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당 체제 뒤흔든 영국독립당의 부상

2014-09-30     오웬 존스

 

영국의 정치 엘리트계에는 영국 독립당(UKIP, United Kingdom Independence Party)이라는 하나의 유령이 존재한다. 2014년 5월 실시된 유럽의회 의원 선거에서 우파 포퓰리즘이라는 정체도 불분명한(1) 이 야당이 연정 형태의 여당인 보수당과 자유 민주당뿐만 아니라 야당인 노동당에게까지도 치욕적인 패배를 안겨주었다. 전국 단위 선거에서 하나의 정당이 노동당과 보수당을 동시에 이긴 것은 백 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소리 높여 ‘대중의 대변자’라는 이미지를 주도면밀하게 쌓은 맥주 애호가인 독립당 총재, 나이젤 파라지는 ‘정치적 대지진’을 예고했고 그 예언은 실현되었다.(2)

프랑스의 국민전선이나 유럽의 기타 극우 정당과는 달리 특이하게 뿌리를 내린 영국독립당은 1993년 중도 좌파를 표방한 대학교수 출신의 알렌 스케드가 창당한 정당으로 영국이 유럽연합에서 탈퇴하는 것을 주요 정강으로 채택했다. 당시는 유럽연합 계획에 반대하는 것이 아직은 극우파로 간주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1973년 영국의 유럽 경제 공동체에 가입이 테드 히드가 이끄는 보수당 정부에 의해서 조인되었다. 당시 장관이었던 마가렛 대처는 열렬한 지지자였고 좌파 노동당은 격렬하게 반대했다. 노동당은 경제 공동체가 냉전체제에 뿌리를 두고 있고 경제적으로 오로지 자유주의의 승리라는 단 하나의 목표만을 예약하여 사회주의자들의 열망을 영원히 사라지게 할 것이라고 간주했다. 그래서 1974년 선거에서 승리하자 노동당은 국민투표를 제안했다. 역시 정체가 모호한 토니 벤 같은 이 진영의 지도자들은 공동체 가입 철회를 유도하려고 애썼지만 성공하지는 못했다. 대중적으로는 경제공동체 가입 의견이 다수였지만 노동당 내부에는 반대파가 다수였다. 게다가 1983년 선거에서는 노동당이 영국의 탈퇴를 제안했다.

유럽경제공동체 가입을 둘러싸고 우파에 균열

그 이후 대처의 시대가 왔고 모든 것이 변했다. 1980년대는 그녀가 권좌에 오르는 것으로 시작되었고 노동자들의 임금 삭감과 대규모 탈공업화에서 기인한 복지국가라는 틀의 파괴로 기록되었다. 좌파와 임금 노조는 황폐하게 되어버린 노동자 공동체를 보호해줄 점진적인 입법조치를 브뤼셀에 기대했다. 반대로 철의 여인과 지지자들은 유럽 통합 계획은 이제는 영국의 도약을 방해할 하나의 커다란 위험으로 간주하게 되었다. 유럽 집행위원회가 성 평등과 보건, 안전 기준과 노조의 보호를 보장하는 헌장을 제안하자 대처는 1988년 “사회주의적인 헌장”이라고 비난했고 “우리는 브뤼셀이 지배하는 초국가적인 압력에 의해서 유럽 차원에서 우리가 재과세되도록 우리의 국경을 양보할 의사가 없다”고 분명히 선언했다.

그러자 영국 우파 내부에서 균열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한편에는 경제 공동체 가입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포진해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는 유럽통합에 회의적인 사람들이 대폭적인 재협상, 나아가서는 단순 명료하게 탈퇴할 것을 요구했다. 1990년대 수상이었던 보수당의 존 메이저는 마스트리히트 조약과 통합 유럽의 제도에 반대하는, 점차 증대해가는 당 내부의 이견과 직면해야 했다. 그는 곧바로 이 항의의 물결에 타격을 받아 이것이 1997년 선거에서 보수당이 당시 유럽통합에 전적으로 찬성했던 노동당에 참패해 와해될 지경에 이르게 했다.

통합 유럽을 향한 보수당의 강박 관념이 자신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것을 알아차리고 이 이슈가 일상의 주제로부터 멀어지게 하려고 데이비드 캐머런은 전략을 바꾸었다. 그는 2005년 보수당의 수장이 되자 당을 현대화시키겠다고 약속하고 통합 반대를 확고하게 못 박는 것을 포기했다. 이것이 덜 공격적이고 보다 타협적인, 간단히 말하면 ‘정제된’ 보수주의자들을 만족시켰다.(3) 그 결과로 2010년 선거에서 캐머런이 이끈 보수당의 지지율은 정점을 찍었다. 그리고는 단절이 온 것이다.

통합 유럽에서의 탈퇴를 주장하는 독립당이 전통적인 정치계에 어떻게 두려움에 가까운 전율을 던지면서 주요한 정치 세력으로 부상하는 데 성공했는가? 여론 조사에 따르면, 영국인들은 통합 유럽에 그다지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 더욱 알 수 없는 것은 브뤼셀과 관련된 주제는 독립당 지지자들의 75%가 꼽은 3대 주요 정치 현안에 속하지도 못한다는 연구 조사 발표도 있었다.

파라지의 독립당은 ‘대중의 군대’를 대변하고 강자에 맞서 약자를 보호한다고 자청했다. 그렇지만 파라지는 비싸기로 유명한 덜위치 사립학교(실제로는 독립적인 공립)에서 공부했으며 졸업 후 시청 원자재 담당 브로커로 일했다. 혹자는 독립당을 1950년대 프랑스 소매상 출신의 정치가 푸자드에 의해 결성된 프랑스 우익 정당인 푸자드당과 비교하려 들지도 모른다. 그런데 영국 정당은 프랑스에서 1950년대에 주요한 선거인단이었던 소시민 계층에는 그다지 지지를 기대하지 않는다. 유고브 연구소가 정기적으로 발표하는 조사에서 알 수 있듯이 서민의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전 브로커를 지지하는 유권자의 구성 내용을 보면 영국의 주요 4개 정당 지지자보다 더 서민적이다.

독립당, ‘자유지상주의자’라면서 신자유주의를 격찬

그러므로 정당과 유권자 사이에는 정치적으로 단절이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당은 자유지상주의자(libertarianism)라고 말을 하고 아무런 제약이 없는 신자유주의를 격찬한다. 독립당은 과거부터 시장의 소상인이나 백만장자를 실질적으로 똑같은 원칙으로 과세하는 비례세를 주장해왔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서 이 당은 (고소득에 적용될) 경계 세율을 검토하겠다고 이야기한다. 독립당은 공공 분야에서 200만 개의 일자리를 없애고 사용자들의 사회 비용 부담을 줄이기를 바라고 있다. 이는 사용자들에게 500억 유로(약 66조6천억 원)에 달하는 감세 효과가 있다. 게다가 공적 의료 제도를 민영화하고자 한다.

이 당을 선택하는 유권자들은 다른 열망들도 많다. 소비자 10명 중 8명은 매달 청구서를 무겁게 만들면서 기록적인 이익을 올리는 3개 거대 기업 지배의 에너지 산업을 다시 국유화하기를 바란다. 4명 중 3명은 비용이 많이 들고 위험하고 부분적인 철도 시스템을 다시 국유화하는 것을 지지한다. 3명 중 2명은 최저 임금을 올리고 노동자들을 고용하는데 일이 있을 때만 임금을 지급하는, 노동자들에게 가장 기본적인 권리조차 앗아가는 것과 같은 노동자에게 노동할 시간을 보장해주지 않는, 소위 ‘제로시간’이라 불리는 계약의 폐지를 바라고 있다. 마지막으로는 절반 이상이 집세의 한도 설정을 찬성한다.(4)

이뿐만이 아니다. 독립당은 인기를 얻는 데 유리하게 이용하는 다른 주제도 있다. 무엇보다 먼저 이민 문제가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이민에 반대하는 것이 매우 민감함 주제가 되었다. 2009년 유럽 의회 의원선거에서 전체 1,500만 유권자 중 100만 명 가까이가 신 파시스트 정당인 영국 국민당에 투표했다. 파라지는 이 정당과 애써 거리를 두려 했다. 그래서 유럽 의회에서 프랑스의 극우 정당 당수인 마린 르펜과 연합하기를 거부했다. 이민 문제에 관한 한 이 같은 적대감은 비단 극우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영국인들의 3/4이 이민을 제한하기를 바라며 이 주제는 2015년 총선의 주요 이슈로 해당 당사자들의 입을 통해 끊임없이 다시 오르내리고 있다.

대중의 불만을 이민 문제로 유도한 독립당

증대되는 불안정한 경제적 사회적 상황도 이 현상에 상당한 기여를 한다. 영국에서 생활수준의 하락은 리만 브라더스의 몰락과 2007년 위기보다 훨씬 이전부터 악화되기 시작했다. 중하급 수준 이하의 임금을 받던 근로자들 절반 이상의 봉급은 2004년부터 정체되기 시작했다. 이중 30%의 근로자는 거의 파산 직전이었다. 반면 기업들은 당시에 기록적인 이익을 고시했다. 이 같은 변화는 노조의 약화와 적어도 소위 임금 (부담 줄이기) 경쟁을 부추기는 세계화와 너무 낮은 최저 임금에 원인이 있었다.(5) 동시에 중급 정도의 보수를 받는 안정적인 일자리는 사라졌다. 그렇게 해서 사회가 마치 모래시계 형태가 되어버렸다. 시계의 윗자리는 보수가 높은 자유 직종 종사자들이 자리하고 하단부는 보수도 낮고 안정적이지도 못한 공공분야 종사자들이 차지했다. 게다가 영국은 주택 위기까지 경험해야 했다. 그 이후 정부들은 1980년부터 팔리기 시작했던 공공주택을 대체하지 못하고 수백만 명을 대기자 명단에 올려야만 했다.

대중의 분노가 대답을 찾지 못하거나 정치적으로 좌파에게서 만족을 얻지 못하자 이민 문제가 공감대를 형성하는 주요 주제가 되어버린 것이다. 언론과 당파의 지도자들의 부추김으로 이민자들이 임금 하락과 불안정한 고용, 주택위기를 설명해주는 희생양이 되어버린 것이다.

젊은 층의 실업으로 가장 심각한 타격을 입은 하트리풀, 미들스버러, 노우슬리, 블랙풀 같은 지역에서 오히려 이민자 비중이 비교적 낮았다. 역설적으로 이민자 숫자가 적은 지역에서 더 격렬한 반대의사가 표출되었다. 2014년 유럽의회 의원선거에서 독립당은 런던이나 리버풀 같은 대도시에서 낮은 득표를 기록했다. 이는 이민자들과 토박이 영국인들 사이에 빈번한 교류가 오히려 사태를 진정시킨 것이었다.

그런데 통합 유럽과 이민 문제는 설명하기 힘들 만큼 서로 얽혀있다. 독립당은 브뤼셀이 강요한 국경 개방은 싸구려 노동력의 유입을 불러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동유럽으로부터 2,600만 명의 노동력이 일자리를 찾아온다는 것이다. 2014년 선거에서 독립당의 포스터는 “(그들이) 어떤 일자리를 빼앗아 갈 것인가?”라는 도발적인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커다란 손이 포스터를 바라보는 독자들을 가리키며 오른쪽에는 영국인들에게 “(자신들의) 나라를 다시 통제하라”고 권고했다. 같은 맥락에서 파라지는 런던 사람들이 루마니아 가정이 그들과 같은 층에 살게 될 것을 두려워한다고 인용하면서 같은 도발을 반복했다.

총선 앞두고 보수당과 노동당 긴장

상식적으로 보면 독립당이 정권을 장악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결선 투표가 없는 단기명 투표는 지배적인 정당이 정치 지형을 장악하고 있는 영국에서 설 자리를 찾는 군소 정당이 정착하기는 쉽지 않게 한다. 영국은 650개의 선거구로 분할되어 있으며 1위 득표자가 상대적 다수득표로 당선된다. 그런데 독립당에 우호적인 지지층은 산재되어 있다. 그들은 국회의원 선거에서 영국 전체적으로는 20% 정도의 득표를 올리겠지만 실제 얻는 의석은 두서너 석에 불과할 것이다.

그런데 2015년으로 예정된 총선이 다가오면서, 보수진영에 두려움이 엄습하고 있다. 독립당이 얼마나 표를 분산시켜 결과적으로 노동당의 에드워드 밀리반드에게 실제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2010년 보수당에 투표한 유권자 중 5명에 1명꼴로 독립당으로 돌아섰다고 보고 있다. 파라지는 또한 10명 중 1명 정도의 노동당 지지자 표도 유인하는 데 성공했다고 보고 있다. 많은 영국인들은 2009년 보수, 노동당 양 진영에서 발생한 의원들의 공금 횡령 추문으로 직업정치인에 대한 혐오가 증가하고 있다.

갑작스러운 독립당의 득세에 대응하기 위해서 몇몇 정치 지도자들은 독립당의 주 메뉴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2013년 1월 캐머런 보수당 당수는 만일 보수당이 다음 선거에서 이기면 통합유럽에의 참여를 국민투표를 통해 묻겠다고 약속했다. 지난해에는 정부가 이민자들에게 “집으로 돌아가세요”라는 광고를 실은 홍보 트럭을 서민 구역에 보내기도 했다. 그 이후로 이민문제에 대처하는 자신의 결의를 보여주기 위해 노동당과 보수당이 상상력을 쥐어짜는 경쟁을 계속했다.

당연히 이러한 모방주의는 자신이 익숙한 원래 영역에서 논쟁에 유리한 파라지의 인기만 높일 뿐이다. 전문가들은 유럽의회 의원 선거 이후 독립당의 인기는 거품처럼 사라질 것이라 예견했다. 그러나 이들이 틀렸다. 정치적으로 굳건함을 과시하듯이 보수당 소속 의원인 더글러스 콜드엘이 2014년 8월 파라지 진영으로 당적을 바꾸는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보수당으로서는 이미 이긴 선거는 분명 아닐 것이다.

독립당의 부상은 좌파도 약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스코틀랜드에서는 통합 유럽에 회의적인 태도가 가져다주는 매력은 한계가 있다.(6) 사회적 분노와 경제적 불안정은 지난 9월 18일 실시된 독립 찬성투표에서 44.7%를 획득한, 이 나라의 독립에 찬성하는 정당의 부상으로 이어졌다.

그렇지만 잉글랜드에서 노동당의 밀리반드는 차별적으로 일관성 있는 정강이나 전통적 지지층의 초석인 서민 계층을 설득할 만한 프로그램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여타 다른 좌파 정당들도 의미 있는 조치를 제시하지도 못하고, 실망한 유권자들에게 다시 희망을 줄 만한 새로운 지도자들도 부상하지 않고 있다. 영국의 노동자들이 1870년대 이후로 가장 심각한 생활수준의 하락을 경험하고 있는 시점에 파라지가 무기고로 삼고 있는 경제적, 사회적 근심은 사라질 가능성이 희박하다. 그러므로 가장 혜택을 많이 받는 영국인들의 지갑만을 두툼하게 하는 데 기여할 조치들을 처방으로 내놓는 독립당의 비상은 당분간은 계속될 것이다.

글·오웬 존스 Owen Jones

저서로 <기득권과 그들은 어떻게 기득권층을 교묘히 빠져나가는가?>(2014) 등이 있다.

번역·이진홍

에세이스트, 불문학자

 

(1) Lire Gérard Mauger, ‘“Populisme”, itinéraire d’un mot voyageur’,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4년 7월호

(2) 독립당 27.5%, 노동당 25.4%, 보수당 23.9%

(3) Lire Renaud Lambert, ‘Décontamination de la marque Tory’,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0년 6월호

(4) Etudes YouGov des 8 août 2013년 8월 8일, 28 octobre 2013 et 12 janvier 2014

(5) 최저 임금은 21세 이상인 경우에 6.91파운드, 약 8.78유로에 해당된다.

(6) 2014년 유럽의회 의원선거에서 독립당은 10.4% 득표로 4위에 머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