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사진기자의 죽음이 남긴 것

2014-08-27     서영걸

 

 사실 하나. 지난 3월, 세계최대 스탁사진업체인 게티이미지는 자사가 판매 중인 사진들을 ‘무료’로 온라인상에서 공유할 수 있는 정책을 발표했다. 별도의 절차도 없이 누구나 무료다. 물론 각국의 법을 위반한다거나 상업적 이용에는 제한을 하였지만, 사전에 필터링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이상 실질적으로 무제한으로 사용가능하다. 게티이미지는 자사가 판매하는 사진들의 무단도용을 찾아내기 위한 별도 검색툴까지 개발하여 불법적 사용처를 찾아내 소송을 불사하는 것으로 유명한 회사였으니 가히 획기적인 정책이다. 이에 대부분 SNS 등의 인터넷 사용자들은 쌍수를 들고 환영의 뜻을 표했다.

사실 둘. 이보다 이른 지난해 12월 23일, 3년간 내전이 계속되고 있는 시리아의 알레포라는 곳에서 병원 교전 현장을 취재하던 10대 프리랜서 사진기자인 몰햄 바라카트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바라카트는 당시 영국뉴스통신사인 로이터가 고용한, 통상 스트링거라 불리는 프리랜서 자격으로 현장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수입은 정직원인 로이터 소속의 기자가 받는 기본급과 그에 더해지는 생명수당 등을 비롯한 제반 수당을 받는 방식이 아니다. 미리 정해진 (보통 매일 10장 이상의) 사진을 본사에 전송하면 장당 약 10달러를 받는 방식이다. 여기에 ‘이달의 베스트 포토’에 선정되면 추가로 50~100달러의 보너스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셋. 급변하고 있는 언론환경에서, 몇 년 전 국내 모일간지는 컨설팅회사에 당시 발생하던 여러 문제점을 비롯해 미래 경영을 위한 조사를 의뢰했다. 그 결과, 사진과 관련된 흥미로운 사실이 밝혀졌는데, 신문 게재 사진의 경우, 사진과 사진설명까지는 독자들의 집중도가 높으나 정작 그 사진을 찍은 기자에 대해선 독자들이 이름조차 읽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2008년 전 세계에 닥친 금융위기는, 인터넷의 확산과 함께 시작된 종이매체의 시장점유율 축소에 수익률 위기까지 더해져 <뉴스위크>나 <타임>과 같은 거대 전통매체에도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어사인먼트’라 불리는 외부사진가들에게 위탁해 이뤄진 사진취재가 현저히 줄어들고 자사 소속 기자들과 통신사의 사진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자사 기자가 있음에도 외부사진가와 사안별로 별도 계약했던 이유는 특정 영역에서의 그들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각 매체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경제위기는 비용 절감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불러왔다.

그 이면에는 시기상으로 그 이전에 다른 변화가 있었던 바, 게티이미지(이하 게티)로 대표되는 거대통신사의 등장이 그것이다. 게티는 1995년 스탁사진업체(다양한 사진들가들로부터 위탁받은 사진들의 라이센스를 관리하고 판매하는, 일종의 에이전시-역주)로부터 출발해, 관련 업종의 회사들을 인수합병하며 급성장했다. 특히 프랑스의 뉴스통신사 AFP와의 파트너십으로 전 세계 매체에 뉴스사진을 공급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았으며, 아마추어들이 온라인상에서 사진을 공유하는 최대 커뮤니티인 ‘플리커’와의 협력은, 이미지 수요와 공급 모두에서 가장 큰 규모를 이루는 유통회사로 변신케 했다. 물론 여기에는 종이를 기반으로 한 올드미디어의 쇠퇴와 함께 온라인미디어의 비약적인 발전이 기여했는데, 이는 곧 이미지 유통에 있어 실질적인 독점적 지위의 출현을 의미했다.

곧이어, 게티는 월정액제를 매체에 제안했다. 월 일정금액을 지불하면 일정 한도에서 자유롭게 사진을 사용할 수 있는 방식은, 비용절감에 골머리를 앓던 많은 매체에는 가뭄에 단비와 같았다.

 

우리는 이런 일련의 일들을 시장의 변화라고 부른다. 온라인 위주의 생활패턴의 변화와 일련의 경제적 위기상황으로 야기된 여러 일들을 쉽게 시장의 변화라고 총칭한다. 시장이란 단어에는, 변화를 통해 벌어지는 개별 인간의 구체적인 삶의 변화에 대한 의미가 상실되어 있다. 시장의 급변으로 인해, 당대의 세상을 기록하고 나아가 눈앞에 벌어지는 사건 너머의 이면을 보여주는 힘을 가졌던 사진가들이 일자리를 잃고, 자존감을 잃고 다른 일을 구해야 하는 현실을 직면하게 됐다. 소년 사진기자의 죽음은 이 지점에 함께 존재한다 지금 중동지역에서는, 취재 중 숨진 바라카트와 같은 10대 사진기자들이 취재경쟁을 벌이고 있다. 한 장당 10달러의 돈을 벌기 위해, 그리고 어쩌면 극적인 사진을 찍어 유수한 통신사에 스태프로 뽑힐 행운을 얻기 위해 목숨을 건 사진을 찍고 있다. 아무도 사진가의 이름 따위 보지 않는다. 더욱 더 자극적인, 더욱 적나라한 전쟁의 단편이 필요할 뿐이다. 보다 저렴한 가격에, 원가절감이라 부르는….

한국에서만 DSLR 천만대나 보급됐듯이, 이제 사진은 세계적으로도 대중화되었다. 페이스북에는 매일 3억장의 사진이 새롭게 생산되고, 또한 소비된다. 생산과 소비의 관계가 부단히 이루어지는 곳이 시장이라고 한다면 사진기를 가진 모든 사람들은 생산자이자 동시에 소비자이고, 시장참여자라 할 수 있다. 앞서 게티의 정책변화는 이 거대한 시장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기업전략 중 하나일 것이다. 그리고 많은 시장참여자들, 다시 말해 우리들은 조건부 무료 라이선스 정책에 환영의 뜻을 밝혔다. 동시에 게티라는 회사의 정책을 가능케 한 시리아 소년사진기자의 죽음에 대해서는 진한 슬픔을 표하는 것도 또한 우리들이다. 이 무슨 아이러니인가?

본격적으로 이미지는 소비되고 있다. 생산은 욕망에 대응하는 대상을 만들어내고, 소비는 욕망을 소모하는 행위이다. 이미지를 소비한다는 의미는 욕망을 소모한다는 뜻과 통한다. 그 욕망의 내면은 무엇일까? 국내 포털에서의 기사 어뷰징 문제가 심각하나,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사용자들이다. ‘충격’과 ‘경악’이라는 단어로 상징되는, 보장된 트래픽을 만드는 이는 실은 사용자들이다.

이제 이미지는 사유되지 않는다. 아니 애당초 사유되는 이미지라는 말은 어불성설이었을지 모른다. ‘현실의 재현’이라는 믿음이 깨지지 않는 이상, 이미지는 중독성 약물처럼 소비될 뿐이다. 시각적 정보는 대리체험을 가능케 한다. 우리는 시리아 내전을 직접 겪지 않고도, 시리아의 모든 상황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 더 많은 정보를, 더 많은 이미지를 본 사람이 현장에 있던 사람보다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시스템은 정보집약적 인간형이 현대의 롤모델이라고 끊임없이 우리에게 주입한다. 상품은 욕망이고 욕망을 소비하는 것 자체가 다시 욕망이다. 정보는 분절화되고, 칸막이로 둘러싸인 정보들은 재구성되어 총체적으로 해석될 기회조차 사라져간다. 시스템을 돌아가도록 만드는 구체적 진실은 영화 매트릭스에서처럼 실재하지만 보이지 않고 알 수 없는, 그래서 거꾸로 가상 속에나 존재하는 이 역설과도 같은 꿈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깨어날까? 무엇을 할까가 아닌 무엇을 할 수 있을까가 더 와 닿는 그런 시절에 말이다.

 

 

글‧서영걸

문화일보 사진기자 출신으로, 현재 한겨레 칼럼 ‘타인의 시선’을 기고 중이며, 8월 11~19일 서울 브레송 갤러리에서 전시회 ‘알바트로스’를 열었다. 사진작품사이트(www.youngk.co.kr)를 운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