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는 더 이상 공공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다

2014-08-26     라울 마크 장나르

학교 식당을 코카콜라나 맥도날드와 같은 회사가 운영하는 세상을 상상해보고, 파키스탄 기업들과 파라과이 기업들이 당신에게 부여할 연간 휴가 일수와 당신의 시급을 토론하는 세상을 상상해보자. 또 우고 차베스가 토니 블레어(노동당 출신의 전 영국 총리)처럼 정치해 베네수엘라 대통령에 당선되지 못했을 세상을 상상해보도록 하자.

사람들은 그러한 세상을 꿈꾼다. 제네바 주재 호주 대사관 강당에 모인 유럽연합(EU)의 각국 대표들을 비롯한 미국, 노르웨이, 캐나다, 호주, 일본, 대만, 멕시코, 콜롬비아, 칠레, 터키, 파키스탄, 브라질, 칠레 등 50여 개국의 대표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이 국가들은 세계 서비스 무역의 70% 이상을 차지한다. 이 국가들은 2012년 2월부터 협상에 돌입한 ‘서비스에 관한 협정’(ACS 혹은 영어로 TISA로 표기)을 2015년까지 마무리 짓고 싶어 한다. 2014년 4월 28일, 유럽의회 선거 캠페인이 한창일 때 대서양 횡단 그랜드 시장 협정(GMT)(1)에 대한 국민들의 저항이 거세지자 세계무역기구(WTO)의 지지부진한 이 거대 프로젝트(GMT)를 진행시키기 위해 전례 없이 많은 각국인사들이 모인 것이다. 이들의 목표는 당대에 가장 중요한 문건 중 하나인 ‘서비스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S)을 되살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바로 옆에 있는 WTO 건물을 놔두고 호주 대사관에서 모임을 가졌다.

잠시 과거로 돌아가보자. WTO는 1994년에 창설됐다. 3년 전에 소련이 붕괴되어, 두 진영의 냉전체제도 종식되었고, 유럽의 독재체제(스페인, 포르투갈, 그리스)는 이보다 15년 앞서 막을 내린 상태였다. 새로운 바람이 또한 유럽동부 국가들을 강타했다. 정치지도자들은 한결같이 경쟁을 가로막는 모든 장애물을 없애고 싶어 했다. 이러한 기세를 몰아, 이들 지도자들은 WTO에 전례 없는 권한을 부여했다. 이들이 도입한 ‘세계무역기구 설립을 위한 마라케쉬협정’은 각국이 “협정 법안에 따라, 협정문 부칙 제16조 4항에 명시되어 있는 의무와 함께 행정적인 절차와 규칙을 이행해야 된다”고 적시했다.

'공공서비스의 종식'획책하는 WTO

GATS 조항은 이 협정 부칙 중에 포함되어 있다. 이 조항은 “서비스 자유화 수준을 점진적으로 높이기 위해 주기적으로 열리는 지속적인 협상을 통해 모든 서비스 활동의 점진적인 자유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제19조 1항). 즉, 지역 및 국가의 특성을 점차 제거해서 서비스 활동을 국제 경쟁체제로 전면 개방하겠다는 의도이다. 이런 맥락 속에서, GATS는 ‘서비스 제공자들’의 지위가 공적이냐 사적이냐를 따지지 않고, 오직 이들의 이익만을 챙기고 있는 셈이다.

WTO는 기업서비스 공급, 통신(우편 및 시청각 포함), 건설 및 엔지니어링, 유통, 교육, 환경, 금융 및 보험, 보건 및 복지, 관광, 오락, 문화 및 스포츠, 교통 및 기타 서비스 등, 12개 서비스 분야를 선정했다. 또 WTO는 이 12개 분야를 세부적인 160개 영역으로 다시 나눴다. 촘촘한 빗살로 다 훑은 셈이다. GATS의 적용은 사람들이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 공공서비스(교육, 보건, 교통, 에너지 등)로 인식하는 서비스의 종식을 의미하는 셈이다. 서비스 활동의 자유화는 경쟁이라는 이름 아래 복지, 보건, 환경 그 어떤 기준도 이를 거스를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서비스 활동이 자유화가 되면 투자 수익성을 해치는 노동법, 지나치게 억압적인 공공보건법, 산업 오염물질 배출 등을 감시하지 못할 수도 있다. WTO는 서비스 활동을 자유화하기 위한 절차로 각국에 자유화할 서비스 분야의 목록과 계획하는 시장 개방의 수준을 제출하라고 권유한다. 한번 제출한 자유화 계획안은 취소할 수 없다. 후속 협상은 단지 원래 제시한 가이드라인을 낮추는 것만 다루게 될 것이다. 그래서 각국은 서비스 활동의 자유화를 계획한 다른 국가들에게 자국이 원하는 분야의 경쟁 범위를 귀띔해주며 서비스 수요를 조사하고 있다. 시장논리와 시장의 움직임에 따라, 공급과 수요의 대결이 시작된 것이다.

2001년, WTO는 카타르 도하에서 개최한 WTO 각료회의에서 ‘도하개발 아젠다’를 출범시켰다. WTO는 당시 서비스 분야의 빡빡한 토론 일정을 발표하며 각국에 2002년 말 이전까지 먼저 서비스 수요량을 제출하고, 이로부터 늦어도 1년 후엔 공급량을 제출하라고 지시했다.(2) 그러나 협상은 소강상태에 빠졌다.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터무니없는 요구는 개발도상국의 반대에 부딪쳤다. 브릭스(BRICS,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공)는 자신들의 입장을 고수하며 90개국이 넘는 국가들과 연합했다.

그렇긴 해도 WTO는 2005년 홍콩각료회의 때 GATS 협정에 따른 새로운 시장개방에 대한 이해관계를 같이했다.(3) 하지만 모든 것이 합의되지 않는 한 어떤 것도 합의할 수 없다는 ‘도하개발 아젠다’ 출범 당시 약속한 규칙에 따라 그 어떤 합의점도 도출해내지 못했다. 이러한 다자간 협상의 교착을 걱정한 홍콩 각료회의에 참석한 일부국가들은 양자(두 국가) 간 협상이나 복수 국가(지역 또는 국가 그룹들 간) 간 협상을 하기로 합의했다. 복수 국가 간 협상은 WTO의 뜻대로 ‘다자간 협상 결과’를 도출해 낼 수 있어, 추후 자신들의 결과를 전 세계에 도입시킬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세계무역기구 설립 협정 제2조 3항에는 양자 간 협상과 복수 국가 간 협상에 대한 확대 가능성이 명시되어 있다. 또한 민간항공기 무역과 공공 시장 그리고 유제품 부문과 쇠고기 부문에서 이 조항이 확대 적용되어 사용되고 있다.

2005년 WTO 회원국들이 보호무역조치를 동결시키자 재계는 실망감을 드러냈다. 미국서비스산업연합(CSI)과 유럽서비스포럼(ESF)은 “부의 창출자들의 기대에 부응하라”며 정부와 유럽위원회를 상대로 항의시위에 들어갔다. 이들은 글로벌서비스연합(GSC)을 출범시켰다. 호주, 바베이도스, 캐나다, 카리브해, 홍콩, 자메이카, 일본, 뉴질랜드, 세인트루시아, 대만, 트리니다드 토바고 등에 기반을 둔 기업들을 이에 합류했으며, 이들 회원국 중 적어도 6개국은 조세피난처이다. 런던시의 금융 서비스를 총괄하는 영국무역투자청(The City UK)도 합류했다.

2011년, WTO는 제네바에서 개최한 WTO 각료회의 때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졌음을 인정했다. 이후 곧바로 GSC는 50여 개국을 설득(4)해 WTO의 다자간 협상과 별개로 자신들이 추진하는 서비스무역협정(ACS) 프로젝트에 대한 이들의 지지를 얻어낸다. 2012년 2월 15일, 이들 50개국은 스스로를 “참 훌륭한 서비스 친구들”이라 명명하고 회담을 개최했다. 유럽연합(EU) 이사회는 단지 1년 후인 2013년 3월 18일에서야 비로소 (ACS 프로젝트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유럽위원회에 전달했다. 하지만 GMT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EU의 입장을 대변하는 이 문건은 공개되지 않았다.

2013년 7월, 유럽의회 의원들은 “협상을 개최한 참 훌륭한 서비스 친구들에게”(5) 매료된 채 이들을 환영했다. 제네바 주재 호주 대사관 내에서 개최된 협상을 바로 이들이 주관한 것이다. 이들의 협상 내용은 비밀을 유지했다. 미국이 “ACS 협정 발효일로 부터 5년 동안 또는 만약 어떠한 합의점도 찾지 못한 경우에는 협상 이후 5년 동안 협상 내용을 기밀에 부치자”고 요구했기 때문이다.(6)

ACS는 GATS의 이전의 목표와 방법을 답습했다. 이들의 목표는 모든 부문의 민영화를 가속화하고 공공기관이 그 어떤 형태로든 무역 및 민영화 활동에 다시 개입하지 못하게 막는 것이다. 이들의 방법은 모든 업종을 망라한 경제활동부문에서 뿐만 아니라 다양한 서비스 제공 방식에 수요와 공급의 방식을 도입시킨 것이다. 어쨌든, 이들이 목표와 방법은 법적 제약과 규제를 없애는 것이다.

ACS에 의해 부활된 GATS의 제16조 1항은 각 회원국의 정책에 대해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각 회원국은 다른 회원국의 서비스 업무 및 서비스 납품업자에게 편의를 제공해야 한다. 서비스 공급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조치를 자국의 서비스 업무 및 자국 납품업자들에게 제공하는 편의와 차별 없이 동등하게 대우해야 한다.” 이는 프랑스가 프랑스 공립교육기관에 해주고 있는 재정지원 수준과 동일한 수준의 재정지원을 프랑스에 진출하는 외국 사립대학이나 고등학교에 해줘야 한다는 의미이다. 예산상 이런 일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프랑스는 부득이하게 자국 대학과 고등학교에 해주고 있는 재정지원을 포기하는 수밖에 다른 여지가 없을 것이다. 또 ACS는 같은 조항에서 국가 교육과 같은 “공공 서비스”와 단독 납품, 심지어 지방과 군소도시의 수돗물 관리까지 독점을 금지한다.

국가의 교육지원 및 수돗물 관리까지 금지

GATS와 마찬가지로, ACS는 노동현장에서의 안전 및 위생 기준을 비롯한 환경 규제법과 소비자 보호법을 붕괴시키려 한다. ACS는 보편적인 서비스 제공 의무, 즉 국가가 생각할 때 모든 국민이 누려야 마땅하다고 보는 보건, 교육, 체신 등의 서비스를 붕괴시키려 한다.

ACS가 GATS에서 차용한 또 다른 두 조항은 한번 민영화하면 공공부문으로의 회귀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게 될 것이다. 이른바 래칫효과(ratchet effect, 역진방지 효과)를 도입할 생각인 것이다. 예컨대 한번 자유화(민영화)한 공기업은 그 수준을 유지를 하게 되어, 정부의 특혜를 누리는 공기업으로의 회귀가 금지되는 셈이다. 래칫효과는 서비스 활동을 “ACS협정에 가장 적합한 쪽으로 수정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 반대는 금한다는 뜻이다.”(7) 이러한 조항은 에너지 서비스 부문과 같은 새로운 서비스 부문의 출범을 막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많은 부문에서, ACS는 GATS의 조항을 차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이상의 야심을 내비치고 있다. 따라서 ACS는 전반적인 교육 시스템과 전부 혹은 일부 보건 및 문화 시스템을 국가 공공 서비스 영역에서 빼내겠다는 의견을 고수했다. 이를테면 ACS는 재검토가 필요한 부정적인 서비스 목록을 작성해 명시적으로 제외된 서비스 부문이 아니면 모든 서비스 부문에 자동적으로 적용되는 원칙을 다룬 법안 도입을 염두에 둔 것처럼 보인다.

위키리크스는 지난 6월 19일 ACS가 지난 4월 14일에 작성한 기밀문서를 폭로했다. 이 문건은 우체국과 보험회사가 ACS 측에 제공한 금융 서비스에 대한 협상 내용이 담겨 있다. 이 문서를 읽어보면, 2008년의 경제위기가 이들 부문에 대한 규제완화의 박차를 둔화시키지 못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이 문건에는 금융기관의 크기 제한, 은행 활동에 대한 규제, 펀드 송금 감독, 국가 독점, 조세 피난처에서의 금융 거래 공개, 투기자본의 국경 간 이동 등이 제거해야할 장애물로 기록되어 있다.

공공서비스의 국제기관을 표방하는, 150여 개국을 대표하는 이 노조 연맹(ACS)은 현재 진행 중인 프로세스를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ACS는 투자자의 권리를 제도화하고 대부분의 서비스 분야에서 국가의 모든 개입을 금지하는 법적인 규제조치에 기반을 둔 무역 및 투자 협정에 대한 새로운 우려를 바탕으로 출범했다.”(8)

유럽위원회는 WTO가 ACS에 제도적인 틀을 제공하고,(9) 제네바의 첫 비밀 회동 이후 이 틀을 확장하려 들 것이라 판단했다. 실제로 WTO는 다자간 무역협정이 자신들의 소관이기에 “협정을 수락한 WTO 회원국들은 이를 지킬 의무가 있음을 분명이 한다.”고 밝혔다. 반대로 ACS는 ‘서비스 무역 자유화 협정’에 동참한 WTO 회원국들에게 양자 간 또는 그 이상의 국가들 간 무역협정을 허락하고 있다.

GATS, 투자에 관한 다자간 협정(MAI), 위조 방지 무역 협정(ACTA), GMT, ACS 등과 같은 자유무역 확장 프로젝트들은 서로 합세해 투자자들의 ‘우선권’을 선포하기 위해 국민의 주권을 무너뜨리려 하고 있다. 다국적기업에서 영감을 얻어 가동시킨 이러한 변화는 예컨대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국가들과 민주적인 모든 법망을 벗어난 초국적 기관들(EU, WTO, 국제통화기금)에게 그들의 직무 영역으로부터 일탈하도록 하는 것이다.

 

글·라울 마크 장나르 Raoul Marc Jennar

로랑스 칼라파티드와 공저한 <세계의 상품화(L’AGCS), 국가가 다국적기업 앞에서 무릎 꿇을 때>의 저자

 

번역·조은섭chosub@hanmail.net

파리7대학 불문학 박사로 알리앙스 프랑세즈에서 강의 중. 주요 역서로 <착각>(2004) 등이 있다

 

(1) ‘세계를 재편하는 강대국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4년 6월호

(2) ‘도하 선언(La déclaration de DOH)’, WTO, 제네바, 2003년

(3) 이 협정의 세부사항은 www.jennar.fr 참고

(4) 호주, 캐나다, 칠레, 콜롬비아, 한국, 코스타리카, 미국, 홍콩, 아이슬란드, 이스라엘, 일본, 리히텐슈타인, 멕시코, 노르웨이, 뉴질랜드, 파키스탄, 파나마, 파라과이, 페루, 스위스, 대만, 터키, 유럽 연합(EU)의 28개 회원국

(5) 2013년 7월 4일, 찬성 526표 반대 11표로 채택한 B7-0314/2013 결의안

(6) ‘공공 서비스에 반대하는 ACS’, 국제 공공 서비스의 특별 보고서, 2014년 4월 28일, www.world-psi.org.

(7) 전게서

(8) 전게서

(9) <Trade in Services Agreement(TISA)>, http://ec.europa.e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