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와 IMF 사이에서 계산 복잡한 우크라이나

2014-08-26     줄리앙 베르쾨유


이에 우크라이나는 우회책을 선택했다. 우크라이나의 경제활동은 더 이상 국내 소비에만 기댈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고, 결국 민간 부채와 국민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공공지출이 확대되었다(2012년 기준 공공지출 전년대비 16% 상승). 우크라이나 경제는 저부가가치 생산에만 치우쳐져 있으며, 소련 붕괴 후 여러 번의 정권교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렇다 할 안정적인 제도가 마련되지 않았다. 구소련이 붕괴한 지 어느덧 20여 년이 지났지만, 우크라이나는 지금까지도 독립 이전의 생산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그래프 참고). 또한 국가 수뇌부에 이르기까지 탈세, 부패, 사회적 약탈 등의 부정행위가 만연된 상태이다. 오늘날 우크라이나의 지하경제 규모는 국내총생산(GDP)의 25%에서 많게는 55%까지 차지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게다가 만성적인 예산과 국제수지 간 불균형이 대외부채를 바탕으로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현재 우크라이나가 정치적 위기에 처해 있는 가운데, 2013년 말부터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진 우크라이나의 재정 문제가 극적으로 마무리되어가는 듯하다. 2010년 7월, 우크라이나 정부는 IMF와 차관협정을 맺었다. 155억 달러 규모의 구제 금융을 받는 대신, 정년퇴직 연령을 기존 55세에서 60세로 연장하고(우크라이나의 평균 기대수명이 유럽 평균보다 10년이나 낮지만), 국내 에너지 요금을 두 배로 늘리는 것이 조건이었다. 하지만 6개월 후 해당 협정은 중지되었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가스요금 인상안에 난색을 표했던 것이다.지난 5월 25일 우크라이나 대선에서 당선된 페트로 포로셴코 대통령은 국제통화기금(IMF)이 제안한 정책으로 나타날 사회적 결과들에 대해 책임을 지고 친러시아 지역의 분리주의 갈등에 대처할 계획이다. 폭력 사태에 빠져있는 우크라이나의 현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쉽게 망각하곤 하는 경제적인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

2013년 가을, 우크라이나 정부는 당장 이듬해 만기인 30억 달러의 부채와 청산해야 할 10억 유로 규모의 유로채권 문제로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다. 설상가상으로 국영 가스회사인 나프토가즈가 러시아 가스 공급사 가스프롬에 지불해야 할 대금 체불액도 30억 달러에 달한 상태였다. 지금까지 우크라이나의 인플레이션 정도는 성장 침체와 제한적 화폐정책, 농산물 풍작 때문에 낮은 수준으로 유지되어 왔다. 그러나 금융 시스템이 불안정해지고, 몇 달 전부터 평가절상을 시작해야 할 만큼 자국 화폐 그리브나에 대한 환율 압박도 더욱 커졌다. 결국 우크라이나는 1998년 금융위기 직전의 러시아처럼 눈앞에 돈의 장벽이 높아져만 가는 상황에 이르렀다.

마침내 IMF 조사단이 2013년 10월 말 우크라이나를 방문했다. IMF 측은 그리브나에 대한 변동환율제도와 정책 지출 규모의 감축을 시행하고, 민간가계 대상 가스요금을 즉각적으로 인상하며 이후 추가 인상 계획안 역시 시행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만약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100~150억 달러 상당의 구제금융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었다.(1) 이에 더해 유럽연합(EU)집행위원회는 우크라이나 정부가 IMF와 협정을 체결한다면 8억4천만 달러의 원조를 추가적으로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빅토르 야누코비치 당시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급격한 에너지 요금 상승이 국민들과 동부 도네츠 탄전의 탄광 산업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그 주 소치에서 있었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IMF가 내놓은 조건을 대체할 만한 다른 해결책을 논의했다. 2013년 11월 21일,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EU와의 협력협정 체결을 돌연 중단했다.(2) 정부의 태도가 돌변하자 마침내 키예프의 마이단 광장(독립광장)에 시위대가 모이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약 한 달 후인 12월 17일, 마침내 러시아 측 제안의 윤곽이 드러났다. 우크라이나와 다시 손을 잡기 위한 푸틴 대통령의 전략 아래 러시아 측이 제안한 계획은 150억 달러의 차관 제공, 가스 판매가격 3분의 1 인하, 가스프롬에 대한 나프토가즈의 부채 완화 등을 골자로 하고 있었으나 상세 내용까지는 명확히 발표되지 않았다. 이는 IMF와 EU에 대한 조롱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우크라이나 정권이 붕괴했고, 야누코비치 전 대통령은 키예프를 떠났다. 이후 들어선 우크라이나의 새 정부는 지난 2월 22일 IMF의 문을 다시 두드렸다.

우크라이나 정부의 이러한 변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크라이나 경제가 국제무대에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정확히 관찰할 필요가 있다. 우크라이나는 유럽과 아시아에 원자재와 반제품을 수출하고, 러시아에는 공산품을 수출하고 있다. 그런데 2000년대 말, 우크라이나는 두 지역 통합체로 인해 딜레마에 빠지게 되었다. EU와의 협력, 러시아와의 관세 동맹 사이에 놓인 것이다. 이러한 갈림길에서 우크라이나에 선택을 강요하는 것은, 이분법적 논리에서 배제된 중간 영역이라고 볼 수 있는 우크라이나의 경제적, 사회적 관계성을 무시하는 처사다.

EU는 2009년 5월을 시작으로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몰도바, 아르메니아, 조지아, 아제르바이잔 등에 파트너십을 제안하고 있었다. 그러나 EU는 러시아와 2006년 ‘가스 전쟁’ 이래 전략적 파트너십 논의가 교착상태에 빠져있을 뿐, 별다른 제안을 내놓지 않았다. 반면 EU는 우크라이나와 심화·포괄적 자유무역협정(DCFTA)을 협상하는 단계까지 발전했다.

이에 푸틴 대통령은 대응책으로 구소련 연방국으로 구성된 독립국가연합(CIS) 국가들을 묶어 유라시아 경제동맹을 지향하는 과거의 통합정책을 부활시켰다.(3) 러시아의 계획은 빠르게 진행되어 2010년에는 러시아-카자흐스탄-벨라루스 삼국이 관세동맹 발효를 선언했다. 대(對)러시아 무역 의존도가 30%에 달하는 등 러시아의 영향력이 크게 미치는 우크라이나 역시 이를 모른 체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2011년 10월, 야누코비치 전 대통령은 CIS 회원국 간 FTA에 조인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그 후 관세 동맹 삼국에 ‘3+1 협정’을 제안하기도 했으나, 여전히 EU와의 심화·포괄적 FTA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었다. 이러한 우유부단한 태도가 러시아 정부의 신경을 건드렸고, 러시아는 결국 우크라이나의 제안을 거절했다.(4)

2013년, 우크라이나에 대한 압박이 사방에서 더욱 강해지기 시작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EU 간 FTA 협정을 막기 위해 한층 더 강력하게 대응했다. 푸틴 대통령의 고문인 세르게이 글라지예프는 “우크라이나가 EU와의 협정에 응하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다”면서 “우크라이나의 무역 수지를 망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경고했다.(5) 그는 이와 함께 “우크라이나에 대한 관세동맹 삼국의 보호무역주의적 대응이 불가피해질 것”이며 “대 러시아 수출품 중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농산품 및 생산재 수출이 감소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글라지예프 고문은 “첫 번째 선택지(관세동맹)는 우크라이나 경제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필수 조건들을 보장할 것이며, 경제 구조 또한 개선해갈 것이다. 반면 두 번째 선택지(EU와의 FTA 협정)를 선택한다면 우크라이나 경제는 파괴되고 결국 파산에 이르게 될 것이다”고 주장했다.(6)

이러한 주장에 대해 근거는 빈약했으나 그만큼 러시아에서의 반향은 크게 나타났다. 러시아 정부가 언행일치를 보여주기 시작한 것이다. 러시아 측은 우크라이나의 제과제품, 특히 지난 5월 당선된 페트로 포로셴코 현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소유하고 있는 로셴 사의 초콜릿 제품 등이 러시아 국민의 건강에 위험을 끼칠 수 있다고 단언했다. 또한 여러 차례의 관세 동결이 연달아 일어나 우크라이나 수출업은 마비될 지경에 이르렀다.

반면 EU 책임자들은 계속해서 자유 무역과 FTA에 대해 찬사를 늘어놓고 있다. 2007년, EU집행위원회의 지시 하에 진행된 한 보고서는 마침 “우크라이나가 국가경영 개선과 함께 시장 개방을 감행한다면 두 자리 수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놓기도 했다.(7) EU에서 소속 인접국 정책 부문을 담당하고 있는 슈테판 풀레 위원은 우크라이나가 EU와 협약한다면 연간 6%p 추가 성장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이 수치는 한 번도 의문이 제기되지 않은 가설 모델에 기반한 것으로, 사실 우크라이나 경제 기능의 상황과는 거리가 멀다.(8)

그렇다면 우크라이나의 핵심 기업인들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을까. 사실 그들의 의견도 여느 국민들과 마찬가지로 양분되어 있다. 2013년 폴란드의 국제문제연구소가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EU와의 FTA 협정에서 이득을 보게 될 우크라이나의 주요 수혜자는 포로셴코 현 대통령, 안드리 베레브스키 커넬 대표(대 EU 수출 농식품 생산기업), 유리 코시우크 미로니브스키-흘리보 프로덕트 대표(우크라이나 양계업계의 대표기업) 등이다. 반면 FTA 협정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쪽은 야누코비치 전 대통령의 최측근들로, 그의 아들인 올렉산드르 야누코비치, 리나트 아흐메노프, 드미트리 피르타쉬 등이다. 이들은 최근 정부 입찰 경쟁에서 40%의 입찰을 따내기도 했는데, EU와 FTA가 체결된다면 그들의 정치적 이점은 각종 규제로 인해 위협받게 될 것이다.(9)

한편 러시아와 EU 양측 모두 궁색한 주장을 늘어놓고 있는 이면에, 그들의 지역 통합계획이 규범적 쟁점과 연결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2009년, EU의 핵심 인물 중 하나인 칼 빌트 스웨덴 외무장관은 해당 협정이 단순한 FTA 협정 그 이상의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는 에너지 부문에 대한 법제화와 우크라이나, 몰도바, 세르비아 간 경쟁에 대한 법제화 범위를 확장시킬 것이며, 이러한 규범화 정책이 장기적으로 근본적인 변화를 불러올 것”이라고 주장했다.(10)

점차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 EU는 세계화의 핵심 관건이기도 한 규범 경쟁에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반면 러시아의 경우 구소련식 체제를 물려받아 탈 많고 오래되고 부당한 규범들로 CIS 회원국 간의 경제 관계를 규제하고 있다. 유럽의 규범이 우크라이나에 성공적으로 들어간다면, 곧 빠른 속도로 퍼져 포스트 소비에트 국가 전체를 휩쓰는 도미노 효과를 낳게 될 것이다. 러시아가 이에 강력하게 대응하고 나서는 것도, 자국의 군산복합체가 여전히 기반으로 삼고 있는 현 시스템을 지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대립은 2014년 경제 위기를 한층 더 악화시켰다. 지난 5월, 우크라이나는 IMF로부터 2년간 170억 달러를 지원받는 것을 포함해 총 27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자국 경제에 긴급 수혈했다. IMF와의 조율이 2013년 10월 당초보다 더 단계적으로 진행되고 있기는 하지만,(11) 2014년부터 에너지 요금 50% 인상과 인플레이션 상승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동시에 러시아는 보호무역주의 강화라는 위협을 거듭하고 있는 등 러시아와의 관계 문제도 지속될 것이다. 또한 예산 확충도 없고, 그리브나 통화에 대한 제한으로 경쟁력 역시 한계가 있는 탓에 결국 GDP 감소율이 5%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남부 및 동부 산업지역에서 현재 나타나고 있는 분리주의 갈등과 합쳐져 사회운동 역시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지난 대선에서 1차 투표 만에 당선이 확정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마침내 임시정부에 없던 정당성을 가지게 되었지만 포로셴코 정권은 쉽지 않은 과제들에 맞서야 하는 상황이다. 단기적으로는 우크라이나 경제가 오늘날의 포식 논리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국가의 신용도를 회복하고 국제수지를 유지해야 한다.(12) 장기적으로는 금융시스템 재구성이 필요하다. 우크라이나는 GDP 단위당 에너지 소비율이 선진국 대비 10배나 높게 나타나는 등 전 세계에서 가장 지출이 큰 국가임을 감안해, 앞으로 투자 과제의 초점을 에너지 효율성과 생산품의 품질 향상에 두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과제들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EU와 시간을 충분히 가지고 조율하되 동시에 러시아와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앞으로 유럽으로부터 제도적 영향을 받겠지만, 경제적 방향성은 다각화할 필요가 있다. 특히 러시아와의 교역이 지금의 곤경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글·줄리앙 베르쾨유 Julien Vercueil

프랑스 국립동양학대학(INALCO) 경제학부 교수

번역·김보희 sltkimbh@gmail.com

고려대 불문과 졸.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졸

 

(1) 국제통화기금(IMF), 보도자료 제13/419호, 워싱턴, 2013년 10월 31일

(2) 세바스티앙 고베르, ‘우크라이나, 유럽이냐 러시아냐’,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3년 12월호

(3) 장 라드바니, ‘아시아로 중심 이동한 러시아의 외교 전략’,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4년 5월호

(4) ‘Convergences et divergences dans l'espace eurasiatique. Panorama économique’, in Pagé J.-P. (dir.), Tableau de Bord des pays d'Europe centrale et orientale. Les Etudes du CERI, 202호, 파리, 2013년 12월

(5) ‘Russia weighting tougher Ukrqine sanctions’, Ukrainian Journal, 키예프, 2013년 8월 18일자

(6) Serguei Glaziev, ‘Who stands to win? Political and economic factors in regional integration’, <Russian in Global Affairs>, 모스크바, 2013년 12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