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자유 무역' vs 중국의 '실크로드'
2014년 7월 13일 나렌다 모디 신임 인도총리는 세계무역기구(WTO) 전문가들이 애써 마련한 농산물 협정을 거부했다. 이는 이미 교착상태에 빠진 도하 개발 아젠다(1)의 사망소식과 다름없었다. 물론 농산물 지원을 계속하겠다는 목표는 인도의 내부적 문제다. 그런데 이 협정을 거부한 나라가 인도가 처음이 아닌데도 이 문제가 부각된 것은, 신흥국들이 미국을 필두로 한 강대국에 맞서 자국의 이익을 위해 협력하면서 WTO의 요구에 반대하는 경우가 점점 더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WTO의 무역자유화 장치는 대부분 봉쇄된 상태다.
대응책을 강구하는 서구 국가들과 다국적 기업들은 양자간 자유무역협정(EU-캐나다, 미국-한국 등)과 특히 지리적 위치에 따른 권역별 협정이라는 방안을 선택했다. 즉 미국과 EU의 범대서양 거대시장(GMT),(2) 미국과 태평양연안 11개국 사이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등이 그것이다. 세계를 권역별로 나누면서 미국은 세계를 이끌어갈 희망에 부풀어 있다.
2005년에 처음 시작된 TPP는 정치적으로나 무역 규모에 있어서나 난쟁이라 할 수 있는 4개국(브루나이, 칠레, 뉴질랜드, 싱가포르)이 모여 인접국의 압력에 저항하려 했던 데서 출발했다. 4년 후, 자유무역협정을 통해 중국이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가까워지자 이를 견제하려는 생각으로 미국이 TPP의 발상을 이어받았다. 이 지역에서의 영향력 실추를 우려하던 미국은 오스트레일리아, 말레이시아, 페루, 베트남을 끌어들인 데 이어 이미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으로 미국과 연결된 캐나다와 멕시코를 끌어들였다. 하지만 당시 중국의 최대 무역상대국이었던 일본은 2011년 11월이 되어서야 조심스레 가입했다. 이후 대단한 민족주의자인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이 협정을 아시아에서 미국의 오른팔 역할을 강화하는 기회로 삼고 있다.
“21세기는 미국의 세기가 되어야”
그런 식으로 미국 전문가들이 ‘21세기의 무역협정’이라고 부르는 TPP의 면면이 뚜렷이 드러난다. 성공할 경우, TPP는 전 세계에서 생산된 부의 절반, 국제무역의 35%, 전 세계 인구의 30%를 아우르게 될 것이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취임 당시 언급한 ‘아시아의 축’의 경제적 측면을 강화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군사적 측면은 필리핀, 호주, 베트남, 그리고 물론 일본과 체결한 전략협정을 확대하며 전개된다. 이 분야 전문가인 자샤리 케크가 강조한 대로, 이 협정은 중국의 날개를 잘라내기 위해 “이 권역에서 경제, 외교, 이데올로기, 전략 문제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과 개입을 강화하려는 글로벌 계획”(3)이다. 일부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21세기는 중국의 세기가 아니라 미국의 세기가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현실은 오바마 대통령의 꿈과는 거리가 멀다. 올해 봄에 오바마는 가장 가까운 우방국들(일본, 말레이시아, 필리핀, 한국)을 순방했지만 어떤 현안문제도 타개하지 못했다. 올해 11월 미국 중간 선거 전, 심지어 연말 이전에 어떤 협상도 타결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호주의 패트리샤 라날 연구원에 따르면, 공식 협상가들을 지원하기 위해 미국에서 600여 명의 고문단이 동원됐을 것이라고 한다. 일반 대중은 ‘세계에서 가장 큰 자유무역시장’으로 소개된 TPP 관련 정보를 얻으러 부지런히 쫓아다니고 있다. 퍼블릭 시티즌, EFF(Electronic Frontier Foundation) 같은 비정부기구와 위키리크스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집요한 작업을 벌이지 않아 협상 토론의 내용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말레이시아 외교통상부 장관은 작년 11월 별 소득이 없었던 협상 다음날 “(합의에 이르기) 참으로 어려울 것”이라면서 “최근의 위키리크스의 폭로가 협상 과정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4)이라고 인정했다.
관련 자료에 따르면 사실상 삶의 어떤 영역도 다국적 기업의 손아귀를 빠져나가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TPP는 전통적으로 잔존해 있는 관세의 완전 철폐를 원할 뿐만 아니라 모든 생산품(농산품, 살충제, 공산품), 서비스(은행, 저축은행, 퇴직기금, 보험 등), 지적소유권, 분쟁관련 규정(거대민영기업이 정부의 결정에 제소할 수 있게 해주는 특별법원)(5)에 대해 공통기준을 마련하려 한다.
지적재산권에 관한 대그룹들의 욕심은 끝이 없어 보인다. 예를 들면 기업이 보유한 특허권에 대해 “미국은 95년간의 배타적 권리를 제안하고 연구가 출간되지 않은 경우에는 120년까지도 제안한다.”(6) 의료 분야에서 이런 권리는 복제약(현재 대부분의 특허권 존속기간은 20년)의 종말을 의미한다. 시장을 주도하는 이들은 심지어 “사람 및 동물에 대한 진단, 치료, 외과 수술 방법”에까지 특허 시스템을 적용할 것까지 요구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심장수술 기술이나 암 진단 또는 치료를 위한 혁신적인 의료계획서 같은 것들을 돈을 주고 이용해야 할 것이다. 또한 자생식물의 특허권, 자본통제대책의 실종, 농산품 및 유전자변형 식품 분류의 소멸 등도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식의 리스트는 한도 끝도 없다.
어쨌거나 최고의 자유주의를 지향하는 정부들마저 가장 강한 자의 법이 자국의 자본주의그룹의 이익을 억누르고 있다고 투덜댄다. 캐나다는 일부 지적재산권의 확대를 거부했다. 보건전문가들이 속해있는 호주의사협회(AMA)는 약품, 식품 이력 추적관리, 금연운동 분야에서 “호주의 필요에 부합하는 보건정책 개발에서 호주 정부의 권리를 축소시킬 수도 있는”(7) 모든 개입을 거부할 것을 정부에 촉구했다. 호주는 현재 미국의 요구에 굴복하지 않고 있다. 베트남 정부는 자국의 섬유 및 제화 산업을 보호하고자 한다.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브루나이는 투자자와 국가 간 분쟁 규정에 관한 조항 도입에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저항이 가장 심한 나라는 일본이다. 지원금, 표준규격, 쿼터, 그리고 관세가 심각한 장벽을 형성하고 있는 일본은 미국을 위해서 이 장벽을 쉽사리 없앨 생각이 없다. 물론 일본의 아베 총리는 2012년 당선될 당시의 신중했던 태도를 벗고 훨씬 더 적극적으로 협상에 임하겠다고 공표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TPP가 “우리들의 마지막 기회”이며 “이 기회를 놓치면 일본은 세계의 권력 밖으로 밀려나게 될 것”(8)이라고 밝힌 바 있다.
어쨌거나 현재 협상은 일본의 다섯 마리 ‘신성한 소’, 즉 쌀, 밀, 소고기 및 돼지고기, 설탕, 유제품, 달리 말하면 쿼터제로 보호되는 86개 품목을 두고 난항을 겪고 있다. 쌀 수입은 일본 국내소비량의 5~8%를 넘을 수 없게 돼 있고, 초과할 경우 일본정부는 관세를 780%까지 부과할 수 있다. 밀과 유제품의 경우 관세가 252%까지 부과된다. 관세 철폐가 정치적 곡예라고 말하는 것은 입만 아플 뿐이다. 집권 자민당이 농민과 그 가족을 지지층으로 삼고 있어 대다수가 주저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아베 총리가 포기할 것 같지는 않다. 그는 TPP야말로 중국이 강탈해간 일본의 지위를 되찾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농업과 산업 분야에서 그 어떤 정부도 성공하지 못했던 개혁을 추진하려는 희망 속에 민족주의적 담론을 강화하고 있다. 경기회복 대책-그 유명한 ‘아베노믹스’-이 제대로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9) 아베 총리는 일본 대기업의 해외 이전을 보상하고 노후한 생산 장치를 현대화하기 위해 해외직접투자의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일본 국내총생산(GDP)에서 해외직접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4%에 불과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은 20%다.
TPP로 기대하는 또 다른 기적은, 특히 원자력과 철도 분야(미쓰비시가 알스톰과의 합작을 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에서의 수출 증대와 더 나아가 지금까지 해외 판매가 금지되어 왔던 군사장비 수출을 위한 제3세계 시장 개방이다. 예를 들어, 유제품이나 소고기에 대한 관세를 인하하는 대신 해외자동차 시장진입을 얻어내는 식으로 아베총리가 협상을 벌일까? 그런 합의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의견이 널리 퍼져 있다. 일본 정부는 일본 농민들을 굴복시키고(일본 농민들은 미국의 식품규격보다는 유럽의 식품규격을 수용하는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일본 자동차의 유럽 시장 개방을 얻어내기 위해, 그 결과를 바탕으로 미국에 트럭 관세 인하(25%)를 요구하기 위해 EU와의 자유무역협정을 이용하려는 의지를 숨기지 않는다. 당구로 치면 쓰리쿠션이다. 물론 이런 접근방식으로는, TPP 조인이 곧 이루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미국 측에서도 의회의 승인을 쉽사리 얻어낼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다. 공화당은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뿌리 깊은 적대감 때문에 대부분 반대하고 민주당 일각에서도 반대하고 있다.
시진핑 주석, 실크로드 르네상스 여론 몰이
중국은 이런 일련의 작업들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시나통신의 칼럼니스트 크리스천 에드워즈는 “TPP라는 봉투 안에는 안정된 수입을 보장받기 위해 선거기금에 수백만 달러를 기부하는 미국의 주요 수출산업의 필요와 변덕에 따라 미국식 규정체계를 부가하려는 기계장치의 나사들이 숨겨져 있다”고 대단히 직설적으로 말했다.(10) 중국이 협상에 다시 참여할 수도 있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있다. 몇몇 중국 경제학자들은 이것이 시진핑 주석 팀이 계획한 개혁과 사유화의 물결을 가속시키고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시켜줄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경제적 관점에서 중국은 자유무역시장 확대에 반대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그러나 중국은 자유화 과정의 주인으로 남는 방법, 특히 정보기술과 자본통제에 개입할 수 있는 수단을 보존할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지정학적 관점에서 중국은 미국-일본 축이 중국의 위력을 뒤흔들어 놓을 수도 있는 (그 정도는 아니라 할지라도 어쨌든 과소평가할 수도 있는) 토론에 말려들 생각이 없다.
따라서 중국은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10개국(버마, 브루나이,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라오스, 말레이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 베트남)과 일본, 호주, 뉴질랜드, 인도, 한국(인도와 한국은 TPP에 가입하지 않았다)과 함께 자신이 주도한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CEP, 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중국은 이들 국가의 인구수가 세계 인구의 절반에 해당하고, 세계 무역의 3분의 1을 차지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특히 한국을 향한 관심과 함께 협상은 이미 시작됐다.
독도를 둘러싼 영토분쟁과 성장둔화를 우려하는 아베 정부의 수정주의로 일본과 어려운 관계에 처해있는 한국은 북한 문제에 관한 의견 차이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가까워졌다. 시진핑 주석은 오는 11월 북경에서 개최되는 태평양아시아 경제협력포럼 이전에 한-중 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되도록 압력을 가하고 있다. 이 포럼에는 ASEAN, TPP에 관련된 모든 국가, 멕시코와 러시아까지 참가할 예정이다. 미국의 전통적 우방 한국과의 협정은 중국 지도자들에게 멋진 전리품이 될 것이다.
미국과의 양자대면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 그리고 중국의 계획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시진핑 주석은 기원전 2세기부터 중앙아시아를 누볐고, 이후에는 중국과 유럽을 이어주기 위해 바다로 나아간 대상(隊商)들을 언급하며 그의 무역 야심에 ‘실크로드’ 르네상스 발언을 덧붙였다. 바다에서는 중국의 운신의 폭이 작다. 육지에서 시진핑 주석은 2013년 말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을 순방했다. 지난 3월에는, 독일 뒤스부르크에서 러시아, 벨로루시, 폴란드를 경유해 중국의 충칭을 연결하는 철도 종점을 방문하기도 했다. 또한 러시아와 다양한 협정을 체결하고 있다. ‘실크로드’ 신화의 현대적 버전은 과연 미국의 ‘아시아의 축’에 저항하는 데 충분할 것인가?
글·마르틴 뷜라르 Martine Bulard
전 〈위마니테 디망스〉 편집장, 주요 저서로는 <중국-인도. 용과 코끼리의 경주>(2008) 등이 있다.
번역·김계영
파리4대학 불문학 박사. 저서와 역서로 <청소년을 위한 서양문학사>(2006), <르몽드 세계사3>(2013) 등이 있다.
(1) 2001년 WTO의 후원 아래 시작된 무역자유화 라운드. 2006년 중단되었던 협상은 이른바 ‘발리 패키지’를 성사시키기 위해 2013년 재개됐으나 인도는 이 타결안을 매장시켜 버린 것이다.
(2) Lori M. Wallach, “유럽인을 위협하는 태풍 범대서양 협정”,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3년 11월호
(3) Vince Scappatura, “The US 'pivot to Asia', the China specter and the Australian-American alliance”, <The Asia Pacific Journa>l, vol.11, n° 36.
(4) Pierre Demoux, “위키리크스가 경제협정을 위협할 때”, <Les Echos>, Paris, 2013년 11월 25일
(5) Raoul Marc Jennar, “50개국이 비밀리에 서비스 자유화 협상을 벌이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4년 9월호
Benoît Bréville & Martine Bulard, “국가를 강탈하기 위한 법정”,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4년 6월호
(6) Wikileaks, “Secret TTP treaty: Advanced Intellectual Property chapter for all 12 nations with negotiating positions”, 2013년 11월 13일, www.wikileaks.org
(7) “Looming trade deal could be health hazard: AMA”, Australian Medical Association(AMA), Sydney, 2014년 7월 22일
(8) 도쿄 기자회견, 2013년 3월 15일, japan.kantei.go.jp
(9) Katsumata Makoto, “일본의 거짓된 경제적 대담함과 진정한 민족주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4년 1월호
(10) Sina, 2014년 9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