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권하는 사회에서'

2014-09-30     김성민

 

친구야, 이곳의 유일한 생방송인 저녁 뉴스에서 총기난사 소식을 들었어. 새삼스레 작년 11월, 내 입영일이 떠올랐어. 논산의 하늘은 시리도록 파랬지. 연병장으로 향하는 길 양편에 쭉 천안함 북침을 성토하는 현수막과 북한 정치범 수용소를 고발하는 사진 판넬들이 죽 늘어서 있었고, 입대 장병들의 바짝 깎은 머리와 탱크들이 운동장을 메웠지. 아무리 돌이켜봐도 삭막했던 그 날의 풍경은 한 편의 거대한 정신교육장 같았어. 군악대의 나팔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친구들과 손 흔들면서 눈물 흘리며 이별하는 입대 장병들을 멀리서 바라보면서, 나는 몹시 외로움을 느꼈어. 그날 입대한 그들은 지금쯤 군인티를 물씬 풍기며 훈련을 받고 남은 일수를 세고 있을 것이고, 나는 입영을 거부한 죄로 감옥에서 이 편지를 쓰고 있어.

군대가 싫어 감옥에 왔건만, 여기도 바짝 군기를 잡아. 신입으로 들어오면 쏟아지는 눈총을 받으면서, 딱딱한 규율에 바짝 긴장하게 되지! 아마도 군대에 갔으면 듣지 않았을 질문들을 받게 되지. “넌 왜 여기 들어 왔냐?” “(여호와의) 증인이냐?” 등등.

병역을 거부한 젊은이들이 1년에 600명씩 감옥에 오니까, 이곳 사람들에게 나 같은 병역거부자는 매우 익숙하게 느껴지나봐. 하지만 이들의 궁금증은 대개 종교문제로 쏠리지.

내가 “여호와의 증인이 아니다”라고 말하면, 그들은 “그럼 도대체 왜?”라고 묻곤 하지.

나는 뭐라 자세히 설명하기 애매해서 “평화주의 신념 탓’이라고 말하지. 이곳 사람들은 한참 나와 말을 섞다가 ‘사상’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더군. 그들에겐 자신들의 자식뻘인 내가 군대에 안 가는 ‘특별한’ 이유가 궁금했고, 난 ‘평화’라는 거창한 단어가 갖는 추상성과 무게감 뒤로 숨고 싶었던 것 같아.

5~6년 전쯤, 병역거부자를 처음 만났던 나도 그랬던 것 같아. 생소했고, 그래서 ‘특이’하거나 ‘특별’한 양심을 가진 사람들의 인권이라고 받아들였지. 왜 나는 그때 그들이 부당한 탄압을 당하는 불쌍한 사람이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옥을 선택하는 용기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을까?

나는 스스로에게 ‘나라면 병역거부를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내 삶의 많은 것들을 다시 고민했었지. 중요한 건 아직 군대를 안 간 상태였거든. 이런저런 책과 글을 읽어보며 나의 고민은 깊어졌어. 처음에는 병역거부를 처벌하는 상황에서 나의 양심을 거스르며,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군인이 될 수 있을까 하고 고민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나의 고뇌는 깊어졌어.

“내가 총을 드는 건 어떤 것일까?” “누군가를 죽이는 훈련을 받고 실제로 누군가를 죽여야 한다면?”

나는 친구들이나 가족들과 열띤 대화를 나누며,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운 날도 적지 않았어. 병역거부 활동을 하는 단체를 찾아 회원가입도 하고, 조금씩 활동을 같이 하며 각기 다른 이유와 생각으로 평화를 말하는 사람들을 만났어. 그때부터 나는 무엇이 내게 총을 들게 하는지, 내가 왜 그 ‘무엇’ 앞에서 굴복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면서, 한국 사회에서 군인이 되는 나 자신에 대해 회의를 느끼게 됐어.

‘군대의 창’을 통해 내가 살아가는 사회와 부딪히는 일상을 바라보기 시작했어. 돌이켜보니, 학창시절은 물론, 교회의 설교에서, 여기저기서 듣는 직장에서의 대화에서, 남자와 여자 간의 극복되지 않는 갈등에서, 친구들의 연애 이야기에서, 심지어는 촛불을 들고 나간 집회에서나 환경과 주민들의 삶의 터전을 파괴하는 곳에까지 어디에나 군대는 자리하고 있었어. 나라를 지킨다는 이유, 또 국익을 위해서라는 거대한 명분 아래 한 개인의 희생과 고통, 차별 문제는 무시되곤 했어.

입영거부 탓에 과연 배제되어야 하는 건지? 감옥에 갇혀야 할 만큼 ‘죽을죄’를 짓는 건지? 나는 지난 몇 년 동안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나 자신을 바라보려 했어. 병역거부를 계기로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내가 그들과 함께 느끼고 쌓아온 감정들이, 말하자면 나의 ‘양심’이었던 것 같아. 아주 개인적이면서도 온전히 나의 것만은 아닌, 그 ‘양심’을 스스로 거스르는 것은 내겐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어.

여전히 네가 ‘그래서 대체 왜 군대를 안간 건데?’라고 묻는다면, 한마디로 명쾌하게 답할 재주가 내겐 없네. 그저 수년간의 고민들이 쌓여왔고 내가 소중히 여기는 가치들을 내 몸에 새겨가려는 노력을 하고 싶었고, 군인이 되지 않은 것도 그 연장선이 아닐까 하는 애매한 대답밖에는.

어두운 감옥에서 이제는 돌이킬 수 없지만, 여전히 나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이 있어. ‘탱크나 총칼 대신 댓글로 당선된 대통령의 시대에, 사회주의 혁명이나 민중해방 같은 구호 대신에 대통령을 조롱하거나 트위터를 RT해도 감옥에 가는 이 우스운 시대에 군대를 거부하는 게 어떤 의미인가를…. 군대란 옳아서가 아니라 훨씬 이득을 얻기 때문에 가는 것이고, 안 가면 너만 손해라는 가장 자본주의적인, 그래서 가장 현실적이고 두려운 충고들이 귓전에 아직도 맴돌아. 총 권하는 사회에서 내가 끊임없이 마주해야 할 진짜 감옥은 아마도 이런 무의미한 충고와의 씨름일 거야.

병역 거부를 선언한 후에 마음이 훨씬 더 편해졌어. 자신의 경험이나 각자의 일상에서 군대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솔직하게 이야기해 준 사람들이 적지 않았거든. 군대 다녀온 남자들끼리는, 예비역 병장인 남친에게는, 반공이라는 교리를 믿는 목사님께는 차마 못하는 얘기를 같이 나눌 수 있었어. 모든 남자가 군대를 가야 하고, 군대를 다녀와야 사람 된다는 말에 감히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사회에서 병역거부는 하나의 빈틈이었고, 그래서 내 선택이 나 혼자만의 결론이 아니라, 금기를 터트리는 솔직한 대화의 실마리가 되었던 것 같아서 내 결정을 지지해준 모든 이들에게 고맙더라.

어떤 학자의 말처럼 ‘대한민국은 군대’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내겐 군대야말로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가장 핵심적인 문제였어. 하지만 이제와 생각해보면, 오히려 군대만 거부한다고 해서 충분한 게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됐어. 나는 단지 내 앞으로 온 영장을 거부했을 뿐이고 여전히 우리 사회 곳곳은 군대와 전쟁의 원리로 촘촘하고도 단단하게 구성돼 있잖아. 앞으로도 다양한 사람들이 조금씩 군대의 존재에 대해 고민하고, 나름의 작은 거부를 해나간다면 내 선택이 더욱 의미 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뉴스를 보며 안타까웠어. ‘관심병사’라는 말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과연 우리는 그들에게 충분한 관심을 가진 적이 있었을까? 어찌 보면, 죽인 사람이든 죽은 사람이든 하나의 기준을 강요하는 잔인한 시스템이 만들어 낸 비극의 희생양이 아니었을까? 왜 우리는 그들의 손에 끊임없이 총과 수류탄을 쥐어줘야 했을까? 어떤 이들을 관심병사로 분류하거나 범법자로 만드는 대신에, 총을 드는 대신에 다른 목적과 다른 방식의 관계로 조직되는 나름의 역할이 주어진다면, 그들 자신에게도 우리 모두에게도 조금 더 평화로운 삶이 가능하지 않을까? 이런 상상, 해본 적 있니?

편지를 마무리할 때가 된 것 같아. 너도 알다시피 난 병역거부자이기 이전에 여행을 좋아하던 사람이었지. 서로 다른 사회의 문화를 살피며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를 듣고, 나와 그들의 감정을 서로 느껴보는 건 내겐 큰 즐거움이자 배움이었어. 감옥은 나름의 문화와 법칙을 가진, 숱한 사람들의 사연이 담긴 또 하나의 사회야. ‘김대중 덕분에 감옥 많이 좋아졌다’고 말하면서도 ‘김대중은 간첩’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교도관들이랑 작은 마찰이라도 생기면 바로 인권을 입에 올리지만, 평상시에는 TV에 나오는 인권활동가나 인권 변호사들은 모두 ‘빨갱이’라고 말하는 모순된 공간이지.

24시간 좁은 방에서 부대끼며 생활하지만, 사람들은 종종 나의 ‘사상’에 대해 궁금해하지. 같이 생활한 지 열흘쯤 됐을까. 어떤 분이 아주 의아스럽다는 표정으로 “너는 대체 전쟁이 왜 싫은 거냐”라고 물었어. 말문이 막혀 대답을 얼버무렸어. 논리적으로 진정성을 담아 얘기하면 ‘내가 전쟁을 싫어하는 이유’를 그에게 납득시킬 수 있을까? 아니, 조금이라도 이해받을 수 있을까? 1년 반 동안, 아니 그 이후에도 살아가면서 나름의 여행을 해나가며 질문을 간직하려 해. ‘평화’라는 말의 빈 공간을 묵묵히 채워 가는 게 내게 주어진 숙제려니 하고 말이야. 네게도 한 가닥 고민이 되었으면 해.

 

글‧김성민

별명은 들깨. 2008년 촛불집회 때 학교를 쉬며 방황하기 시작했다. 병역거부를 고민하기 시작하고 인권단체, 평화단체, 신문사 알바, 공동체 생활, 배낭여행 등으로 이리저리 떠돌다가 2013년 11월 18일 입영일에 입영하지 않고 병역거부를 선언했다. 1년6월형을 선고받고 서울구치소에서 복역 중이다. 병역거부의 이유와 소신을 더 자세하게 쓴 병역거부 소견서는 http://cafe.naver.com/green519fu/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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