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고단한 삶의 여정
올해의 부산국제영화제(BIFF)에선 어떤 영화가 관객의 주목을 받게 될까? 영화 마니아들은 10월 2일부터 11일까지 해운대 및 남포동 일대에서 열리는 제19회 BIFF의 영화들에 관심을 보인다. 올해에는 79개국, 총 314편의 영화가 상영될 예정. 모든 영화가 나름대로의 작품성과 신선함이 있지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는 이번 영화제를 준비한 프로그래머들(김지석, 남동철, 박도신, 이수원, 박진형, 홍효숙, 김용우)과 비평가들로부터 추천을 받아 볼 만한 12개의 작품을 소개한다.
갈라 프레젠테이션 추천작
<황금시대>
20세기 중국의 가장 뛰어난 작가 중 하나로 평가 받는 샤오홍. 그녀는 결핵으로 서른 한 살의 생을 마감하기까지 중국 현대사의 가장 격동의 시기에 활발한 활동을 벌인 여류작가이다. 영화는 1930년 스무 살의 샤오홍이 가출하여 사회적, 개인적으로 격변의 시기를 거치며 작가로서의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다.
[선정평] 여성감독이 그린 여류소설가의 삶. 탕웨이의 연기와 탁월한 앙상블.
<5일의 마중>
정치적인 신념으로 강제노동수용소에 오랫동안 수감된 루는 문화혁명 이후 석방되어 집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헌신적이었던 아내 펭은 기억상실로 더 이상 과거를 기억하지 못한다. 돌아왔지만 이방인이 된 그는 아내의 기억을 되살리는 것을 도우며 자신의 허물어진 가정을 되찾고자 노력한다.
[선정평] 장이모와 공리가 다시 콤비를 이룬 감성대작.
<대통령>
한때 악명 높은 독재자였던 주인공은 쿠데타로 인해 힘을 상실한 후 가족이 모두 떠난 조국에 손자와 함께 남겨졌다. 망명을 위해 준비된 배를 타기 위해서는 자신이 학대했던 세상을 가로지르는 위험천만한 여행을 시작해야 하는데…. 뮤지션으로 변장한 후 시작된 여정에서 그는 지난날 저지른 자신의 만행을 마주하게 된다.
[선정평] 독재자의 말로. 모흐센 마흐말바프의 의미심장한 작품.
아랍의 삶
<팀북투>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지배하에 신음하는 팀북투. 그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사막에는 키단과 그의 아내 사티마, 딸 토야, 그리고 열두 살짜리 목동 이산이 평화롭게 살아간다. 압데라만 시사코의 다섯 번째 장편으로 현실 고발적이면서 동시에 시적 정서로 가득한 감동적인 드라마.
[선정평] 말리 감독 압데라만 시사코의 5번째 장편으로 올해 칸에서 가장 큰 화제를 몰고 왔던 영화. 공 없이 축구하고 머릿속으로만 노래를 부르는 조용한 저항, 심금을 울리는 대단원의 폭발적인 힘은 형언하기 힘든 감동을 선사한다.
<테헤란의 낮과 밤>
현대 이란사회의 문제들을 조명한 작품. 마약 중독부터 미혼모에 이르기까지, 보다 나은 삶을 위해 분투하는 테헤란의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이 느슨하게 연결된 이야기의 구조를 따라 묘사된다.
[선정평] 이란의 거장 락샨바니 에테마드의 최고 걸작.
<유골의 얼굴>
이라크의 놀라운 풍자영화. 이란과 이라크의 전쟁이 한창이던 시기, 이라크 쿠르드 시골마을의 한 무슬림 가정으로 전사한 시체 한 구가 배달되어 온다. 장례를 준비하던 전사한 병사의 삼촌은 그 시체가 할례를 받지 않은, 즉 그가 자신의 조카가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미스터리한 이 사건으로 인해 평범했던 마을에 긴장감이 고조되기 시작하는데….
[선정평] 블랙코미디의 진수.
셰익스피어 팬을 위한 작품
<심벨린>
셰익스피어의 동명 희곡을 원작으로 심벨린 왕과 그의 딸 이모진, 이모진의 연인 포스추머스, 그리고 주변 인물들의 복잡한 관계를 현 시대에 맞게 각색한 작품이다. 에드 해리스, 에단 호크 등 화려한 캐스팅만으로도 화제를 불러일으킬 이 작품은 올해 베니스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였다.
[선정평] 원작의 주인공 심벨린 왕이 바이커 갱들의 우두머리로 그려진다. 이미 <햄릿>(2000)으로 셰익스피어의 원작을 현대물로 영화화했던 마이클 알메레이다 감독이 에드 헤리스, 밀라 요보비치, 에단 호크 등 연기파 배우들과 함께 어떻게 복잡하면서도 심오한 셰익스피어의 원작을 요리했는지 궁금하다면 놓치지 말아야 할 작품.
<도원경>
19세기 말 아르헨티나의 오지 파타고니아에 덴마크의 장교 군나르가 부임해온다. 함께 온 딸 잉게보그가 한 병사와 사랑에 빠져 달아나고, 군나르는 두 사람을 찾기 위한 탐색에 나선다. 시공간,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한 남자의 여정이 리산드로 알론조 특유의 경이로운 버전으로 펼쳐진다.
[선정평] 남미 아트하우스 영화의 최전방에 선 리산드로 알론조가 풍경을 매개로 웨스턴을 재해석한다. 최근 출연작의 반경을 넓히고 있는 비고 모텐슨이 주연. 그의 변화된 행보 역시 주목할 만함.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국제비평가상.
<리바이어던>
북러시아 바닷가 마을에서 자동차 정비소를 운영하는 콜리아는 자신의 집과 사업을 몽땅 사겠다는 시장 바딤의 제안을 거절한다. 그의 제안은 점점 공격적이 되고 콜리아는 가족의 터전을 지키려 애쓴다. 폭력적 권력에 대한 알레고리와 촌철살인의 대사들이 돋보이는 작품.
[선정평] 2003년 <더 리턴>으로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러시아의 중견 거장 안드레이 즈비야긴체프의 신작. 작은 어촌 마을을 배경으로 푸틴 시대 러시아사회의 부패를 날카로운 메스로 해부한다. 칸영화제 경쟁부문 최우수각본상.
<내셔널 갤러리>
2,400점이 넘는 회화작품을 보유한 영국의 국립 미술관. 그림을 보존하고, 복원하고, 교육하며, 향유하는 모든 사람들이 시간과 예술이 공존하는 이곳을 지나친다. 물질과 정신, 흔적과 기억을 매개하는 공간을 바라보는 거장 프레데릭 와이즈먼의 시선.
[선정평]
그 자체가 거대한 드라마를 품고 있는 미술작품들. 서양미술의 걸작 2,500여 점이 소장된 런던 내셔널 갤러리의 구석구석을 다큐멘터리의 거장 프레데릭 와이즈먼의 카메라가 세밀하게 포착한다. 작품의 해석에서 복원, 전시회의 준비와 운영 등 갤러리를 둘러싼 흥미로운 이모저모를 만날 수 있다.
<이 땅의 소금>
세계적인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세바스티앙 살가도. 남미에서 유럽, 아프리카까지 서구 근대사의 격동과 함께한 삶의 궤적은 그의 사진작업에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 인류를 향한 열정을 가진 살가도와 빔 벤더스가 나누는 묵직한 대화.
[선정평] 세계적인 리얼리즘 사진작가 세바스티앙 살가도의 작품세계와 삶, 그리고 그 궤적과 떼어놓을 수 없는 20세기 유럽과 남미의 정치사회사를 살가도의 목소리와 빔 벤더스의 카메라를 통해 들여다본다. 살가도의 사진들이 보여주는 이미지만으로도 하나의 전시를 보는 듯한 경험을 만끽할 수 있을 것.
다큐로 만나는 노암 촘스키
<미셸 공드리와 노암 촘스키의 행복한 대화>
프랑스 감독 미셸 공드리가 미국의 언어학자이자 정치평론가 노암 촘스키를 만나 직접 인터뷰를 진행하고 이를 기록한 다큐멘터리-애니메이션. 딱딱하지 않게 촘스키의 이론을 만나볼 수 있는 작품으로 통통 튀는 공드리와 진지하게 수학과 언어를 논하는 석학 촘스키 간의 오묘한 균형도 볼 만하다.
[선정평] 국내에는 정치적 입장으로 더 많이 알려진 촘스키의 학문적 성취, 특히 20세기 언어학의 근간인 변형생성문법 등 촘스키 이론의 핵심을 그 자신의 친절한 설명으로 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