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파리코뮌 가담자의 목소리
프로스페 올리비에 리사가레가 쓴 파리 코뮌 역사의 고전에서부터 루이즈 미셸의 회고록(1)까지, 쥘 발레의 자전소설 3부작(<소년>, <대학입학 합격자>, <반란자>)에서 칼 마르크스의 <프랑스 내전>까지, 파리 코뮌을 다룬 책들은 많다. 로르 구디노는 파리 코뮌에 가담한 사람들, 당시 대다수 무명이었던 이들이 걸었던 길을 자료를 모아 책으로 되살렸다.(2) 이 자료 가운데 <어느 혁명가의 기억>(3)은 1871년 이후 정기적으로 발간되다가 절판되다가 다시 복간된 자료인데 흥미로운 증언을 보여준다. 저자 귀스타브 르프랑세는 파리 코뮌에 가담한 혁명가로서 열정적인 인생 이야기를 들려준다.
르프랑세는 누구인가? 이 책의 서문을 쓴 다니엘 방사이드가 내놓은 질문이다. 파리 코뮌을 임시로 지휘했던 무명인(1826~1901), 해고된 교사, 투옥되고 추방된 투사, 지치지 않는 투쟁가….
이 회고록은 1848년 파리 코뮌이 발발한 시기부터 프러시아에 패전해 탄생한 정권에 의해 파리 코뮌이 무너지는 시기까지 다루고 있다.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우면서도 개혁의 어려움을 겪은 세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경찰의 진압, 사기 저하, 1851년 나폴레옹 3세의 쿠데타, 그 이듬해 제2제정 설립에도 불구하고 노동자 운동인 파리 코뮌은 다시 일어서기 위해 노력했다. 루이 블랑, 오귀스트 블랑키, 피에르 조셉 프루동을 따르는 파리 코뮌 지지자들은 토론을 하고 제2제정에 반대했으나 점점 실패를 겪었다. 유토피아를 꿈꾸고 무신론자이며 사회주의자이자 세계보편주의자들이었던 파리 코뮌 지지자들은 해방의 길을 찾기 위해 투쟁했다. 이에 대해 르프랑세는 몇 가지 확신을 하게 되었다. 노동자들은 이제 사회 공화국의 조건인 직접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투쟁해야 해야 한다는 확신이었다.
투옥, 망명, 거리 시위, 군대와의 충돌이 이어졌지만, 제2제정 하의 노동 운동은 정체를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사기가 높아지는 계기가 발생했다. 갑자기 프러시아와의 전쟁이 1870년에 발발하고 제2제정이 붕괴하고 프랑스 공화국이 승리한 것이다. 하지만 베르사유파(파리 코뮌을 진압한 당시 베르사유의 군대와 앙시엥 레짐의 부활을 꿈꾼 정치세력)를 지지하는 아돌프 티에르, 쥘 페리, ‘코뮌 학살자’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가스통 드 칼리페 후작의 정권이 탄생하게 된다. 파리 코뮌은 정전협정에 분노해 들고 일어나게 되고 르프랑세는 선봉에 섰다. 르프랑세의 생각은 이러했다. “나는 독재가 사회 혁명을 승리로 이끌어줄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르프랑세는 ‘피의 일주일’이라 불리는 격렬한 시가전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제네바로 피신했다가 1880년 사면 이후 프랑스로 돌아왔다. 프랑스로 돌아온 르프랑세는 여러 아나키스트 신문에 글을 기고했고 무정부주의 지리학자 엘리제 르클뤼와 협력했다.
(1) <파리 코뮌>, La Découverte Poche, 파리, 2005년
(2) Laure Goudineau, <경험자들을 통해 본 파리 코뮌>, Parigramme, 파리, 2010년
(3) Gustave Lefrançais, <어느 혁명가의 기억>, La Fabrique, 파리, 2013년
글 ‧ 자크 키르스네 Jacques Kirsner
번역 ‧ 이주영 ombre2@ilemond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