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코뮤니스트의 아베 비판, "역사 위조 용서 못해"
우리가 살고 있는 동북아시아에는 북한 핵무기 문제, 센카쿠 문제 등 영토와 관련된 분쟁 문제, 역사 문제를 둘러싼 대립과 상호 불신 등 다양한 긴장과 분쟁의 불씨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어떻게 이 지역에 평화적 환경을 구축할 것인가, 이것이 동북아시아의 모든 나라에 큰 과제라는 것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입니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아베 정권의 대응은 두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이 지역에 평화적 환경을 만들기 위한 어떤 외교전략도 없이 오로지 군사적 대응에만 열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현재 아베 정권은 ‘헌법 9조 하에서는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없다’면서 전후 반세기에 걸친 일본 정부의 헌법 해석을 뒤집고 ‘집단적 자위권 행사 용인-해외에서 전쟁하는 나라’ 만들기로 치닫고 있습니다.
총리는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우리나라를 둘러싼 안보 환경이 악화되고 있다’고 강조하면서 ‘억제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라며 집단적 자위권 행사 용인을 정당화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온갖 분쟁 문제에 죄다 억제력 강화, 군사력 증강이라는 수단으로 대처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당연히 그 상대방도 군사력 증강을 가속화시키게 될 겁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군사 대 군사’라는, 위험한 군사적 긴장의 확대와 악순환에 빠지게 될 뿐이지 않겠습니까?
용서할 수 없는 역사의 위조
두 번째는, 이 정권이 제대로 된 외교 관계의 토대 자체를 뒤집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베 총리의 지난해(2013년) 12월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일본 군국주의가 벌인 과거의 침략전쟁을 긍정·미화하는 입장에 서 있다는 것을 세계에 선언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한국, 중국 등 주변국과의 긴장을 격화시켜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중대한 역류를 만들고 있습니다.
침략전쟁을 예사로 긍정·미화하는 세력, 전쟁의 선악을 구별하지 못하는 세력이 헌법에 대한 해석까지 변경하며 일본을 ‘해외에서 전쟁하는 나라’로 바꾸려 하고 있습니다. 이것만큼 아시아와 세계에 위험한 일도 없다 하겠습니다.
이처럼 유해하고도 위험한 길과 단호히 결별하고 어떠한 문제와 관련해서든 도리의 편에 선 외교적 교섭에 의한 해결, 평화적 해결로 일관하는 헌법 9조의 정신에 입각한 외교전략을 확립하는 것이 오늘날의 일본에 강력히 요구되고 있습니다.
일본공산당은 2014년 1월 개최된 제26차 당대회에서 다음과 같은 목표와 원칙에 입각한 ‘동북아시아 평화협력 구상’을 제창했습니다.
“관련 국가들의 준거 기준이 되는 평화의 룰(rule)로서 무력행사의 포기, 분쟁의 평화적 해결, 내정 불간섭, 신뢰 구축을 위한 효과적인 대화와 협력의 촉진 등을 규정한 동북아시아 규모에서의 ‘우호협력조약’ 체결을 지향한다.
북한 문제와 관련해 6자회담 참가국들이 2005년 9월 합의한 공동성명의 입장으로 돌아가 한반도 비핵화, 핵미사일, 납치, 과거 청산 등과 같은 현안 문제의 포괄적 해결을 도모하며, 이 틀을 동북아시아 평화와 안정의 틀로 발전시킨다.
이 지역에 존재하는 영토 분쟁의 해결과 관련해서 역사적 사실과 국제법에 근거한 냉정한 외교적 해결을 철저히 추구한다. 힘에 의한 현상 변경, 무력 행사 및 위협 등 분쟁을 고조시키는 행동을 엄격히 삼간다. 국제법에 따라 우호적 협의 및 협상을 통해 분쟁을 해결하는 행동규범의 합의를 지향한다.
동북아시아의 우호와 협력을 발전시키는 데에 있어 일본이 과거에 저지른 침략전쟁과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반성은 불가결의 토대가 된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미해결 과제를 신속히 해결하는 동시에 역사를 위조하는 역류의 대두를 불허한다.”
이 구상은 동북아시아 지역에 존재하는 분쟁과 긴장을 평화·외교적 수단에 의해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 대안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 구상은 현재 이 지역 내에 미일, 한미 군사동맹이 존재하는 상황 하에서 군사동맹에 대한 입장 차이가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다 함께 추구할 수 있는 긴급 제안이기도 합니다.
이 구상은 결코 이상론이 아닙니다. 이미 동남아시아 국가들, ASEAN이 실천하고 있는 평화를 위한 지역 공동의 대처를 동북아에서도 구축하자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간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방문해서 이와 같은 ASEAN의 대처를 직접 목도해왔습니다. 제가 인도네시아, 베트남, 캄보디아 등을 방문하고 ICAPP에 참석해서 동남아시아의 여러 정당들과 교류하는 가운데, 바로 이 지역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이 많고 희망적인 흐름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직접 접하며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아세안의 분쟁의 평화적 해결 본받아야
현재 ASEAN은 TAC, ARF, EAS, 동남아시아비핵지대화조약(SEANWFZ), DOC 등 중층적인 평화와 안보의 틀을 만들어 이를 외부적으로도 확대하고 있습니다.
1976년 체결된 TAC는 무력 사용의 포기와 분쟁의 평화적 해결 등을 내걸고 ASEAN 당사국들의 관계를 다루는 평화의 룰을 만든 것이었지만, 1987년 이후부터는 국제조약으로서 유라시아·아메리카 대륙 57개국으로까지 확대되어 세계 인구의 72%가 참가하는 거대한 흐름으로 성장해 있습니다. 실로 동남아시아가 세계와 아시아 평화의 원천이 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들 전체를 관통하는 사고는 다음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 군사 블록처럼 외부에 가상의 적을 설정하지 않고 지역 내 모든 나라를 받아들이는 동시에, 아시아와 세계에 열려있는 평화의 지역공동체가 되고 있다.
- 군사적 수단, 군사적 억제력에만 의존하는 안전보장이라는 사고의 틀을 벗어나 대화와 신뢰, 그리고 분쟁의 평화적 해결 등 평화적 접근을 통해 안전보장을 추구하는, 가히 ‘평화적 안전보장’이라 할 만한 새로운 사고에 기초해 있다.
- 정치·사회 체제의 차이, 경제적 발전 단계의 차이, 문명의 차이 등을 서로 존중하는 ‘다양성에 근거한 공동의 발전을 도모한다’는 사고를 고수한다.
저는 2013년 9월 인도네시아를 방문했을 당시, 자카르타에 있는 ASEAN 본부를 방문해 다음과 같은 내용의 무척 인상적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ASEAN은 연간 1,000회가 넘는 모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모든 차원에서의 대화와 신뢰 구축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지역에도 여러 가지 분쟁은 존재하지만, 그것이 전쟁으로까지 발전하지는 않는 것입니다. 무엇이든 대화로 해결할 것이며, 또한 이를 실천하고 있는 중입니다.”
실제로 동남아시아 내에서도 수많은 분쟁은 존재합니다. 미국이 이 지역에서의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있고, 중국 또한 영향력을 확대하려 합니다. 다양한 갈등, 분쟁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ASEAN 국가들은 어떤 대국의 지배권도 인정하지 않는 자주적 결말을 이끌어내는 동시에 연간 1,000회가 넘는 충분한 대화를 통해 분쟁을 전쟁으로 발전시키지 않는,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평화적 흐름을 아시아 태평양 전체, 한발 더 나아가서는 세계적 차원으로 확대하려고 합니다. 바로 여기에 우리가 배워야 할 미래지향적 흐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우리는 동아시아 정부들 사이에서 동북아시아 평화를 위한 지역 공동의 움직임을 만들어내자는 제창이 이루어지는 것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2013년 5월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은 미국 의회 연설에서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을 제안, 동북아시아 전역에서 다자간 대화 프로세스를 진행시켜 평화와 협력의 메커니즘을 구축할 것을 호소했습니다.
2013년 12월 인도네시아의 유도요노 대통령은 도쿄 강연에서 무력 행사의 포기와 분쟁의 평화적 해결 등을 원칙으로 한 ‘인도·태평양 우호협력조약’의 체결을 호소하며 “그러한 조약이 TAC가 ASEAN 국가들에게 미치고 있는 것과 같은 평화적 변화의 영향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구상들은 우리 당의 제창과도 내용이 중첩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제안을 가지고 국내외에서 간담회를 거듭해 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분들이 환영을 해주셔서 대단히 기뻤습니다.
지난해 9월 인도네시아를 방문했을 당시 저는 와르다나 외교차관과 회담을 가졌습니다. 그 자리에서 제가 “우리는 TAC와 같이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도모하는 국제 규범을 동북아시아에서도 구축한다는 정책 비전을 내놓고 있습니다”라고 말하자 와르다나 씨는 “그러한 이니셔티브를 환영합니다. ASEAN의 경험과 교훈을 동북아시아에서도 활용해주었으면 합니다. TAC와 같이 동북아시아에서도 평화와 안정을 이끌어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라며 환영의 뜻을 표했습니다.
우리는 도쿄의 동아시아 각국 대사들과도 이 문제로 간담회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어떤 나라의 대사는 우리의 제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해주었습니다.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시이 위원장께서 말씀하신 구상이 실현된다면 진정한 동북아시아 평화와 협력의 틀이 짜일 것입니다. 그러니 한시라도 빨리 일본공산당이 집권해서 꼭 이 구상을 실현시켜 주었으면 합니다.”
기쁜 기대입니다. 일본의 전 외무성 고위 관계자는 우리의 구상에 대해 다음과 같은 감상을 보내주었습니다.
‘(일본공산당의 제안은) 지극한 정론(正論)으로, 당연히 지지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일본과 중국, 그리고 한국이 어떤 동아시아를 만들 것인지 논의를 시작합시다. 서로 각을 세우고 으르렁거리는 동아시아가 아닌 평화롭고 사이좋으며 상대에 대해 관대함이 널리 퍼져있는 동아시아를 만들고 싶습니다.’
일본공산당은 야당이지만 동아시아 각국의 정부·정당, 그리고 국민 여러분과 대화하며 ‘동북아시아 평화협력 구상’의 현실화를 위해 힘을 다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우리의 야당외교 방침이 하루 빨리 일본 정부의 외교 방침이 되는 날이 올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국제 공약 파괴한 아베 정권 용납 힘들어
오늘날 일본 정치는 전후 최대의 역사적 기로에 서 있습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은 ‘헌법 9조 하에서는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없다’면서 전후 반세기에 걸친 일본 정부의 헌법 해석을 뒤집고 ‘해외에서 전쟁하는 나라’ 만들기로 치닫고 있습니다. 이는 헌법 9조를 질적으로 삭제해버린 것이나 다름없는 폭거입니다.
헌법 9조 문제는 단지 일본의 국내 문제가 아닙니다. 이 조항은 과거 일본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벌인 침략전쟁에 대해 반성하고, 다시는 침략국이 되지 않겠으며, 세계평화에 앞장서겠다고 다짐하는 ‘국제 공약’과 다름없습니다. 이러한 ‘보배’를 지키는 것은 세계와 아시아에 대한 일본 국민의 중대한 책임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일본 국민의 압도적 다수 여론과 운동을 결집하여 아베 정권의 위험한 행보를 막아내는 데에 총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이러한 투쟁과 더불어 우리는 일본의 국내 정치에서 일본공산당의 힘을 보다 강하고 크게 만드는 꿈과 희망을 가지고 입습니다. 이 책의 원안인 일본어판은 2012년에 출판되었는데, 당시 저는 일본공산당이 국정선거에서 새로운 약진을 이루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새로운 약진의 시대를 지향하며’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그리고 이듬해인 2013년 7월에 있었던 참의원선거에서 일본공산당은 515만 표를 획득해 9.7%의 득표율로 3석이던 의석수를 8석으로까지 늘리는 약진을 쟁취할 수 있었습니다. 이 약진은 일본공산당이 지금의 강령노선을 확립했던 1961년 이후의 반세기 남짓한 세월을 더듬어볼 때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에 이르는 기간 동안의 ‘제1의 약진’, 그리고 1990년대 후반의 ‘제2의 약진’에 이은 가히 ‘제3의 약진’이라고 할 만한 성과였습니다.
저는 지금 이렇게 다시 시작된 약진을 결코 일회적인 것으로 끝내지 않고 일본을 바꾸는 큰 흐름으로 만들어 일본의 정치를 아시아와 세계에서 환영받을 수 있는 방향으로 전환시키는 일에 온 힘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합니다.
이 글은 가즈오 위원장이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이란 주제로 오는 27일 고려대 백주년기념관에서 강연할 내용을 간추린 것으로, 그의 저서 <새로운 약진의 시대를 지향하며>(미래를 소유한 사람들)가 곧 국내에 출간될 예정이다.
글‧시이 가즈오(志位和夫)
일본공산당 소속 중의원 의원. 1990년부터 2000년까지 일본공산당 서기국장을 역임했으며, 2000년부터 일본공산당의 당수 격인 일본공산당 중앙위원회 간부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2006년 9월, 일본공산당 당수 자격으로는 처음으로 대한민국을 공식 방문하였다. 아시아정당국제회의(ICAPP) 제4차 총회 참석을 위해 방문한 가즈오 위원장은 서대문형무소 체험에 참여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과거 일제 식민지배의 폭력적인 억압과 잔혹함, 한국민들이 겪었을 아픔이 가슴 깊이 새겨졌다”라고 일본의 과거사에 대해 사과하였고, 희생자 추모비에 헌화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