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의 탈정치화는 반민주적

2014-07-28     김수현

 “시장은 ‘1원 1표’ 원칙으로 움직이는 반면 민주정치는 ‘1인 1표’ 원칙으로 움직인다. 따라서 민주 사회에서 경제를 탈정치화하자는 것은 결국 돈을 더 많이 가진 사람들에게 사회를 움직이는 힘을 더 많이 주자는 반민주적인 주장이다.”(11장, p.381)

<나쁜 사마리아인들>,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쾌도난마 한국경제>의 저자로 잘 알려진 장하준 케임브리지대학 경제학과 교수가 쓴 <경제학 강의>가 번역, 출간된 지 며칠 만에 베스트셀러에 진입하여 주목을 끌고 있다. 그는 이번 책에 대해 “내용은 쉽고, 말투는 순하지만 내 책 중에 가장 래디컬하다”고 스스로 평한다. 지금까지 저자는 전 세계에 획일적으로 강요된 신자유주의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경제의 역사를 돌아보며 나라마다 사회구조와 발전단계에 맞는 경제정책이 따로 있었음을 입증하거나, 주류경제학의 주장에 어떤 허점들이 있는지 논파하는 데 힘을 쏟아왔다. 이번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에서는 더 근원적으로 파고들어 신자유주의를 부추긴 주류 경제학 자체의 사고구조와 이론적 문제점을 파헤친다. 한마디로 주류 경제학이 세뇌한 경제학의 정의와 개념부터 방법론에 이르기까지, 지금껏 경제학 교과서들과 많은 경제학자들이 주장하던 관점을 뒤집고 근본부터 재정립하려는 목적을 담고 있다는 생각이다.

2부 12장으로 구성된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는 1부 ‘경제학에 익숙해지기’와 2부 ‘경제학 사용하기’로 나뉜다. 1부에서는 신고전주의의 방법 외에도 다양한 경제학적 방법이 있음을 보여주고, 2부에서는 실제 세상의 경제를 이해하는 데 경제학을 어떻게 사용할지를 설명해준다. 특히 후반부인 2부는 말 그대로 ‘사용자 가이드’라고 할 수 있는데, 각 장에 적지 않은 숫자들이 등장하여 우리 삶의 다양한 주제들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6장에서는 생산량, 소득, 행복에 대해서, 7장에서는 생산문제를, 8장에서는 금융을, 9장에서는 불평등과 빈곤문제를, 10장에서는 일과 실업문제를, 11장에서는 정부의 역할에 대해서, 12장에서는 국제무역, 국제수지, 초국적 기업과 외국인 투자, 이민 등 국제 경제의 제반문제를 각각 다루고 있다. 흔히, 장하준 교수는 ‘세계적 사상가’로 인정받지만, 일부 경제학자들로부터는 ‘수학’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어처구니없게도 경제학자 대우를 받지 못하기도 한다. 그런 그답게, 경제학 공포증을 유발하는 복잡한 수식이나 함수, 그래프가 아니라 경제현실을 알 수 있는 꼭 필요한 만큼의 숫자만 보여주고 있다.

“현재 14억 명, 그러니까 세계 인구의 5명 중 1명이 하루 1.25달러도 안 되는 돈으로 살고 있다. 다차원적 빈곤으로 따지면 절대적 빈곤 속에 사는 사람의 숫자는 17억 명, 즉 4명 중 1명으로 늘어난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이 숫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사람들은 가장 가난한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아니다. 절대적 빈곤에 시달리는 사람의 70퍼센트 이상이 중간 소득 국가에 살고 있다….” 이런 식이다.

필자의 견해로는 장 교수의 책에서 그만의 진면목을 확연히 발견할 수 있는 곳은 ‘정부의 역할’을 강조한 2부의 11장이 아닐까 생각된다.

“정부 실패론은 경제학, 즉 시장의 논리가 정치보다 우위에 있으며, 더 나아가 예술, 학문 등 인간 생활의 다른 측면보다도 우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논리는 요즘 들어 너무도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져서 사람들이 당연시하는 지경까지 왔다. 그러나 이는 심각하게 잘못된 주장이다. (…) 그러나 정부는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강력한 조직 기술이며, 따라서 정부 없이 커다란 경제적(그리고 사회적) 변화를 꾀하기 매우 어렵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장 교수의 <경제학 강의>를 읽다보면, 주류경제학이 자초한 경제학 불신의 시대에 과연 경제학이 유효할까 하는 회의감이 하나씩 걷혀짐을 느끼게 된다.

 

글‧김수현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