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르드인의 예루살렘, 키르쿠크

2014-08-26     알란 카발

 

이라크 사태의 첫 수혜자는 쿠르드인일 것이다. 날로 격화되는 분쟁을 틈타 자신들의 역사적 수도인 키르쿠크를 점령하는 데에 성공했다. 그러나 통일 국가 설립이라는 오랜 염원의 실현은 요원해 보이기만 할 뿐이다. 쿠르드족이 이 지역을 동요시키고 있는 소용돌이에서 벗어나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웃 국가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라크 쿠르드인들도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다.

쿠르디스탄 지방 정부의 손으로 넘어간 지 며칠이 채 안된 키르쿠크의 수니파 지역인 하위자(Hawija)에는 ‘이라크·레반트 이슬람국가(ISIL)’의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이곳 쿠르디스탄으로 가는 길, 쿠르드군 수송대 지프차들이 갑자기 방향을 튼다. 선두 수송차량의 운전병이 마지막 쿠르드 초소를 보지 못하고 1km도 채 안 되는 곳에 있는 적군 진지로 향하다가 뒤늦게 실수를 알아차리고 급하게 방향을 꺾은 것이다.

운전병이 실수를 한 것은 바로 앞의 국경이 아주 최근에 생긴 탓일 것이다. 예전 이라크 군부대가 사용하던 국경 옆 콘크리트 건물은 그 사이 주인이 바뀌었다. 뜨거운 햇볕과 먼지에 색이 많이 바라긴 했지만 이라크 연방을 상징하는 색은 여전히 담벼락에 남아있다. 그러나 페시메르가(Peshmergas)(1)는 이미 이곳에 쿠르디스탄 깃발을 꽂아 놓았다. 아까 지나온 길은 몇 백 km 앞에서 다리 밑을 지나간다. 이 다리는 결코 넘어서는 안 되는 지점을 의미하며, 건너에는 ISIL군이 주둔하고 있다. 이틀간 단 한 번의 전투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쓸데없이 동요를 일으킬 이유는 전혀 없다. 이곳 사람들은 가볍게 무장만 한 채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오늘도 전투는 없을 것이다.

이라크군 해체에 이은 쿠르디스탄의 영토회복

이 지역에 주둔하고 있는 쿠르드족 군대를 지휘하고 있는 셰이코 파티 장군은 “우리는 내전에 뛰어들려고 이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쿠르드의 영토를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있는 것이다”라고 단언한다. 걸프 전쟁(1990~91) 후 이라크 정부의 손에서 벗어나 헌법적으로 독립성을 인정받은 쿠르디스탄은 시아파가 장악했던 중앙 정부의 붕괴와 함께 영토 회복이라는 오랜 열망이 실현되는 역사적 순간을 눈앞에 두고 있는 듯하다.

ISIL의 뒤를 바짝 쫓아 전진하는 이슬람주의자, 국가주의자, 바스당 연합군이 모술 지역과 수니파 인구밀집 지역을 공격하면서 이 지역 이라크군들은 해체되어 뿔뿔이 흩어졌다. 이라크 군이 무기며 기지를 그대로 두고 도망치면서 이 지역은 무방비 상태가 되었고 쿠르드인이 즉각 이 지역을 자신들의 ‘분쟁 영토’에 편입시켰다. 이미 2003년부터 쿠르드인 주요 정당인 쿠르디스탄 민주당(PDK)과 쿠르디스탄 애국동맹(UPK)은 이 지역을 놓고 중앙정부에 맞서 왔다.

한편, 실제로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곳은 ISIL이 장악한 도시들이다. 이 도시에서 ISIL은 이라크 시아파 현 정권의 최고 권력자 아야톨라 알리 알-시스타니의 선동에 자발적으로 뛰어든 의용병과 민병대에 맞서고 있다. 이 종파 전쟁의 한편에서 쿠르드인들은 자신들의 영역을 공고히 하고 있는 것이다. 이란-이라크 국경과 근접한 카나킨 시(市)에서 시리아 내 쿠르드 지역까지 1,050km에 이르는 새로운 국경까지 생겨났다. 시리아 내 쿠르드 지역은 2012년부터 쿠르디스탄 노동당(PKK)의 시리아 지부인 민주연합당(PYD)의 관할이 되었고 현재 ISIL의 공격을 받고 있는 지역이다.

이라크를 북서부와 남동부로 나누고 있는 대각선을 따라 쿠르디스탄과 분쟁 지역을 구분하는 일련의 잠복초소들이 세워지고 있다. 소규모 교전이 국지적으로 일어나고 있긴 하지만 전면전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현 군부대의 소식에 밝은 한 바트당 유력자는 “쿠르드인과 ISIL 공동의 적인 시아파 중앙정부는 이제 북쪽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양쪽이 좋은 이웃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서로의 이해관계에도 도움이 된다”고 설명한다.

이라크 전쟁이 과도하게 종교전쟁으로 비화되면서 상황은 더욱 극적으로 변하고 있다. ISIL 동맹군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국가주의자들이 쿠르드족과의 일종의 동맹을 맺을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한 반란군 측근은 “대립이 있을 수도 있고 이로 인해 사상자가 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수니파 단체들이 통합되지 못하고 각 지도자들이 단체를 충분히, 적절하게 관리·통제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최고위급에서는 오히려 피해를 줄이려고 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역설적인 상황이 이라크 쿠르드 단체의 염원, 즉 쿠르드 민족주의자들이 ‘쿠르드의 예루살렘’이라고 부르는 키르쿠크와 그 주변부의 통제권 확보를 가능케 한 것이다. 키르쿠크에는 투르크메니스탄과 아랍 소수민족의 상당수가 거주하고 있다. 현재 이들 소수민족의 운명은 인구 조사와 독립 쿠르디스탄 편입을 위한 국민투표를 규정하고 있는 2005년 이라크 헌법 140조에 달려 있다(이 헌법은 단 한 번도 시행된 적이 없다).

키르쿠크 내 이라크군의 철수는 쿠르드족의 지역 내 패권을 더욱 공고히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2003년 미국 침공부터 도의회를 장악한 쿠르드는 이 지역의 군 설비를 가로채 왔다. 이제는 이 지역을 독점하고 중앙정부가 다시 차지하려 한다 해도 결코 내주지 않을 것이라는 의지를 천명하고 있다.

결과로, 바그다드와 에르빌(쿠르디스탄 지방 정부의 수도)의 권력 분립을 목표로 했던 법적, 제도적 의제는 사라졌다. 이로써 쿠르디스탄은 2008년 무력으로 일부를 장악했던 거대한 유전에 대한 전권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이라크군 철수 며칠 후, 하쉬티 하우라미 쿠르디스탄 천연자원부 장관은, 공식적으로는 연방정부의 통제 하에, 키르쿠크 지역 유전에서 원유를 생산할 수 있는 기반시설을 건설하고 이렇게 생산된 원유를 지방정부 영토에서 생산되는 원유와 혼합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렇게 생산된 원유는 터키를 통해 독자적으로 국제시장에 수출한다. 2014년 6월 2일 이라크 쿠르디스탄 원유가 처음으로 배송되었다. 이 원유는 터키 세이한(Ceyhan) 항구에서 선적되어 이스라엘 아쉬켈론(Ashkelon)항에 도착했다. 이렇게 원유로 힘의 우위를 차지한 쿠르드족은 여전히 국제사회로부터 이라크 영토에 대한 주권을 인정받고 있는 이라크 정부로부터 유리한 합의를 받아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합의체 구성에 실패한 이라크 내 쿠르드인들

쿠르드 지방정부는 네체르반 바르자니 총리를 통해 모술 주위에 수니파 아랍 지역을 형성하는 데에 찬성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쿠르디스탄이 독립성을 강화하는 것을 보고 이라크를 둘러싼 일종의 게임에서 쿠르디스탄이 빠질 것이라고 추론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게임에는 다양한 정치적 역학 관계가 형성되어 있고 그 가운데 이라크는 (이란이 이라크의 시아파 정치계에 미치는 영향으로) 여전히 터키, 이란과 동일한 선상에서 주요 축을 이루고 있다. 게다가 쿠르드 엘리트층은 국경이 뒤죽박죽 되고, 이라크 게임에 개입하는 플레이어들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상황에서도 이라크 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어야 이득을 얻을 수 있다.

한편, 이라크 쿠르드인들은 서로 간에 합의된 하나의 아젠다 하에 일괄적으로 행동하는 단일체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PDK와 UPK는 각자의 영토와 군대를 보유한 정당정부로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고 때로는 대립적인 동맹관계를 맺기도 한다. 예를 들어, 석유 분야 주도권을 쥐고 있는 PDK는 에너지 분야에 대한 야망을 드러내는 터키 정부의 외교적 입장에 동조하고 있는 반면, 심각한 내부 분열을 겪은 UPK는 이란, PKK와 긴밀한 관계유지하고 있다.(PKK는 PDK가 쿠르디스탄, 특히 시리아 쿠르디스탄에 행사하는 영향력에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두 정당의 지도자들이 정당 간 대립을 최소화하려고 전력을 다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내 혼동과 혼란은 대립을 더욱 키우기만 할 뿐이다. 이라크 쿠르디스탄 남부에 위치한 지방정부 소속의 페시메르가(Peshmergas) 사무국장 자바르 야와르에 따르면, UPK는 이란-이라크 국경에서 10여 km 떨어진 지역에 아직 주둔하고 있는 이라크군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서로 협력하고 있다. 반면 PDK는 수니파 세력권 구성원들과 협력 관계를 구축하는 데에 주력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키르쿠크는 이라크와 쿠르디스탄 국경에 위치한 동시에 PDK와 영향권과 UPK의 영향권이 맞닿아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구 정권 몰락 이후 줄곧 UPK의 지배 하에 있던 키르쿠크를 두고 이라크 군대 철수 후 다시 두 정당이 경쟁을 하게 된 것이다.

이해관계에 따라 이합집산하는 쿠르디스탄 정당들

이러한 분열 조짐은 이라크 내 옛 분쟁지역에서 민족의 다양성으로 인해 더욱 격화되고 있다. 쿠르드인, 투르크메니스탄인, 아랍인 간 민족 분열에 종파 간 대립도 한몫 더하고 있다. 수니파와 시아파 분리선이 이 세 공동체를 관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PDK와 UPK의 (공동의 혹은 각각의) 통제 틈 사이로 이렇게 수많은 ‘존재 방식’에서 형성된 수많은 민병대들이 기회를 노리고 있다. 이 민병대들은 자신들의 계열관계와 이해관계에 따라 예전 연방 안보군 병사들을 결집하고 있다. 각각의 무장 단체들이 가까이에 있는 적에 대항하기 위해 멀리에서 동맹을 찾고 있는 것이다.

즉 새로 생긴 쿠르디스탄 국경은 결코 명확한 선이 아니다. 이 국경은 최초에 무력으로 생성된 다양한 국가 혹은 단체가 서로 협력하고, 무시하고, 경쟁하고 대립하는, 수많은 통제 초소와 관할 구역, 고립지로 형성된 혼잡하고 황폐화된 구역이다. 키르쿠크 중심에서 10km 떨어진 타자(Taza) 지역은 잦은 전쟁이 일상이 되어버린 시아파 투르크메니스탄인들이 사는 지역으로 쿠르디스탄 국경의 현실의 단면을 보여준다. 역시 시아파 투르크메니스탄인들이 살고 있는 이웃 마을 베치르(Bechir)는 얼마 전 1986년에 사담 후세인 정권이 정착시키고 2003년 원주민들에 의해 쫓겨났던 수니파 부족에 점령당했다. ISIL 덕분에 이들은 이웃 마을의 재산과 땅의 소유권을 되찾을 수 있었다. 조용한 타자의 길에서 이슬람 사원으로 향하고 있는 젊은이들을 마주칠 수 있다. 모스크 사원에서는 군복을 입고 이슬람 터번을 쓴 아야톨라 알-시스타니의 지역 대표가 베치르를 다시 정복하기 위해 순교해야 한다고 주민들을 선동하고 있다.

사원 안마당에는 이란으로 추방되었다가 혁명 수호자가 되어 돌아온 시아파 정당 다와(Dawa)의 당원들이 보인다. 이들은 6달 전부터 중앙정부가 주둔시킨 시아파 민병대와 함께 전투를 지휘하고 있는 바드르(Abdr) 민병대 지휘관이 주재하는 회의에 합류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몇 km 떨어진 곳에는 소련 전차와 UPK 페시메르가가 2003년 사담 후세인 병영에서 수거한 몇 대의 장갑차 그리고 100여 명의 쿠르드 군사들이 타자와 수니파 진지를 가르는 운하 근처에 자리 잡고 있다. 군사들은 운하 건너편에 닿아 있는 다리를 통제하고 있다. 지나가던 PKK 대표단이 이곳에 현재 터키에 수감되어 있는 정당대표 압둘라 오칼란의 초상이 새겨진 깃발을 꽂아 놓았다.

10m 넓이의 이 운하에서 조금 더 떨어진 곳에는 유엔 난민 관리기구 천막에서 알리(Ali)(2)의 영광을 드러내는 깃발 아래에 무기를 든 아이들이 뜨거운 햇볕을 피하고 있다. 2003년 당시 10살밖에 안 되었던 한 청년은 지금 개조한 카라슈니코프 자동소총을 메고 있다. 전투복 차림에 모조 올림피크 리옹 유니폼을 입은 이 청년은 아야톨라 알-시스타니 부대의 전투원 소집에 응한 한 탈영병과 함께 사진을 찍기 위해 포즈를 취했다. 저 멀리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한 사람에게 총이 발사되었다.

 

글·알란 카발 Alan aval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특파원

번역·김수영 ksy_french@naver.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1)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죽음 앞으로 나아가는 자들’이라는 뜻. 쿠르디스탄 군대 부대원의 이름으로 수년간 이라크 중앙정부에 맞서 투쟁해 온 게릴라에게서 물려받은 이름이다.

(2) 모하메드의 사위로 시아파의 숭배를 받는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