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작물에 저당잡힌 모로코의 땅

[특집/제국시대의 잔재들]

2009-05-05     세실 랭보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모로코 특파원

                 아르간 오일 생산업자들 손에 토지 황폐화
                 여성�아동 노동 착취… 전통 문화 기반도 붕괴


  과일이나 감귤류를 제철보다 빨리 출시하는 큰 농장과 이를 원료로 사용하는 화장품 회사들이 수스 평원을 개발한 뒤로,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꼼짝없이 농업 노동자로 고생하면서 유럽 지역에 토마토나 오렌지, 미용 오일 등을 제공하는 베르베르인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 베르베르 전통 농가의 빈약한 수자원과 산림자원을 앗아가는 이런 개발 모델이 큰 사회·생태학적 비용을 초래하고 있다.

 

 

                                     <사료용 열매인 아르간의 씨>,2008-다니엘 헤라르

모로코 아울루즈 외곽 두아르 탐구트 엘 자디드. 동이 트기도 전에 26세의 카비라와 인근에 사는 열댓 명의 여자들이 트럭 뒤칸에 올라타 빼곡히 서 있다. 여자들은 한숨을 내쉬며 말한다. “저녁 8시나 되어야 집에 돌아오죠.” 첫 기도가 끝난 뒤, 차도르를 두른 여성 노동자들을 가축 실어나르듯 운반하는 차량들이 수스 평원의 도로를 질주한다. 차는 이들을 대개 모로코(특히 왕실), 프랑스, 스페인의 자본이 집약된 농장으로 데려간다. 차 안의 여자들이 푸념을 늘어놓는다. “전에는 우리 밭이나 옆집 밭에서 일을 했어요. 격의 없이 편하게 일하며 동료 간의 갈등도 없었지요. 지금 우리가 일하는 대농원에서는 입 밖으로 말도 못 꺼내요. 충분한 작업 속도를 내지 못하면, 작업반장들의 욕을 듣게 되죠. 곳에 따라서는 몽둥이를 손에 드는 작업반장들도 있어요.” 이 지역의 농장 가운데 한 곳은 평판이 아주 좋지 않아 그들로부터 ‘관타나모’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수스 평원은 아가디르에서 시작해 동부로 아울루즈까지 이르며 아틀라스와 안티아틀라스 산맥 사이에 넓게 펼쳐져 있다. 주민 300만 명 가운데 60%가 농업 인구이며, 대부분은 아마지그(베르베르)계다. 수세대에 걸쳐 이들은 아르간 나무숲과 연계된 삶을 살아왔다. 반건조기후의 이 지역에서 아르간 나무숲은 사막화를 막아주는 구실을 한다. 1925년 이후 이곳 국유자원에 대한 주민들의 이용권이 법으로 인정됐고, 이들은 물의 양이 늘거나 비가 적게 오는 등의 상황에 맞춰 나무 사이에서 밀도 재배하고 염소도 방목하며 여름에 떨어지는 과실을 수확해 이로부터 아르간 오일을 추출한다. 하지만 세계경제의 흐름에 편입된 농업정책에서 전통 농가는 소외되고 있다. 농업 및 수의학대학 교수인 경제학자 나지브 아케스비의 설명을 따르자면 1970년부터 정부는 몇몇 상업 재배 및 수출 ‘세력’에게 초점을 맞추고 이들을 중심으로 자금 지원을 해주며, 식량 안보 문제에서는 서서히 손을 떼고 있다.1)

 

  1985년,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의 관리 아래서 실시된 구조조정 계획에 따라 농업 분야의 자유화가 착수됐다. 두 기관은 농업 분야 지출 감소와 수입 자유화를 장려하며 자유무역협정, 특히 유럽연합과의 자유무역협정을 맺기 위한 토양을 다져놓았다. 공용지 혹은 공유지의 일부는 민간 소유로 양도됐고, 해외 투자 유치가 이뤄졌다.
 바로 이러한 배경 속에서 수스 평원이 모로코 제일의 맏물과일 재배지가 된 것이다. 수스 평원에서는 현재 68만5천t의 채소가 생산되며, 그 가운데 토마토는 95%가 수출되는데 특히 10월에서 6월 사이 프랑스 시장에서 거래된다. 이곳에서는 감귤류도 재배되는데, 66만6천t이 생산되어 그 가운데 절반이 수출된다.
 
 댐에 밀려나는 농민들 
 수스-마사-드라 지역의 단체장이자 모로코 농업부 장관인 아지즈 아카누크는 2015년께 수스 평원을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농업 중심지’로 발돋움시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러나 고향의 발전 전망에 대해 카비라는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다. 카비라는 “토마토도 오렌지도 정말이지 할 만큼 다 했어요!”라고 소리쳤다. 18년 전 아울루즈 댐이 가동됐을 때, 카비라의 가족은 방류된 물 때문에 밭을 잃어버렸다. 당시 카비라는 어렸으나 이사하던 때 기억은 남았다. 집을 불도저가 밀어버려서 탐구트 엘 자디드로 거처를 옮긴 것이다. 초라한 수준의 보상금은 몇 달 만에 감쪽같이 사라졌다. 성인이 되자마자 카비라는 수확철마다 계약도 맺지 않은 채 대규모 농원에 가서 일을 해야 했다. 그렇게 하루에 받는 돈이 50디람(4.5유로, 약 8600원)이었다.
 아울루즈 댐 건설은 수많은 수원을 고갈시켰다. 그 대가를 치른 건 아울루즈 농민들이었다. 인근의 모크타르 수시 댐에 물이 들어오던 2001년에도 똑같은 일이 반복됐다. 아울루즈 영세농 노조위원장 드리스 아아키크는 “올해 밀 작황이 좋지 않아 손해가 너무 큽니다. 올리브 쪽에서도 아무것도 건져내지 못했지요. 살아남으려면 다들 다른 데로 일을 하러 가야 했습니다”라고 설명한다. 이 영세농 노조는 메마른 토지에서 보잘것없는 수확을 거둬들여야 하는 100여 개 농가가 결집된 단체다. 여자들을 필두로 이들 농가는 2006년 거리행진을 조직해 용수와 전기에 대한 권리를 주장했다. 결과는 지도부에 대한 고소였다. 농민들은 정부의 투자 정책에 항의하는 집회를 정기적으로 열고 있다. 모로코노동연합(UMT) 타루단 지회 및 영세농 노조의 노조원인 아말 라후신은 “정부의 투자 정책은 대규모 수로 공사 덕분에 관개가 이뤄지는 몇몇 지역에 집중돼 있습니다”라고 비난한다.

 아케스비의 설명을 따르자면 세계은행의 지원에 힘입은 이 대규모 댐 건설 정책이 상당한 차별을 만들어냈다고 한다. 세계은행도 언젠가 내놓은 한 의견서에서 이를 인정했다. “농업 분야에 대한 공공 투자의 70% 이상이 대규모 관개 부문에 투입되고 있으며, 이로 인한 혜택은 상대적으로 사정이 좋은 농가와 규모가 큰 농장에 돌아간다.” 이와 더불어 수천 개의 소규모 농장은 관개가 이뤄지지 않은 땅에서 은행 융자도 받지 못한 채 고릿적 방식으로 농업 생산을 계속했다. 2005년 자료를 바탕으로 한 2008년 유엔개발계획(UNDP) 보고서는 인간 개발 순위에서 모로코를 세 단계 강등시켰고, 이로써 모로코는 전체 177개국 가운데 126위를 차지하게 됐다. 모로코 정부가 아무리 부인하더라도, 농촌 지역을 돌아보기만 해도 의료 지원과 식수 공급이 부족함을 알 수 있다. 교육에 대한 접근권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인데, 그 영향은 특히 여성들이 많이 받고 있다.
 
 무시당하는 노동자 권리 
 카비라의 이웃에 사는 12세 소녀 카디자는 얼마 전 밀감 일을 시작했다. “보통 보름에 한 번씩 급여를 주는데 두 달 전에 일을 시작했지만 한 번도 급여를 받지 못했어요!” 카디자의 동료인 16세의 투라야는 1년 반 전부터 같은 회사 일을 해왔지만, 계약서의 그림자도 보지 못했다. 사회보장기금에서는 물론 등록된 각 근로자에게 간추린 명세서를 보내주었고, 카비라 또한 이를 받았다. “7년 동안 일했는데 고작 3개월만 일한 걸로 신고됐더군요.”

 모로코노동연합 내 농업 부문의 지역 책임자인 라후신 불베르주는 “이 지역의 7만 농민(그중 70%가 여성) 가운데 1만5천 명만 신고돼 있습니다. 한술 더 떠 고용주들 다수는 근로시간을 속여서 제출하지요”라고 설명한다. 그 결과 실업수당도 없고, 유급휴가도 없으며, 은퇴 시기도 정해지지 않은 채 보험과 병가도 보장되지 않는 극도로 유연한 노동시장이 형성됐다. 불베르주는 이렇게 덧붙인다. “살충제 사용으로 인한 산업재해의 경우에만 이제 겨우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는 기준 외 유독물질이 빈번히 사용돼요. 보통 작업반장들은 병에 걸린 사람들에게 몸이 나으면 다시 오라고 얘기합니다. 감히 대들었다가는 해고되고 말죠. 조합 결성권은 곳에 따라서만 허용됩니다.”

 프랑스 기업인 소프로펠은 이 지역에서 가장 규모가 큰 기업 중 하나로 이딜(Idyl)이란 브랜드로 프랑스에 토마토를 유통시키고 있다. 모로코노동연합과 민주노동연맹(CDT)의 대표들은 “이 회사에 노조 사무국이 있긴 하나, 기업 지도부가 개입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들 노조는 2008년 이 기업의 여러 농장에서 일련의 파업과 연좌시위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그저 우리의 권리를 요구했을 뿐입니다. 근로 사실을 신고하고 급여명세서를 발급해주며, 추가 근무시간을 인정하고 의료 서비스를 제공해달라는 겁니다. 하지만 회사 쪽은 서서히 농장을 나 몰라라 하더니 노조원을 압박하더군요. 이어 새로운 일꾼들을 데리고 다른 곳에 새로 농장을 열었습니다.” 모로코노동연합은 노조와 합의한 협정 내용이 이행되지 않는다고 호소했다. 부슈뒤론 지역의 샤토르나르에 본사를 둔 이 회사의 경영진은 명확한 견해 표명을 원치 않았다. 이 회사는 지난 시즌 이곳에서 7만5천t의 맏물과일을 생산했다.
 2004년 발효된 모로코 노동법의 허점을 이용해 여러 회사들이 ‘업무방해’ 명목으로 파업 가담자들을 퇴출시켰다. 왕궁 소유지인 츠투키 농장(2)의 노조 대표들은 노조에 가담한 노동자들을 제거하려고 이런 허위 구실을 핑계 삼아 해고하는 것을 비난하고 나섰다.

 성폭력에까지 시달려 
 비우그라에서 모로코 인권연합은 농장 내에서 벌어지는 몇몇 강간 사례들을 고발했다. 전문 산파로 활동하는 인권연합 부대표 파티파 사크르는 에이즈와 성병의 확산을 우려하며, 혼자 일하러 오는 여성 노동자들이나 중아틀라스의 외딴 천막촌에서 아이를 데리고 출근하는 여성 노동자들이 여기에 취약할 수밖에 없음을 지적한다. 그는 “주거시설 지원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데, 일부 회사들은 농장에다 허름한 거주지를 제공해줍니다”라고 한탄한다. 아이트 아미라 농촌 지역에 있는 라아랍 천막촌에서 농업 노동자들은 쓰레기 더미로 뒤덮인 공터에다 되는 대로 갖다 꾸민 임시 거처에서 기거한다. 모로코 인권연합 지역분과 대표인 울루스 라후신은 “경범죄와 마약 흡입이 우려할 만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빈민촌으로 향하는 먼지 날리는 도로는 처참하기 그지없는 상황이다. 말라비틀어진 아르간 나무 사이로 쩍쩍 금이 간 바닥 위로는 갈기갈기 찢어진 비닐하우스가 무너져 있다. 농장주가 버리고 간 농지들이다. 엘게르단에서는 1995년과 2002년 사이에 3천여ha에 가까운 과수원이 방치되거나 문을 닫았다. 수자원 고갈이 그 원인이었다. 작업이 이뤄지는 동안에는 90km의 도수관이 남은 감귤류 재배에 물을 대주어야 한다. 아울루즈 댐에서 출발하는 이 도수관은 물을 이용하지 못하는 가난한 농민들의 말라비틀어진 밭 가장자리를 따라간다.
 
 지하수 고갈에 사막화까지 
 노동비용 절감이 이뤄지더라도 관개비용 때문에 농장의 수익은 감소한다. “지금은 대부분 200m 이상의 깊이에서 물을 끌어올려야 합니다. 이 때문에 연간 약 3m씩 지하수층이 낮아지고 있습니다. 이 지역의 연간 용수 부족량은 2억4천만㎥가 됐습니다.” 용수 및 산림 남서부 지역위원장인 압델크림 아제파르의 설명이다. 그는 기업들이 모로코의 미래에 대해서는 별로 염려하지 않는 걸 유감으로 여긴다. 이 기업들은 한 곳을 사막화시킨 뒤 다른 곳을 메마르게 하며 최적의 일조 조건을 찾아 계속 남하한다. 이에 따라 겔민느와 서사하라의 다클라는 하우스재배와 수경재배를 통한 토마토 생산의 신규 시범지역이 됐다. 이곳 사막에 진출해 있는 소프로펠 이외에도 프랑스-모로코 합작회사인 아쥐라는 아가디르에만 25개 농장을 보유하고 있으며, 다클라에는 두 개의 농장을 갖고 있다. 프랑스 페르피냥에 있는 디스마 인터내셔널에 영업을 맡긴 이 회사는 천적 곤충(3)을 활용한 생물학적 방제 기술에 대해서는 홍보를 하나, 용수 확보 문제에 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는다.

 용수 및 산림 관련 보고서를 따르자면 “투기꾼들에게 이익이 되고 현지 이용권자에게는 비우호적인 수익형 농업 개발에 따른 사회구조의 변화, 토양 침식 이후 발생하는 수목 치사율 증가, 용수 보급 중단 등” 수스 지역에서 이런 형태의 농업이 아르간 나무숲에 끼치는 영향은 이미 심각한 수준이라고 한다.(4) 그러나 국내산림개발국장 벤함무 부즈무리가 강조하듯 아르간 나무숲의 모로코 농가수입 기여분은 25~45%가량이다.(5) 용수를 많이 필요로 하는 농업의 영향에 우려를 표하는 부즈무리는 아르간 나무 열매에서 추출한 오일의 인기가 전세계적으로 더욱 높아지는 것에 대해서도 경고했다. 이런 인기로 말미암아 산림에 가해지는 압박이 더욱 가중된다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만일 아무런 조처도 취하지 않으면 완전한 사막화로 치달을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런데 아르간 오일의 상업적 성공은 수스 지역에 있는 또 다른 형태의 농촌 경제 신장에 기여할 수도 있다. 이미 100여 개의 생산협동조합이 형성돼 있으며, 약 4천여 여성 노동자들이 여기에서 집단으로 일을 한다.
 
 ‘사회적 기업’의 생존 투쟁 
 여성들이 주축이 되어 아르간 오일을 추출하는 최초의 사회적 기업이 세상의 빛을 본 건 1990년대 말이었다. 이는 특히 주비다 샤루프 여사 덕분이었다. 화학자였던 주비다 샤루프는 연구를 통해 아르간 나무의 효능을 확인시켜줬다. 아르간 제품의 생산은 가족 단위로 이뤄졌다. 수확한 열매를 말린 뒤 과육을 벗겨내면 호두알같이 단단한 껍질이 나오는데 돌 사이에 이를 넣고 내리치면 아르간 씨앗을 얻을 수 있다. 오랜 역사적 전통을 지닌 이 행위에는 수스 여성 농민들의 비결이 담겨 있다. 그네들은 하루에 1kg을 조금 넘는 아르간 씨앗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1ℓ의 아르간 오일을 얻어내려면 아르간 씨앗 2.5kg을 짜내야 한다.
 아르간 오일의 생산이 세계 시장에서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한 것은 2004년 무렵이었다. 샤루프는 빈정거리듯 이렇게 말한다. “대형 연구소들은 자신들이 올바른 대우를 해주며 일을 시키는 베르베르 여인들의 모습을 홍보하기 시작했죠.”
 중간상인들이 점점 늘어가는 가운데 불과 몇 년 만에 모로코와 유럽의 기업들은 수출 기준에 부합하는 생산을 할 수 있는 추출 기계를 구비해 카사블랑카와 마라케시에 소규모 설비나 활용 잠재력 높은 공장을 세웠다. 화장품 시장이 잘 구축된 유럽·미국·캐나다·일본 등지에서 아르간 오일은 슈퍼마켓의 미용 코너 매대를 차지하고 있으며, 판매되는 상품 폭은 점점 더 넓어지고 있고, 대대적인 마케팅이 이뤄지고 있다.
 
 전세계로 팔려나가는 아르간 오일 
 하지만 어떤 기계도 아르간 열매의 씨앗 껍질을 제대로 깨부수지 못한다. 따라서 이들 기업 대부분은 (kg당 8유로가 안 되는) 보잘것없는 가격으로 도매업자에게서 아르간 씨앗 수t을 사들인다. 이들 도매업자는 (열매 수확, 과육 제거, 껍질 분쇄 등의 행위에 대한) 가격 협상 없이 납품을 해야 하는 외딴 여성 농민들한테서 씨앗을 공급받는다. 반면 협동조합 단위로 일을 하는 여성 농민들은 하루에 최소 4유로는 벌어들이며 (알파벳 수업, 어린이집 이용, 수익 분배 등) 다른 혜택 또한 받고 있다는 게 국내 아르간 협동조합연합 회장인 타라랍트 라크맹의 설명이다.

 유럽의 협력으로 아르간 협동조합연합 소속의 42개 협동조합 대부분은 전기 압착기를 구비했다. 하지만 거대 기업과의 가격 전쟁에서 맞서 싸울 만한 수준에 이르지는 못했다. 협동조합 단위로 생산해내는 아르간 오일 1ℓ의 원가는 원자재와 임금만을 고려해도 최소 18유로다. 그런데 아르간 오일 브랜드 제품은 모로코 슈퍼마켓 매장에서 ℓ당 20유로 정도에 팔리고 있으며, 기업이 생산한 이들 제품은 유럽에서 8~10배 비싼 가격으로 판매된다. 이들 기업 가운데 선두주자 격인 프랑스 기업주 브누아 로빈은 “천막촌에서 일을 하는 여성 노동자 2천~3천 명에게 아르간 열매가 담긴 자루를 가져다주어 일을 시키고, 분쇄 작업의 대가로 이들에게 kg당 5.30유로를 지급합니다”라고 주장했다. <특파 보도>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기자들은 로빈을 취재해 방송에 내보낸 적이 있었다.(6) 당시 대량의 오르간 씨앗 가격을 흥정하기 위해 지폐로 가득 찬 가방을 든 부하 직원 하나와 함께 시장을 돌아다니는 그의 모습이 전파를 탔다. 로빈이 운영하는 압심이라는 회사의 카사블랑카 소재 공장장의 설명을 따르자면, 이 회사는 매달 8천~1만2천ℓ를 생산한다고 한다. 같은 기간 협동조합 단위의 오일 생산량은 15ℓ를 넘지 못한다.
 
 아르간 나무숲 자생력, 한계에 도달 
 뿐만 아니라 82만ha에 펼쳐져 있는 아르간 나무숲은 수요의 압박 때문에 점점 더 위협을 받고 있다. 유네스코의 ‘생물권 보호지역’ 설정도 소용없었다. 아델크림 아젠파르는 이렇게 호소한다. “모든 아르간 나무의 열매들이 수확된 상태입니다. 이제 아르간 나무숲은 자생적으로 유지되지 않습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열매를 떨어내려고 꽃까지 꺾으면서 장대로 때리더군요.” 설상가상으로 2008년 여름 아르간 나무는 오랜 가뭄 때문에 거의 아무것도 생산해내지 못했다.
 희소성이 더해진 아르간 나무 원료의 가격은 두 달 만에 세 배가 올랐다. 투기꾼들은 이미 아르간 열매 비축고를 만들어둔 상태다. 발주 내역에 대한 대금 결제를 해야만 하는 기업에 비싼 값으로 되팔기 위해서다. 라크맹은 “협동조합들은 열매를 사들일 자금이 없어 생산을 중단한 상태입니다”라며 우려를 표한다. 2009년 수확은 더 나아질 것으로 보이나 장기적으로 봤을 때 상황은 악화될 수밖에 없다. 아르간 나무는 10년이 지나야만 열매를 맺는데 연간 대략 600ha에 해당하는 손실분을 메우기에는 역부족이다. 현재 7천ha 이상이 비닐하우스나 야외에서 재배되고 있으며, 그 밖의 9천여ha는 2006~2007년에 도시계획 및 관광사업을 위해 희생되었다.(7)
 물론 모로코 농업부 장관은 이 지역의 특산물인 아르간 나무 보호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아르간 오일 보호구역 지정제의 실시는 수스 지역에서의 부가가치 보존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보호 대상이 되는 아르간 나무의 이름 선정에서부터 난제들이 부지기수다. “‘아르간’이라는 말은 오일을 통칭하는 용어”라는 게 협동조합 쪽 주장이다. ‘아르간’은 1980년대 피에르 파브르라는 프랑스 연구소가 등록한 이름으로, 이 연구소는 ‘아르간’이라는 상표를 붙여 아르간을 이용한 기초 로션을 판매했다. 아르간 생산업자 쪽은 분개하고 있지만 파브르는 ‘자사의’ 상표가 문제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다.
 
 보호 정책 효과마저 불투명 
 게다가 현재로서는 아르간 오일 보호구역 지정제가 기업 쪽에 맞서 전통적 방식으로 혹은 반기계적 방식으로 아르간 오일을 생산하는 협동조합 쪽에 도움이 될지 또한 전혀 확실치 않다. 기업들이 계약조건 명세내역에 대해 단호한 협상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농업이든 아르간이든 농업부 장관의 대책은 소규모 생산업자를 장려하기보다는 투자자와 수출업자에게 더 유리하다. 물을 더 절약해주는 ‘점적 주입’ 장비에 대한 막대한 보조금이 맏물과일 농장에 제공되는 한편, 아르간 나무숲 밖에 위치한 아르간 오일 생산 기업들이 아르간 오일 보호구역 내로 이주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협동조합 쪽에 대한 지원은 새로운 조직체 설립에 맞춰지기는커녕 현존하는 취약 구조를 더욱 공고히 하는 데 집중되고 있다.

 따라서 타루단트의 신생 조합인 오코와는 기계도, 지원금도 받지 못했다. 아울루즈 댐 시설 때문에 농장이 매몰된 말리카는 30여 조합원의 의지와 연대의식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게 됐다. 이들 대부분은 “대규모 농원에서 일을 하는 게 지긋지긋하다”고 얘기한다. 아울루즈 영세농민 노조의 여성들은 조합 하나를 세우고 싶어했다. 그러나 자금이 부족한 실정이다. 그네들은 달리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자문하고 있다. 염소 방목이라고 상황이 낫겠는가? 사막화가 진행되면서 유목민들은 아르간 숲에서 염소떼를 이끌고 남쪽으로 밀려나고 있다. 아르간 나무숲은 이미 과밀방목으로 고초를 겪고 있는 상황이다.
 가족농업, 아르간, 목축이라는 세 가지 활동은 수스-마사-드라 지역 베르베르 농민들의 전통적인 삶의 수단이었다. 이런 활동은 뒤떨어진 경작 방식임에도 식량을 확보해주며 소규모 농촌 경제를 유지시켜왔다. 베르베르의 문화 또한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카비라는 유럽으로 향하는 비행기 흉내를 내보이며 “여기는 아무것도 아닌 거죠”라고 외쳤다. 이 한 번의 몸짓에 그의 근심이 담겨 있었다.

글/세실 랭보 Cecile Raimbeau

번역/배영란 runaway44@ilemonde.com
한국외국어대 통역대학원 졸. <미래를 심는 사람> 등의 ?

 

<각주>

(1) Najib Akesbi, <모로코 농업의 발전과 전망>(Evolution et perspectives de l’agriculture marocaine), 2006. www.cgem.ma/pmb/opac_css/index.php?lvl�author_see&id�94.
(2) 왕궁 소유의 농장들은 모로코 제일의 영농이 이뤄지는 곳이다. 그 규모에 대해서는 명확히 알 수 없으나, 일간지 <텔켈>(Telquel)의 2008년 12월 12일 보도를 보면 면적이 1만2천ha 이상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며, 2천 명의 근로자를 고용하고 있고, 매출액은 1억5천만 달러에 이른다. 전체 생산량 가운데 3분의 2가 수출되는데, 주로 감귤류라고 한다.
(3) 천적 곤충을 이용하면 환경에 유해한 위험물질을 사용하지 않고도 농작물을 훼손하는 곤충을 없앨 수 있다.
(4) 산림개발부, <아르간 나무숲 개발을 위한 전략 요소>(Elements de strategie pour le developpement de l’arganeraie), 2006년 1월.
(5) Benhammou Bouzemouri, ‘아르간 나무숲 개발 및 보존의 문제’(Problematique de la conservation et du developpement de l’arganeraie), ‘아르간 나무: 모로코 농촌 지역 인간 개발의 수단’이라는 주제로 2007년 4월 27일과 28일 이틀 동안 라바대학에서 알바이타르 연합이 주최한 아르간 나무 관련 국제 심포지엄 발제문.
(6) 셀린 데스테브, 세드릭 푸레, ‘아르간 오일: 모로코의 새로운 황금자원’(L’huile d’argan: le nouvel or du Maroc), <France2> ‘특파원 보도’(Envoye special), 2008년 1월 10일.
(7) 용수 및 산림 남서부 지역위원회, <2006~2007 활동 리뷰>(Revue d’activites 2006~2007),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