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뒤뜰’ 중남미를 파고드는 중국

2014-08-26     크리스토프 벤튜라

 

   
 

드디어 카운트다운이 제로가 되자, 중국 관영방송인 CNTV의 화면에는 흰 연기가 가득 차더니 감격스러운 표정의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의 얼굴이 비친다.

발사대에서 벗어난 장정 3호 로켓은 곧이어 중력을 벗어난다. 2013년 12월 21일, 중국 로켓은 볼리비아 역사상 최초의 통신 위성인 투팍 카타리(TKSAT-1)를 궤도에 올려놓았다.

남미 국가로서는 역사적일 수밖에 없는 이 사건은 2000년대 중반 이후 중국과 남미의 외교, 경제 및 기술 교류가 얼마나 밀접한지를 잘 보여준다. 미국은 과거 브라질을 비롯한 자국의 이른바 ‘뒤뜰’ 국가 가운데 일부를 중국에 내주었다.

2014년 1월 28일과 29일 하바나에서 열린 라틴 아메리카-카리브 국가 공동체(CELAC) 두 번째 정상회담에서 33개 회원국들은 중국 정부와 협력 포럼을 갖기로 결정했다. 이전까지 미국과의 양자관계로 국한된 국제 협력 관계의 중대한 변화였다. 라틴 아메리카 지역의 부상을 알리는 신호와 함께 이러한 움직임이 전 세계 힘의 균형을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계기가 될 수 있을까?

국제 교역의 흐름이 아시아 태평양 지역으로 다시 향하고 있으며, 라틴 아메리카도 예외는 아니다. 미국이 2012년 기준 약 8430억 달러 규모의 교역량으로 여전히 주요 파트너이긴 하지만 HSBC 은행은 향후 2030년이면 미국이 그 자리를 중국에 넘겨주게 될 것이라고 주저 없이 예측하고 있다.(1) 2000년과 2013년 사이 중국과의 교역은 100억 달러에서 2570억 달러로 증가했기 때문이다.(2)

내수 시장을 통한 경제 개발 모델을 지속하려는 중국은 원자재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길 원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라틴 아메리카는 원자재 공급자이자 동시에 파트너가 될 수 있다. 이미 브라질, 페루, 칠레의 최대 수출처는 중국이다(콜롬비아, 쿠바, 우루과이, 베네수엘라는 중국이 두 번째로 큰 수출처다). 곡물, 광물, 석유가 전체 수출의 70%를 차지한다.

옛 영국 선박들이 완제품을 남미에 운송하고, 또 남미의 동, 설탕, 향신료 등을 리버풀로 실어 나르던 것처럼, 중국을 향한 남미의 화물 선박들은 바다에서 상하이와 텐진항을 출발하는 중국의 수출 컨테이너 운반선과 마주친다.

중국은 브라질 시장의 최대 물자 공급국이자, 라틴 아메리카 시장 전체에는 두 번째로 중요한 공급 국가이다.(3)

교역 흐름이 오래 지속되다 보면 중요한 급변을 맞게 된다. 오랜 기간 이런 식의 관계는 ‘무역 불균형’ 문제를 야기한다. 즉, 제조 및 가공을 거치지 않은 상품의 가치는 점차 떨어지는 데 반해 제조품의 가치는 신기술과 접목되면서 점차 상승했다. 남미 국가의 원자재 수출은 가치가 떨어지고 이들의 상품 수입 비용은 증가하면서 대륙의 대외 무역수지 균형은 깨지곤 했던 것이다. 그런데 2000년대 원자재 가격은 급등한 반면, 전 세계적으로 많은 제조공장이 아시아 지역에 세워지면서 제조품 가격은 폭락하였다. 논리적으로 이러한 상황에 남미는 이득을 봐야 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이 지역에 유리한 무역 조건의 변화가 또 다른 위협을 야기했고, 이는 오래전의 양상을 재연한 것이었다.

16세기 스페인 제국은 신대륙을 약탈했다. 덕분에 이베리아 반도에 넘쳐나던 금과 귀한 철광석으로 스페인 상인들은 부유한 고리업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부로 이득을 본 것은 다른 유럽 지역의 신생 산업들이었다. 스페인에서 제조업은 쇠퇴했고, 이는 이베리아 반도 제국의 쇠락을 앞당겼다. “스페인은 소를 갖고 있었지만 다른 이들이 그 젖을 짜 마시고 있었다”라고 우루과이 작가 에두아르도 갈레아노(4)는 기술했다.

중국과 남미지역과의 관계도 그와 별반 달라진 게 없었다. 산업 공정을 통해 부가된 가치는 늘 남미 지역을 비껴가고 따라서 중국과의 관계는 오히려 남미의 경제상황을 악화시켰다. 특히 1차 산업 분야에 대한 의존도가 가중될수록 부와 일자리는 거의 창출되지 않았다. 한마디로 남미는 소를 갖고 있지만 젖을 제대로 맛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원자재 수요의 급증은 또 다른 문제를 심화시킨다. 칠레 전 재무장관 안드레스 벨리스코는 최근 이를 두고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창밖을 보면 거대한 부의 쓰나미가 밀려오는 것을 본다. 예전에는 긍정적인 현상으로 봤지만 지금 나는 끔찍한 일이라 본다. 왜냐? 이 쓰나미는 우리의 정치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우리의 거시 경제 조정을 더욱 힘겹게 만들기 때문이다.”(5)

벨리스코가 지적한 ‘네덜란드 병’이라는 용어가 있다. 1950년대 말 네덜란드 북쪽 그로닝겐 지역에서 엄청난 천연 가스가 발견된 이후 생긴 용어다. 가스 자원 수출이 폭발적으로 늘면서 외화가 밀려들어오고 그 덕분에 네덜란드 화폐 플로린의 가치는 고공 행진을 하였다. 그 결과 네덜란드의 제품은 해외 시장에서 비싸지는 반면 수입 비용은 줄어들었다. 결론적으로 네덜란드 산업계가 활력을 잃게 되었다.

현대 남미는 이와 비슷한 상황에 있다. 외화가 밀려드는 상황에서(수출 및 투자에 기인한), 지역 화폐 가치는 2000년대를 거쳐 크게 절상되었다. 예를 들어 레알화의 가치는 2010년과 2011년 사이 25%나 증가했고, 이를 두고 브라질 재무 장관 귀도 만테가는 ‘화폐전쟁’(중국 ‘파트너’에게 많은 영향을 받은)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6) 2011년 4월 중국 방문 중 브라질 대통령 딜마 루세프는 중국 측에 교역 불균형을 ‘재조정’할 필요성에 대해 말하기도 했다.

최근 중국 공장의 브라질 이전을 계기로 기차 제작 기술 이전과 같은 일부 긍정적인 성과도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남미는 여전히 남는 게 없다. 중국은 이들 남미의 교역 파트너들에 대해 큰 우위를 점하고 있다. 에너지 분야에 대한 의존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지난 2010년 4월 아르헨티나가 중국 수입 제품(신발, 섬유, 철)에 대해 안티 덤핑 조치를 가했을 때 중국은 자국의 에너지 공급을 위태롭게 하지 않으면서 아르헨티나 석유 구입을 일부 중단하는 대응을 취했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결국 조치를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

중국은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에 대대적인 재정 지원을 하고 있다.(7) 눈에 띄는 것은 중국개발은행(CDB)을 통한 차관과 같은 형태의 지원이다. 원유, 철광석, 콩을 담보로 농업과 에너지, 광업, 운송 및 교통 기반 시설에 관한 협정, 또는 과학 기술 프로젝트에 관한 협정은 2005년과 2013년 사이 1020억 2천만 달러에 육박했다.(8) 중국은 미주개발은행(IDB)과 카리브개발은행(CDB)에 가입했다. 대만을 인정하는 23개 국가 중 5개 국가가 가입해 있는 이 지역에서 중국의 투자 규모는 2003년부터 2012년 사이 5배로 증가했다.

무역은 불균형이지만 그럼에도 이러한 협력 관계는 라틴 아메리카 국가 지도자들에게 정치적 이점을 가져다준다. 국제 언론에서 축복하듯 소비 확대로 대변되는 ‘신 중산층’의 부상을 지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 집권당인 노동당 성향의 브라질 경제학자 마르시오 포쉬만은 신 중산층이란 표현이 실제로는 슈퍼마켓이라는 신세계만을 발견한 ‘신 빈곤 노동자’를 가리키고 있다고 지적한다. 외국에서 제조된 저렴한 상품들을 슈퍼마켓에서 볼 수 있다는 것뿐이다.(9)

지난 2014년 7월 14일부터 16일까지 브라질의 프로탈레차에서 열린 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차이나, 남아프리카 공화국) 정상회담을 계기로 시진핑 중국 주석은 남미를 두 번째 방문하였다. 중국은 현재 베네수엘라의 위기, 2009년 온두라스의 쿠데타, 2010년 에콰도르의 쿠데타 시도 등과 같은 ‘뜨거운’ 정치 갈등에 관여하지 않고 있다. 중국은 대외 정책을 포괄하는 ‘베이징 컨센서스’의 비공식적인 5대 원칙을 준수하고 있다. 즉 국가의 절대적 주권과 영토 보전 존중, 불가침, 내정 간섭 불가, 상호 이익 추구와 평등, 평화적 공존이다. 남미 대륙에서 일어나고 있는 워싱턴 방식과의 단절은 눈에 띌 수밖에 없다.(10)

경제 및 정치 자율성을 추구하는 남미 대부분의 국가들은 중국에 미래를 걸고 있다. 2000년대 진보 운동의 파고를 지나온 남미 정부들의 눈에 이 새로운 의존 대상은 이전 파트너보다 더 좋다. 전 세계 두 번째로 경제 강대국인 중국은 동맹 관계를 다각화하는 데 필요한 존재이다. 이는 프란시스코 베르데스 몬테네그로 에스카네츠(11) 연구자의 분석에 따르면 상호의존적 전향인 셈이다. 다극화된 세계를 건설한다는 관점에서 중국과의 관계로 미국의 지배력과 IMF나 세계은행과 같은 국제금융기구에 대한 종속을 약화시킬 수 있다. 남미를 지배해 온 경제 체계와 그 약탈 논리의 약화를 보여주는 ‘거대한 남미권’의 형성일까? 아니면 오히려 헤게모니의 싸움에서 구 강대국과 신 강대국 간의 역할 교체를 보고 있는 것일까?

 

글·크리스토프 벤튜라 Christophe Ventura

<대륙의 기상, 라틴 아메리카와 카리브 국가들의 지정학>(Armand colin, Paris, 2014)의 저자

번역· 박지현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1) ‘Chinese enterprises in Latin America’, <People’s Daily Online>, 2014년 2월 19일

(2) Mark Keller, ‘China­Latin American Trade : An end to the good old days’, <Latin Business Chronicle>, Coral Gables, 2014년 6월 11일

(3) 유엔 중남미 카리브 경제위원회(Cepal), 2013년 11월

(4) Eduardo Galeano, <라틴 아메리카의 열린 혈관>, Plon, Paris, 1981년(초판 1971)

(5) Chrystia Freeland, ‘US policy no longer stands alone’, <International Herald Tribune>, Neuilly­sur­Seine, 2011년 4월 22일

(6) Laurent L. Jacque, ‘화폐 전쟁, 신화와 현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0년 12월호

(7) 라틴 아메리카는 중국의 전 세계 직접 투자 총액 중 13%를 차지한다. 중국 내 중남미 국가의 직접 투자 규모는 2010년 전체 중국의 전체 직접 투자 중 0.1% 미만에 불과하다(700~800억 달러 규모).

(8) ‘China to finance major projects in Latin America’, Reuters, 2014년 6월 15일

(9) Marcio Pochmann, <Nova classe média ? O trabalho na base da pirâmide social brasileira>, Boitempo Editorial, São Paulo, 2012년

(10) Maurice Lemoine, ‘중남미, 조용한 쿠데타의 시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4년 8월호

(11) ‘Amigos a la fuerza : las relaciones China­América Latina y el Caribe frente a los riesgos e interdependencias de una geoeconomía en transformación’, Instituto Español de Estudios Estratégicos, Madrid, 2014년 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