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층 편들다가 공공부채 악화시킨 프랑스 정부

2014-09-30     장 드가리

드디어 임무 완수다. 2011년 가을부터 프랑스 전국 각지에 등장한 시민부채감사단(CAC)(1)의 100여 개 지역위원회는 시민들이 모두 허리띠를 졸라매며 공공부채의 부담을 나누어 질 것을 합창이라도 하듯 한목소리로 요구하는 수많은 논설가와 소위 ‘전문가’들의 의견에 답하고자 했다. 이들이 던진 질문은 단순하다. 이 빚을 정말 갚아야 할까?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정말로 ‘모두’ 갚아야 하는가? 시민부채감사단 연구그룹이 3년에 걸친 연구 결과를 한데 모아 2014년 5월 전면 공개한 연구에 그 답(2)이 있다. 프랑스 공공부채 중에는 비합법적 부분, 즉 국가가 갚을 근거가 없는 부채가 전체의 59%에 달한다는 것이다.

시민부채감사단은 활동 시작 후 2년 동안 비합법적 공공부채의 액수를 밝히지 않았다. 빚이 얼마인지 계산하기 전에, 왜 생겼는지 그 경위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논리였다. 요컨대 양적 평가를 하기 전에 질적 평가가 선행되어야 했고, 이 과정에서 몇 가지 밝혀야 할 의문점이 있었다. 이 빚은 어디서 발생했는가? 공익을 위해 진 합법적인 빚인가 아니면 소수의 특권층을 위한 비합법적인 빚인가? 국민들을 쥐어짜지 않고 빚을 경감할 방법은 없을까? 이런 숙고에는 시간이 걸렸다. 바로 숙의(熟議) 민주주의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분석 끝에 결국 해답이 나왔다.(3) 이제 드디어 양적 평가로 넘어갈 차례다. 그런데 양적 평가에는 놀라운 사실이 몇 가지 숨어 있다.

언론, 그 언론이 편애하는 초대손님들, 그리고 정치지도자의 대다수가 하는 말이 사실이라면 부채가 급증한 원인은 무엇보다 국가가 ‘비만형’이 되면서 지출이 과도하게 많아진 탓이다. 디디에 미고 초대 회계감사원장은 얼마 전 프랑스가 “위험지역에 들어섰다”(4)고 진단했다. 몇 년 전, 그때까지만 해도 국정운영에 대한 충고를 아끼지 않고 쏟아낼 수 있었던 장-프랑수아 코페 당시 대중운동연합(UMP) 당 대표는 부채 문제를 ‘사회 문제’로 끌어올렸다. 그는 부채 문제에 대해 할 일이 딱 한 가지, “공공지출 삭감”(5)이라고 주장했다. 마뉘엘 발스 총리가 이끄는 내각도 같은 견해를 보였다. “부채와의 전쟁”은 필연적으로 “공공지출과의 전쟁”을 수반한다는 것이다.(6) 하지만 이 논리는 거짓으로 드러났다.

부유층과 기업 세제 완화로 세수 줄어

우선 공공부채 중 국가부채의 지분을 먼저 살펴보자. 2012년 기준 국가부채의 비중은 전체 공공부채의 79%이고, 나머지는 사회보장보험과 지방자치단체의 부채이다. 경제지 <레 제코(Les Echos)>의 도미니크 소 기자가 매일 아침 출연하는 프랑스 앵테르 라디오 논단 등을 통해 암시하는 바와는 달리,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지출의 규모는 1980년대 평균 22.7%에서 2012년에는 20.7%로 오히려 줄어들었다. 적자가 늘어난 이유, 즉 부채가 늘어난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국가가 부유층 가계와 대기업에 대한 세제를 완화하면서 수입원의 큰 부분을 잃었기 때문이다. 일명 ‘세금방패’(bouclier fiscal: 한 해 동안 납부한 세금이 그해 소득의 50%를 초과했을 때 초과액을 환급해 주는 제도-역주)를 비롯한 수많은 세제혜택과 각종 틈새 돌파구 때문에 30년간 GDP의 5%에 육박하는 수입원이 떨어져 나간 것이다. 이들 세제수입의 GDP 대비 규모는 1980년대 초반 22%에서 최근 3년 동안에는 17%로 떨어졌다.

한 해에 프랑스 국내에서 생산된 부의 총량을 의미하는 연간 GDP는 약 2조 유로다. 이중 1%라면 200억 유로가 된다. 지출은 GDP 대비 2%를 절감했는데 수입이 GDP 대비 5%만큼 감소했으니 결과적으로 국가재정 적자는 GDP의 3%, 즉 600억 유로가 늘어난 것이다. 이런 상황을 초래한 정책 중 얼마만큼이 비합법적이었는지 그 양을 어떻게 계산할 수 있을까?

시민부채감사단의 연구진은 조심스러운 가정을 하나 했다. 이들은 국가수입 하락을 초래한 주요 의사결정이 이루어진 1997~2007년 사이의 10년에 주목했다. 이 시기 경제는 침체상태가 아니었다. 연간 경제성장률이 평균 2.3%에 달했다. 이런 시기에 프랑스는 제 살 깎아먹기 정책을 수립하는 대신에 국가수입의 GDP 대비 규모를 1997년 수준으로 유지하면서 그 수입을 공익상 필요한 일에 사용하거나 미래를 위해 투자한다든가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국가는 이를 포기했고, 결국 부유한 이들은 한층 유리한 세제정책을 적용받는 한편 안전하고 수익률 좋은 대출까지 받으면서 이중으로 혜택을 누렸다. 이들에게 빚을 진 것은 다름 아닌 국가였다. 국가가 이들의 세금을 보다 많이 저감하기 위해 빚을 낸 것이다.

그 이후 정부가 국가수입을 당시 수준으로 유지했다면 공공부채의 주요 구성요소인 국가부채는 현재(약 1조 5천억 유로)보다 GDP 대비 22% 만큼 적었을 것이다.(7) 이 진단은 2010년 발표된 공문서 2건의 내용과 맞아떨어진다. 니콜라 사르코지 당시 대통령의 지시로 공공재정 현황을 분석한 폴 샹소르와 장-필립 코티의 보고서, 그리고 “보상받지 못한 10년간의 손실”을 역설한 하원 재정경제예산관리위원회 질 카레의 보고서가 그 공문서이다. 이들 자료가 바로 비합법적 공공부채에 대한 양적 분석의 첫걸음이다.

이중 카레의 보고서는 국가를 비롯한 공공기관이 금융시장에서 빌린 자금의 금리에 대해서도 다루는데, 이들 실질금리(인플레이션 보정치)는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반 등 여러 차례 과도하게 치솟았다. 1993년에는 6%에 달하기도 했다. 이는 부분적으로는 유로화 도입에 대비한 프랑화 강세 정책 때문이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1992~1993년 유럽통화에 대한 투기 열풍 때문이기도 했다. 이렇게 높은 금리 때문에 눈덩이처럼 불어난 빚이 지금까지도 무겁게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것이다. 금리 상승은 빚 부담을 가중시키고 오른 금리로 추가 대출까지 초래한다. 이러한 일련의 선택 중 어느 만큼이 비합법적이었는지 어떻게 양적으로 판단할까?

정부의 실정으로 공공부채의 비합법적 부분 악화

또 하나 조심스러운 임의적 가정을 해보자. 장기적 실질금리가 경제성장률을 넘어섰던 1985~1995년 사이에 정부는 금융시장에 의존하는 대신 실질금리 2% 정도에 재원을 차용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 수치가 정당한 이유는 아주 오랜 기간에 걸친 역사적 평균값에 상응하기 때문이다. 또한 실질금리를 기준으로 이자를 지급했다면 프랑스는 일본이 그랬던 것처럼 가계나 은행으로부터 직접 대출을 받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8) 마스트리히트 조약 이후 밀려났지만 최근 미국과 영국에서 적극 활용하고 있는 방식처럼 중앙은행으로부터 더 낮은 금리로 대출을 받는 방안은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이러한 계산을 반영하여 시민부채감사단 연구진이 추론한 결과, 공공부채 규모는 현재보다 GDP의 25% 정도는 적어야 했다.

이제 계획적으로 이루어진 국가수입 포기와 과도한 고금리의 눈덩이 효과라는 두 가지 비합법적 요소를 조합하는 일이 남았다. 계산한 결과, 공공부채의 비합법적 부분은 현재 프랑스 공공부채 총액(2012년 기준 1조 8,340억 유로)의 59%에 육박했다. 결과적으로 GDP 대비 공공부채의 규모는 2012년 기준 53% 선이었어야 했지만 90%에 달했다.

이 빚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선택지는 세 가지뿐이다. 첫째, 부분적으로라도 디폴트(지급 불이행 상태)를 선언한다. 둘째, 인플레이션을 통해 조금씩 빚을 줄인다(요즘과 같이 인플레이션이 제로에 가까운 시대에는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셋째, 빚을 갚는다. 세 번째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간단히 말하자면 프랑스 국민들이 노동을 더 해서 1조 8,340억 유로에 상응하는 부를 추가로 창출해서 채권자들에게 직접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계산을 하다 보면 이러한 종류의 산술적 처리는 가치판단과 윤리기준에 따라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비합법성을 판단하는 척도는 공익이라는 개념이다. 바람직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합리적인 것과 받아들일 수 없는 것, 정도와 정도를 벗어난 것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하고 주장해야만 한다. 시민부채감사단의 연구에서 이러한 분류는 계산 과정을 관통하는 전제에 내재하고 있다. 적법한 공공수입의 기준이나 수용 가능한 실질금리의 범위를 과거 어느 시대를 기준으로 정하여 비교할 것인가? 왜 적절한 실질금리는 2%로 정하고 더 낮게 가정하지 않는가?

물론 이런 ‘전투적인’ 연구에 적합한 주관적 기준을 모두 믿어서는 안 된다. 이는 곳곳에서 드러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볼 때, 정교한 기계적 정당화 과정은 해당 가설의 기초가 되는 윤리적 선택이나 비전을 희석시킨다. 예를 들어 마스트리히트 조약의 부채나 적자에 관한 기준을 ‘양질’ 공공정책 운영의 기준으로 정한 것은 누구이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 누가 물가상승률이 유로존 평균을 초과하지 못하도록 묶었는가? 과학적 논리설명에 의존하는 ‘전문가’들이 한 일이 아니다. 사실 경제는 정확한 과학이 아니니까. 금융시장, 채권자, 그리고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이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치권이 한 일이다.

이번 연구의 경우에는 방법론과 선택지가 투명했지만 채택한 가정에 대한 논란이 있었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에서는 연구진이 한 발 더 나아가 현재 부채 전체가 비합법적이라는 과감한 결론을 내릴 수도 있었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 10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실질금리를 2%로 정하는 대신, 정부가 중앙은행으로부터 직접대출을 할 수 있었다면 30년 동안 금리가 없었을 상황을 가정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중도적 접근을 통해 시민부채감사단이 조직한 시민토론의 내용도 고려하려는 접근 방식을 취했다. 그렇다고 시민토론의 내용을 순화시켜 반영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기존 협약을 부정하거나 유럽중앙은행(ECB)에 다시 손을 벌릴 필요도 없이, 국가의 조세정의에 투자하고 가계로부터의 직접대출에 특혜를 부여하는 정책만으로도 부채의 급증은 막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들의 중도적 접근은 말처럼 반드시 중도적이지만은 않아, 금융시장에서 금리수익자의 이익에 정면으로 반하는 부분을 내포한다. 물론 상황이 급변하는 시나리오를 상상할 수는 있지만, 그런 시나리오는 심각한 위기상황을 수반하지 않고는 현실화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 갑작스러운 위기는 물론 발생할 수 있다 하더라도, 이런 경우에는 회귀분석 기법에 바탕을 둔 모든 수치 계산이 불가능해진다.

시민부채감사단의 보고서는 긴축재정을 도입하지 않고 사회적·생태적 변화를 위한 공공투자 재원을 조달하면서도 부채 부담을 덜기 위한 일련의 제안을 던지며 끝을 맺는다. ‘전문가’들만의 은밀한 만찬장에서 만들어진 방안이 아니라 신뢰할 수 있고, 토론의 가능성이 열려 있는 선택지를 제시하는 것이 연구진의 관심사였다. 수치 계산이 되었든 상환어음에 대한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일이 되었든, 이들 전문가들은 민주주의의 숙의 과정을 위해 일말의 기여를 하고 있다는 자기만족감만 가질 뿐 별 쓸모가 없다. 요컨대 이들이 존 메이나드 케인즈(1883~1946, 영국의 경제학자. 경기 후퇴와 불황에 대해 재정정책과 금융정책 사용을 강력히 주장-편주)가 경제학자들에게 추천한 자리를 지키고 싶다면 그것은 뒷좌석이지 운전석은 아니라는 뜻이다.

에콰도르에서는 2007년에 정부가 직접 지시하여 감사를 실시했다. 감사 결과, 부채의 대폭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내려졌고, 이를 시행한 에콰도르는 수십억 유로를 절약했다.(9) 프랑스의 시민부채감사단은 이제 숫자의 전투에서는 승리했지만 앞으로 나머지 승전보도 가져와야 할 것이다.

여백기사 - 계산서

● 채권자가 과도한 고금리를 적용하면서 발생한 부채 규모는 2012년 GDP의 29%에 상응하는 5,890억 유로를 기록했다.

● 부유층 가계와 주주들에게 주로 유리하게 작용한 각종 세제혜택(세금인하, 납입금 면제 등)으로 인한 공공수입의 감소 때문에 발생한 부채는 2012년 GDP의 24%에 해당하는 4,880억 유로로 나타났다.

● 비합법적으로 간주될 수 있는 공공부채, 즉 공익과 무관한 부채는 GDP의 53%에 해당하는 규모로, 전체 부채규모의 59%를 차지했다.

출처: 시민부채감사단, 2014년 5월

(박스기사)

적자상한선 3%는 어디서 왔나?

이런 결론이 나왔다는 것은 우리가 더 이상 이 결론의 근거가 되는 논리에 대해 질문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유로존에서 공공적자는 국가 경제규모, 즉 GDP의 3%를 넘어서는 안 된다. 이 규정이 예산 삭감, 긴축정책, 국가의 후퇴 등 모든 형태의 ‘개혁’을 정당화한다. 하지만 이 3%라는 숫자는 어디서 온 것인가? 2012년 9월 29일, 경제학자 기 아베이유는 일간지 <르 파리지엥(Le Parisien)>에 그 탄생비화를 밝혔다.

3%라는 숫자를 생각해 내는 데에는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이 숫자는 어떤 이론적 검토도 없이 그저 테이블 한구석에서 흘러나왔다. 이것이 정해진 것은 1981년 5월이었다. 당시 예산담당관이었던 피에르 빌제가 롤랑 드 빌팽(외무부 장관과 총리를 역임한 도미니크 드 빌팽과 사촌지간)과 함께 우리를 불러서 이렇게 말했다. “미테랑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은 쉽고, 들었을 때 경제학적인 느낌이 나고, 돈을 달라며 집무실 앞에 줄을 선 장관들에게 반론으로 내세울 수 있는 간단한 규정을 빨리 만들어 오는 것이다.” 처음에는 1조 프랑의 적자 상한선을 생각했다. 2%가 약간 넘었다. 1%는 불가능하니까 지워 버렸고, 2%는 너무 빠듯한 것 같았다. 3%가 적당했다. 시대를 초월해 좋은 숫자로 통하고 삼위일체를 연상시키는 3이었으니까. 미테랑은 기준을 원했고 우리는 그것을 제시했다. 나중에 이 수치는 경제학자들에 의해 이론화되고 마스트리히트 조약에 반영되어 유로존을 통합하는 기준점 중 하나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당시에는 그저 하찮은 결정이었다. 하지만 이는 어느 순간 상자에서 탈출한 짐승처럼 우리들 사이로 빠져나갔다.

글·장 드가리 Jean Degary

번역·김혜경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1) “부채라니, 어떤 부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2년 6월호

(2) “부채를 어찌할 것인가? 프랑스 공공부채에 대한 감사” 2014년 5월 27일, www.audit-citoyen.org

(3) 아타크 저, “그들의 부채, 우리의 민주주의!”, 레 리앙 키 리베르, 파리, 2013년

(4) 2014년 2월 11일, 르몽드지 인터뷰

(5) 장 프랑수아 코페, “부채가 사회문제가 될 때”, Slate.fr, 2009년 12월 12일

(6) 피에르-알랭 퓌르뷔리ㆍ프레데리크 샤페르, “500억 긴축: 모두 드러내지 않고 강하게 움켜쥐는 발스”, 레 제코, 파리, 2014년 4월 17일

(7) 본 기사에 제시된 숫자는 지속적인 업데이트로 인해 시민부채감사단 연구보고서 초판의 숫자와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8) 프레데리크 로르동, “우리가 만약 금융의 탈세계화를 시작한다면”,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0년 5월호

(9) 다미앙 밀레·에릭 투쌩, “에콰도르는 No라고 말했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1년 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