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크가 브라질 여행을 꿈꾼 이유는?

2014-09-30     세바스티앙 라바크

“너무나 체념해 한계에 다다랐소. 프랑스를 떠나 미친 셈 치고 브라질로 갈까 하오. 광기 때문에 브라질을 선택했소.”(1) 소설가 발자크가 1840년에 한스카 백작부인에게 쓴 글이다. 당시 인간 개혁을 위해 노력하고 싶어 하는 현대인들은 아프리카나 미국을 꿈꾸었다. 그런데 왜 <인간 코미디>의 작가 발자크는 대세였던 아프리카나 미국이 아니라 생소한 브라질을 꿈꾸었을까? 역사학자 로랑 비달은 이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기 위해 유토피아를 건설하기 위해 브라질로 간 샤를르 푸리에에 영감을 받은 수백 명의 사람들이 단행한 비극적이면서도 희극적인 모험을 재구성했다. 샤를르 푸리에는 리우 데 자네이루의 남쪽에서 750km 떨어진 지금의 산타카타리나 주에 사회주의적 공동체를 건설하겠다는 꿈을 안고 1841년과 1844년 사이에 대서양을 횡단한 인물이다.(2) 푸리에를 따라 하려던 수백 명 사람들의 모험은 실패로 돌아갔다. 하지만 파리와 리옹에서는 바다 넘어 유토피아적인 사회주의 공동체를 건설하려던 이들의 의지가 주목을 받았다. 특히 사기업의 이익이 지배하는 노동 환경 문제에 대한 대안을 원하는 사람들이 관심을 보였다.

발자크는 소설 <마을 신부>를 발표했다. 마침 이 당시에 리옹에서는 유사요법 의사인 브누아 뮈르가 이끄는 푸리에 지지자들이 브라질에 노동과 산업 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해 희망자를 모집하고 있었다. 1840년 1월 <신세계>는 이를 기사로 다룬 바 있다. 발자크는 <신세계>를 읽은 것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발자크는 1840년 8월 25일자 <르뷔 파리지엔>에서 푸리에의 이론을 지지했다. 그는 그로부터 몇 주 후에 푸리에의 이론에 영향을 받은 빅토르 콩시데랑과 가진 생각과 비슷한 생각을 전개해 나갔다.(3)

2000년에 출간되어 재판된 <브라질의 역사>에서 바르톨로메 브나사르와 리샤르 마랭은 뮈르와 동료들의 불운한 경험, 사회주의 공동체 건설에 나섰으나 5~6년밖에 살아남지 못한 두 프랑스인의 이야기를 다루었다.(4) 실제로 푸리에 추종자들이 간직한 브라질 꿈은 5~6년밖에 가지 못했다. 그렇게 브라질을 꿈꾸며 프랑스를 떠난 사람들은 580명이었으나 이 580명이 전부 브라질 남쪽으로 가게 되어 사히 공동체, 혹은 팔미타르 공동체를 건설하게 된 것은 아니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중간에 길을 잃는 사람들도 많았다. 비달은 이 이유를 밝혀내고 있다.

비달이 예시로 든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열다섯 살의 젊은 황제 페드로 2세는 사회주의적 공동체를 건설하려고 브라질에 온 사람들을 리우 데 자네이루의 파쑤 임페리얼궁으로 따뜻하게 맞아 주었다. 당시 브라질은 예속적인 노동을 무너뜨리기 위해 외국인 노동자가 급하게 필요했기 때문이다.

독립한 지 20년이 채 안 된 브라질은 여전히 인구 수가 천만 명이 안 되었다(지금은 2천만 명). 이에 따라 토지 없는 농민보다는 농민 없는 토지 문제가 심각했다. 그래서 브라질 황실은 유럽인의 이민을 장려했다. 프랑스는 브라질에 노동력보다는 사상을 수출하던 나라였다. 따라서 프랑스인보다는 독일인, 스위스인, 벨기에인, 이탈리아인들이 차례로 리우 데 자네이루로 와 모국의 스타일을 고수한 현지 공동체를 구축했다. 지리학자 에르베 테리는 브라질의 공간 구성은 이 당시 혁신적인 시대의 흔적을 간직한 것이라 보고 있다. “브라질인 대다수는 현재도 해안가 근처에 살고 있다. 연안지역과 내륙지방은 여전히 뚜렷하게 대조적인 면을 보인다. 이는 식민지배 과정과 영토를 중심으로 한 인구 구성이 미친 영향을 잘 보여준다.”(5) 브라질 역사를 살펴보면 브라질의 균형을 회복하기 위한 선구자적인 시도들이 간혹 있었다. 수도를 리우 데 자네이루에서 브라질리아로 이전(1960년)한 것과 아마존 횡단 길 건설 등이 대표적인 예다. 푸리에식의 사회주의 공동체를 건설하려던 사람들이 벌인 시도는 지금의 브라질이 형성되는 데 많은 영향을 끼쳤다. 브라질은 일상의 유토피아로 여겨졌다. 프랑스 문화부 장관 시절의 앙드레 말로 역시 1959년 8월 25일, 브라질리아 건설 작업에 대한 연설에서 “브라질은 유토피아”라고 표현한 바 있다.(6)

 

글·세바스티앙 라바크 Sébastien Lapaque

 

번역·이주영 ombre2@ilemonde.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번역서로는 <프랑스 엄마처럼>(2014) 등이 있다.

 

(1) <한스카 부인에게 보내는 편지>, 제1편(1832~44년), Laffont, 파리, 1990년

(2) Laurent Vidal, <그들은 다른 세상을 꿈꾸었다>, Flammarion, 파리, 2014년

(3) 발자크가 푸리에 지지자인 알퐁스 투스넬과 조에 카티 드 가몽과 교류한 내용은 <서신> 제2편(1836~41년)에 실려 있다.

(4) Bartolomé Bennassar, Richard Marin, <브라질의 역사>, Pluriel, 파리, 2014년

(5) Hervé Théry, <브라질, 이민 국가>, Armand Colin, 파리, 2014년

(6) 앙드레 말로의 연설문은 문화부 홈페이지 www.culture.gouv.fr에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