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해외 영토 과들루프의 반란

[특집/제국주의의 잔재들]

2009-05-05     파브리스 도리악 | 과들루프 주재 프리랜서


                                 주민들, 식민시절 차별 구조 거부하며 저항
                                 중앙정부-노조의 전통적 대결 양상도 보여

 
   해외 영토 주민들의 불만을 과소평가했던 프랑스 정부는 지난 1월 20부터 과들루프를 마비시키고 있는 총파업을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됐다. 현지 노동단체들의 연합결사체인 ‘이윤 남용과 착취에 대한 투쟁 모임’(LKP)은 해외령 노동자들을 차별하는 최저임금 수준이 단순히 현지 정부와 고용주에 맞서는 충돌의 차원을 넘어 모든 프랑스 해외령에 심각한 영향을 줄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원적인 차별 구조를 띠고 있는 과들루프 사회는 모든 게 너무나 평온해 보인다. 한쪽에선 공무원과 대기업 직원들이, 다른 한쪽에서는 노동자와 자영업체, 하도급 업체의 비정규직들과 단순 노무자들 그리고 최저생계비 수급자들이 있다. 전자는 정당한 보수를 받고, 후자는 힘겨운 삶을 부지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주민은 이런저런 사회복지 혜택, 즉 최저생계비 수당, 가족 수당 혹은 상공업 고용촉진협회가 주는 형편없는 임금의 임시직 혹은 실직(경제활동인구의 평균 24%) 사이에서 근근이 살고 있다. 30살 미만의 젊은 층 가운데 이런 임시직 노동자나 실직자의 수치는 45%에 달하고, 라크로와 오자빕 같은 일부 소외 지역은 이 수치가 70%를 육박한다. 그래서 젊은 고학력자들과 전문가들은 자국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집단으로 이주하고 있다.
 
부실한 사회복지 정책에 반기 
그리고 1월 20일 총파업이 터졌다. 야당과 정치단체를 포함해, ‘이윤 남용과 착취에 대한 투쟁 모임’(LKP)으로 규합된 49개 강성 노조단체들이 과들루프 국민들에게 전면적 파업을 호소했다. 파업의 동기는 고물가 등으로 인해 국민들의 생계난이 심각한데, 사회복지 정책은 부실하기 짝이 없다는 점이다. 노동단체들은 권력층의 비호를 받은 대기업들의 비행과 사기 행각을 낱낱이 고발했다.
과들루프 정부의 파업 대책은 파업 주체에 따라 이중적이다. 예컨대 2008년 12월 초에 운송회사 사주들은 연료 가격 인하를 요구하며 파업을 했다. 사주들은 효과적인 협상을 위해 도로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도지사와 지역행정 관할 수장들을 신속하게 협상 테이블에 불러냈다. 양쪽은 닷새 만에 무연 휘발유 1ℓ당 20센트의 가격 인하를 뼈대로 한 양해각서에 서명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노동자들의 파업은 여러 번 이어졌지만, 정부 책임자를 비롯한 지역행정 관할 담당자는  누구도 노동단체의 대표를 만나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의 파업은 과들루프 주민들과 함께한 날로 기억될 것이다.
1월 20일부터 노동단체 수장들은 142개 부문에서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취합한 협상안을 마련했다. 이 협상안은 경제와 사회 생활의 모든 부문, 발전, 고용, 교육, 보건, 환경, 문화, 토지정비 등을 아우르고 있다. 비싼 물가 이외에도 차별, 노동법규 위반 그리고 식민지 시대의 잔재인 사회적 불합리까지도 적시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고용주들은 이들의 요구를 애써 무시하면서 모멸적인 평가를 쏟아내고 있다. 그들은 “비현실적이고 우스꽝스러운 노조의 요구는 일반 국민들에게서 외면을 당할 것”이라고 비난한다. 하지만 집회와 시위가 잦아지면서, 시위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눈덩이처럼 늘었다. 노동단체는 길거리에서 그 정당성을 쟁취했다. 수만 명의 시위대는 정부 고위층, 사주, 정치지도자들에게 압력을 행사했고, 그들을 협상 테이블에 앉혔다. 그러나 고용주 단체가 노동단체가 제시한 최저임금의 월 200유로 인상안을 거절하면서 협상은 결렬됐다. 사실 최저임금 인상 요구는 공무원에 비해 임금이 적은 일반 노동자에게 보상을 해주자는 데서 비롯됐다. 프랑스의 해외 영토에 근무하는 공무원들은 본국의 동료들보다 급료를 40% 더 받는다. 그것은 1946년 옛 식민지 영토였던 과들루프·가이아나·마르티니크·레위니옹 등 4개국이 투표를 통해 해외 영토로 편입됐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이 ‘고액 프리미엄’이 해외파견 근무자들에게 한정됐다. 하지만 투쟁을 통해, 현지에서 채용된 공무원들도 똑같은 대우를 받고 있다. 본국 예산처가 해외 근무자들에 대한 임금 40% 추가 지급을 더는 유지하지 않을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아직 확인된 것은 없다.

  수치 비교를 좋아하는 엘리 도모타 LKP 지도자는 이렇게 주장한다. “포앵타피트르(과들루프령의 한 도시)에서 주민 45만 명 중 5만 명이 시위를 했다. 이는 파리의 거리에서 시위하는 600만 명의 시위를 대와 맞먹는 수치다.” 여기에는 미디어의 영향도 있었다. 지역 텔레비전들이 협상 과정을 모두 중계했다. 나흘 동안 도지사가 대화를 중단할 때까지 주민들은 텔레비전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따라서 주민들은 평소 자신들이 배제됐던 협상 세부 항목들(물가·급여·공설시장·교육·보건·농업발전 등)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직접 확인한 증인들이 되다시피 했다.

  지역 고용주들이나 과들루프 정부는 모두 이러한 격랑이 닥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우선, 고용주들은 최저임금 200유로 인상안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프랑스의 프랑수아 띠용 총리는 과들루프 고용주의 처지에서 현지인 노동자들의 급여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프랑스의 해외 영토 담당 국무장관인 이브 제고는 현지에 모습을 드러내 사주들에게 걸림돌이 되고 있는 최저임금 인상 부문에 대한 금융지원을 약속하는 사전 합의를 한 뒤, 쉬쉬하며 2월 9일 현지를 떠났다. 그러나 2월 17일 노동운동가 자크 비노의 죽음을 계기로 상황은 걷잡을 수 없게 됐다.
수년 전부터 독점기업인 선박회사(CMA CGM)(1)와 옛 대지주의 후손들인 베케 일족이 운영하는 무역단체들이 불법을 자행하고 과도한 마진을 요구하고 있지만, 이에 대해 지역 정치인들은 하나같이 조사에 나서길 꺼리는 실정이다. 그래서 베케의 여덟 가문이 수출입과  슈퍼마켓 체인을 장악하고 있다.(2) 2007년부터 2008년까지 우유는 48%, 파스타는 87%, 버터는 59% 값이 오르는 등 생필품 가격이 폭등했다. 요컨대, 이는 국가 통제가 부실함을 여실히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다. 마찬가지로 농장주가 바나나 생산량을 더 늘리려고 사용한 환경오염 물질인 ‘클로르데인’ 문제(3)에 대해서도 환경운동 단체들과 농민 노조들의 비난이 고조된 것과는 달리, 정치권은 무기력하기만 하다.

  또한 생산적인 투자 측면에서 볼 때, 해외령에 아무런 경제적 혜택을 주지 못하는 부자들의 세금면제법인 ‘지라댕법’(4)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현지 정부는 눈감고 있다. 이 법의 면세 혜택으로 인해 군도 전체가 프랑스 본토의 고액 납세자들을 위한 별장으로 탈바꿈했고, 건설부지 가격만 폭등했다. 이와 동시에 서민주택 공급이 부족하고, 금융 스캔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세계경제 위기의 파장에도 아랑곳 않고 정치인들은 어떤 구체적인 극빈층 대책도 내놓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수많은 과들루프 주민들이 노동단체들을 지지하며 시위에 참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더 크게 보면, 이곳 노동세력이 본국 사르코지-피용 정부의 사회정책에 불만을 터트리고 있는 것이다. 노동단체의 연합체인 LKP의 대변인 엘리 도모타는 과들루프 문제에 대한 프랑스 정부의 책임 회피를 강하게 비난하며 “큰불이 났는데도 사람들은 이곳 마구간에는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라고 프랑스의 심각한 불감증을 꼬집었다.
 
광범위한 자치는 찬성, 독립은 반대 
LKP를 구성하는 49개 단체의 이질성으로 볼 때, 일각에서는 ‘이 단체가 일관된 정치 노선을 걸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품는다. 하지만 물가 상승 반대 투쟁과 빈민 구제 강화 같은 구호가 이들을 하나로 묶는 효과를 내고 있다. 그러나 대중 동원이 오로지 물질적 성과물로만 이어질 경우 후유증도 적지 않을 것이다.
사실, LKP가 주장하는 협상안에 담긴 요구사항은 단순한 경제 문제 이상의 가치를 담고 있다. 그것은 깊은 사회 변화의 욕망을 담고 있다. 예를 들어 현지 주민들의 삶을 더 힘들게 하는 나선형 소비 구조, 이를테면 현지에서 생산할 수 있는 제품을 굳이 프랑스 본토에서 수입하는 행위를 차단하고,(5) 고용 구조에서 상부는 백인, 하부는 흑인으로 나뉘는 식민지 지배식의 위계질서에 종지부를 찍고, 유럽에서 온 부동산 개발업자들을 무력화하고, 구시대적 고용주 독재를 금하며, 나아가 이곳 현지의 ‘크레올’(프랑스인과 흑인 혼혈) 전통 문화유산을 복원하겠다는 욕망들이다.
마지막으로 LKP는 카리브해의 환경(6)과 연계해 과들루프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도모하려고 현지 주민들의 주체적인 참여를 요구하고 있다. 프랑스 정부가 직접 관할하는 고용·교육·보건·지역협력·토지정비 등 모든 관리를 현지로 넘겨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곳 섬의 정치적 변화 시도는 지난 2003년 12월 7일 실시한 국민투표에서 주민의 72%가 반대표를 던짐으로써 무산됐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 현재의 갈등은 적어도 프랑스 해외 영토의 지위에 변화가 필요함을 확인해주고 있다. 마르티니크, 가이아나, 레위니옹 등도 해외령 지위의 재조정을 요구하고 있다.
 

 그럼에도 LKP의 강성 지지자들은 공식적으로 과들루프의 독립을 한 번도 거론한 적이 없다. 물론, 독립파 지지자들이 이 단체에 속해 있긴 하다. 카리스마 넘치는 이 조직의 리더인 엘리 도모타가 공개적으로 독립 투쟁을 주창하는 ‘과들루프 총노동자연맹’(UGTO)의 사무총장직을 맡고 있다. 하지만 주민들이 독립을 선택하는 데 소극적임을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에 이를 위한 방법과 전략을 어떻게 짤 것인지가 과제다.

<각주>
(1)독점기업인 선박회사(CMA CGM)는 이곳과 프랑스 본토를 오가는 컨테이너 수송 요금을 멋대로 인상하고 있다.
(2)베르나르 아요트 그룹은 프랑스의 재계 순위 136위에 랭크돼 있다.
(3)20년 전부터 일부 바나나 재배자들이 수확량을 늘리려고 이를 사용하면서 토양이 광범위하게 오염됐다.
(4)부유층인 고액 납세자들은 6년 상환 조건으로 거액을 대출받아 해외령의 산업체와 주택에 투기하곤 했다.
(5)‘나선형 소비 구조’를 문제 삼은 것은 현지 생산이 가능한 물품(특히 일부 식료품)을 본토에서 구입하는 것을 겨냥한 것이다.
(6) 과들루프 녹색당 사이트(www.harrydurimel.fr) 참조.

 

 

과들루프는 어떤 곳
 

  카리브해 소앤틸리스제도의 리워드제도에 속하는 프랑스의 해외 영토. 면적 1780㎢, 인구 44만 명(2003). 행정수도는 바스테르다. 1493년 콜럼버스에 의해 발견된 후, 17세기 초까지 스페인령이었다. 1635년 프랑스인이 점령한 이래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쟁탈전이 벌어졌는데, 1815년 파리조약으로 프랑스의 식민지가 됐으며, 1946년 해외주로 승격됐다. 주민은 대부분 혼혈인으로서 통계상 유럽계로 취급되는 사람은 주로 크레올이며, 외국계로는 흑인ㆍ인도인ㆍ중국인 등이 포함된다. 프랑스어가 공용어이며 상업용어이기도 하다. 프랑스의 해외주가 된 후로 본국에서 지사가 파견되며, 본국의 하원에 4명, 상원에 2명의 대표를 보내고 있다. 지사는 본국의 대표로서, 의원 36명으로 구성되는 종합회의를 통괄한다.

글/파브리스 도리악 Fabrice Doriac

번역/조은섭 chosub@ilemond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