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제리의 성과 청년, 정치
전통적이고 종교적인 사회 대부분이 혼전 성관계를 금지하지만, 어느 정도의 위선을 통해 위반되기 마련이다. 성행위에 관한 각종 지식이 인터넷으로 보편화된 요즘, 알제리에서는 혼전 성관계 금지에 대한 긴장감이 더욱 고조되고 있으며 때로는 고통스러울 지경에 이르고 있다.
오레스 산맥 중심부의 티펠펠 출신인 라바는 이제 막 바트나 대학에서 수학과 마스터2과정을 마쳤다. 23세의 라바는 우리가 성(性)에 관해 인터뷰한 또래 청년들처럼, 5분 만에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가 특히 걱정하는 것은 하사나트(Hassanate, 삶에서 실천한 선행 점수)와 시아트(Syiate, 악행 점수) 간의 계산이다. 두 점수 간의 차이로 그가 천국에 갈 수 있을지 없을지가 결정된다. “하루에 다섯 번씩 모스크에서 예배를 올린다. 모스크에서 예배를 올리는 것이 집에서 올리는 것보다 하사나트를 27배 더 많이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라바는 세 명의 여성들과 교제한 경험이 있다. 제일 마지막 연인의 이름은 디크라라고 했다. “디크라와 1년 반 동안 사귀었다. 아주 예뻤고, 집도 부자였다. 하지만 그와 키스한 적은 단 한 번도 없고, 손이나 뺨에 입을 맞춘 정도였다. 헤어진 지 1년 정도 됐는데 디크라에게 새 연인이 생겼고, 그와 키스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내게 이제 그는 창녀(Pute)나 마찬가지다.” 그는 결혼 전 여자와의 동침은 “완전히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그것은 신의 눈에는 범죄행위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반면 그는 “매일” 자위를 한다. “그것이 금지된 행위라는 것을 알지만, 어쩔 수 없는 압력이 있다. 그리고 적어도 자위는 여자에게 애무당하는 것보다는 시아트를 덜 받는다.”
물론 라바가 말한 내용이 전부 진실이라는 증거는 없다. 그러나 같은 알제리인들과 달리 자신을 평가하지 않는 외국기자에게는 솔직히 털어놓을 수 있을뿐더러(이름도 전부 가명처리), 이 젊은 샤우이(Chaoui, 오레스의 베르베르 족)의 증언은 알제리 전국 각지에서 수집한 50여 개의 증언과 일맥상통한다. 물론 약간씩 차이는 있다. 우아르글라의 대학교 5학년생인 26세의 누레딘은 대학교 2학년생 사라와 꽤 진지한 관계다. “사귄 지 6년째고, 부모님들끼리도 아는 사이다. 신께서 바라신다면, 우리는 곧 결혼할 것이다.” 친구들 대부분과는 달리 누레딘은 차가 있기 때문에 단둘이 탈출하는 것이 가능하다. “우리는 입에서 입으로 사랑을 나눈다. 애무도 하지만, 넘어서는 안 될 붉은 선이 존재한다. 동침? 절대 안 된다. 이슬람 교리에 어긋나는 일이다. 그리고 나는 사라를 존중한다. 우리는 함께 걷고 이야기하며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다. 공원에서 놀고, 동물원에도 가고, 저녁 6시가 되면 대학교 기숙사에 그를 데려다 준다. 그 후에는 휴대폰으로 통화한다.”
다른 젊은 남성들과 마찬가지로, 누레딘에게는 휴대폰 번호가 여러 개 있다. 하나는 부모님 전용 번호, 하나는 자정부터 오전 6시까지 무제한 통화가 가능한 애인전용 번호,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여자친구들’을 위한 번호다. 그는 웃으며 말한다. “내가 ‘드리블라쥬(Driblage)’를 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 여자들과는 그저 즐길 뿐, 진지한 관계가 아니다.” ‘드리블라쥬’란 넷(페이스북, 스카이프 등)상에서 만나거나 친구들에게 받은 전화번호로 알게 되거나, 혹은 거리에서 헌팅한 여러 여성들과 노는 것을 뜻한다. “한 가지 확실한 게 있다면, 이런 관계는 단지 섹스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섹스하다’라는 것은 조용한 구석을 찾아 키스하고 서로의 살을 애무하고 “만약 가능하다면 후배위 성교까지 가는 것”이다. 그러나 절대로 질 삽입은 하지 않는다. “그건 금지된 일이다. 그리고 나는 사라와의 결혼 첫날밤을 위해 동정을 지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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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제 출신인 아미라는 히잡을 쓰고 생활하며, 부모의 집에서 멀리 떨어진 도심지의 소형 아파트에 혼자 산다. 고고학 박사학위 과정을 밟고 있는 30세의 아미라는 여전히 “확실한” 처녀이며 그 연령대의 대부분 여성들처럼 미혼이다. “하지만 성적 충동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포르노 영화를 보며 자위를 한다.” 아미라는 아직 진정한 연인을 찾지 못했지만, 아미라가 부르면 언제든 찾아올 준비가 돼 있으며 “아미라를 평가하지 않는” 좋은 남자친구가 있다. “그를 두 번 불렀다. 우리는 애무했고,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그 이상은 절대 하지 않았다.” 이런 일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른다. “알제리에서 살고 싶으면, 가족과 친구들, 남자친구 모두에게 거짓말을 해야 한다. 심지어는 자기 자신에게조차 말이다.”
알제리 청년의 혼전 성생활, 연애에 관해서는 그 어떤 연구도 존재하지 않는다.(1) 2006년 알제리 언론에 실린 기사에 의하면, 인류학자 압데라만 무사위는 이슬람의 섹스 금지에서 빠르게 벗어나게 해주는 계약결혼(우르피[urfi]와 미시아르[misyar])에 대한 잠재적 수요를 조사했다. 그러나 현상의 실제 규모에 관해 그 어떤 단서도 주지 못했다. 그러나 알제리의 15개 도시(알제, 오란, 아나바, 베자이아, 티지우주, 우아르글라, 츨레프 등)에서 수집한 증언은 이렇다 할 지역적 차이도 없이 비슷하며, 조사를 진행한 연구자들과 전문가들의 생각과 일치한다. 오란의 의학자 젤라울 하무다는 “알제리 청년 대부분에게 여성의 처녀성은 넘을 수 없는 선으로 남아 있지만, 그 외의 것에 관해서라면 미혼인 청년들은 모든 형태의 성을 즐긴다”고 말한다.
그러나 20년 만에 평균 결혼연령은 상당히 늦춰졌다. 이는 직장과 주거를 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오늘날 알제리 여성과 남성의 평균 결혼연령은 각각 30세, 34세에 이른다. 그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오늘날 150만 명에 달하는 대학생들 간에도 평균 결혼연령은 계속 늦춰지고 있다. 알제리에서 35세는 ‘청년’에 속하며 (전체 인구의 66%) 40세에도 여전히 미혼인 여성을 종종 만날 수 있다. 이는 알제리 여성 중 교육수준과 직업 성취도가 가장 높은 여성들로, 그들의 지적인 수준과 경제적 독립을 수용할 남성을 찾지 못한 경우다. 아나바의 ‘좋은 가문’ 출신인 43세의 기자 카디자는 말한다. “내 명의로 된 아파트가 있지만 그곳에서 살 수 없다. (거기서 살면) 내가 아직도 미혼이기 때문에 집에 수많은 남자를 들일 거라고들 생각할 것이고, 그것은 우리 가족에게 수치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첫 성적 충동에서부터 결혼이라는 머나먼 순간까지 이 긴 세월 동안 어떻게 성욕을 다스릴까? 이런 질문은 엄청난 금기다. 부모에게도, 형제자매 간에도, 심지어는 절친한 친구에게도 성에 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티지우주에서 만난 청년 이디르가 농담처럼 말하듯, “여자와 첫 경험을 할 때 도움이 되는 자료라고는 포르노 영화가 전부”다. 이는 이슬람교와 긴밀하고도 강박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대다수 청년들의 고민거리기도 하다. <오란일보>의 유명 논설위원이자 알제리의 가장 유력한 연구자 중 한 명인 카멜 다우드는 이렇게 분석한다.
“알제리 청년들은 먹고 살 걱정은 하지 않는다. 부모님 집에서 생활하며, 석유 덕택에 국가지원금에 의존할 수 있다. 그렇지만 여가를 즐길 공간이 없다. 도시마다 수영장과 도서관, 운동장, 영화관, 극장 등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다.”
켈투마 아기스는 매춘이라는 주변 주제를 연구하며 알제리 청년들의 성생활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오란 사회문화인류학 연구소(Crasc)의 박사학위 준비자인 그는, 여성인 논문지도교수에게 누가 될까봐 교수의 이름을 밝힐 수 없는 것에 양해를 구했다. “알제리 청년들이 성생활을 하려면 서로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세 가지 금지에 맞서 싸워야 한다. 이 세 가지 금지는 종교와 관습, 그리고 형법이다.” 실제로 알제리 형법 333조는 “공공외설죄를 저지른 사람은 2개월에서 2년의 징역형과 500~2,000디나르(약5~20유로)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알제리 판사들은 키스나 애무를 하다가 들킨 미혼 청년들에게 이 조항을 종종 이용하고 있다.
외국인이 알제리에 오자마자 깨닫게 되는 사실이 있다. 공공장소에서 눈에는 띄지만 과시적이지는 않은 이슬람교가, 대화에 깊숙이 침투한다는 것, 특히 성에 관한 주제에서는 특히 그렇다는 것이다. 이슬람교는 혼전의 성적 행위를 엄격히 금지한다. 알제의 심리학자 칼레트 아이트 시둠(국제 심리학 협회에 소속된 유일한 알제리인 회원)은 다음과 같은 설명을 내놓는다. “알제리 청년들은 남자고 여자고 할 것 없이 완전한 혼란에 빠져 있다. 자신들의 성욕을 실제로 충족시키기는 불가능하고, 허용되는 몇몇 성적 경험 후 죄책감에 시달리는 것이다. 이슬람교는 그것이 강요하는 금지를 사회적으로 높이 평가하는 설명을 제공하는 동시에, 자신들의 충동을 제어하게 해주는 집단적인 틀을 제공한다. 어떻게 보면 보이스카우트나 축구팀 서포터즈와 비슷한 것이다.”
한 가지 떠오르는 일화가 있는데, 2013년 9월 알제의 어느 소규모 행동주의자 단체가 알제 중심부의 텔렘니 다리 철조망에 ‘사랑의 자물쇠’를 걸러 오라고 커플들에게 제안했다. 커플들이 걸어놓은 자물쇠로 장식된 파리의 다리들을 본떠 ‘자살 다리’로 알려졌던 텔렘니 다리를 탈바꿈하자는 것이었다. 그날 저녁, 이슬람식 카미(Qami, 남성들이 입는 전통 복식-역주) 차림의 거리 청년들이 와 ‘서구적 퇴폐의 상징인 불경한’ 자물쇠를 뜯어버렸다. 이후 모두가 감정 발산의 공간인 인터넷과 SNS상에서 분노를 표출했다. 칼레드 아이트 시둠은 조소하듯 말한다. “내 고향인 카빌리에는 ‘배 속에 건초가 들어 있어야 불을 무서워한다’라는 속담이 있다. 내면에 쌓인 것을 더 이상 제어할 수 없는 사람을 자극하면, 그는 당장 시동을 걸어버리고 만다. 즉, 두 진영 모두 성적 충동과 공격 충동으로 움직였다는 것이다. 단지 이슬람 운동 단체 쪽이 자금이 상당해 늘 그쪽이 이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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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제리 청년들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는 또 다른 장애물이 있다. 관습, 그리고 사회적 감시라는 끝없는 부담이다. 베자이아의 어느 카페에서 만난 24세 사이드는 이렇게 설명한다. “알제리에서는 금기를 어길 수 없다. 이성과 선을 넘는다거나, 심지어는 부모에게 ‘젠장’이라는 말조차도 못 한다. 탈선할 수 있는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당장 문밖으로 쫓겨난다. 아무 것도 없이 부모에게 쫓겨나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마을의 모든 골목, 모든 건물에서 모두가 서로 감시한다. 그러니 사랑하는 커플이 만날 수 있는 장소는 거의 없는 것이다. 시골이든 도시든 사생활을 보장하는 공간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카페는 커플이 눈을 마주치고 손을 잡기에 괜찮은 장소다. 여기서 좀 더 진도를 나가려면, 도시마다 손에 꼽히는 장소가 몇 개 있다. 알제 중심부의 갈랑 공원이나 시험 공원, 베자이아의 브리즈 드 메르 해안도로, 오란의 프롱 드 메르 해안도로다. 알제 지방의 주민들에게 로맨틱한 분위기를 위한 ‘머스트 투 두’는 티파자의 고대로마 폐허를 산책하는 것. 하지만 조심해야 한다! 부모들과 아이들이 자주 다니는 이 장소에서는 관리인이 커플들을 엄격하게 감시하는데, 가벼운 키스 정도도 ‘가족’에게는 심각한 모욕으로 치부될 수 있다.
그보다 더 진도를 나가고 싶다면, 적당한 장소를 찾기가 매우 어렵다. 이성친구를 집에 데려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며 (집에 가족이 있거나, 혹 없더라도 감시하는 이웃이 있다) 몇 시간 집을 빌려줄 친구를 찾기도 하늘의 별 따기다. 기숙사 방에서 ‘그 일’을 하기란 역시 불가능하다. 알제리에서 대학교 기숙사는 엄격하게 남녀가 분리돼있고, 각 기숙사가 넘을 수 없는 높은 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유일한 예외인 베자이아의 기숙사는 ‘남녀 공용’이라 불리는데, 벽 안쪽에 여자 기숙사 건물이 남자 기숙사 건물과 함께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각 건물에 다른 성별의 사람이 들어가는 것을 엄격하게 금지한다.
해가 떨어지면 연인들은 ‘거리의 사랑’을 나눈다. 작은 체육관 뒤편 음산한 길의 쓰레기 더미 한복판에서 청년들은 뜨거운 키스를 나누고, 벌려진 적이 없는 옷섶 사이로 손이 들어가 서로의 살을 애타게 찾는다. 2013년 12월, 에나하르 TV 채널이 방영한 다큐멘터리에는 맥주를 마시거나, (전 알제리 대학교 기숙사에서 엄격하게 시행되는) 야간 통행금지 이후에 나가 남자를 만나는 여학생들의 모습이 몰래카메라로 촬영돼 방영됐다. 이미 다큐멘터리 제작진에 의해 오명을 쓴 이 학생들은 알제리인 대다수에게 신랄하게 비난당했다.
요컨대 앞서 누레딘이 말했듯, 차가 있으면 좋다. 익숙한 장소로 차를 몰고 가면 되기 때문이다. 차가 없으면, 버스를 타고 으슥한 덤불이 있는 커다란 공원으로 갈 수도 있을 것이다. 알제에서는 벤 아크눈 공원이 모든 판타지를 충족시킨다. 그곳에서는 나무가 우거진 산책로에서 느닷없이 튀어나오는 수많은 커플도, 히잡에 긴 망토 혹은 젤라바(Djellaba)-1990년대 이슬람 테러 이후로 급격히 증가한, 알제리 여성 대부분이 하는 옷차림-로 엄격하게 차려입은 여성도 찾아볼 수 있다. 벤 아크눈 공원의 산책로에서 만난 무라드는 ‘두 가지 공포’에 대해 말한다. “자동차와 공원에서는 항시 대기 중인 경찰과 불량배, 두 가지 공포에 떨어야 한다. 경찰에게 걸리면 감옥에 갈 수 있는데, 여성에게 최악의 경우는 경찰이 그 아버지에게 전화해 딸을 데리고 가라고 하는 것이다. 불량배들은 어디에나 있고, 당신이 경찰에 신고할 수 없는 상황임을 알기에 못할 게 없다. 가진 것 전부를 뺏는 건 물론, 여자의 몸에 함부로 손댈 것이며 당신의 목에 칼을 들이댈 수도 있다.”
여유가 있는 이들은 호텔룸을 빌리기도 한다. 보통 두 개를 빌리는데, 더블 룸 하나를 빌리면 호텔 직원이 가족대장을 철저하게 요구하기 때문이다. 한편 청년들이 비용을 대기에는 너무 비싸고 최악의 죄로 생각하기도 하는 매춘은 유부남들이 특히 애용하며, 도시에 잠시 머무르는 시골 청년들이 가끔 이용하기도 한다. 매춘은 알제리 청년들의 성적 체험에는 거의 포함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알제리에는 공식 윤락업소가 오란과 스키다, 틴두프 단 세 곳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으면 매춘은 주로 메르케즈(Merkez, 창녀촌으로 변해버린 주택의 일종, 소유주와 지역 책임자 간의 관계에 의해 어느 정도 용인됨)나 오란, 알제, 베자이아 연안의 선술집, 그리고 몇몇 호텔에서 행해진다.
의학박사 하무다는 “젊은 알제리인들은 상당한 수준의 성적 욕구불만을 안고 살아간다. 질 삽입을 제외한 나머지를 누리고 있다 하더라도 이들의 성생활은 매우 속박당하고 있으며, 욕구불만의 수준은 유럽의 욕구불만 수준보다 훨씬 높은 것이 틀림없다”고 설명한다. 이런 욕구불만은 인터넷과 휴대폰의 혁명으로 한동안 경감될 수 있었지만, (베자이아에서 만난 히잡 차림의 매력적인 젊은 여성 디히야는 “새로운 만남의 천국”이라며 열광적으로 말한다) 이런 마법의 도구는 양날의 검인 것으로 드러났다. 심리학자 아이트 시둠은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우리가 아는 것과는 반대로, 최근 몇 년간의 인터넷 대규모 접속 현상은 욕구불만을 감소시키지 못했다. 오히려 지금까지 몰랐던 세계의 문을 열어놓고는, 새로운 욕구를 충족시킬 방법은 주지 않아 청년들의 욕구불만은 상당히 더 증가했다.”
2014년의 알제리에서 청년들의 유일한 여가 공간은 ‘사이버 카페’다. 모든 도시와 마을에서 찾아볼 수 있는 사이버 카페에는, 수수한 방안에 벽을 마주 보고 모니터와 컴퓨터가 약 스무 대 늘어서 있다. 침울한 분위기에, 사람들 간에 대화는 없으며 각자 페이스북이나 스카이프, 채팅방에서 우연히 만난 ‘친구’와 ‘대화’하느라 몇 시간을 보낸다. 혹은 새로 나온 짤막한 포르노 영상을 조심스레 다운받거나. 이와 함께 인터넷 개인 전용선을 갖추는 집이 점점 늘어, 청년들은 자기 집에서 도망쳐 나와 낮이고 밤이고 몇 시간씩 보낼 수 있게 됐다.
이런 욕구불만의 결과로 가장 즉시 감지되는 것 중 하나는 젊은 남성들이 대도시의 번잡한 길가에서 젊은 여성들을 쳐다보고 그들에게 말을 걸 때 느껴지는 공격성이다. 각각 22세와 23세의 노르딘과 바시르는 무직 상태의 배관공 견습생으로, 오란의 커다란 쇼핑거리인 라비 벤 므히디의 아치형 통로를 걷고 있었다. 그때 ‘평범한’ 차림, 히잡으로 머리를 감싸고 몇 겹의 원피스와 스웨터에 젤라바까지 입어 몸의 라인이 드러나지 않는 모습의 젊은 여성들이 길을 지나갔다. 두 남자는 굉장히 상스러운 단어를 던지며 수작을 걸었고 여성들이 응하지 않자 그 즉시 이들을 ‘창녀’로 부르며 대하기 시작했다. 이 단어는 알제리에서 자주 사용되는 것으로, ‘매춘부’라기보다는 ‘쉬운 여자’라는 의미가 더 강하다. 다음은 켈투마 아기스의 설명이다. “창녀라는 단어(아랍어로는 카하바[Qahaba])는 정숙하지만 사회적 기준이 강요하는 바보다 더 많은 독립을 열망하는 모든 여성을 지칭하는 데 사용된다. 이런 독립의 표시는 가사 공간(집안일이나 요리를 거부) 혹은 공공장소 모두에 연관될 수 있다. 가령 옷차림이나 담배, 걷는 방식, 특정한 시간에 특정한 장소에 있었다는 단순한 사실로 말이다. 이런 성적이지 않은 수많은 기준 중 하나를 어기는 시점부터 여성은 그 즉시, 상황이 준비된다면 얼마든지 성적 기준을 어길 수 있는 것으로 치부된다.” 인터뷰에 응한 젊은 남성들은 모두 프랑스에 이민 간 알제리 노동자들의 딸을 ‘창녀’로 간주하고 있다. 알제리 사회의 ‘반계몽주의’를 고발할 준비가 됐다는 오란 출신의 모크타르는 이렇게 말한다. “너무나 명백한 일이다. 그들은 얼마든지 데이트를 하고, 히잡도 쓰지 않으며 담배도 핀다. 길거리에서 애인과 키스도 서슴지 않는다. 창녀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알제 바브 엘 우아드 병원의 임상심리학자 날리아 하미시는 이렇게 분석한다. “이런 성적 욕구불만은 잠재적이며 굉장히 강력한 공격성과 결합한다. 알제리 역사는 식민지 시대의 억압, 해방전쟁, 1990년대 내전 등 한 번도 연구된 적 없는 폭력의 트라우마로 점철돼 있다. 성적 욕구불만이 더해진 이 폭력의 트라우마는 알제리인들이 충동에 지배당한 채 살게끔 한다. 실제로 거리에서 남자들은 기회를 노리며 공격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 각 도시에는 여성들이 특정한 시간, 대부분은 해가 떨어진 뒤 특정 장소에 있는 것을 금지하는 암묵적 규칙들이 있다. “이를 어기는 여성들은 성폭력을 당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만난 여성들 다수가 성적 접촉을 겪은 적이 있고 몇몇은 강간당하기도 했다. 날리아 하미시는 “병원에서 진찰할 때 가정이나 학교, 모스크 등에서 일어난 근친상간이나 소아성애의 경우를 많이 접한다. 피해자들은 발설하지 않는데, 아무도 그런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알제리 청년들의 성에 관한 이런 상황은 몇몇 사회적, 정치적 현상을 이해하게 해주는 열쇠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날리아 하미시는 이렇게 덧붙인다. “성적 미성숙과 경제적 의존 등 모든 것이 딱 들어맞는다. 정기적인 석유 수입 덕분에 청년들은 국가에 완전히 의존하는 상황에 놓였다. 이들은 일할 필요도 없다. 정부가 이들에게 노력이나 성과 없이도 최소한의 돈을 받을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주기 때문이다. 이런 미성숙한 의존의 상황은 가족이라는 일차적 집단 내부에서부터 존재한다. 30세, 35세, 심지어 40세에도 어린아이인 이들은 성적인 성숙함이나 정치적인 성숙함에 대한 권리를 인정받지 못한다.”
우리가 만난 청년들은 대부분 투표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으며, 알제리에서 정치활동, 사회활동, 단체활동의 가능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진저리’를 쳤다. 그렇다면 그들에게는 무엇이 남을까? 스포츠 경기가 있는 밤이나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도시의 소요사태가 전부이다. 금요일만 빼고 매일 전국 각지에서 어느 구역의 단수사태 때문에, 늦어지는 가스관 연결 때문에, 지켜지지 않는 거주지제공 공약 때문에, 치워지지 않은 쓰레기통 때문에 사람들은 거리로 나와 소리를 지르고 이웃을 모아 타이어와 쓰레기통에 불을 지른 뒤 집으로 돌아간다. 심리학자 아이트 시둠은 “거리의 소요 사태는 긴장감을 떨어뜨리기 위한 기분 전환이다. 그러나 이는 오늘날 심각한 정도에 이른 긴장감에 비하면 하찮은 수준에 불과하다. 우리의 위정자들은 이렇게 축적된 긴장감이 오늘날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축구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인데, 월드컵 국가대표팀의 승리 때마다 사망자와 부상자가 속출했던, 상식을 벗어난 듯한 환희의 장면도 그 일종이다. 날리아 하미시는 “축구 경기장 혹은 승리한 밤의 길거리는 우울함과 맞서 싸우기 위한 흥분의 장이 된다. 흥분을 통해 자기 자신에게 여전히 살아 있다는 환상을 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흥분’의 기회는 너무 드물다. 남은 것은 프랑스로 이민을 가거나(2013년 프랑스 영사관에는 3,800만 명에 대해 50만 건의 비자요청 등록)이나 해상 밀입국(하라가[harraga] 현상)의 위험을 무릅쓰거나 시리아로 지하드(성전, 聖戰)를 하러 떠나는 것뿐이다. 자살률도 높을 테지만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국가는 이에 관해 어떤 수치도 제공하지 않고 있다. 이 같은 성적 제한은 우리가 가장 개방적일 것이라고 기대하는 곳에도 둥지를 틀고 있다. 34세의 신문기자인 행동주의자 모한드는 알제리의 가장 행동적인 활동가들 단체의 회원이다. 그는 솔직하게 말한다. “활동가들이 우리 집에 올 때면 아내를 카빌리에 있는 친정으로 보낸다.” 대체 왜? “당연하지 않나. 우리는 술담배가 일상적인데, 아내가 불편해한다.” 알제리의 사회 운동을 연구하는 베를린 대학의 정치학자 나우알 벨라크다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린다.
“알제리 남성들이 여성들과 함께 거리에서 시위를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알제리의 정치적 변화를 알리는 진정한 신호일 것이다.”
피에르 돔 | 언론인
1966년생,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한 그는 여러 매체에 외국에 거주한 경험을 살려 다양한 글쓰기를 했으며, 1996년부터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와 인연을 맺어 여성과 문화에 관한 글을 기고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2차 세계대전이후의 인도차이나 노동자들(Les travailleurs indochinois de la Seconde Guerre mondiale)>(2012), <마지막 금기, 1962년 이후 알제리에 남은 프랑스군의 원주민 보충병(Le Dernier tabou, les "harkis" restés en Algérie après 1962)>(2015) 등이 있다.
번역 | 박나리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