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관광객들이 베트남을 찾는 이유

2014-09-30     조르단 푸유

 ‘아랍의 봄’과 태국의 시위가 러시아 관광객들의 습관을 바꿔버렸다. 호치민시에서 20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판티엣과 무이네 해변에 사는 어부들과 숙박업자들은 새로운 관광객들에게 적응해 가고 있다.

아편에 탐닉하여 눈이 빨간 운전사가 차체가 흔들릴 정도로 시끄럽게 전자음악을 틀어놓고 자신의 지프에 광택을 내고 있다. 로안은 빠른 속도로 ‘환상적인 개울가’에 도착했다. 진흙탕 물이 가득한 수로가 황갈색 협곡으로 이어지고 있다. 교활한 농부들이 수로 이용 대가를 요구한다. 가벼운 옷차림을 한 3명의 젊은 러시아 여성들인 로안의 고객들이 이 커다란 광고판에 여러 언어로 쓰인 ‘타조 등 위의 산책’이라는 새로운 오락거리를 즐겨볼 작정이다. 지폐 몇 장을 주자 어린 소년들이 여성 고객들을 팸플릿에서 ‘아시아의 사하라’라고 선전하고 있는 장엄한 모래언덕의 정상까지 모셔다 준다. 17시 58분 캄란만의 태양이, 분홍빛 구름의 찢어진 틈 사이로 코발트색 푸른 하늘을 뒤로 남기면서, 사그라진다. 지폐 몇 장을 더 주고 여행객들이 임시변통으로 만든 썰매 위에 올라타자, 썰매가 모래 위를 미끄러져 내려가 지프에 도착한다.

바로 이 순간에 무이네와 판티엣 어부들은 자신들의 조촐한 배의 뱃전에 기어오른다. 그들은 유리섬유로 된 조가비 모양의 뱃전에서 자신들의 그물과 팔랑그로트(palangrottes, 여러 개의 낚시 고리가 달린 줄)를 걷어 올린다. 여기에는 멸치와 오징어가 가득 잡혀 있다. 그들의 자식들은 손에 쓰레기봉투를 들고 모래 위를 거닐면서 플라스틱 병을 주워 모아 고물상에 무게를 달아 판매한다.

계단식 논, 메콩의 시적인 강변, 소문난 알롱만(灣)이나 하노이와 호치민시의 식민시대 건축물과는 멀리 떨어져 있는, 생선이 많이 나는 이 연안 지대는 서구 여행객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반면에 혹독한 겨울을 잠시나마 잊어버리고 아무 일도 안하면서 편하게 지내고 싶은 러시아 여행객들이 이곳으로 쇄도하고 있다. 모스크바에서는 11월에서 4월 초까지 지붕들이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붕괴된다. 그런데 러시아 노동자들은 연간 40일의 유급휴가를 즐기고 싶어 한다.

“희한하게도 이 시즌에 우리는 카잔(볼가 강 위에 위치한 타타르스탄주의 도시)과 나베레즈니예 첼니(카잔 동쪽으로 20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공업도시)에서 온 수많은 휴가여행객들을 맞이한다. 이들은 외국여행을 처음으로 하는 사람들이다. 여기서 이들은 마시고, 먹고, 잠만 잘 뿐이다. 스포츠는 전혀 하지 않는다. 단지 휴식만 취하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일리아 수스로프가 에게해 로도스섬의 거대 석상처럼 서서 숨을 헐떡인다. 상트 페테르스부르그 출신인 이 30대 남성은 이곳에 시간당 75달러에 이용할 수 있는 최초의 ‘카이트서핑(Kitesurf)’ 교실을 열었다. 그가 탐내는 고객은 무위도식을 원하는 고객이 아니라, 강렬한 자극을 좋아하고 그런 것에 흥미를 느끼는 유복한 러시아의 젊은 처녀들이다. 그가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발견해낸 고객층이다.

그가 베트남에 대해 한눈에 반해버린 시기는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시절 스프래틀리 군도(1)에 대한 중국의 영유권 주장을 염려한 베트남은 러시아와 다양한 무기 구매 계약을 맺었다. 잠수함 6정, 전투기 12대, 프리깃함 2정을 2006년과 2009년 사이에 주문했다. 이런 우호적인 군사·외교 관계 덕택에 수스로프와 다른 많은 사람들이 2주간의 무비자 체류 혜택을 받았다. “나는 카이트서핑을 좋아했다. 그래서 나는 판티엣에 상륙했다. 그것은 행운이었다. 모든 것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자유로움을 느꼈다. 나는 디자인 스튜디오를 팔기 위해 러시아로 돌아갔다. 그리고 갖고 있는 돈으로 여기에 정착할 결심을 했다. 이런 방식으로 러시아의 반문화 풍조를 구현한 느낌이 들어서 정말 좋았다.”

안드레이 크라소프스키도 비슷한 상황에서 베트남의 해변에 정착했다. 이 모스크바 사람은 바다에 면한 임대토지 위에서 해산물 레스토랑을 운영한다. “모스크바에서는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무기력한 로봇처럼 생활했다. 사람들은 좀 더 멋진 자동차를 사야겠다는 목표 하나만을 위해 멋진 남성복을 입고 일만 했다. 당연히 초창기에는 이곳 삶이 매우 힘들었다. 나를 환대해주는 것은 어부들과 뱀들밖에 없었다.” 이 러시아 관광산업 개척자는 현재 80개 테이블이 딸린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다. 그의 베트남 부인은 회계를 담당하고 있으며 악센트가 전혀 없는 슬라브어를 구사한다. 얼마 전에 아주 다행스럽게 두 개의 호텔 ‘시호스’와 ‘유니크’가 그들의 레스토랑 앞에 세워졌다. 망명객들을 위한 그들의 멋진 식탁은 4명의 여성 호객꾼들이 비닐 코팅된 메뉴를 인도(人道)에 서서 구경거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정도로 여행객들을 위한 간이식당으로 변신했다.

무이네와 판티엣에 처음으로 세워진 호텔들은 이국적 풍미에 목마른 유복하고 젊은 러시아 여성 고객들을 맞이했다. 얼마 후에 튀니지와 이집트에 민중폭동이 일어나자 그때부터 관광객이 해일처럼 밀려 들어왔다. “2011년 1월부터 튀니스와 카이로행 러시아 전세 비행기 모두가 호치민시나 바다와 아주 가까운 예전의 캄란 공군기지 쪽으로 방향을 바꿔야 했다”고 판티엣의 판다누스 리조트 지배인이 이야기한다.

‘페가스 투리스티크’ 여행사는 최초로 러시아 전세 비행기를 베트남으로 향하게 했다. 12개월 중 6개월 동안 이 여행사는 나트랑 해수욕장에서 30km 떨어진 캄란 공항까지 매일 4번의 운항을 보장하고 있다. 베트남은 2011년 12만 명, 2012년 17만 2천 명, 2013년 25만 명의 러시아 관광객을 맞이했다. “우리나라에서 바캉스를 보내는 사람들이 3년 전에 비해 3배 더 늘어났다”면서 <르 쿠리에 뒤 베트남(Le Courrier du Vietnam)>은 흥분한다. 비록 그 수치가 약간 부풀려진 것을 감안해도 관광객이 엄청나게 증가한 것은 사실이다.(2)

급속히 늘어나는 엄청난 관광객을 수용하기 위해 나트랑에 250개의 호텔이 세워졌고, 판티엣과 무이네 사이 15km에 달하는 모래해변에 139개의 호텔이 들어섰다. 판가누스, 테라코타 리조트, 스위스 빌리지, 말리부, 그레이트 코코넛과 오션스타 호텔들은 모두 해변에 수영장, 연꽃이 핀 연못, 주변 모래언덕과 잘 어울리는 노란색 방갈로를 갖추고 있다. 무이네의 판가누스에서는 한 필리핀 예술가 가족이 매일 저녁 수영장 위에 펼쳐진 무대 위에서, 마음대로 마실 수 있는 맥주에 취해버린 피서객들을 위해 무료로 레이디 가가의 레퍼토리를 상연하고 있다. 12일간의 관광이 항공료를 포함하여 1인당 1,000~1,200달러에 팔리고 있다. 역설적인 현상인데, 점점 돈을 덜 쓰는 고객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이런 호텔이 많아지고 있다.

“관광객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매번 이들의 뒤를 잇는 사람들은 점점 더 가난한 러시아 도시 출신 방문객들이다. 더 싼 물병을 사기 위해 마을 끝까지 수 km를 걷는 관광객들을 보았다”라고 호텔업자인 에릭 헤이만스가 증언한다. 그의 호텔인 ‘무이네 I, II, III’는 하룻밤 25달러에 안락한 방을 제공한다. 야자나무들이 그의 수영장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약간의 그늘을 제공하고 있다. 그의 레스토랑 메뉴는 피자, 치즈 4종류, 베트남 국수를 섞어서 제공한다. “적어도 나는 이 가격에 호텔 문을 연중 열고 있다. 반면 다른 사람들은 연중 세 달 동안 영업을 하지 않는다.”

이렇게 싼 가격의 비밀은 무엇일까? 해변에서 멀리 떨어져 나온 것이다. 이 벨기에 플랑드르 사람은 자신의 베트남 동업자와 더불어 2010년부터 자신의 호텔들을 싼 가격에 짓기 위해, 해변을 무시해버리고 길을 건너 어민들의 촌락 근처를 선택했다. 그런데 해변에 가기 위해 200m를 걸어야 한다. 이런 조건은 새로 오는 러시아 관광객들에게, 심지어 돈을 아끼는 관광객들에게도 치명적인 약점이 된다. 그래서 그는 별도의 고객층을 유혹하려고 애쓴다. 이 고객층은 자신들의 여행을 스스로 계획하기 좋아하고, 어느 정도 원주민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다. 그는 자유분방한 숙박객들이 너무 위험한 관광 산책을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하루 10달러에 오토바이를 대여하고 있다. “저번에는 어린 소년 몇몇이 커다란 자갈을 들고서 모래언덕 정상에서 관광객들을 기다렸습니다. 무사히 가려면 10달러를 내라고 요구했습니다. 이 어린애들이 나쁜 애들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들은 외국 관광객들에 대해 매우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갖고 있었습니다.” 호텔 방의 작은 냉장고 위에는 어린애들에게 돈을 주지 말라는 안내판이 붙어 있다.

곳곳에 2개 국어로 된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관광객들은 언어 장애에 봉착하여 곤란한 상황을 겪고 있다. 거래가 이루어지는 경우에 판매자들과 마찬가지로 고객들도 기본적인 영어 몇 마디만 구사할 뿐이다. “저번에 한 여성 고객이 손가방을 든 가련한 여자 상인에게 ‘할인, 할인’이라는 말을 신경질적으로 반복했는데, 그 상인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여성 고객은 베트남 사람들이 러시아어를 말할 줄 알고, 이 여자 상인이 자신을 놀리고 있다고 확신했다”라고 말하며 ‘보스토크-자파드’(동쪽과 서쪽이라는 의미) 레스토랑의 여주인인 투나 응우엔 여사가 한숨을 짓는다. 쌍방을 진정시키기 위해 그녀가 개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런 긴장 상황을 과장할 필요는 없다. 서로 윈윈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우리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고를 피하기 위해 나트랑 관광학교는 ‘하노이 과학·문화를 위한 러시아 센터’의 러시아어 교수들을 채용하여 92명의 학생들을 가르치게 하고 있다.

커뮤니케이션 문제 외에도 양국 사이의 인프라 구조에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도 문제다. 판티엣의 응우엔 딘 치우가(街)에 4성 호텔들이 들어서 있고 맞은편에 기념품 가게들과 레스토랑이 인도(人道) 위에 즐비해 있는데, 인도의 바닥에 구멍이 뚫려 있고 쓰레기가 그 곳에 잔뜩 쌓여있어서 쥐들이 실컷 포식하고 있다. 몇 개 되지 않은 소형 슈퍼마켓은 수도(首都)보다 30% 더 비싼 가격에 프랭글 칩, 하이네켄 맥주, 드래건(영어로 ‘strawberry pear’라 불리는 서인도산 과일) 단 3가지 식품을 단조롭게 진열해 놓고 판매하고 있다.

호텔의 지배권 문제도 존재한다. 공식적으로 4백 명의 러시아 망명객들이 무이네와 판티엣에 살고 있지만, 베트남 사람들만 토지 사용권을 갖고 있다. 국가가 여전히 토지 소유권자이고 토지의 개인 소유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반면 디아스포라(여기서는 ‘해외 거주 베트남 사람들’을 의미)는 토지를 사용할 권리가 있다. ‘비에트 키우’(Viet kieu, 베트남 교포)’는 270만~400만 명 정도 되는데, 이중 6만~15만 명 정도가 러시아에 정착해 있다. “프랑스에 사는 대부분의 베트남 사람들은 귀화해 버렸다. 그래서 베트남 당국에 우리도 해외 베트남 사람들이라고 주장하기가 어렵다. 러시아나 우크라이나의 베트남 사람들은 국적을 바꿀 수가 없었다. 그러나 페레스토로이카(3)가 시작되면서 모든 종류의 거래를 할 수 있게 된 덕택에 그들은 부자가 되었다. 베트남은 그들에게 우호적인 눈길을 보내고 있다”라고 프랑스의 베트남인 경영자협회 회장인 하이남 응우엔이 설명한다.

현지에서 베트남인 토지 임차인과 외국인 호텔 업주는 서비스경제가 급속히 성장하고 있지만 이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는 지역 공직자들의 낡은 관행 때문에 골머리를 앓으면서도 이에 대해 재빨리 적응해야 한다. “라이선스를 얻는다는 보장도 없이 호텔을 열고 직원을 채용해야 한다. 이런 관행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느낀 외국인들은 비록 잘 짜인 사업계획을 갖고 있더라도 6개월을 버티지 못하고 떠나는 경우가 많다”라고 헤이만스가 설명한다. 베트남에서는 다섯 번의 토지 거래 중 오직 한 번의 거래만 기록이 된다. 다시 말해 해당 도시에 상당액의 세금수익이 누락되고 있는 것이다.

사업이 잘 되면, 여러 직종의 공무원들을 후하게 대접해야 한다. 판티엣의 오토바이 관광객들이 오토바이를 몰면서도 벌금을 물지 않는 것은, 호텔 업주들이 지역 경찰에게 한 달에 오토바이 한 대당 50달러의 ‘기부금’을 내기 때문이다. 호텔 업주들의 말에 따르면 이것은 흔한 관행이다.

좀 더 남쪽의 만(灣) 끝에 위치한 덕렁의 소규모 어부들은 다수의 관광객을 피할 수 있어서 다행으로 생각한다. 이들은 관광객이 남긴 쓰레기를 회오리바람으로 휩쓸고 와 자신들의 작은 벽돌집을 해 뜰 때부터 해질 때까지 후려지는 광풍 때문에, 자신들의 안전을 잠재적으로 위협받고 있다. 마을 중심가에서는 해변에 던져진 조개가 쓰레기로 변해 마을에 퍼부어지는 것을 지켜봤던 남자들이 타르를 바른 지붕 아래서 카드놀이를 하고 있고, 부인들은 휘파람을 불면서 어망을 손질하고 있다. 그들의 자식들 역시 물가에서 플라스틱 병을 주울 필요가 없다. “러시아 사람들의 수상스키 선박들과 해양 스쿠터들이 오징어 떼를 쫓아내기 때문에, 오징어 떼가 이곳으로 피신해 온다. 이곳이 더 조용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밤에 별빛을 받으며 오징어 떼를 잡기만 하면 된다”라고 오징어를 햇볕에 말리느라 바쁜 호앙 남이 털어 놓는다.

하이 남 응우엔은 “베트남은 인프라구조, 도로 및 철도망이 부족하다. 이것이 늘 문제를 일으킨다. 그래서 한 번 여기에 온 사람들은 다시 오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그는 ‘해외교포들의 관광시장이 생겨날 것’으로 생각한다. 대부분 70년대에 베트남을 떠난 해외거주 베트남 사람들이 평화로운 은퇴시기를 보내기 위해 무이네, 판티엣, 나트랑을 이용할 것이다. 비록 그들이 정치적인 이유로 베트남을 떠났지만, 오늘날 베트남 사람들은 그들을 아주 호의적으로 맞이하고 있다. 베트남 사람 중 65%가 35세 이하다. 이들은 고통스러운 역사를 모르는 사람들이다.

관광부 장관은 더 멀리 내다본다. 그는 “더 많은 관광객들의 마음을 끌기 위해 생산품과 추천 서비스를 다양화하면서, 건설과 인프라구조 개선에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고 진단한다.(4) 휴양지를 계속 개발해간다면 베트남은 연간 백만 명의 러시아 관광객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미래 관광객의 국적은 상관이 없다. 연안의 어부들은 콘크리트가 물에 가라앉는 모습을 끊임없이 보게 될 것이다.

글·조르단 푸유 Jordan Pouille

번역·고광식

 

(1) 스테파니 클레인알브란트, “중국해에서의 민족주의 전쟁”,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2년 11월호

(2) “베트남이 러시아 관광객을 유혹하고 있다”, <르 쿠리에 뒤 베트남(Le Courrier du Vietnam)>, http://lecourrier.vn

(3) 소련의 ‘재건’: 소련의 마지막 몇 년 동안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지휘하에 시도된 모든 개혁

(4) “베트남-러시아 사이의 관광 협력을 증진하기 위한 워크숍”, 2014년 5월 24일, http://en.vietnamplus.v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