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황제’ 행세하는 프랑스 기업의 일탈

[특집/제국시대의 잔재들]

2009-05-05     토마 델통브 | 언론인


                     ‘사르코지 친구’ 볼로레, 각국 정부와 ‘커넥션’
                 항만·교통망 손아귀에 넣어 막대한 이윤 챙겨

 

볼로레 그룹의 최고경영자 뱅상 볼로레는 2007년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에게 제공했던 호화 바캉스에 대해 질문받았을 때, “우리가 누군가와 친구라고 해서 그 친구와의 사이에 도덕이 없어서는 안 된다”라고 피해갔다. 볼로레 그룹은 사실상 프랑스 국가 경제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플라스틱 필름, 운송 또는 에너지와 연관된 이 그룹은 수많은 자회사들을 소유하고 있다. 1822년에 설립돼 여전히 가족이 지분을 대부분 소유한 볼로레 그룹은 세계 500대 기업에 포함된다. 이 그룹은 전세계 곳곳에 자리잡고 있지만, 그중 아프리카에 가장 잘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 그룹이 최근 비판의 대상이 된 것은 비양심적인 아프리카 정권들과 맺고 있는 특별한 관계 때문이다. 라이베리아에서 찰스 테일러 대통령과의 관계, 카메룬에서 폴 비야 대통령과의 관계 등이 그렇다.

“우리 언론의 눈에 비친 볼로레는 이 시대의 완벽한 영웅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는 재계의 총아로서 우리에게 경제위기쯤 거뜬하게 넘으리라는 믿음을 준다.”( 텔레비전 <TF1>의 볼레로 탐방 기사�1986)(1)       

                                     <악어>, 1982-피터 윌슨

오랫동안 미디어는 젊은 인상의 뱅상 볼로레에게 애정을 표현했다. 이미 1980년대에 그렇게 불렸던 것처럼, 이 ‘돈 많은 어린 왕자’는 돈벌이와 사회사업을 동시에 수행함으로써 도덕적 기업가이자 ‘신자유주의’ 신봉자라는 양면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젊은 시절의 볼로레는 브르타뉴 지방 오데에 소재한 제지공장의 노동조합장으로 활동할 때부터 마이크와 카메라를 다룰 줄 알았다. 그는 가슴에 손을 얹고 “계급투쟁보다는 노사가 모두 이익이 되는 게임을 하고 싶다”고 단언했다.

그 뒤 많은 세월이 흘러, 브르타뉴 출신의 이 ‘골든 보이’는 탐욕적인 사업가로 변신했다. 그는 1990년대에 부이그 그룹을 상대로 주가조작을 자행해 다른 투자자들을 물먹이며 달콤한 이익 배당금을 받아갔다. 그 결과, 부이그 그룹에서 ‘야만적인 사업가’라는 평판을 얻었다. 최근에 그는 엘리제궁에 입성한 니콜라 사르코지에게 자신의 호화 요트와 전용 비행기를 무상으로 빌려줘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그는 동시에 의혹·배신·공모의 대명사가 되면서, 일부 언론에서 악마로 비쳐졌다.(2)

볼로레의 또 다른 면은 아프리카에서의 기업활동을 통해 드러났다. 아프리카 대륙은 20년 동안 그가 공들여 만든 ‘숨겨놓은 왕국’으로, 그룹의 중요 기반이 됐다. 아프리카 대륙은 이 그룹 공식 매출액의 4분의 1을 차지할 뿐이다(2007년 64억 유로 중 14억 유로를 차지함). 그러나 43개국에 직원이 1만9천여 명에 달하는 200개 지점과 항구, 운송, 플랜테이션 등 전략적인 시설을 소유한 볼로레는 정치적·미디어적 영향력을 마음껏 활용해 아프리카에서 정복 황제처럼 행동한다.


돈과 미디어를 무기로 활용해 

미디어의 각광을 가장 많이 받는 사업장은 운송과 로지스틱의 핵심망인 아프리카 항만시설이다. 볼로레 그룹은 식민 시절 아프리카에서 수출입 상품 취급, 보세, 운송을 담당해 엄청난 돈을 벌었던 여러 기업들을 다시 매입했다. 한편으로 ‘용선 연료무역회사’(SCAC)를 1986년에 매입해 그룹의 다른 계열사에 합병시킴으로써 국제 로지스틱 회사인 SDV를 설립하고, 또 한편으로 SCAC의 쌍둥이 자매회사인 SAGA를 수많은 간계를 사용해 1997년 매입했다. 게다가 국제통화기금(IMF)이 아프리카 국가들에 대규모 민영화 조처를 강요했을 때, 볼로레가 식민 시절 유산인 전략적 인프라들을 이 국가들로부터 넘겨받았는데, 이를 통해 많은 이익을 보았다. 이런 식으로 부르키나파소와 코트디부아르를 연결하는 ‘아프리카 철도운송 국제기업’(Sitarail)을 1995년에, 차드와 중앙아프리카의 택지 매입에서 중요한 구실을 하는 ‘카메룬 철도회사’(Camarail)를 1999년에 넘겨받았다.

항만시설과 관련해서 볼로레는 단 5년 만에 자신의 여러 계열사를 통해, 때로는 다른 중계회사와 제휴해 민영화된 여러 항만 터미널 관리권을 휩쓸어갔다. 두알라(카메룬), 아비장(코트디부아르), 코토누(베냉), 테마(가나), 라고스(나이지리아)가 이런 항만 터미널에 해당한다.


아프리카 40여 개국에 그룹이 보유한 200여 개 지사들, 철도, 수천 대의 트럭과 수백만㎡의 물류 창고를 연계한 항만 관리를 통해, 사실상 대륙에 대한 지배권을 볼로레 그룹이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2008년 9월 설립된 ‘볼로레 아프리카 로지스틱’은 아프리카 최초의 통합 로지스틱 네트워크를 구축했다.(3) 그러나 의기양양한 공식 성명에도 아프리카 항만들 주변에서는 치열한 정치적·경제적 전투가 전개되고 있다.
2007년 세네갈의 다카르 항구를 양도받으려고 볼로레는 모든 영향력을 동원했다. 사르코지 대통령의 측근이라는 점을 과시하는 것 외에도, 볼로레는 자신의 신청서류를 접수시키는 데 알랭 마들랭 전 총리의 부인과 프랑수아 레오타르 전 국방장관을 동원했고, 자신의 주요 라이벌인 아랍에미리트의 거대 기업 ‘두바이 포트월드’(DPW)를 물리칠 목적으로 <르디망슈>의 사주인 아르노 라가르데르를 파견했다.(4)

또한 그는 자기 그룹의 텔레비전 방송 채널인 <디렉트8>에서 세네갈 대통령에 대해 특집방송을 내보냈으며, 자신의 무료신문들인 <디렉트 마탱 플뤼스>와 <디렉트 수아르>의 각 1면에 특집기사를 장식했다. 2007년 3월 20일치 <디렉트 수아르>의 감동적이며 절제된 제목은 ‘아프리카의 위대한 인물, 압둘라예 와데’였다.
그런 노력에도 성과는 없었다. 다카르 항만 터미널의 관리권이 결국 2007년 10월 DPW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이 항만 관리권 문제를 은밀히 항의하면서도 볼로레는 언론 앞에서 능숙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 자유주의자들이 늘 하는 소리를 늘어놓았다. 세네갈에서의 실패는, 사람들이 늘 자신을 비난하는 사실과는 반대로, 자기 그룹이 공정한 게임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 아니냐고. 다른 곳보다 세네갈이 더 심한 경우는 아니지만 프랑스의 다국적기업이 ‘손댈 수 없는 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 아니냐고.(5) “승리할 때도 패배할 때도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비즈니스의 세계입니다”라고 그는 철학자처럼 결론 내렸다.(6)

승리를 위해 거짓과 비방 일삼아 

다카르에서 모욕을 당한 후 볼로레가 지은 억지웃음은 더 은밀하고 훨씬 격렬한 또 다른 전쟁을 은폐하려는 것이었다. 또 다른 경쟁사인 프로고사와 벌인 전쟁이었다. 프랑스 기업들 간의 대립은 정치 모리배들 네트워크를 통한 물밑 투쟁을 전개하면서 여러 해 전부터 계속되고 있었다. 프로고사의 사장인 자크 뒤퓌이도비는 SCAC의 전직 사장인데, 1986년 볼로레가 이 기업을 인수하면서 해고됐다. 부이그 그룹으로 자리를 옮겨 한동안은 볼로레와 협력관계를 맺기도 했던 뒤퓌이도비는 아프리카 항만 관리권을 획득하려고 다시 한번 볼로레와 격돌하게 됐다. 특히 토고와 카메룬에서 그랬다.
두 사람의 치열한 경쟁은 유럽과 아프리카에서 법정 싸움으로 번졌고 양 파벌 간의 다툼이 됐다. 당시 볼로레는 사르코지 대통령의 측근으로 간주됐고, 프로고사는 시라크 사람들로 넘쳐났다.7) 미디어 전쟁과 정치·경제 폭로전의 와중에서, 볼로레의 위임을 받은 경제정보회사인 ‘제오스’(Geos)의 요구로 전직 경찰 한 명이 뒤퓌이도비의 협력자들을 뒷조사한 사실이 확인됐다.(8) 볼로레 그룹은 ‘거짓, 비방과 사기’를 양산해냈다. ‘비즈니스 세계’가 신사의 취미에 불과한 것은 아니었다.

아프리카 항만들이 이처럼 탐욕의 대상이 된 것은, 항만들이 정치·경제 권력의 엄청난 자산이기 때문이다. 특히 항만의 관세 덕택에 수많은 국가들이 자국의 금고를 채울 수 있게 됐다. 또한 항만을 통해 중요 정보인 대륙의 유통 흐름을 통제할 수 있게 됐다. “아프리카는 바다에 의해 세상과 연결된 하나의 섬이다. 그러므로 항만 크레인을 소유한 자가 대륙을 소유한다”(9)라고 2006년 볼로레 그룹의 전직 직원이 설명했다. 아프리카 대륙에 중국을 필두로 한 신흥 강자들이 도착함으로써 걸린 돈은 그만큼 커졌고, 이 강자들이 상품의 보급, 보세와 운송을 보장해주는 이들에게 날개를 달아주었다.

  이 분야에 뿌리를 잘 내린 볼로레 그룹은 착실하게 기록을 경신했다. “우리 그룹의 카카오와 면사 부분 원료 점유율은 서부 아프리카에서 50~70%를, 동부 아프리카에서는 15~30%를 차지한다. 어디에서나 우리 그룹이 1위를 달리고 있다”며 그룹의 아프리카 총본부장인 도미니크 라퐁은 만족해했다. 이 그룹은 광업 혹은 산업 로지스틱 분야에서 수많은 계약을 땄다. 앙골라의 석유 프로젝트, 콩고민주공화국 샤바주의 구리, 가나의 발전소, 부르키나파소와 탄자니아의 금광 계약이 이에 해당한다.

이권 위해 인적 네트워크 총동원 

볼로레는 아프리카 시장을 차지하기 위해 자신의 네트워크를 가동했다. “우리는 아프리카의 모든 장관들을 알고 있다. 그들은 우리 친구다. 솔직히 말해 그 친구들이 장관이 아닐 때도 우리는 그들에게 지사의 중역 자리를 제공한다. 그들의 체면을 살려주기 위해서다. 우리는 언젠가 그들이 장관에 다시 임명될 것임을 알고 있다”(10)라고 질 알릭스 그룹의 사장은 이야기한다. 가봉에서 볼로레 그그룹은 중국인들이 개발하려는 베링가 지역의 거대 철광을 탐내고 있기 때문에, 오마르 봉고 대통령의 딸인 파스카린을 자사인 ‘가봉 탄광 로지스틱’의 중역으로 앉혔다.


프랑스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그룹은 오래전부터 영향력 있는 사람들을 채용하고 있다. 가장 유명한 사람은 아마 10년 전부터 ‘미스터 아프리카’로 통하는 미셸 루생일 것이다. 볼로레의 의형제인 제라르 롱게 전 장관이 주도해 만든 총서의 하나로 1997년에 출간된 <성숙한 아프리카>라는 책으로 루생은 유명해졌다.(11) 그러나 ‘국제프랑스기업운동’(Medef)의 부의장이기도 한 루생이 볼로레의 관심을 끈 것은 그가 프랑스 비밀정보국의 전직 고위 간부고, 시라크가 신뢰하는 인물이고, 에두아르 발라뒤르 정부의 전 협력 장관이었기 때문이다.

식민지 기업활동과 프랑스와 아프리카의 네트워크를 지닌 볼로레 그룹과 프랑스 정치 지도자들 사이에 존재하는 다양한 커넥션을 밝히기는 어렵다. 우리는 단지 다른 그룹들처럼, 볼로레 그룹이 아프리카 시장을 정복하는 데 권력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할 뿐이다. 프랑스 대통령이나 장관들이 로비스트 역할을 하기 위해 아프리카 대통령이나 장관들을 만나려고 기꺼이 아프리카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볼로레와 우파의 우정이 잘 알려져 있지만 좌파 사회당 의원인 장 그라바니 역시 그룹의 전략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다.


아프리카 전체 운송 축을 장악한 볼로레 그룹은 평화 시기나 전쟁 시기 어느 때든지 번영할 수 있었다. 코트디부아르에서 아비장~와가두구 사이의 철도가 임시로 폐쇄됐는데도 그룹의 자회사들은 2002~2007년의 전쟁 기간 중 그리 큰 어려움을 겪지 않은 것 같았다. 수년간의 폭력으로 초토화된 산유국인 수단에서도 볼로레 자회사들은, 회사 책임자들의 고백대로라면, 석유 같은 인도주의 물자 보급 사업으로 달콤한 이익을 냈다.(12)

  SDV 책임자의 말처럼 ‘엄청난 선물’인 ‘인도주의 구호’ 활동을 기꺼이 자랑한다 해도, 이 그룹이 항상 투명한 활동을 하는 것은 아니다. 1990년대 말 콩고의 드니 사수응게소가 쿠데타와 유혈 내전을 통해 권좌에 오른 순간에 볼로레 그룹이 그와 좋은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13) 같은 시기에 이 그룹이 찰스 테일러 라이베리아 대통령과 맺은 관계도 불투명하다. 테일러가 라이베리아에서 피를 뿌리며 권좌에 오른 그 순간에, 볼로레가 대주주인 벨기에 소크피날이 어떻게 해서 1998년 거대한 파라고무나무 플랜테이션 관리권을 획득했을까?

  볼로레의 말을 들을 것도 없이, 관목 숲에서 전투를 벌이던 테일러는 당시 볼로레와 맺은 관계에 대해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특권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프랑스 사업가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우리를 만나러 왔을 뿐이다. 그들은 위험을 무릅썼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오늘날 남들보다 훨씬 더 앞서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통상적인 비즈니스’인 것이다. 사업가들의 국적은 중요하지 않다. 사업가들이 프랑스에서 왔건 다른 곳에서 왔건 간에 그들의 관심사는 당연히 라이베리아의 숲, 철광석, 금, 다이아몬드에 있는 것이다.”(14)

OECD 지침 위반 기업 명단에 올라 

최근에는 새로운 문제로 인해 볼로레의 이미지가 더 타격을 받았다. 이번에는 국경을 넘는 전쟁으로 황폐화한 콩고민주공화국의 동부 지역과 관계된다. 이번 일은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요청으로 이 지역의 천연자원 ‘불법 개발’에 대해 전문가 그룹이 낸 일련의 보고서에 그 원인이 있다. 유엔은 천연자원 무역이 무기 밀매에 이용된다는 점을 걱정했다. 이는 특히 휴대전화와 비디오게임기 제작에 사용되는 콜탄이라는 광물과 관계된다. 이 광물의 시세는 2000년대 초 정점에 달했다.


2001년 4월에 발간된 최초 보고서에는 ‘조장자인가 아니면 수동적 공모자인가?’라는 제목으로, 볼로레 그룹의 100% 자회사인 SDV가 ‘자원 개발과 전쟁 추구 조직 중 핵심 멤버’로 등장한다. 수천t의 콜탄이 키갈리(르완다)로부터 선적되거나 탄자니아의 다르에스살람 항구를 경유했다.(15) 2001년 11월에도 유엔 전문가들은 거듭 비난했다. 2002년 유엔의 다른 보고서에도 SDV가 ‘다국적기업에 대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지침 원칙을 위반한’ 기업 리스트에 올랐다. 2003년 또 다른 보고서에도 ‘필요한 조처를 취할 시간이 충분했음에도, 유엔 전문가들의 권유를 실천하지 않은’ 기업들 중 하나로 여전히 SDV가 올라 있었다.(16)

이 주제에 대해 그룹 책임자들의 변명을 듣기 위해서는, 콩고민주공화국 동부 지역 분쟁들이 다시 시사 문제가 된 2008년 말을 기다려야 했다. 훨씬 더 명백한 이전 보고서들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고 다만 유엔의 2003년 보고서에 근거해 질문하는 주간지 <마리안>과의 대담에서, 그룹 책임자들은 임명된 지 2년도 안 된 현지 책임자의 ‘나무랄 데 없는’ 이력서를 흔들어대면서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17) 수많은 정보를 폭로하는 것이 별 효과가 없는 것 같다. 볼로레나 다른 서구 다국적기업을 한 번도 언급하지 않은 채, 유엔 보고서들을 인용하면서 콩고민주공화국 동부 지역의 콜탄을 전체적으로 다룬 52분짜리 다큐멘터리 <지옥의 탄광>을 교육 채널 <프랑스5>가 2009년 1월 25일 방영했다.

자선활동 지원으로 이미지 개선

 
볼로레 그룹은 대다수 기자들의 무기력증을 이용해 또 다른 전쟁터인 정보통신 영역을 공략했다. 2000년대부터 이 그룹은 이 분야에 엄청나게 투자했다. 리서치 회사(CSA)와 무료신문들(<디렉트 마탱 플뤼스> <디렉트 수아르>)을 포함해 광고회사(유로 RSCG)에서 텔레비전 방송(<디렉트8>)까지 통제함으로써, 볼로레 그룹은 처음부터 끝까지 제어된 메시지를 송출할 수 있게 됐다. 아프리카 시장을 정복하면서 볼로레 그룹은 미디어를 축으로 아프리카 대륙의 중요 결정자들에게 다양한 회유책을 구사했다.


볼레로의 아들인 야니크가 사장을 맡고 있는 채널 <디렉트8>에서는 루생이 직접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매월 방영하고 있다. 수백만 명의 대중교통 이용자들에게 광고지를 뿌리는 이 그룹의 무료신문들도 마찬가지다.

  프랑스인들이 아프리카 국가들에 전혀 무관심하거나 거의 모른다는 사실을 이용해 <디렉트 마탱 플뤼스>와 <디렉트 수아르>는, 대부분 선거의 정당성도 확보하지 못한 채 자국민 탄압과 수출품 선전으로 권력을 유지하는 아프리카 대통령들의 이미지를 공들여 꾸며낸다.
볼로레는 정치적 자선 행동에서 가브리엘 콘 벤디트가 이끄는 ‘모두를 위한 교육 네트워크’(Repta) 같은 멋진 작업들에 재정을 지원했다. 그는 오랫동안 이미 고인이 된 미셸 로카르 전 총리의 ‘사회 환원’을 위한 벤처캐피털인 ‘아프리카 이니셔티브’를 후원했다. 또한 그는 베르나르 쿠슈네르가 이끄는 단체 ‘레위시르’(Reussir)가 주도한 2005년의 ‘나이지리아 인도주의 사절단 긴급 파견’같이 한시적인 활동도 후원했다.


‘넬슨 만델라 재단’에 대한 볼로레의 강박관념도 같은 동기에서 비롯됐다. 그의 무료신문들은 이미 반인종차별 투쟁의 영웅에게 4번이나 1면을 바쳤는데, 남아공화국 전직 대통령이 파리를 방문할 때인 2007년 9월에는 <디렉트 마탱 플뤼스>와 <디렉트 수아르> 두 신문의 1면을 바쳤다. “남부와 서부 아프리카에서 경제적으로 더 성장하려는 볼로레 자신이 이 방문 사건을 기획했으며, 자기 비행기를 자유롭게 사용하게 했다. 미디어를 통해 그런 활동을 전파하면서, 볼로레는 아프리카와 그리고 엘리제궁과의 관계에 공을 들였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성스러운 인물과 악수를 할 수 있어서 매우 만족해했다”(18)라고 주간지 <텔레라마>는 밝혔다. <디렉트 마탱 플뤼스>에 실린 사진이 증명하는 것처럼, 프랑스 대통령은 오를리 공항의 계류장에 마중 나가 만면에 웃음을 지음으로써 자기 친구 뱅상의 멋진 작전에 동참했다. 2007년 9월 3일치 <디렉트 수아르>의 만델라 관련 페이지에서 양념 구실을 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외무장관 쿠슈네르의 사진이었다.

 

 

<각주>

(1) ‘쓰레기통 유산: 볼로레’(Un heritage a la Corbeille: Bollore), <TF1>, 1986년 2월 4일.
(2) 나탈리 로랭 & 르노 르카드르, <뱅상 볼로레, 모든 의심에서 벗어난 자본주의자에 대한 앙케트>(Vincent Bollore, enquete sur un capitaliste au-dessus de tout soupcon), 2000. 니콜라 코리 & 뮈리엘 그르메이예, <뱅상 볼로레, 천사인가 악마인가?>(Vincent Bollore, ange ou demon?), 2008.
(3) www.bollore-africa-logistics.com.
(4) 앙투안 글라제르 & 스테판 스미스, <아프리카의 사르코지>(Sarko en Afrique), 2008, 96~97쪽.
(5) ‘지구라는 기업’(Planete entreprises), <프랑스 국제라디오방송>(RFI), 2007년 11월 25일.
(6) ‘볼로레가 모든 것에 대답한다’(Bollore repond a tout), <죈 아프리카>(Jeune Afrique), 2008년 3월 30일.
(7) 자크 시라크의 전직 아프리카 자문관인 미셸 뒤퓌쉬는 프로고사의 중역이다. 파리시 의회 전직 의장인 레미 샤르동은 프로고사의 부사장이다. 전직 협력 장관인 지라르댕 여사는 프로고사 재단 이사장이고, 이 재단은 시라크의 ‘지속 가능한 발전과 문화 간 대화를 위한 재단’을 후원하고 있다.
(8) 파트리크 바프탕디에, <돌진하세요, 당신을 지원합니다>(Allez-y, on vous couvre!), 2008.
(9) 안 발레리 호 & 바르바라 비니오, ‘아프리카는 더 이상 프랑스 기업들의 엘도라도가 아니다’(L’Afrique n’est plus l’eldorado des entreprises francaises),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6년 4월,
(10)‘프랑스의 대기업들, 은퇴한 장관들의 피신처’(Le groupe francais, refuge des ministres retraites), <리베라시옹>, 2008년 10월 17일.
(11) 미셸 루생, <성숙한 아프리카>(Afrique majeure), 1997.
(12)‘볼로레의 멋진 사업’(Les bonnes affaires de Bollore), <적도시장과 지중해시장>(Marches tropicaux et mediterraneens), 2008년 1월 25일.
(13)프랑수아 자비에 베르쉬브, <침묵하는 검은 대륙>(Noir Silence), 2000.
(14)‘라이베리아: 전쟁 영주의 변화’(Liberia: les metamorphoses d’un seigneur de la guerre,), <Politique international>, 1998~1999 겨울호, 354~355쪽.
(15)‘콩고민주공화국의 천연자원과 다른 자원들의 불법 개발에 대한 전문가그룹 보고서’, 2001년 4월 12일, www.unhchr.ch.
(16)‘콩고민주공화국의 천연자원들과 다른 자원들의 불법 개발에 대해 전문가 그룹 의장이 유엔 사무총장에게 제출한 2002년 10월 8일과 2003년 10월 15일의 서신들’, http://daccessdds.un.org.
(17) ‘콩고민주공화국의 전쟁에 책임이 있는 서구 기업들은?’(Des entreprises occidentales responsables de la guerre en RDC?), <마리안>, 2008년 11월 12일.
(18)‘볼로레의 대변신’(Le raz de maree Vincent Bollore), <텔레라마>, 2007년 11월 3일. 

 

글/토마 델통브 Thomas Deltombe
<상상 속의 이슬람: 프랑스 언론이 만든 두려운 이슬람 이미지(1975~2005)>
(2007)의 저자
번역/고광식

 

 

 TV 프로그램 ‘아프리카의 목소리’의 진짜 목소리

뱅상 볼로레의 미디어 활동과 아프리카에서의 활동이 의미심장하게 교차하는 부분은 채널 <디렉트8>에서 매월 방영되는 <아프리카의 목소리>라는 프로그램일 것이다. 2006년 3월에 시작된 이 프로그램은 퓌토에 위치한 그룹의 본부인 ‘볼로레 타워’로부터 전직 협력 장관인 미셸 루생이 직접 방송한다. 이 프로그램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1부는 경제, 지정학, 군사분쟁 같은 시사성 있는 ‘심각한 주제들’을 다룬다. 이때 루생은 전직 홍보 컨설턴트로 <디렉트 수아르>의 편집부국장이 된 기욤 젤레르의 보좌를 받는다. 2부는 서적, 스펙터클, 영화 같은 ‘문화 문제’에 관심을 쏟음으로써 어느 정도 따분한 프로그램에 활력을 부여한다. 이때 루생은 마케팅 전문 여성 사회자인 베로니크 포르즈와 함께 진행했다. 얼마 전부터 아프리카 연대기 작가와 함께 진행하는 이 프로그램의 진짜 목적은 ‘아프리카인들에게 말할 기회를 부여하면서’ 검은 대륙의 ‘멋진 이미지’를 제공하는 것이다.
실상은 볼로레 그룹의 경제적 이익과 일치하는 상상의 아프리카를 방영한다. 볼로레 그룹에 이익이 되는 것이, 루생의 프로그램에서는 아프리카인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 이처럼 볼로레 그룹은 호의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아프리카의 목소리’에서는 압둘라예 와데 세네갈 대통령의 ‘매우 흥미 있는’ 저서를 끊임없이 찬양한다. 사람들이 오마르 봉고 가봉 대통령의 말을 종교적으로 경청하는 모습도 방영한다. 드니 사수응게소 콩고 대통령과 가까운 콩고 파리 주재 대사를 초청하거나, 폴 비야 카메룬 대통령의 정치적 지지자인 카메룬경영자연합 회장을 초청한다. 두알라나 푸앵트누아르 항만들, 세네갈의 해상운송이나 마다가스카르의 철도운송을 미화하는 탐방기사들도 빼놓지 않고 방영한다.
유용한 자리에 있으며 협조적이고 부유한 아프리카 사람들만을 인터뷰하는 이 방송은 때때로 특이한 ‘아프리카 사람들’에게도 말할 기회를 부여한다. 코트디부아르에서 2002년 시행된 리콘(Licorne) 작전의 사령관이었고 군사협력 방위국장이 된 에마뉘엘 베트 장군이 2008년 9월 25일 초청됐는데, 이 경우가 그에 해당한다.
루생은 다른 식으로 그를 소개했다. “우리가 좋은 소식을 알려주는 사람들이란 사실을 여러분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다. 우리 프로그램과 채널에서 우리는 틀에 박힌 사고를 깨고 있다. 그래서 오늘도 틀에 박힌 사고를 타파하기 위한 최선의 방책으로 한 장군에게 방송 참여를 요청했다. 이 사람은 프랑스 장군이지만 아프리카 업무에 정통한 사람이다.”(2008년 9월 25일) 그리고 외인 낙하산 부대 장교와 사회자인 대간첩활동 부서(SDECE)의 전직 장교 사이에 화기애애한 대담이 시작됐다. 볼로레 그룹은 ‘아프리카의 목소리들’을 참으로 잘 선별해냈다.

번역/고광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