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시험, 과연 병자를 치료하나
누군가가 당신에게 치료법 임상시험에 참가하기를 권한다면 응할 의향이 있는가? 신약을 평가하는 연구에 동참함으로써 당신은 당신과 같은 질환으로 고생하는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시험은 대부분의 경우 무작위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자원한 환자들은 실제 약품과 위약 가운데 하나를 받게 되며, 아무 약도 처방하지 않았을 때에 비해 해당 약을 처방했을 때 치료 효과가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하지만 환자도 실험자도 누가 무엇을 받았는지 알 수 없는 이러한 이중 맹검법은 해당 약물 덕분에 치유될지도 모르는 환자들에게 기회를 박탈한다. 이는 환자 전체에게 이로운 지식을 획득한다는 명분하에 이루어진다.
일반적 이익과 개별적 이익의 대립은 정치 분야에서 고금을 막론하고 널리 다루어졌다. 13세기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개인을 자기 유익에 따라 행동하게 만드는 것 이외에 모두의 유익을 보장해줄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1)고 보았고, 마가렛 대처 전 영국 총리는 “사회라는 건 존재하지 않으며 개인들만이 있을 뿐이다”(2)라고 말했다. 두 개념의 대립 구도는 의료 행위 및 사상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일반적 이익과 개별적 이익의 대립
환자를 직접 관찰하는 임상의사들에게 ‘환자’라는 개념은 개별성을 띤다. 생명을 탐구했던 과학철학자 조르주 캉길렘(1904~95)에 따르면,(3) 환자라는 표현 자체는 고통을 호소하는 이, 의사를 찾아가 문을 두드리는 이를 가리키는 반면, ‘질병’이라는 개념은 유사한 증상을 보이는 이들로 구성된 동질적 집단의 식별이 기본이 된다. 즉 통계학적인 개념이다.
마찬가지 대립 구도가 연구 분야에서도 나타난다. 현대 생물의학연구의 선구자였던 클로드 베르나르(1813~78)는 개별생물체인 환자에게 일어나는 병리과정을 이해하는 것이 생물의학연구의 근간이라고 보았다. 베르나르는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원인이 되는 무언가, 치유된 환자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무언가가 분명 존재한다. 우리는 바로 그 무언가를 규명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작업에 통계학은 도움이 되지 못한다. 현상의 본질에 관해 통계학은 아무 것도 알려준 게 없고 알려줄 수도 없다”(4)고 설명했다. 이후 역사를 보면 그의 주장이 틀렸음을 알 수 있다.
치료법은 생리학보다도 오히려 통계학에 기초한 판단으로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약품을 제비뽑기식으로 배포하는 무작위 실험은 대표적인 통계학 이용 사례이다.
생물학, 생리학, 약리학으로도 치료법을 딱 부러지게 선택할 수 없는 경우가 더러 있다. 편두통 치료를 위해 파라세타몬과 아스피린 중 어떤 것을 처방하는 게 좋을까? 요통에는 소염제 투여와 정골요법 시술 중 어느 것이 나을까? 동일한 물음이 반복될 때 합리적인 대답을 얻으려면 서로 다른 치료법을 처방한 환자군에 발생한 효과를 직접 비교 연구하는 것이 현재 유일한 방법이다.
그런데 의사들도 무턱대고 아무 약이나 처방해주는 것은 아니다. 의사들이 어떤 약을 선택할 때는 자신이 상대하는 특정 환자에게 해당 약이 최선의 결과를 가져다 줄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운데, 서로 다른 약물을 처방 받은 환자들을 비교할 경우 한 가지 곤란한 점이 있다. 비교 대상이 약물 자체인지 아니면 의사의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 편중인지 분간하기 애매해지기 때문이다. 무작위 방식을 이용하면 이러한 문제는 사라진다. 게다가 위약의 사용은 어떤 약물의 ‘절대적’ 효과 측정을 위한 시금석이 된다.
퇴색되는 헬싱키 선언 33조 윤리원칙
그러나 개인을 일반적 판단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세워진 장벽들이 있다. 비록 의학이 증명된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있기는 하지만, 그 공식적 신조를 보면 의학적 결정은 통계학적 연구뿐만 아니라 환자의 선호도와 임상의사의 경험에 따라서도 좌우된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연구에 관한 각종 국제 선언들은 환자 보호와 존엄성 존중을 중시하는 윤리원칙들을 장려하고 있다. 1994년 세계의학협회가 마련한 헬싱키 선언 33조를 보면 “새로운 치료법이 가져올 이익, 위험, 부담, 효과를 기존에 확인된 최선의 치료법의 경우와 비교 실험해야 한다”고 나와 있다. 즉, 통계학자들의 요구가 무엇인지도 중요치 않고, 이들이 위약 투여 방식을 선호한다는 것도 중요치 않으며, 새로운 치료법을 최선의 기존 치료법과 비교함으로써 환자를 보호하는 것이 관건이라는 이야기다.
요컨대 세계의학협회의 의견을 따르자면 보건 분야에서는 개별적 이익(환자 보호)이 일반적 이익(최적의 통계 데이터 모색)에 우선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2012년 현재 1조 달러에 육박하는 규모의 의약품 시장이 인본주의적 선언문의 의미를 변질시키기도 한다.(5)
의약업계는 위약 실험을 선호한다. 신약을 다른 약과 비교하는 것보다 아무 것과도 비교하지 않을 때 위험 부담이 적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최선의 기존 약물과 비교해야 한다는 윤리의무는 어렵지 않게 피해갈 수가 있다. 최선의 약물이 너무나 값비싸서 구할 수 없는 국가에서 테스트를 실시하면 된다. 제약회사 존슨앤존슨이 정신병 치료제의 효과 측정을 위해 굳이 인도에서 위약 실험을 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프랑스에서는 하지 못했을 실험이다.(6)
간혹 효과 좋은 약품이 시중에 나와 있는 데도 불구하고 보건당국이 위약 비교 실험을 요구할 때가 있다. 사실 제약회사들은 출시하려는 신약의 테스트를 직접 실시한다. 이해관계를 둘러싼 갈등이 명백히 예상되는 상황인 만큼 당국은 업계에 특정 임상시험 절차를 준수하도록 함으로써 문제의 소지를 없앤다. 그리고 이 경우 위약을 이용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과연 왜 그럴까?
‘우월성’보다는 ‘비열등성’ 입증하는 신약 임상시험
일반적으로 치료법 임상시험의 목적은 현존하는 최선의 약품보다 신약이 우월함을 증명해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연구 상태에서 약물의 개선은 질병에 대한 실제 효능을 높이기보다 부작용을 줄이는 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당국도 이러한 측면을 감안하여 요구사항을 수정하기에 이르렀다. 신약의 ‘우월성’이 아닌 ‘비열등성’을 입증하는 것으로 임상시험의 목적이 바뀐 것이다. 즉, 기준이 되는 최선의 약물보다 신약이 열등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면 된다.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는 어렵지 않아 보인다. 비교 대상 약물의 효과를 ‘통계적 소음’(어쩔 수 없이 빚어지는 절차상 차질, 데이터 측정 및 입력 오류 등) 속에 파묻히게 하는 등 비교연구를 엉망으로 진행하여도 신약이 열등하지 않다는 결과만 얻어내면 그만이다. 신약 출시에 회사의 매출이 달려있는 제약업체가 보이는 이런 식의 태만을 통해 얻게 될 이득은 수긍이 간다. 이에 보건당국이 내놓은 해결책은 위약 환자군을 실험에 추가하는 것이다. 실제 약을 처방했을 때 아무 것도 투여하지 않았을 때보다 효과가 있음을 제약업체들이 증명하도록 한 것이다. 이때 위약 환자군을 통해 실험의 타당성을 검증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하자면, 개별적 이익(테스트를 거친 약물 또는 현존하는 최선의 약물을 처방 받을 환자의 권리)을 무조건 옹호함으로써 오히려 업계의 사회 기만을 조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특정한 경우에는 개별적 이익을 뒷전으로 미루는 것을 용인한다는 얘기다. 앞서 언급한 헬싱키 선언 조문에 따르면, 임상시험 환자는 시중에 나와 있는 최선의 치료법을 누려야 마땅하지만 “과학적으로 근거 있는 불가피한 방법론적 이유로 인해 검증된 최선의 치료법보다 효과가 떨어지는 치료법을 처방하거나 위약을 투여하거나 아예 아무런 처방도 하지 않아야만 비로소 어떤 치료법의 효과나 안전성을 측정할 수 있을 때”는 예외로 인정하고 있다.
일반성 대 개별성. 현재와 같은 치료제 생산 여건에서 의학계는 두 관점을 철저하게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하긴, 윤리위원회들조차 모든 상황에서 유효한 확고부동한 원칙을 식별하지 못하는 마당에 의학계 홀로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아마도 불가능할 것이다. 이제 의학계는 자신들의 활동 일부가 본질적으로 얼마나 정치적인지를 인정하고 그동안 너무 오랫동안 거리를 두었던 인문과학, 사회과학과 다시 가까워질 필요가 있다.
글·브뤼노 팔리사르 Bruno Falissard
의학박사. 캐나다 몬트리올대 의대 연구교수 역임
번역·최서연 qqndebien@naver.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역서로 <르몽드 세계사2>(공역)(2010) 등이 있다.
(1) Saint Thomas d’Aquin, <Petite Somme politique. Anthologie de textes politiques>, Pierre Téqui, Paris, 2000
(2) 1987년 9월 23일 잡지 <Woman’s Own>의 더글러스 키 기자와 가진 인터뷰
(3) Georges Canguilhem, <Le Normal et le Panthologique>, Presses universitaires de France (PUF), Paris, 2013(초판 1943)
(4) Claude Bernard, <Introduction à l’étude de la médecine expérimentale>, Flammarion, Paris, 2013(초판 1865)
(5) <Market Prognosis>, IMS Health, London, 2012년 5월
(6) Ganapati Mudur, ‘Indian study aparks debate on the use of placebo in psychiatry trials’, <British Medical Journal>, London, 2006년 3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