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축정책은 죽음의 처방전인가
긴축정책을 써야 하는가 아니면 부양정책을 써야 하는가? 2007년 금융위기 초기 단계에서부터 유럽정부들이 방향을 선택했지만, 전문가들은 여전히 그 방향에 대해 심사숙고하고 있다. 훨씬 더 신중했다면 유럽정부들이 예산 삭감의 최초 희생자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의학연구에서 인정받는 평가기준들에 의해 경제정책을 선택한다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이번 임상실험에 참여해 감사하다. 어쩌면 여러분은 본인이 동의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불황기가 시작된 2007년 12월에 여러분은 모집되었다. 여러분의 치료는 의사들 혹은 간호사들에 의해 처방된 것이 아니라 정치가들, 경제학자들, 재무장관들에 의해 처방되었다. 이 연구의 틀 내에서 여러분은, 수백만 명의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긴축정책이냐 혹은 부양정책이냐 하는 두 가지 경험적 매뉴얼 중에서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긴축은 경기 불황을 치료하기 위해서 빚과 적자 증상을 축소시키는 약이다. 긴축은 의료보험 보상율, 실업수당, 주택수당 분야들의 정부지출을 축소하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실험적인 긴축 복용량을 섭취했다면, 아마도 당신을 둘러싼 세상에서 심각한 혼란을 느꼈을 것이다. 반면에 만약 당신이 부양정책 그룹의 일부라면, 당신의 삶은 실업과 경기불황에 의해 뒤죽박죽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심지어 당신은 경제위기 전보다 현재 더 나은 건강 상태에 있을 수도 있다.”
최고의 처방전을 결정하기 전에, 의학 연구자들은 거대 규모의 ‘통제된 임의 실험’에 의존했다.(1) 정치 영역에서는 사회적 대책을 실험하기 위해 사회 전체를 거대 규모의 테스트에 참여시키는 것이 어렵거나 거의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사한 문제에 직면한 정치 지도자들이 다른 행동노선을 택하는 일이 벌어진다. 과학자들이 볼 때, ‘이런 자연적 실험’은 정치적 선택의 보건 결과를 연구할 수 있게 해준다.
그래서 우리는 긴축정책과 부양정책의 사회적 충격을 측정하기 위해, 다양한 경기불황기에 전 세계에서 수집된 자료들을 분석했다. 1930년대의 미국, 1990년대 대대적 민영화 시기의 러시아, 2000년대 말부터 부채 위기에서 헤매고 있는 유럽의 자료들을 분석했다.
몇 가지 결과는 예상된 것이었다. 사람들이 자신의 직업을 잃어버렸을 때 사람들은 마약과 술을 더 찾게 되거나 자살 충동을 더 느낄 우려가 있다. 그런데 연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상당수 공동체들 혹은 국가들 전체가 자신들의 경제가 붕괴된 이후에도 최고의 건강상태를 누리고 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왜 그런 것일까?
IMF도 인정한 아이슬란드의 사회복지 정책
2007년의 경제위기를 맞아 불황기에 접어든 아이슬란드(3)와 그리스(4) 두 국가를 통해 우리의 연구결과를 밝히고자 한다.
경제위기가 가장 심각했던 2007~2010년, 아이슬란드에서는 시장이 붕괴된 이후 자살이 약간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망률은 주기적으로 감소했다. 유럽의 불황기에 대한 연구를 통해 우리는 일반적으로 금융위기가 단기적인 측면에서 심장병을 증가시킨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나 아이슬란드에서는 그런 징후가 발견되지 않았다.
2008년 10월 미국의 ‘서브프라임’ 위기의 영향과 미국은행들의 엄청난 자본 투기에 직면한 아이슬란드는 구제금융을 얻기 위해 IMF(국제통화기금)에 도움을 요청했다. 구제금융은 긴축정책을 펴라는 권고, 특히 IMF가 ‘사치스러운 자선’이라고 표현한 공중 보건시스템 분야의 긴축권고를 요구했다. 공중 보건시스템 분야는 30%의 재정 감축을 감수해야 했다.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대규모로 시위를 벌이면서 이를 거부했고, 예기치 못한 사건이 2010년 초에 발생했다. 아이슬란드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다음 두 가지 사항 중에서 국민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은행가들에게 자금지원을 하기 위해 정부 예산을 획기적으로 감축하면서 개인 부채를 탕감해야 하는지 아니면 그런 부채 탕감을 거부하고 경제재건에 투자해야 하는지를 물어보았다. 국민투표에서 93%의 아이슬란드 국민들이 두 번째 방안을 선택했다.
경기가 한창 후퇴하고 있는 시기에 아이슬란드는 사회 복지에 필요한 지출 비용을 계속해서 늘리는 정책을 선택했다. 지출 비용은 2007년과 2009년 사이 이미 2,800억 크로나(약 16억 유로)에서 3,790억 크로나(약 23억 유로)로 확대되었다. 이는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사회 복지 비용이 21%에서 25%로 확대된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2010년 이후 결정된 추가 지출비용은 부동산이 부채 액수에 미치지 못하는 소유주들을 위해 새로운 ‘부채 경감’ 프로그램에 투입되었다. 이 프로그램은 노숙자들의 폭발적인 증가를 막아 주었다. 2012년 아이슬란드 경제는 3% 성장했고 실업률은 5% 이하로 떨어졌다. 2012년 6월 아이슬란드는 예상보다 더 빨리 자국의 부채를 상환했다. IMF는 아이슬란드의 독창적 접근법이 ‘엄청나게’ 강력한 경기회복을 이끌어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5)
더 남쪽의 그리스는 긴축 정책 효과를 연구하기 위한 실험실로 사용되었다. 2010년 5월, IMF는 그리스에게 기업들과 공공 인프라를 민영화하고 사회 복지 프로그램을 축소하는 통상적인 조건을 달고 융자를 제안했다. 아이슬란드에서처럼 그리스 시위자들도 이 협정에 대해 국민투표를 요구했다. 그러나 긴축정책은 투표에 부쳐지지도 않고 시행되었다. 아이슬란드에서 벌어졌던 일과는 반대로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은 것이었다.
실업의 증가, 대량의 주택수용, 개인 부채의 증가에 직면하여, 수많은 그리스 사람들이 생존하기 위하여 사회복지 프로그램에 구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긴축 조치들에 의해 이미 심각하게 약화된 사회복지 프로그램들은 갑자기 증가한 엄청난 수의 수혜자들을 흡수할 수 없었다. 병원 예산이 삭감됨에 따라, 의사의 진찰을 받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졌다. 의사에게 진찰을 받기 위해 기다리는 줄이 두 배로 길어지고, 곧이어 세 배로 길어졌다. 아테네 중심에 위치한 소티리아 병원의 종양학과 과장인 코스타스 시리고스 박사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이미 면담한 적이 있었던 악성 유방염에 걸린 환자에 대해 이야기했다. ‘트로이카’(유럽위원회, 유럽중앙은행, IMF)가 강제한 개혁들 때문에 1년 전부터 그 환자는 치료를 받을 수 없었다. 자원봉사 의사들이 일하는 비인가 병원에 그 환자가 모습을 드러냈을 때는 종양이 피부를 뚫고 나와 그녀의 옷 밖으로 스며 나와 있었다. 그 여성은 엄청나게 고통을 받고 있었으며, 종이 타월로 자신의 곪은 상처를 닦아내고 있었다.(6)
IMF 긴축정책으로 공중보건이 악화
IMF의 1차 구제금융 계획안이 실시된 직후인 2010년 5월 제약회사인 노보 노르디스크가 그리스 시장을 떠나버렸다. 국가가 이 회사에게 3,600만 달러의 부채를 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제약 회사의 철수는 수많은 일자리를 앗아갔을 뿐만 아니라 당뇨 환자 5만 명에게서 인슐린을 박탈해 가버린 셈이었다.
자살률은 특히 남자들에게서 증가했다. 심지어 IMF의 구제금융이 실시되기 전인 2007년과 2009년 사이에 자살률이 20% 증가했다. 2012년 4월 4일 디미트리스 크리스툴라스가 아테네 중심가의 신타그마 광장에 나타났다. 그는 의회 계단을 올라가 총구를 자신의 관자놀이를 겨눈 채, “나는 자살하는 것이 아니다. 나를 죽이는 자들은 바로 그들이다”고 선언했다. 그의 어깨끈 달린 가방 속에서 발견된 편지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정부는 내가 35년간 홀로 적립했던 정직한 나의 연금을, 곧 나의 유일한 생존수단을 파괴해 버렸다. 내가 나이가 들어 적극적인 방식으로 대응할 수 없기 때문에 한 명의 그리스 사람이라도 칼라시니코프 소총을 든다면, 내가 그의 뒤를 따를 것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품위 있게 내 생을 마감하고, 살기 위해 쓰레기통을 뒤지는 신세가 다시는 되지 않기 위한 다른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심리 지원 단체들의 말에 따르면 심리 도움을 요청하는 숫자가 2배로 증가했다. 그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뿐이었다. 상당수 그리스 사람들은, 정신적 무력감을 드러내는 사람들에 대해 낙인을 찍는 그리스 내의 분위기 때문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을 것이다. 예를 들어 그리스 정교는 자살한 사람들의 매장을 거부했다. ‘원인 불명의 부상’과 알 수 없는 사망원인이 증가한 것은 가족의 명예를 구하기 위해 자살이 아닌 것으로 위장했기 때문이라고 많은 의사들은 분석했다.
40년 동안, 살충제 프로그램은 그리스에서 모기에 의해 감염되는 질병들이 퍼지는 것을 막아왔다. 그리스 남부에 할당된 예산이 극단적으로 삭감된 후인 2010년 8월 나일 바이러스 전염병이 발생하여 72명이 사망했다. 그리고 1970년 이후 처음으로 말라리아가 재발했다. 또한 유럽에서 수 년 동안 전혀 볼 수 없었던 HIV(에이즈 유발 인체 면역결핍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이 2010년 1월과 10월 사이에 재발한 사실을 당국이 확인했다. 새로 재발한 경우가 10배나 증가했다. 그리스 질병통제예방센터 연구원들이 이 질병의 원인을 조사했다. 새 환자들은 대부분 감염된 주사기로 마약을 맞은 것이었다. 헤로인 사용이 2010년과 2011년 사이, 특히 실업률이 40%가 넘는 젊은 층에서 20% 증가했다.
예산이 거의 50% 삭감된 상태에서 그리스 보건장관이 할 수 있는 조치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민주적 선택이라는 정치적 해결책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HIV 전염병이 확인되었던 2011년 11월,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 총리는 2차 긴축 요법에 대한 국민투표를 공표하면서 아이슬란드식 해결책을 시도했다. 그리스 국민은 긴축조치들이 작동하지 않는 것을 명확히 목격했다. 예산 삭감에도 불구하고 공공 부채는 엄청나게 증가했다(2011년에 국민총생산의 165%). 그러나 트로이카와 다른 유럽 정부들 특히 프랑스와 독일의 압력을 받은 파판드레우 총리가 사퇴하기 직전에 국민투표를 취소해 버렸다.
아이슬란드가 보여줬던 것처럼, IMF는 2012년 마침내 “우리가 일자리와 경제에 대한 긴축의 부정적 효과를 과소평가했다”(7)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나 이런 시련을 그리스에 강요한 것은 경제적 전략보다는 정치적 기획 때문이었다.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그리스에 강요된 원조 계획안을 유럽의 다른 국가들이 마음으로 새겨야 할 교훈으로 제시했다. “그리스가 선택한 길이 쉽지 않다는 것을 다른 유럽 국가들이 목격하고 있다. 그러므로 다른 국가들은 그것을 회피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행할 것이다.”(8)
경제정책들은 질병을 직접적으로 야기하는 바이러스도 아니고 질병인자도 아니다. 그것은 ‘원인의 원인’인 것이다. 다시 말해, 누가 가장 큰 보건 위험에 노출될 것인지를 결정하는 잠재적 요인인 것이다. 그래서 국가 예산을 조금이라도 변경시키면 국민의 안녕에 지대한 영향을 그리고 때로는 의도치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공중 보건에 진정으로 위험한 것은 불황 그 자체가 아니라, 거기에 대처하기 위해서 긴축정책을 채택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해주는 근거 있는 논리들을 우리는 갖고 있다. 만약 ‘그리스의 실험’이 임상테스트처럼 엄격한 기준들에 근거하여 실시되었다면, 그 실험은 윤리위원회에 의해 이미 오래전에 금지되었을 것이라고 우리는 말할 수 있다.
글·데이비드 스터클러 David Stuckler, 산제이 바수 Sanjay Basu
<긴축으로 인해 사람이 사망할 때. 전염병, 경기불황, 자살: 비인간적인 경제>(오트르망, 파리, 2014년)의 공동저자, 이 기사는 이 책에서 발췌됨
번역·고광식
(1) 부뤼노 팔리사르, ‘환자를 치료할 것인가, 병을 치료할 것인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4년 6월호
(2) 편집자 주. 저자들은 자신들의 연구뿐 아니라 <The Lancet>, <British Medical Journal> 혹은 <PLOS Medicine> 같은 저널들에 발표된 최근 연구 성과들에 기대고 있다. 출처는 다음의 사이트에서 찾아볼 수 있다. www.monde-diplomatique.fr/50837
(3) 아이슬란드 위기에 대해서는 실라 시구르게르도티르와 로버트 웨이드, ‘대중이 은행가들에 대해 반대투표를 할 때’와 ‘아이슬란드를 바꾸기 위한 헌법인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1년 5월호와 2012년 10월호 참조
(4) 그리스 위기에 대해서는 ‘그리스 실험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3년 2월호 참조
(5) IMF, ‘아이슬란드: 2008년의 대기성 차관 협정의 예외적 접근에 대한 사후 평가’, 보고서 번호 12/91, 워싱턴 DC, 2012년 4월
(6) <뉴욕타임스>, 2012년 10월 24일
(7) <더 가디언>, 런던, 2002년 2월 1일
(8) <BBC>, 런던, 2010년 5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