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 대운하에 가득 채울 "차이니즈 드림"

2014-08-27     프랑수아 뮈소

 

 “조심들 해. 닿겠어!”, 선박을 갑문 가장자리까지 순조롭게 진전시키기 위해 애쓰고 있는 예인조 인부들의 대장이 소리친다. 동남아시아에서 전자기기들을 싣고 온 컨테이너선은 갑문 벽에 불과 10cm 간격으로 붙어 운하를 빠져나가고, 이 모습을 지켜보던 미국 관광객들은 입을 다물지 못한다. “이렇게 아슬아슬한 광경이 매일 벌어져요. 운하 폭이 신형 선박 규격에 안 맞는 거죠.” 작동 담당자 후디스 리오스가 한숨을 쉬며 말한다. 배는 다시 출발한다. 평균 8시간의 여정 중 목적지인 대서양까지는 아직 세 시간 정도 남았다. 최근에는 운하에서 배가 걸려서 멈추는 일이 점점 잦아지면서 운하 통과가 10시간 넘게 걸리는 경우도 생겼다.

이곳은 파나마 공화국의 수도에서 60km 정도 떨어진 페드로 미구엘. 열대기후 속 마이애미를 연상시키는 분위기의 마천루 도시다. 미국이 1914년 8월 파나마 운하를 개통한 이래, 이곳의 갑문은 올해로 꼭 100년째 가동 중이다. 80km의 인공 수로 정 가운데에 위치한 갑문이 이제는 교통혼잡 발생지점이 되었다. 대부분의 배가 간신히 지나가기도 힘들 만큼 좁을 뿐더러 선박 통과 속도도 너무 느려, 속도가 생명인 오늘의 교역시장에서는 용인하기 힘든 수준이다. 개통 이래 통과선박이 1백만 척에 달할 만큼 활발한 통행량이 파나마 운하에는 독이 된 셈이다. 1934년 이래 물류 수송량이 세 배 이상 늘었다.

포화상태의 파나마 운하

아시아 수준의 경제성장률(10년 전 대비 8%)을 기록하는 이 작은 나라의 운명은 토리호스-카터 협정에 따라 1999년 미국이 파나마에 반환한 전략적 요충지인 파나마 운하의 운명과 맥을 같이한다. 따라서 운하 확장은 생존의 문제다. 정부에 따르면 태평양과 대서양을 연결하는 파나마 운하는 세계 상거래(석유 제외)의 5%가 이루어지는 장소이다. 공공기관인 파나마운하관리청(ACP)이 맡아 운영하고 있는 이 운하에서 나오는 수익(2013년 기준 16억 달러)이 은행영업수익에 이어 두 번째로 비중이 큰 파나마 외환 수입원이기도 하다. 2005년 국민투표에서 78%의 지지를 얻어 대규모 운하 확장공사가 2006년 첫 삽을 떴다. 완공은 2015년 예정으로, 보다 깊고 넓은 갑문열을 만들어 운하의 수용능력을 세 배로 늘리는 것이 목표이다.

운하를 통과하는 배들이 모두 지나가야 하는 해발 27m 높이의 인공호수 가툰호를 따라가다 보면 현기증이 날 정도로 어마어마한 공사현장의 진면모가 눈에 들어온다. 카리브해 쪽 수평선을 따라 콜론 시내와 콜론 크루즈 부두가 보이고, 트럭과 크레인 부대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성당만큼 큰 갑실을 만드느라 분주하다. “여기 타설된 콘크리트의 양이면 40층 건물을 백 개는 지을 수 있습니다.” 운하 공사 컨소시엄(GUPC)의 베르나르도 곤잘레스 수석엔지니어가 설명한다.

GUPC 컨소시엄은 스페인의 사시르(Sacyr), 이탈리아의 임프레글리오(Impreglio), 배수로 부분을 맡은 벨기에의 얀 데 눌(Jan de Nul), 파나마의 쿠사(Cusa) 이렇게 4개 기업으로 이루어져 있다. 처음 예상했던 공사비는 52억 5천만 달러(38억 7천만 유로)였지만 지질조사 이후 16억 달러가 추가되었다. 최종 계약은 2014년 2월에야 맺어졌다. 각 기업이 1억 달러씩을 더 투입하고, 보험회사 취리히 아메리칸이 4억 달러를 추가로 풀었다.

새로 생길 갑문은 길이 427m에 폭 55m 크기로, 중앙 빔폭(선체에서 가장 넓은 부분)이 43m에 육박하는 ‘포스트 파나막스’ 급 컨테이너선이 이곳을 통과하게 될 것이다. 1980년 후반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거대선박은 이미 세계 선박물류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니 더 낭비할 시간이 없습니다. 이런 선박을 수용할 수 있는 인프라가 반드시 필요하게 됐죠.” 운하관리청 호르헤 키하노 청장의 말이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확장공사를 시작할 무렵 18,000TEU(1) 급에 달하는 더 큰 선박들이 등장한 것이다. 새로 짓고 있는 갑문은 현재 시설의 수용능력 4,600TEU 급보다 큰 13,000 TEU 급까지 수용할 수 있게 되겠지만, 이런 배가 통과하기에는 너무 좁다. 그래도 총 수용중량은 2012년 3억 3,300만 톤에서 2025년 6억 톤으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날 것으로 파나마 당국은 내다봤다. 운하 통행료는 중량에 비례하기 때문에 경제적 기대효과는 상당하다. ACP는 현재 선박 1척당 평균 35만 달러인 통행료가 평균 1백만 달러까지 상승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파나마 운하 수로가 확장되면 대형 컨테이너 선박은 남미 대륙 최남단의 혼 곶(Cape Horn)을 끼고 우회하지 않아도 된다. 파나마 운하보다 통행량이 많은 전통의 라이벌 수에즈 운하를 빌릴 필요도 없다. 수에즈 우하는 갑문이 없는 구간 길이가 193km에 달하고 흘수(吃水)(2) 말고는 다른 제약도 없어서 좋지만, 운항일이 하루 늘 때마다 연료비 지출이 늘기 때문에 해운사는 최단거리 운항을 항상 선호한다. 요코하마에서 뉴욕까지의 여정을 예로 들면 혼 곶을 경유하면 운항거리가 31,630km이고, 수에즈 운하를 통하면 25,120km, 파나마 운하를 통하면 18,560km까지 단축된다.

“파나마 운하 확장과 같은 인프라 투자 덕분에 사업도 한결 수월해지고 수익도 크게 늘 것입니다.” 해운업계 선두 머스크 라인의 로베르트 판 트로이옌 중남미·카리브해 사업본부장은 2013년 9월 라틴아메리카 항만터미널협회 행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상품이나 중연료유를 가득 실은 대형 선박은 파나마와 콜론을 잇는 가툰호를 구불구불한 궤적으로 통과하는 동안 인근 국립공원에 상당한 환경적 부담도 끼칠 것이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전망이 밝다. 에너지 혁명이 한창인 미국은 멕시코 만에서 생산한 탄화수소 연료를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로 수출할 전망이다. 동부 해안의 수많은 항구는 이미 ‘포스트 파나맥스’ 급 선박을 수용하기 위해 대대적인 개보수에 들어갔다. 향후 10년간 13억 달러가 투입될 사우스 캐롤라이나의 찰스턴 항구가 대표적 사례이다. 뉴욕과 뉴저지 항구의 현대화 공사에는 이보다 좀 더 많은 16억 달러가 투자될 예정이다.

새로운 운하의 주역은 중국

남미 지역에서도 아르헨티나, 브라질, 베네수엘라에서의 대두, 석탄, 석유, 철 수출과 함께 늘어나는 역내 소비수요를 충족하기 위한 공산품 수입이 동시에 증가하고 있다.(아래 기사 참조) 전략지정학적 체스판이 되어가고 있는 대륙에서 파나마는 상당한 리스크를 감수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운하 외에도 파나마는 항구 6개와 철도노선 1개, 고속도로 1개, 그리고 콜론과 합치면 세계에서 홍콩 다음으로 넓은 자유무역지역을 보유하고 있다. “파나마 수로는 단순한 통로에서 물류의 교차로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태평양과 대서양 양쪽에 터미널을 둔 유일한 항만입니다. 엄청나게 강력한 장점이죠.” 전직 운하관리청장으로 현재는 수도 파나마시티 동쪽, 100여 개의 다국적기업이 입주한 면적 1,400헥타르의 파나마 파시피코 산업단지 대표를 맡고 있는 알베르토 알레만의 설명이다.

하지만 경쟁은 점점 치열해진다. 대박의 일부라도 손에 쥘 목적으로 ‘해상지름길’ 사업도 등장했지만 추진 경과는 제각각이다. 가장 간단한 길은 북쪽에 있다. 캐나다의 북극열도를 통해 태평양과 대서양을 잇는 ‘북동항로’가 그것이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빙하로 덮여 있던 이 길이 연중 일정 기간 동안에는 새로운 선박 항로로 쓰일 수 있게 되었다. 2013년 대형 화물선 몇 척이 실제로 유럽까지 운항하기도 했다. 북극해의 만년설이 녹으면 여러 구간에서 주행거리가 단축될 수 있다. 일례로 함부르크에서 밴쿠버로 운항하는 선박은 북쪽 항로를 이용해 파나마 운하를 통할 때보다 2,300km를 단축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환경적 리스크는 어마어마하다. “북동항로를 이용하자면 특수한 장비도 필요하고, 보험료도 상승할 뿐 아니라 가항성(可航性) 면에서도 불확실성이 상당히 커집니다.” 퀘벡에서 활동 중인 지리학자 프레데릭 라세르는 이렇게 설명했다.

페드로 미구엘에서 좀 더 가까운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코스타리카는 2011년 자국 영토 내 통로 구축을 거론했다. 2012년 초 과테말라에서는 과테말라 양대양 통로(CIG) 컨소시엄이 출범했다. 이 컨소시엄은 건설 예정인 항구 두 곳을 연결하는 통로 구축을 계획하고 있다. 예산은 75억 달러에 달한다. 실제로 물길을 뚫어서 항로를 내는 것이 아니라, 철도나 도로를 이용해 컨테이너선에서 다른 컨테이너선으로 물품을 전달하는 일종의 ‘물 없는 운하(dry canal)’인 셈이다.

2000년대 말에는 두 대양을 모두 접하고 있는 콜롬비아에서도 비슷한 예산에 동일한 사업이 등장했다. “사실 이 사업은 물 없는 운하라기보다는 그냥 좀 더 조밀한 교통네트워크의 구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해운회사 입장에서는 물류 선적과 하역 비용이 높아지는 문제도 있습니다.” 페루 출신 인포라탐 애널리스트 루이스 에스테반 만리케는 이렇게 말했다. 미대륙간 개발은행(IADB)에 따르면 10,000개의 컨테이너 물류는 기차 18량 또는 트럭 5,800대에 해당한다. 즉 컨테이너선 하나만 하역처리를 하려고 해도 수 km 길이만큼의 기차가 필요한 것이다.

태평양-대서양 간 통로 사업 중 단연 가장 야심찬 프로젝트는 니카라과에서 진행 중이다. 야심 찬 만큼 논란도 가장 많이 되고 있다. 당국은 실제로 지반을 뚫어 300km에 달하는 운하를 건설할 계획이다. 2013년 6월, 산디니스타(Sandinista; 1970년대 말 니카라과의 민족해방전선 조직-역주) 출신의 다니엘 오르테가 대통령이 이끄는 정부는 홍콩에 본사를 두고 케이먼 제도에 사업자등록을 한 홍콩니카라과운하개발(HKND)에 50년간 운영권(50년 연장도 가능)을 양허했다. 중국인인 왕징 HKND 대표는 400억 달러 투자를 약속했다. 니카라과 국내총생산(GDP)의 4배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전문가들은 실제로 지반을 뚫어 운하를 건설하는 비용이 800억 달러에 육박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니카라과 운하 사업의 목표는 파나마 운하의 수용능력을 앞지르는 것이다. 이미 포화상태인 파나마 운하는 11만 톤 급 이상의 선박을 처리할 수 없지만 니카라과 운하는 무게 25만 톤, 길이 455m 급의 초대형 선박까지 통과 가능하다. 지난 7월 허가를 완료한 운하 도면은 사실 콘키스타도르(Conquistadores; ‘정복자’를 뜻하는 스페인어로 16세기 남미를 정복했던 스페인 침략자들을 지칭-역주)들도 진작에 구상했던 것이다. 니카라과 당국의 말을 빌리자면 이들의 운하는 ‘포스트‐포스트 파나맥스’ 급 선박(14,000TEU 이상)까지 대상으로 하고 있다. 공사는 2015년 초 시작될 예정이다.

하이메 인세르 환경특별위원을 비롯한 니카라과의 많은 전문가들은 운하 사업의 절차가 불투명하게 이루어지고 있을 뿐 아니라 습지 4,000헥타르 파괴, 중앙아메리카 주요 담수원 코시볼카호의 염수화 등 환경에 초래할 영향이 크다는 점을 지적한다. 면적이 푸에르토리코 영토와 맞먹는 코시볼카호를 운하가 150km나 가로질러 통과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심해도 좋다. 7월 7일, 오르테가 대통령과의 공식 면담에서 왕징 HKND 대표가 “생태적이고 환경을 존중하는” 운하를 건설하겠다고 “명예를 걸고 약속”했으니까.

물이 없는 운하

일각에서는 운하 자체의 현실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이 모든 운하 사업계획이 다 현실이 되면 중앙아메리카 대륙은 그뤼에르 치즈 모양이 되겠군요!” 2013년 11월 15일, 누네스 파브레가 당시 파나마 외교부 장관은 이렇게 비꼬았다. 하지만 니카라과 정부가 HKND에 내준 양허는 중국의 전략적 야심을 잘 보여준다. 니카라과 웹사이트 엘 콘피덴시알에 따르면 통신업계의 거물인 왕징 대표는 사실 얼굴마담이고 그 뒤에는 중국이라는 국가 자체가 모습을 숨기고 있다. 콜롬비아의 ‘물 없는 운하’ 사업은 물론 과테말라와 엘살바도르의 운하 프로젝트도 중국이 재원을 대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취재원은 “중국이 미대륙으로의 수출물자를 대량으로 실어 나를 전략적 교역로를 손에 넣겠다는 일종의 ‘차이니즈 드림’을 꾸고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중국이 ‘물 없는 운하’라도 갖게 된다면 태평양 연안의 저개발국 베네수엘라로부터의 탄화수소 연료 수입도 크게 늘 것이다. “파나마 운하는 이미 포화상태라 불편하고 중국의 대형 선박이 이용하기에는 너무 좁습니다. 게다가 사실상 미국 통제하에 있기도 하고요.” 멕시코 시립자치대학의 하인즈 디트리치 연구원은 영국 BBC 방송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1999년 파나마 운하를 반환하기는 했지만 미국은 여전히 파나마 운하의 수송량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다. 미국 깃발을 단 선박에는 통행 우선권이 주어져, 다른 컨테이너선의 통행을 크게 지연시키기도 한다. 파나마 공립대학의 미구엘 안토니오 베르날 헌법학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사실상 전략적으로는 아직도 미국의 운하인 거죠. 미국 잠수함이 통과하는 것도 파나마 운하를 통해서고, 미국의 이익에 반하는 일이 발생하면 군사개입을 하는 것도 파나마 운하를 통해서가 될 겁니다. 우리 당국에서도 인정하는 사실이에요.”

 

글·프랑수와 뮈소 François Musseau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특파원

 

번역·김혜경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1) TEU(twenty‐foot equivalent unit)는 컨테이너선박의 크기를 나타내는 표준단위이다.

(2) 선박이 물 속에 잠긴 부분의 높이

(3) 리베라시옹(Libération), 파리, 2014년 1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