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베스의 '볼리바리안 혁명'은 이제 끝났는가?

2014-08-27     로맹 밍구스/줄리앙 르보티에

 우고 차베스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사망 이후 1년 반이 지난 지금, 베네수엘라 정부는 갈 길을 망설이고 있다. 급진파와 개혁파 간의 갈등이 현 정권을 위협하는 결과를 낳게 될까?

올해 초 베네수엘라 정부에게 주어진 우선 과제는 정부의 단결력을 드러내 야권에 맞서고, 미국의 지지를 등에 업은 불안정화 시도에 맞서는 것뿐이었다.(1) 그러나 몇 주 전부터 베네수엘라 정권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차베스 정부 당시 고위직 인물들이 니콜라스 마두로 현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향해 날카로운 비판을 담은 공개서한을 발표하고 있어 정계가 들썩이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는 차베스주의 운동이 공적 논의의 대상이 된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차베스주의의 역사는 단절과 분리, 재구성의 연속이었다. 2002년 사회주의운동당(MAS), 2010년에는 만인을 위한 조국당(PPT)이 분리되었고, 2005년에는 윌리엄 오헤다 당 후보가 돌연 사퇴를 발표하기도 했다. 일종의 차베스주의적 특징이 되어버린 이러한 분리와 단절은 늘 떠났던 쪽이 돌아와 정권에 재연합하면서 마무리되곤 했다. 그런데 이제 상황이 바뀌었다. 전략적 동맹 여부를 결정해줄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이 지난 2013년 3월 세상을 떠나고 만 것이다,

모든 것은 지난 6월 18일, 호르헤 지오르다니 재무장관이 마두로 대통령에게 보낸 공개서한 한 통에서 시작됐다.(2) 서한이 발표되고 그 이튿날, 마두로 대통령은 지오르다니 장관을 경질할 의사를 표했다. 1999년 차베스 정부 이래 거의 줄곧 장관직을 맡아오며 볼리바리안 경제의 모든 재무 기획을 맡아온 지오르다니 장관은 마두로 대통령에게 “지난 역사를 돌아보며 책임을 져야 한다”고 비난했다. 그는 대통령이 “경제 메커니즘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리더십을 가지고 추진하기에 무능력”한 인물이고 “일관성이 없다”고 평가했다. 집권당인 베네수엘라 통합사회주의당(PSUV) 소속 엑토르 나바로 과학기술부 장관은 지오르다니 장관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다가 결국 당내 징계위원회에 회부되기도 했다.

경제장관이 대통령의 정책을 대놓고 공격

지오르다니 장관은 또한 “프랑스 조언가들의 개입”을 비난했다. 이대로는 최근 점점 늘어나고 있었던 그가 추진하는 경제 국영화 정책이 방해를 받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과거 베네수엘라 정권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던 독일 지식인 하인츠 디트리히는 베네수엘라가 국제통화기금(IMF)에 도움을 청할 수 없는 정치적 상황에 놓여 있으므로 프랑스의 은행가 마튜 피가스에 도움을 청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라자드 뱅크 대표이자 르몽드 그룹 공동대표이며, 에콰도르와 아르헨티나 정부에 국가부채 재구성과 관련해 고문 역할을 역임한 피가스가 “자본주의·부패·무능력이라는 빙산과 충돌하기 시작한 볼리바리안 타이타닉을 구조”하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3) 덕분에 2014년 6월 13일, 베네수엘라 에너지석유부의 라파엘 라미레스 부장관은 런던의 클라리지스 호텔에서 해외 투자자들 50여 명을 만나 베네수엘라 경제 상황에 대해 해명하고 그들을 안심시키는 자리를 가졌다.(4)

지난 6월 초, 또 한 번 파문이 일어났다. 이번에는 프랑스 국립행정학교(ENA) 출신이면서 마두로 대통령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테미르 포라스 외교부 차관이 쓴 글이었다. 2013년 대선 당시 ‘차베스주의 후보’인 마두로 진영 책임자 역할을 맡았던 그는 현재의 통화정책이 “중앙은행보다는 카지노를 떠올리게 하는 기능을 가진 정책”이라면서, “우리가 겪고 있는 이 복잡한 상황 속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미덕”은 바로 “실용주의”라고 촉구했다.

‘급진주의’ 좌파는 숨이 막혀오기 시작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 메릴린치는 보고서를 통해 이번 지오르다니 장관 경질 건이 “급진 마르크스주의 진영의 세력이 약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신호”라고 분석했다.(5) 이에 근거해 완전한 볼리바리안 혁명을 추구하는 급진주의 진영은 이러한 상황이 “사회민주주의”를 통한 “차베스 죽이기”라고 분석했다.(6) 차베스 전 대통령의 사망 이후 1년 반이 더 지난 현재도 경제 문제들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있고,(7) 정치적 갈등은 더욱 심화되어 나라 전체를 관통하는 위기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국내외에서 쏟아지는 기사의 홍수 속에서도, 오래전부터 실용주의가 지배해온 베네수엘라로서는 이러한 갈등이 특별히 놀랄 만한 일이 아니었다. 이러한 현상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차베스주의는 단 한 번도 지지자들을 하나의 이념으로 몰아가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로 1990년대 초반부터 차베스라는 신적 인물을 중심으로 다양한 정치적 입장과 사조를 한데 모아왔다. 이 모두가 공동의 기반을 가질 수 있도록 강력한 주권 국가의 선언, 불평등 해소를 위한 긴급한 조치 등 여러 우선과제들을 제시했다. 물론 이론과 실제 수단 간의 모순(때로는 아주 깊은 모순)이 있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전략가이기도 했던 차베스 전 대통령은 다양한 주체를 연합해 하나의 정치적 노선을 추진하는 데 성공했다.

다양한 정치적 입장을 통합한 차베스 같은 신적 인물 부재 

또한 볼리바리안 혁명은 해외 자본의 유입만을 기대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과거식 경제 모델을 유지했다. 특히 정부와 해외기업 간 연합으로 구성된 기업들이 개발에 나선 석유 분야에 의존하곤 했다. 세제 정책이나 생산 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 없이도 2000년대에는 빈곤율이 크게 감소했고, 불평등도 완화되었다. 소비가 크게 상승하면서 수입 활동이 활성화되었고(물론 반대로 해외 자본은 약화됐다), 뿐만 아니라 ‘국영화’에 대한 언론의 비판이 이어지고 있지만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58~62%가 민간 분야에 해당되는 등 민간 점유율 역시 여전히 유지됐다. 결국 장기적인 사회 변화 계획과 현실정책(realpolitik)이 늘 양립 가능한 것은 아닐지라도, ‘21세기 사회주의의 장’인 베네수엘라가 현실정책으로부터 등을 돌린 적은 없는 셈이다.

한편, 실제적 권력 이론으로서의 차베스주의의 특징으로 끊임없이 동맹이 결렬하고 또 타결되고 있다는 점이 있다. 이런 조건에서 다양한 이데올로기 사이에 경계선을 긋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념을 넘어서는 동맹이 나타나기도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군부에 가까운 ‘우파’ 세력의 대표적 인물로 손꼽히는 디오스다도 카벨로 국회의장과, 급진 좌파에 속하는 여러 공동체들 사이가 멀지 않다는 점을 예로 들 수 있다.

최근 정치권에서 대두되고 있는 이러한 갈등들은 주로 정부의 실무나 국가 운영에 관한 대립에서 시작된 것이다. 여느 곳과 마찬가지로 베네수엘라에서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표현을 사용해 정치적 갈등을 보다 전략적으로 섬세하게 포장하고 있다. 이를테면 ‘좌-우 대립’, ‘실용주의-급진주의 대립’ 등의 표현인데, 이런 말들은 권력 싸움을 고결한 정쟁(政爭)으로 변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현 시기가 차베스의 부재로 인해 언제 무너질지 모르던 균형이 결국 깨져버린 상황으로 규정되곤 하지만, 과거 PSUV당 내에는 일종의 신성한 연합이 형성되어 있었다. 지오르다니 장관에 쏟아지는 비판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 그의 발언이 차베스주의의 ‘이념적 단일화’보다 ‘정치적 연합’을 위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포스트-차베스 시대의 재구성 놓고 내부충돌

볼리바리안 혁명의 주창자인 차베스 전 대통령이 사망한 이래, 차베스주의의 내부적 충돌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차베스 대통령이 국가와 정책 과정들을 구현했지만, 당연했던 것들이 이제 더 이상 그렇지 않게 된 것이다. 상황이 불안정해짐에 따라 한편으로는 사회 모델을 둘러싼 행정부, 사법기관 등 국가 제도기관의 안정화가, 다른 한편으로는 PSUV당의 역할을 분명히 하는 것이 더욱 강력하게 요구되고 있다. PSUV당이 이데올로기의 위력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차베스주의의 미래는 결국 끝을 맞게 될 것이다. 불안정한 정치적 상황은 사회적 변화 계획의 발목을 잡기 마련이다. 사회적 혼돈은 불신이 창궐하고 이념적 선택에 일관성을 부여하는 제도적 장치들이 취약해지는 바로 그 순간만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베네수엘라가 지금까지 쌓아온 사회적 강점들을 잃지 않으려면 포스트-차베스 시대의 재구성이야말로 반드시 해결해야 할 가장 큰 과제일 것이다. 모든 예언자들이 볼리바리안 혁명의 끝을 선언할지라도, 혁명의 새로운 국면들을 또 하나의 끊임없는 변화로 여길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글·로맹 미구스 Romain Migus

언론인

줄리앙 르보티에 Julien Rebotier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원(CNRS) 소속 연구원

번역·김보희 sltkimbh@gmail.com

고려대 불문과 졸.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졸

 

(1) 알렉산더 메인, ‘쿠데타 유혹에 휩싸인 베네수엘라 극우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4년 8월호

(2) 서한 전문(스페인어 원문)은 www.rebelion.org에서 열람할 수 있다.

(3) Heinz Dieterich, ‘La caida de Giordani y el futuro de Venezuela’, 2014년 6월 24일, www.aporrea.org(스페인어)

(4) Blanca Vera Azaf, ‘Ramirez : Habra convergencia en los tipos de cambio’, <엘 유니베르살>, 카라카스, 2014년 6월 14일자(스페인어)

(5) Francisco Rodriguez, ‘Venezuela in focus. The glass is half full’, 뱅크오브아메리카 메릴린치, 뉴욕, 2014년 6월 12일

(6) Claudio Della Croce, ‘Bank of America +conexion francesa ¿apuntalan el fin del chavismo?’, 2014년 6월 28일, www.aporrea.org(스페인어)

(7) 그레고리 월퍼트, ‘석유는 베네수엘라 경제에 약이 될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3년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