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소설이 영속성을 띠는 이유

2014-08-27     에블린 피에예

종이는, 캔버스 위에 겹쳐진 표피를 긁어내면서 사람들이 발견하게 되는 ‘화가의 뉘우침’ 같은, 수 세기에 걸쳐 번성한 고전예술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종이 위에서 꽃을 피웠던 소위 ‘보잘 것 없는’ 장르들은 이들의 ‘합법적’ 이웃들과 끊임없이 대화하면서 형성되었고, 때로는 반목하면서 그리고 상호 영감을 주면서 만들어졌다. 탐정소설과 공상과학소설은 규범에 어긋난, 야심적인, 때로는 전복적인 작품들을 생산해 냈다. 이렇듯 대중문학은 인간소외적이거나 해방적이거나,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능력과 즉각적 유혹을 통해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대중’에 대해서 말하는 현대 작가들은 거의 없다. 하층의 사람들을 그려내어 사회를 깜짝 놀라게 했던 <파리의 미스터리>와 같은 소설의 시대는 아닌 것 같다. 그렇지만 그런 소설이야말로 대중과 작가와의 만남을 통해서 그토록 경쾌하게 시대를 관철해 온 작품들인 것이다.

우리의 문학 유산에서 이론의 여지가 없는 대중적인 작품을 자발적으로 언급한다면, 우선 먼저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을 떠올릴 것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으며 또 그 시대를 뛰어넘어 성공을 거둔 작품이다. 저명한 소설가 플로베르가 “이견이 있을 수 있나?”라고 빈정거릴 정도였다. 분명 그렇다. 이 이야기가 하나의 국가 전설이 되었으며, 특히 외국인에게는 프랑스 자체를 대변하는 것으로까지 인지된다는 점 말고도 이 소설에는 매우 매력적이며 어쩌면 충격적인 현상이 자리 잡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관건이며 또 무엇이 여전히 의미가 있기에 프랑스 민속 문화의 한 부분이 될 정도인가? <레 미제라블>에서 펼쳐지고 이를 하나의 대표적 유형으로 만든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위대한 선구자라 할 수 있는 <파리의 미스터리>(이하 <미스터리>)가 있다.(1) 연재소설이라는 하나의 장르를 개척했을 뿐만 아니라 ‘사회문제’라는 하나의 주제를 설정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미스터리>가 1842년 6월 19일부터 1843년 10월 15일까지 <데바>지에 연재되었을 때는 이미 ‘연재소설’이라는 장르가 “다음 호에 계속됨”이라는 상투어로 유행할 만큼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바로 이 비밀과 더불어 연재소설이 그야말로 왕의 위상에 올랐다. 테오필 고티에가 기록했듯이 “병자들도 <미스터리>의 다음 호를 보기 위해서 죽음도 미룰 정도였다”고 했다. 이건 심취 정도가 아니라 열정이었다. 이 소설의 구조는 기상천외하고 파란만장하다. 그 섬세함 앞에서 심리적 분석을 들먹이면서 잡담을 늘어놓을 여지가 없을 정도이다. 그러나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정작 본질적인 것은 진정한 주인공은 전혀 예기치 않았던 사람이었으며, 그가 또 당시의 지배적인 가치를 문제시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주인공은 사실 사회적 최하층인 대중과 바로 그들의 왕국이었다. 평판이 좋지 않은 불량배들이 자주 모이는 세느강변과 어두운 소굴의 파리가 무대였다. 이들은 절반쯤은 이방인들로 서로 매우 친숙하였다. 프랑스어를 하지만 이해하기 힘든 은어를 사용했다. 부르주아들과 같은 도시에 살고 같은 곳을 드나들었지만 주로 밤에 활동했다. 거기에서 첫 번째 동요가 발생했다. 하층민 불량배들이 전면에 등장해 하나의 사회적 계층으로 나타난 것이다. 계층 간의 구별은 기대했던 바대로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 이상이었다. <미스터리>는 사회적 위계를 따져 선한 자와 악한 자들을 구별하지 않았다.

하층민 가운데에도 관대한 의인이 있었고, 유명 인사들 중에도 끔찍한 인물이 있었다. 작가인 으젠느 수는 사회적 관계를 기계적으로 뒤집지는 않았다. 그는 사람이 가난하면 미덕을 간직하기가 어렵고, 부자일 때는 악을 감추기가 상대적으로 쉽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장-루이 보리의 말에 의하면, ‘멋쟁이 사회주의자’ 으젠느 수는 생생한 표현이나 눈물을 자아내는 표현에도 인색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대성공을 거둔 이유는 대귀족의 딸이면서도 창녀인 플레르 드 마리의 가녀린 모습 때문이라기보다는 “힘 있는 자”들의 거짓과 범죄를 밝혀내고, 고귀하거나 미천하거나 간엘 “비열한 자”들도 고귀한 인간성을 회복하면 속죄 받을 권리가 있다는 확고한 신념, 악당들의 이국적이면서도 대중적인 말투와 가난하지만 정직한 자들의 개방적인 말투를 풍부하게 사용한 활력 있는 문체에 기인했다.

가령, 피플레 부부가 구체적으로 구상화한 ‘대중’은 아무리 고달프다 해도 결코 닳지 않는 ‘수다쟁이’라는 표현을 부가어로 달고 다니는데, 삐딱하지만 분명 놀라운 달변가로서의 천재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예가 된다. 그러나 <미스터리>의 성공을 단순히 투사들의 박애주의나 도둑 집단에 대한 자료 정도로 축소 해석할 수는 없다. 이 책의 매력은 아마도 공식적인 것과 불법적인 것, 상류사회와 하류사회가 뒤섞인 것에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마침내 대중도 자신을 대변할 입을 찾은 것이다.

이로부터 20년 후, 위고는 <레 미제라블>을 완성했다. 장편소설이 찬양되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위고는 <레 미제라블>에서 <미스터리>를 칭송한 바 있다.

“수에게서는 ‘합법적인’ 노동의 세계가 무엇보다 장인들에 의해서 드러나는데 미래는 부자들이 선한 사람이 될 때 칭송할 것이다.” 위고는 “사회적 문제”에 대한 분석을 훨씬 더 심도 있게 넓혀서 이를 역사적인 대사건들과 연결시켜 어떤 해결책을 모색하려 했다. 역시 위고는 대문호다웠다.

몽테스키외의 표현을 따른다면, 참으로 오랫동안 사람들은 “가난한 자는 가진 것이 없기 때문에 가난한 것이 아니라 일하지 않기 때문에 가난하다”고 생각했다. 이는 18세기적 개념 속에서 잉태된 흔적을 간직한 철학적 교훈으로서 19세기 초반까지 위력을 발휘한 관념이었다. 그런데 산업화의 산물인 “만성적 빈곤” 문제가 다가왔다. 루이 나폴레옹이 이를 끝장내자고 선동한 것은 1844년이었다. 근면한 자들의 불행이 도래한 것이다. 경악할 상황이었다.

“<미스터리>의 성공은 고귀하거나 미천하거나 간에 ‘비열한 자’들도 고귀한 인간성을 회복하면 속죄 받을 권리가 있다는 확고한 신념에 기인했다.”

산업 혁명, 철도, 주식회사, 보험 회사, 은행과 신용회사와 함께 찾아온 현대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이른바 ‘진보’가 야기한 비극적인 궁핍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퇴치해야 하는가? 1828년 당시 릴르 시에서는 총 8만 명의 시민 중 2만 명이 빈곤층이었다. 엄마, 아빠, 아이들이 모두 함께 하루 13시간에서 15시간 동안 섬유 공장에서 일했다. 어린 아이 중 3/4은 성인이 되지 못하고 죽었다. 대규모 공장의 노동자에게는 당시의 철학자인 앙즈 궤펭이 말한 대로, “산다는 것이 곧 죽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파업은 금지되었다.

당국이 노동자들을 통제하는 강력한 수단이던 노동자 장부는 의무적이었다. 유기되는 아이들의 숫자는 늘어났고, 유아 살해는 현기증이 날 만큼 증가했다. 가난한 자는 패덕한 자가 되고, 가난한 자는 난폭자가 되고, 가난한 자는 위험한 인물이 되었다. “사회를 위협하는 야만인은 더 이상 코카서스인들도 아니고, 티티르의 초원에 사는 이들도 아니다. 야만인들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대규모 공장이 있는 성 안에 살고 있는 자들이다”라고 1831년 <데바>지는 통곡했다. 이 <데바>지가 바로 <미스터리>를 연재한 잡지였다.

그렇다. <레 미제라블>에서 세 사람의 처형자를 언급한 적이 있는, 1847년 일어난 뷔장세의 ‘기아 폭동’, 공화국이 발포 명령을 내렸던 1848년 6월 노동자 폭동처럼, “자유롭게 일하면서 살거나 아니면 싸우다가 죽기”를 선택한 리용시의 견직물 공작 직공들처럼, 이 ‘야만인’들이 폭동을 일으켰다. 야만인의 수가 너무 많아졌다. 바보가 되거나 절망해서 너무나 빨리 법 밖으로 흘러가 버렸다. 그들이 두려움을 던져 주었다. 그러나 가진 자들의 두려움에 ‘사회주의’의 대도약이 응답했다. 1834년 피에르 르루가 최초로 혁명을 언급했다. 곧바로 이 단어는 일상의 언어로 자리 잡았다. 라므네, 생-시몽, 푸리에, 푸르동 등이 ‘사회적 정의’를 문제시했고 로베스피에르, 마라, 바뵈프 등은 1848년 혁명의 선도자들이 되었다.

<레 미제라블>이 <미스터리>보다 더 대중적이 된 이유는 두 개의 소설 사이에 유사성이 많지만 위고에게서는 ‘사회적 정의’라는 주제가 역사적 대사건이라는 맥락 속에 분명하게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사회적 정의가 성가대의 고독한 합창처럼 독특하고 집합적이고 구체적이며,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혁명이라 명명한 하나의 이상과 연결되었기 때문인 것이다.

같은 도약이라는 맥락 속에서 ‘대중’이란, 라틴어로는 ‘서민’과 ‘인민’을 동시에 지칭한다. 그들이야말로 존엄성을 박탈당해 버려진 자들이다. 그런데 “존엄성”이란 이미 인간으로 존재하는 한 자명한 것이다. 바로 거기에 아름다움이 있다. ‘대중’이란 젊은이이고, 늙은이이며, 구시대의 혁명군이며 초등학교의 어린 동료들이기도 했다. 많은 이들이 1832년 바리케이드 위에서 죽어갔다. 그들은 스스로 대중이란 것을 알지도 못했지만, 그것은 고통 받는 모든 이들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왜냐하면 일부의 불행은 세계 전체를 고통스럽게 하기 때문이다. 역사라는 것은 모든 사람들, 특히 말없는 다수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대중’이란 군중도 아니고 다수의 무리도 아니고 모두가 특별하고 신비스러운 이야기를 간직한 수많은 개인과 인간성의 집합체인 것이다. ‘대중’이란 19세기를 만들었던 꿈과 환멸이 서로 교차하는 서사의 찬가이며 우스꽝스러운 농담이다. 우리는 모두 그 19세기의 후손일 뿐이다. 결론적으로, ‘대중’이란 여전히 가득 채워야 할 인간성 자체인 셈이다. 그 소설들이 거대하고 황폐하고 어둡다 할지라도 ‘대중의 것’이 되었고, ‘대중의 것’으로 남는 것은 하나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 속에서 대중이 역사의 의미이며, 그 역사로부터 작가의 상상력이 진실을 밝혀내기 때문이다.

글·에블린 피에예 Evelyne Pieiller

언론인

번역·이진홍

파리7대학 불문학 박사. 저서로 <여행이야기>, <자살> 등이 있다.

 

(1) 1842년 6월 19일부터 1843년 10월 15일까지 <르 주우날 드 데바>지에 연재된 으젠느 수(Eugène Sue)의 장편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