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나토 복귀를 둘러싼 국제정치의 변화

외교적 '예외성'의 종말인가? 또는 미국지배의 확대인가?

2009-05-05     필립 레이마리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중재자 위치 상실로 ‘미국의 독주’ 우려
                        복귀 명분 ‘유럽방위공동체’는 환상일 뿐


  지난 3월 11일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프랑스의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재가입을 발표하며 나토 복귀를 공식화했다. 프랑스의 나토 복귀는 유럽 방위정책의 종말을 의미하는가? 아니면 미국의 세계 지배에 대한 순응을 의미하는가?

 

  1960년대 브뤼셀 북동부 근교 에베르에 세워진 거대하고 칙칙한 나토 본부 건물에서 “탄저병 경보!” 사이렌이 요란하게 울린다. 출구가 폐쇄되고 안전구역과 오염제거 텐트가 설치된다. 핵·방사능·생화학무기 보호복을 착용한 소방대원들이 분주히 움직인다. 몇 주 동안 벌써 두 번째로 정체불명의 우편물이 한 직원에게 전달된 것이다. 직원들은 지루해 보이는 얼굴이다. 40여 개국 군인들과 민간인들은 경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토라는 바벨탑의 끝없는 복도를 오간다. 자동개폐문이 열리고 닫히면서 배지를 단 사람들을 토해낸다. 회원국 ‘전문가’들은 녹색 배지를 달고 ‘협력국’ 대사들은 황색 배지를 단다.

 모든 외부 방문객들은 본부 직원의 안내를 받아야 하며 가방을 몸에서 떼어놓을 수 없다. 자동개폐문은 금속탐지기가 장착돼 있고 주차장과 집단시설은 ‘통제’ 구역에, 회의실과 협력국 사무실은 ‘제한’ 구역에, 나토 회원국 대표단과 국제사무국 및 사령부는 ‘보안’ 구역에 있다.
 1966년 파리에서 쫓겨나 브뤼셀 근교로 옮겨온 나토 본부에서 ‘까다로운 동맹국’(1)인 프랑스의 통합군 복귀 전망은 관심의 대상이며 때로 열광적 반응을 끌어내고 있다. “나토는 프랑스 국민들의 열정의 대상이다.” 프랑스 국방부의 대변인을 지냈으며 현재 프랑스 출신으로는 역대 나토 최고직인 외교 분야 사무부총장직을 맡고 있는 장 프랑수아 뷔로의 말이다.
 
 

                                      <지도>, 1979-알리시에로 보이티

     나토의 임무, 전방위로 확대
 폴 퀼레 프랑스 전 국방부 장관의 지적처럼, 나토는 ‘초강대국’ 미국의 이익에 복무하는 ‘자유세계’의 군대로서 소련의 붕괴 및 바르샤바조약기구 해체와 동시에 사라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미국과 그 동맹국들은 나토의 개입 영역을 확대해 새로운 임무를 부여하고 나토를 유지하는 것을 선택했다.(2) 야프 더후프 나토 사무총장이 ‘나토가 직면한 최대 위협’으로 지적한 테러와의 전쟁은 ‘전방위’ 또는 ‘경계 없는’ 조직이 된 나토의 새로운 임무 중 하나다.(3)
 “아프가니스탄에서 나토는 중대한 도전이라고 할 수 있는 새로운 유형의 분쟁에 직면해 있다.” 뷔로는 다른 나토 고위 관료들처럼 저 멀리 떨어진 분쟁에 집착하고 있다. “이 지역에서 테러 근절과 안보 확보는 별개의 것이 아니다. 아프가니스탄의 안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 안보 문제와 관련이 있다.”
 탈레반, 부족, 지방, 선거, 테러, 군대, 경찰, 무기 밀매, 이웃국가 파키스탄의 안정이 나토의 경계와 가장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펼쳐지는 나토 아프가니스탄 작전의 구성 요소들이다. 작전 수행 과정에서 나토는 ‘대부인 미국’을 맹종하는 것처럼 보인다. 미국이 작전의 큰 줄기를 결정할 뿐만 아니라 나토군의 거의 절반이 미군이다. 여기에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동부와 남부에서 9·11 테러 보복과 알카에다 색출을 위한 독자적인 처벌 전쟁, ‘항구적인 자유’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4) 뷔로 말대로라면 “아프가니스탄은 테러, 무기 밀매 등 나토의 변화를 강제하는 ‘새로운 위협들’의 집합소”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직후 아프가니스탄 문제의 재검토를 지시했다. 이 문제를 자신의 ‘과제’로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동시에 이라크 주둔 미군의 부분적 철수를 계획했다. 이에 대해 뷔로는 “오늘날처럼 한정된 자원으로 전쟁을 수행하는 경우, 누구도 심지어 미국도 그런 개입 작전을 단독으로 수행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4월 3일과 4일, 스트라스부르 나토 정상회담에서 미국의 새로운 아프가니스탄 전략을 발표하기에 앞서 조지프 바이든 부통령은 3월 10일 나토 이사회 당시 혁신적인 내용이 담긴 연설을 통해 ‘민간의 분발’을 촉구했다. 바이든 부통령은 아프가니스탄의 해법은 단지 군사적 해법에 국한될 수 없다고 강조하면서 농업개혁을 위해 지역별로 필요한 자문위원 비율을 제시하기까지 했다. 3월 22일 오바마 대통령은 ‘군사옵션 지상주의’를 피하기 위한 ‘전략상의 후퇴’를 제안했다. 또한 미국의 새 정부는 ‘온건파 탈레반’과의 협력은 물론, 파키스탄, 중앙아시아 국가들, 심지어 이란 및 아프가니스탄과의 평화협상을 원한다. 그러나 한 전문가의 분석을 따르자면, “모든 것은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한 군대가 나토군의 구실을 수행할 수 있는지에 좌우될 것이다”.(5)

 그 밖에 나토는 2001년 10월부터 테러전에 대비한 합동해상작전을 실시하고 있다. 8년 동안 지중해상에서 수십만 척의 선박이 검문을 받았고 160여 건의 선박 검사가 실시됐다. 이 예방 작전의 목적은 입안자들에 따르자면 해상 교통량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획득하고 마피아를 색출하는 것이다. 한 해군 장교는 “적군을 괴롭히는 것이 목표이며, 불법이민 문제는 작전과 상관없다”고 말하며 모든 오해의 소지를 일축했다. 러시아를 비롯한 나토 비회원국 해군들도 이 작전에 참여했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3월 11일 군사학교에서 열린 학술회의 폐막 연설을 통해 프랑스의 나토 복귀를 공식화하면서 프랑스가 서구 민주주의국가 그룹의 일원임을 강조했다. “프랑스의 역할은 중도적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 아니다. 중도적 태도란 결국 아무 견해도 없는 것이다. 프랑스는 나토 복귀로 자주국방을 강화할 수 있다. 허울뿐인 탈퇴 상황 유지는 프랑스의 운신의 폭을 좁히는 것이다.”
 
 프랑스 복귀, 국제 무대 재등장?
 프랑스의 나토 복귀는 금융위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프랑스의 국제 무대 재등장을 노리는 프랑스 대통령의 미디어 전략 중 하나에 불과할까? 아니면 어차피 지지하지 않는 드골주의와 결별하고 싶은 ‘친미’ 사르코지의 신중한 사상적 접근일까?
 드골 장군은 이미 1958년 존 포스터 덜레스 미 국무장관의 미국 전술 핵무기와 중거리 미사일 지역방어체제 유럽 배치 계획에 반대하는 이유를 명확히 밝혔다. 즉, 프랑스는 미국의 핵무기를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조건으로만 영토 내 배치를 수용할 것이며 자체적으로 핵을 개발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6) 물론 이는 미국이 용인할 수 없는 조건이었다.
 드골은 미국 헤게모니를 반대하면서도 소련을 두려워했던 국가들에 ‘제3의 길’을 제안함으로써 모든 대륙을 아우르는 야심찬 대외정책을 개발하려 했던 것이다. 그로부터 몇 년 후인 1966년 드골은 프랑스의 나토 통합군 탈퇴와 나토 기지 및 사무실 폐쇄를 결정했다.
 ‘블록 구축’이라는 낡은 논리를 따른 사르코지의 선택은 드골의 정책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방향을 지향한다. 최근 몇 주 동안 나토 고위층은 ‘탕아’의 복귀가 무산되지 않도록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더구나 “탈퇴를 결정한 것도 복귀를 선택한 것도 프랑스”라며 ‘프랑스적 예외’의 함의를 축소했다. 그런데 프랑스는 분담금 비율로 제4위 나토 회원국이며, 이미 나토 38개 주요 위원회 중 방위계획위원회와 핵전략위원회를 제외한 36개 위원회에 참여하고 있고, 프랑스 장성 2명은 2004년부터 발칸반도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나토사령관을 맡아왔다.
 “프랑스는 지갑에 손을 댔고(7) 아프가니스탄에서 피의 대가를 지급했다. 이제 프랑스는 결정 과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의 나토 통합군 복귀 전망이 촉발한 ‘소동’에 놀란 한 나토 전문가의 발언이다. 어떤 외교관은 프랑스적 예외가 있었다 해도 오직 정치적 예외였을 뿐이라고 말한다. 프랑스의 나토 복귀는 ‘합리화’나 ‘모순의 종식’일 뿐이며, 정치적으로는 많은 의미를 갖지만 기술적으로는 작은 걸음을 하나 내디딘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마지막 단계’ 주장이다. 즉, 나토 복귀는 3월 17일 의회 연설에서 프랑수아 피용 총리가 강조했던 단순한 ‘조정’에 불과하다.
 사실 나토 복귀의 문은 1995년 자크 시라크 대통령 당선과 동시에 열렸다. 프랑스는 나토 국방장관회담과 군사위원회 참여를 결정했고, 나토 군사기구의 완전한 일원이 됐다.(8)
 
 복귀 전 이미 사령관도 맡아
 나토 주재 프랑스 대표단도 지난 몇 주 동안 프랑스의 통합군 복귀 협상을 방해하지 않도록 신중한 태도를 견지해왔다. 나토의 다양한 기구에 배치될 프랑스 출신 고위 장교 50여 명과 기타 장교 800여 명의 임명 논의는 올해 말까지 계속될 것이다. 어떤 이들은 “사람들이 ‘어떻게 프랑스가 43년 만에 통합군에 복귀하면서 여태껏 미국의 차지였던 사령부들을 확보했을까?’라고 묻는 시선으로 우리를 바라본다”며 자부심을 숨기지 않는다.
 회원국 대부분은 프랑스의 결정을 환영했다. 그러나 영국이나 폴란드처럼 미국의 최측근 국가로서 일종의 ‘충성 프리미엄’을 기대할 수 있었던 국가들은 나토 장교 인원을 1만7천 명에서 1만3천 명으로 줄이는 감축협상이 시작되는 시점에서 프랑스 장교들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하는 상황을 걱정한다. 그러나 주로 미 국방부의 지시를 전달할 장교들의 국적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사르코지 정부는 이 서구 국가 ‘그룹’ 내 복귀를 정당화하려고 15년 전부터 많은 변화를 경험한 나토가 대서양 외부 지역에서 위기관리 능력을 증명했다고 주장한다. 프랑스의 핵 억지력은 나토 복귀와 상관없이 유지될 것이고, 프랑스 군대의 자동 개입도 없을 것이고, 평화시 나토군의 영구적 주둔도 없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나토 고위층은 나토가 그루지야의 위기를 계기로 미국과 동유럽의 군사옵션 우선전략을 억제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주장한다. “모든 것이 합의를 통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2008년 4월 부쿠레슈티 나토 정상회담에서 프랑스와 독일은 그루지야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서두르지 못하도록 부시 대통령을 설득할 수 있었다.
 어떤 전문가의 농담처럼 프랑스의 나토 통합군 복귀는 ‘전사 위험이 없는 외부 작전’이다.(9) 프랑스 장교들은 장교 100여 명이 나토 사령부 고위직을 차지할 수 있는 상황에 만족한다. 이들은 10여 년 전부터 ‘나토군 통합체계’를 준비해왔다. 릴에 주둔한 다국적 사령부는 2007년 ‘고도준비태세 군대’로 인정받았고 6만 명까지 지휘할 수 있다. 장성들도 일련의 대외작전에서 사령탑을 맡았다. 오늘날 프랑스 군 물자와 절차의 대부분은 ‘상호 운용성’이 강화돼 나토 규준뿐 아니라 영국군 규준에도 적합하다.

 나토의 프랑스 장교들은 프랑스의 나토 복귀가 유럽 방위산업을 부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지금까지 동유럽 국가들은 미국의 눈치를 보느라 프랑스제 무기 구입을 망설였다.” 한 장성의 주장이다. “한 동유럽 국가 대표는 내게 ‘40년 전부터 당신들은 전투기 때문에 경쟁했다’고 말했다. 프랑스는 라팔기를 내세워 단독 행동을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최근 몇 년 동안 미국과 유럽 간 기술 격차는 더 심화됐다. 한 대령은 이 격차가 좁혀지지 않는다면 “미군이 전쟁 및 안보의 모든 수단과 기술을 아우를 수 있는 유일한 군대이고 유럽군은 미군의 ‘대체재’ 구실을 할 수밖에 없다는 전망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예컨대 영국의 핵 공격력은 미국의 핵무기 제조회사에 완전히 의존하며, ‘새로운 유럽’ 국가들, 즉 소련의 옛 고객 거의 모두는 미국 무기회사들을 애용한다. 따라서 유럽 방위산업은 어려운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다.

 유럽방위공동체의 진전을 나토 복귀 조건으로 삼았던 프랑스 정부도 유럽방위공동체가 별 진전이 없음을 인식하고 있으며, 프랑수아 피용 총리의 표현을 빌리자면 ‘실용적인 방법’을 주창한다. 피용은 “방위 분야에서 어른이 된 유럽과 미국 간에 좀더 균형있는 관계”(10)가 구축된다면 유럽방위정책이 조금씩 확립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나토 관계자들은 비공식적 발언이기는 하지만 피용의 주장을 부정한다. “유럽안보방위정책(ESDP)은 실패했다. 프랑스의 유럽연합 의장국 임기 동안 사소한 성과만 얻었을 뿐이다. 나토 회원국들은 나토와 별개의 ESDP를 원하지 않는다. 효과적인 ESDP를 바란다면 나토를 통해서 추진하라.”
 이는 사실 유럽연합의 독립사령부 창설을 끈질기게 방해하고 베를린 장벽 붕괴로 폐기됐던 관행인 나토 상설군 창설을 제안한 영국의 견해다. 존 허턴 영국 국방장관은 3천 명의 나토 상설군이 창설되면 2008년 러시아의 그루지야 침공 이후 불안해하는 동유럽 국가들을 안심시킬 수 있고, 후방의 안전을 확보해줌으로써 아프가니스탄 파병에 회의적인 국가들을 설득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

 위베르 베드린 프랑스 전 외무장관은 유럽방위공동체에 대한 환상을 품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유럽방위정책은 주변적인 활동 분야이거나 하도급 계약을 체결한 분야라고 할 수 있으며, 순수 서유럽 국가들의 재결집을 정당화하기 위한 핑계에 불과하다. 프랑스의 유럽 동맹국들은 ESDP를 원하지 않는다.”(11) 베드린은 유럽의 태도와 현재 프랑스의 태도가 ‘서양 지배 블록’의 존재를 기정사실로 만들까 걱정한다. 비록 나토 회원국 대부분이 유럽연합 회원국이라 해도 나토 관계자들은 유럽연합과 나토의 정치관계가 순조롭지 못하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인정한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와 나토 본부가 위치한 브뤼셀 서 이 두 기구 간의 ‘정신분열증’을 고쳐보려던 나토의 한 고위 간부는 “회원국들이 대부분 겹치는 상황에서도 나토와 유럽연합의 시각차가 크다”고 개탄한다. 두 기구의 형식적인 협력은 보스니아 사태 당시 유럽연합의 물자 지원에 국한된다. 보스니아 사태 해결에는 나토와 유럽연합에 동시에 가입한 회원국들, 아이슬란드·노르웨이·터키·미국·캐나다 등 유럽연합 회원이 아닌 나토 회원국들, 키프로스·아일랜드·스웨덴·핀란드·몰타 등 나토 회원이 아닌 나라들이 모두 참여했다. 더구나 터키·키프로스·마케도니아·크로아티아 문제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까지는 아니라도 지속적인 분쟁의 씨앗이다.
 
 나토, 유럽연합, 유엔 관계 모호
 활동 분야와 임무에서 두 기구 간에 사실상의 경쟁과 중복의 위험이 존재한다. 어떤 이들은 역할 분담을 주장한다. 예로 유럽연합은 경찰특공대나 헌병, 해적 소탕 또는 아프리카 개입 작전, 나아가 나토가 원칙적으로 중립을 유지하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담당하고,(12) 반면에 나토는 중무장 군사작전을 수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 국방백서는 “나토가 대규모 군사작전을, 유럽연합은 국지분쟁·안정화·재건을 전담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강조한다.(13)
 또 다른 쟁점은 동유럽으로의 정치적 확대 문제다. 1949년 12개 회원국으로 출발한 나토는 현재 26개 회원국을 거느리고 있으며 곧 그 수가 28개로 늘어날 것이다. 이에 대해 사무총장의 한 측근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토 확대가 어디에서 멈출지는 알 수 없다. 나토는 가치 동맹이다. 모든 요청이 고려돼야 한다.” 알바니아와 크로아티아는 정식 가입의 최종 단계인 초청국 자격으로 이미 나토 이사회에 참여하고 있다.

 나토 본부는 ‘전방위’ 개입을 부인한다. “우리는 유엔이 되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아프가니스탄 작전을 제외한 모든 개입은 유엔 안보리의 지시로 수행된다. 그러나 2008년 9월 23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더후프 나토 사무총장은 세계평화 유지활동에서 나토에 사실상의 공동책임자 지위를 부여하는 협약을 은밀히 체결했다. 유엔은 1990년대 이후 유고슬라비아 위기를 겪으며 나토의 미국 의존도를 고려하지 않고 나토를 유엔의 ‘군대’로 만들었다.
 나토는 자신의 활동 영역을 파병, 지역 통제, 인도주의적 지원까지 확대하고 중앙 및 남아시아까지 활동 지역을 넓힘으로써 효용성을 증명하려 했다. 나토는 유엔을 위한 ‘군사력 제공자’를 자처하며, 발칸반도와 코카서스뿐만 아니라 마그레브나 걸프 지역에서 ‘협력국’의 증가를 기뻐한다. “심지어 콜롬비아와 싱가포르도 국제지원안보군(ISAF)의 일원으로 아프가니스탄 작전에 참여할 것이다!”

 반대로 나토 주재 러시아 대사 드미트리 로고진은 “러시아를 제외한 모든 국가들에 문이 열려 있다”고 불평한다. 로고진은 러시아 인접 국가들의 나토 가입을 ‘불쾌한 충격’으로 간주한다. 로고진은 “러시아가 볼 때 확대된 나토는 각국의 정치 문제에까지 관여하는 외세 군사 블록”이라고 지적한다. 로고진의 주장을 따르자면, 2008년 4월 부쿠레슈티 나토 정상회담은 그루지야가 남오세티야와의 분쟁을 군사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청신호를 준 셈이다.
 로고진은 러시아 국민의 35%가 나토 가입에 찬성하는 반면에 우크라이나 국민은 25%만 나토 가입에 찬성할 것이라고 빈정거린다. “그렇다면 누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결정했을까? 대통령? 아니면 영부인?” 그러나 그는 이제 나토가 “유럽·대서양 지역에서 러시아의 참여 없이는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했을 것”이라고 기뻐한다. 서구 국가들이 러시아를 고립시키려 한다고 확신하는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3월 17일 ‘대규모 재무장’을 약속했다.
 
 프랑스, 중재자 구실 포기 우려
 나토 관계자들은 동서 대결 시대의 부정적인 양극화를 두려워하고 “나토는 러시아를 적으로 간주하지 않는다”고 반복한다. “그루지야 사태로 관계가 냉각된 후 대화를 재개하기 어려운 상대임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러시아에 나토 확대를 감시할 권리를 주는 것은 말도 안 된다.” 3월 초 힐러리 클린턴 신임 미 국무장관은 다수의 동유럽 회원국들이 반대했음에도 협상 중단 6개월 만에 러시아와의 공식 관계 재개를 승인했다. 같은 날 나토 본부에서 로고진 대사는 러시아가 아프가니스탄의 나토군에 지급되는 보급품 수송 열차의 러시아 영토 통과를 허가했다고 발표했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은 프랑스의 나토 복귀를 최악의 경우 쓸모없는 것으로, 최선의 경우 시기상조로 판단하며, 프랑스의 외교적 특수성과 중재자 역할 포기로 귀결되지 않을까 두려워한다. 좌우를 막론하고 로랑 파비위스, 알랭 쥐페, 도미니크 드빌팽, 리오넬 조스팽 등 전임 프랑스 총리 4명은 이 선택에 크게 동요했다.
 나토 복귀로 프랑스는 2개 최고사령부 지휘권을 확보하게 된다. 그로 인한 이득은 ‘실력을 통한 출세’(14)로 묘사되며 논쟁의 대상이다. 프랑스 출신 장성이 노포크 나토군 변화전략사령부(ACT) 사령관에 임명될 것이다. 프랑스의 나토 관계자들은 이 자리가 60년 만에 미국이 처음으로 양보한 자리라고 기뻐한다. 프랑스는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나토 사상의 키워드인 ‘변화’를 주도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외교관의 설명을 따르자면 이는 ‘주둔군에서 파견군’으로의 변화를 준비하는 것이다. “나토의 핵심 분야는 제5조가 규정한 집단안보이다. 변한 것은 대서양 외부 지역 개입이다.”
 또한 노포크 사령부는 시대에 뒤떨어진 나토의 새로운 전략 개념을 구상해야 할 것이고 ‘전략적 불확실성’과 테러, 사이버범죄, 해적, 생화학무기 같은 새로운 위협, 미사일방어체제나 유럽연합과의 협력 문제 등을 고려해야 한다. 상호지원 의무를 규정한 나토 헌장 제5조도 재정의해야 한다. 그러나 퀼레는 “사실상 미군의 군사독트린이 지배하는 방위계획 과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것은 환상”이라고 설명한다.
 역시 프랑스의 몫인 리스본 사령부도 나토의 9개 지역 사령부 중 하나일 뿐이다. 리스본 사령부는 신속대응군을 담당한다. 신속대응군은 원래 5천 명이었으나 현재 재원 부족으로 절반으로 줄었다. 물론 벨기에 몬스의 유럽 동맹군 최고사령부는 여전히 미국이 장악하고 있으며, 2002년 이후 유럽 동맹군 최고사령관이 미군 유럽사령관을 겸임하고 있다.

 

<각주>

(1) 피에르 를로슈, <까다로운 동맹국>(L’Allie indocile), 2009년 3월. 전 나토 총회 의장인 저자는 최근 프랑스의 아프가니스탄 및 파키스탄 특사로 임명됐다.
(2) paul.quuiles.over-blog.com 참조.
(3) ‘새로운 임무를 모색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L’Allianceatlantique a la recherche de nouvelles missions),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8년 4월.
(4) 나토는 회원국이 공격받을 경우 나머지 동맹국들의 개입 의무를 명시한 나토 헌장 제5조에 따라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여했다.
(5) 3월 19일치 <헤럴드트리뷴>은 미국의 새로운 전략이 무엇이 될지 분석하고 있다. 즉, 회원국들이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기를 거부하는 나토를 배제하고 ‘적극적 우방국’들로 새로운 동맹을 구축하는 것이다. 스트라스부르에서 열릴 나토 정상회담에서 이 정보의 진위가 가려질 것이다.
(6) 폴마리 드 라 고르스, ‘프랑스-미국 갈등의 원인’(Aux sources de la dispute franco-americaine),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3년 3월.
(7) 연 1억7천만~1억7500만 유로.
(8) 앙리 올리비에 & 가브리엘 아르누, ‘나토 복귀는 포기다’(Le retour dans l’OTAN est un renoncement), <Terra Nova>, 2009년 3월 6일. 폴마리 드 라 고르스, ‘프랑스의 수치스러운 나토 복귀’(Retour honteux de la France dans l’OTAN),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1996년 1월.
(9) <로이터>, 2009년 2월 26일.
(10)에르베 모랭 프랑스 국방부 장관, <AFP>, 2009년 3월 5일.
(11)국제관계 및 전략 연구소 학술회의, 파리, 2009년 3월.
(12)나토 감사위원회는 나토 사무총장이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폭격을 성토하는 것을 거부했다고 지적하며 이-나토 포럼 당시 치피 리브니 이스라엘 외무장관의 발언을 인용하고 있다. “서구 문명과 대서양 공동체는 이스라엘의 자연 서식지다.”
(13)국방 및 안보 백서(Defense et securite nationale. Livre blanc), 2008년 6월.
(14) 피에르 를로슈, <LCI>, 2009년 3월 17일.

글/필립 레이마리 Philippe Leymarie
번역/박수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