만화잡지를 정기 간행했다. ‘모든 연령층의 청소년 주간지’ <로빈슨>, ‘현대 청소년 주간지’ <오프라(Hop-là)>, ‘모든 청소년을 위한 모험 주간지’ <만세(Hurra)!>, ‘청소년과 가족을 위한 만화잡지’ <에이스(L’As)>, <모험가(L'Aventureux)>, <점보(Jumbo)>, <주니어> 등의 잡지는 <디망슈 일뤼스트레(Dimanche illustré)(1925)에서 ‘지그와 퓌스(Zig et Puce)’가, <프티 일뤼스트레(Petit illustré)>(1924)에서 ‘비비 프리코탱(Bibi Fricotin)’이 거둔 성공, 그리고 <소련의 탱탱>, <콩고의 탱탱>, <미국의 탱탱>의 모험에 열광하는 대중의 인기를 얻기 위해 경쟁했다. 1930년부터는 가톨릭 저널 <용감한 마음(Coeurs vaillants)>이 대중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
<로빈슨>은 인민전선이 총선에서 승리를 거둔 1936년 4월 26일 일요일에 출간됐다. 몽고행성으로 가는 유명한 우주로켓이 출발하면서 지구 종말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플래시 고든>의 프랑스 이름인 <번개 기(Guy l’Eclair)>가 표지를 장식했다. 영어 이름을 사용하든 프랑스 이름으로 바꾸든 간에 대서양 저편에서 수입된 주인공들은 청소년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다. 브릭 브래드포드(Brick Bradford)는 뤽 브라드페르(Luc Bradefer)로, 포파이는 마튀랭(Mathurin)으로, 론 레인저(Lone Ranger)는 가면의 기사(Le Cavalier masqué)로, 테리와 해적들은 프랑수아의 모험으로, 팀 타일러스 럭(Tim Tyler's Luck)은 경솔한 리샤르(Richard le Téméraire) 또는 라울과 가스통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프랑스 공산당은 전후에 미국식 모델에서 영감을 얻어 ‘가장 매혹적인 저널’인 <바이양>을 성공적으로 출간한다.
1938년에 <주르날 드 미키>는 40만 부, <로빈슨>은 45만 부, <만세!>는 25만 부를 발행했다. 모든 사람들이 이 성공을 기뻐하지는 않았다. “1936년 10월에 인민전선이 후원하는 행정구역에서 진행된 여론조사를 보면 많은 반파시스트 청소년들이 <만세!>를 보고 있었다. 1938년 1월에 파리의 반(半)서민지구 학교에서 진행된 또 다른 여론조사를 보면 아이들이 보는 잡지 중에서 <만세!>가 1위를 차지했는데 그 아이들 부모의 반 이상이 반파시스트 신문을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7) 공산주의 작가 조르주 사둘은 이런 사실을 확인하며 “<만세!>에서 단 한 줄이라도 외국에서 가져온 것이 아닌 것이 있다면 그것은 출판사와 관리자의 이름뿐”이라면서 청소년 잡지가 ‘프랑스적’이 아니라고 신랄하게 비난했다. 그것이 그 시대의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공산당은 전후에 ‘가장 매혹적인 잡지’인 <바이양(Vaillant)>을 성공적으로 창간했는데, 그 화풍은 프랑스-벨기에 잡지인 <스피루>와 <탱탱>보다 훨씬 더 미국식 모델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었다.
프랑스에서는 이탈리아의 반파시스트 이주자들이 청소년 잡지 출판에 큰 역할을 했다. 키노 델 두카와 에디시옹 몽디알, 에토레 카로초의 리브레리 모데른은 망명자(때로는 신분증조차 없는 불법 망명자)들의 피난처가 되었다. 나중에 영화인으로 명성을 얻은 페데리코 펠리니는 당시 젊은 기자로 일하고 있었는데, 이탈리아 파시즘에 동조한 이유로 블랙리스트에 오른 알렉스 레몽이라는 만화작가를 대신해달라는 출판사 측의 요청으로 만화작가가 되었고, <플래시 고든>의 에피소드를 마치게 된다. 펠리니는 “마법사 만드라케, 정글 짐, 벵골의 유령, 몽고 행성의 번개 기”가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네르비니는 상당히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몇몇 에피소드에 대한 독자들의 호기심은 폭발 일보직전이었다. 그대로 내버려 둘 수 없는 상황에서, 출판사의 만화가들이 에피소드를 이어갈 임무를 맡게 됐다. 당시 <번개 기>의 만화를 그린 사람은 지오브 토피라는 사람이었고, 그 시나리오를 쓴 사람이 바로 나였다. 나는 이 시리즈에 정말 흥미를 느끼고 있었고, 거기에 에피소드를 덧붙이고 싶었다. 결국 이탈리아에서 출간된 <번개 기>의 마지막 모험은 전부 내가 시나리오를 썼다.”(8)
비슷한 이유로 <블레이크와 모르티메르(Blake et Mortimer)>의 작가 에드가 P. 제이콥스는 벨기에가 독일에 점령돼 있는 동안 <용감한 (플래시) 고든>의 에피소드를 완성했고, 곧이어 그의 첫 번째 작품 <U 광선(Le Rayon U)>을 만들었다. 모험은 계속됐다. 에르제가 창조해 낸 용감한 어린이 탐방기자 탱탱(Tintin)은 전 세계에서 1억 5천만 부가 팔리며 정상에 올랐다. 드골 장군이 앙드레 말로에게 “세계에서 나의 유일한 진짜 경쟁자는 탱탱”(9)이라고 털어놓았을 정도였다. 영광의 시대, 대규모 대중저널과 저렴한 만화잡지의 시대는 지나갔다. 구텐베르크 은하계 이래 이미지의 세계는 전파와 스크린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렇지만 ‘활자인’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윤전기와 매스커뮤니케이션 시대에 노란색 긴 셔츠를 입은 도시외곽의 꼬마를 중심으로 서사예술이 탄생한 지 100년이 지난 지금, 이 지구상의 모든 어른아이들은 만화에 대한 추억을, 어른들의 세상과는 달리 언제나 선이 승리하는 이야기를 그들의 기억 한 구석에 간직하고 있다.
글‧필립 비들리에 Philippe Videlier
대중문화, 특히 만화에 관심이 많으며, 주요 저서로 <시네폴리스, 바람의 흐름(Cinépolis du vent)>(2003), <새로운 세계의 선언(La Proclamation du Nouveau Monde>(1995) 등이 있다.
번역‧ 김계영
이 글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1996년 10월호에 게재된 것으로, 만화 애호가들을 위해 재수록한다.
(1) 다비드 파스칼, ‘코믹스, 미국식 표현주의’, <그래픽스> 160호, 취리히, 1972년, p.81
(2) 존 도스 패소스, <빅 머니(La Grosse Galette)>, 포슈, 파리, 1971, 2권, p.301
(3) 리처드 마샬, <위대한 미국 만화가>, Abbeville Press, 뉴욕, 1989년, p.24
(4) 같은 책, p.29
(5) 그로엔스테, <윈저 멕케이 나라의 리틀 네모>, 툴루즈, 1990, p.14
(6) 디안 존슨, <대실 해밋. 생애>, 갈리마르, 파리, 1992, p.205
(7) 조르주 사둘, <당신의 아이들이 읽는 것>, 뷔로 데디시옹, 파리, 1938, p.31
(8) 프랑시스 라카생, <제9의 예술, 만화를 위하여>, 슬라트킨, 제네바, 1982, p.452
(9) 앙드레 말로, <우리가 쓰러트리는 떡갈나무>, 갈리마르, 파리, 1971, p.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