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모던 경영' 감시망에 보호막 잃은 직장인들

2014-10-30     스테판 에플리제

 

외부와 단절된 참가자들을 24시간 촬영하는 “로프트 스토리”는 프랑스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시대를 열었다. 2001년부터 프랑스 M6채널에서 방송하기 시작한 이 프로그램은 경찰, 감옥, 군부대의 전형적인 감시 방식을 그대로 재현해 냈다. 또 다른 사회 모델의 전초였을까?

과거 기업들은 직원들에게 단순히 회사에 나올 것을 요구했지만 현재는 자신의 속 안까지 보여주길 원하고 있다. 과거 헨리 포드와 프레데릭 윈스로우 테일러가 직원들의 공장 내 움직임만 감시했던 것과 달리 이제 기업들은 직원들의 가치, 신념, 내면성, 인성까지 추적하는 것이다. 이는 중대한 사회적 변화라 할 수 있다. ‘로프트 스토리’(1)는 우리가 지금까지 숨겨왔던 개인의 ‘내면성’을 적나라하게 공개하면서, 개인 영역과 공공 영역의 경계 한쪽은 파괴하고, 다른 쪽은 지켜내려는 역사 투쟁의 대상이 된 현실을 보여준다.

과거에는 입사 지원자에게 정치, 노사와 관련된 우려만 없다고 판단되면 인사과장은 지원자의 ‘기술적 자질’만을 검토했다. 학위와 경력이 보증되고 취업증명서가 그 효용성을 인정하여 계약이 성사되고, 권위 있는 ‘기술적 역량’만을 갖추고 있으면 되었다. 반면에 현재 기업의 인사 담당은 지원자의 사회적 능력, 감성지수, 위기대처 능력,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조직 내 활동을 활성화하는 역량, 타인과 소통하고 분쟁을 조정하는 역량 등의 인성 조건을 집중적으로 조사하며 개인의 내적 측면까지 파악하려고 한다. 한마디로 뛰어난 조직적 역량을 갖춘 새로운 타입의 인재를 찾아내려고 하는 것이다.

실제로 기업들은 취업 면접, 인사 고과 면접, 해고 심의 면접 등 특정 면접에서 지금까지는 금기시 되었던 질문을 지원자에게 서슴없이 던지고 있다. 지원자의 개인적 가치(“당신은 리더 타입인가, 추종자 타입인가?”), 인식 경향(“당신은 감성적인 사람인가, 이성적인 사람인가?”), 내면성(“당신은 타인이 당신에 대한 가치 평가를 해주기를 바라는가? 이혼의 사유는 무엇인가?”), 개인적 자질(“당신의 장점 세 가지를 간단히 설명하시오”), 신념(“당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인적 네트워크(“아버지의 직업, 배우자의 직업, 로타리 또는 라이온스, 키와니 등 국제봉사클럽 가입 여부”) 아울러 조직 및 소통 능력과 관련된 질문들을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로프트 하우스’식 경영은 지금까지 한 개인이, 그 본인만이 소유하고 있던 개인적 특성에 대한 절대적 투명성을 요구하고 있다. “자기”는 더 이상 자신만의 것이 아니며 기업들이 정복해야 하는 영토가 되어 버린 것이다.

‘로프트 하우스’식 경영을 위해 정신분석 테스트와 ‘평가 센터’ 등 수많은 ‘도구’들이 개발되었다. 애초에는 채용에서 절대로 실수하지 않으려는 기업들의 의도로 개발된 도구들이다. 아주 작은 경영 실수라도 기업은 엄청난 비용을 치르게 될 것이라는 것이라 예상한 데다, 경영자라면 누구나 ‘피터의 법칙’ 요약본을 반드시 읽은 상태였다.(3)

이러한 투명성 확보를 위해 개발된 수많은 경영 도구들 중에서도 해당 직위에 요구되는 수천 가지 자질을 평가하는 외부 자문 보고서만큼 기업이 철저하게 믿는 도구도 없을 것이다. 비싼 보고서일수록 더욱 진지하고 중요하게 다뤄진다. 때문에 기업은 저마다 사내에 평가 센터를 조직하거나 외부에 의뢰한다. 평가센터는 전문적이고 윤리적 성격을 띠지만 물론 아닌 경우도 있다.

기업은 이러한 ‘학술적’ 평가방식으로 지원자가 해당 직위가 요구하는 자질에 적합한지, 기업의 가치에 부합하는지, 고객의 편에 서면서도 철저하게 팀에 소속될 수 있는지 검증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러한 경영방식을 “반-테플론 경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평가를 거쳐 결국에는 직원이 단순 이원론 안에서 기업과 융합되도록 요구하기 때문이다. 또한 위의 방식을 통해 기업들은 개인에게서 반체제적 의식을 철저하게 쫓아내어 자연스럽게 노동조합 가입의 가능성을 차단할 수 있다.

컨설턴트는 수많은 심리측정 테스트(가장 많이 알려진 테스트는 MBTI, Myers-Briggs Type Indicator)(4)를 통해 지원자의 성격에 대해 ‘과학적인’ 종합 보고서를 작성한다. 더 많은 개인 정보를 위해 상황역할극, 엄격한 인터뷰, 대질 신문, 컴퓨터 시뮬레이션 등도 동원된다.

위 방법들의 정당성 여부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이러한 절차들이 ‘과학적’이라는 순진한 주장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채용에 있어서 우리는 철저히 경험주의를 따르기에 채용 그 자체는 극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개인의 주요 행동특징을 알아내기 위해, 반나절 동안 한 명 혹은 여러 명의 지원자를 관찰하는 것은 극히 까다로운 일이다. 이 짧은 시간에 지원자들로 하여금 직책이 요구하는 조건과 나아가 ‘기업 문화’에 부딪쳐보게 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과학적 후퇴는 별다른 의미를 갖지 못하고 있다. 가령 인사담당자들은 여전히 관상학, 필적감정, 수점(數占) 등을 채용에 적용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듯하다. 기업 내에서 코치는 심리분석가나 심리학자와 가까이 지내기도 한다. 극히 이성적이라는 시장 경제에서 정말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심리평가 테스트는 포스트모던 경영을 위해 연장통에서 꺼내는 첫 번째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그 다음은 교육이 이어 받는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교육은 컴퓨터 프로그램 기초 마스터 교육 등 기술 교육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개인의 인성 발달과 밀접하게 연관된 행동 교육을 말한다.

교육을 위해 기업 경영진은 고위 간부들을 숲 속에서 진행되는 생존 훈련에 보내기도 한다. 이곳에서 간부들은 일주일 동안 위장 전투복을 입고 특수 부대원 변장을 한 채로 야영 텐트에서 잠을 자게 된다. 몇 년 전, 스위스의 한 은행은 간부들을 호스피스 병원과 에이즈 전문 병원에 파견하기도 했다.

교류분석(Transactional Analysis), 신경언어프로그래밍(Neuro-Linguistic Programing, NLP), 자아(인격) 코칭, 애니어그램(사람을 9가지 성격으로 분류하는 성격 유형 지표)는 가장 보수적이고 채용에 소심한 태도를 보이는 기업의 교육 프로그램에도 반드시 포함된다. 외부 훈련도 인기가 좋다. 가령, 계곡 래프팅이나 최근 가장 인기 있는 자기계발 전문가 안소니 로빈슨(5)의 “숯불 걷기”, 카약과 번지점프 등 외부 훈련은 기업들이 특히 선호하는 훈련이다. 성공 심리학, 명상, 긍정 에너지 발산, 미래 투영, 자기 경영, 자기표현, 갈등관리, 제한적 신념(limiting belief) 개선 등의 교육도 넘쳐난다. 포스트모던 경영은 ‘정신 경영’이라 할 수 있으며 거의 복음 선포에 가까워졌다.

위의 교육들은 더 이상 효율성 제고라는 기존의 교육 목표가 아닌 한 개인을 변화시키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형성(formation)과 성과(performance)가 같은 어원을 갖고 있다는 사실로 포스트 기업들이 추구하고 있는 목표들, 즉 상상력 자극, 풍성한 체험 제공, 경청력 향상 등 고귀한 목표들을 설명할 수 있을까.

직장인들도 기업의 이러한 비정상적인 경영 방식에 쉽게 속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경영이 직장인들을 ‘일에 가두고, 감시하고, 제 욕망에 빠지게 하고, 속이고 그리고 사로잡기 위한 전략임’(6)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직장인 자신들이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기업의 계략을 피하고 기업이 강요하는 ‘폭로’와 투명성에 전략적으로 반항하는 방법도 잘 알고 있다. 기업과 노동자의 거리를 없애고 노동자들이 기업 가치에 전적으로 부합시키려 한다는 사실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직장인들은 숯불 위를 걷기, 생존 훈련 받기, 자기 경영 수업 받기, 더 나아가 자신이 일하는 곳에서 정신분석을 당하기를 원치 않는다. 무엇보다도 직장인들은 기업에 그들의 모든 것을 말하고, 보여주고, 드러내고, 가장 민감하고 개인적인 부분인 성 정체성을 알려줘도 기업은 그에 합당한 안전장치를 제공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글‧스테판 에플리제 Stéphane Haefliger

사회학자, 에스피리토 산토 은행 인사부장(BPES, 스위스)

번역‧김수영 ksy_french@naver.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1) 프랑스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시초. 2001년 프랑스 방송 채널 ‘엠시스(M6)’는 네덜란드 프로그램 ‘빅 브라더’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규칙은 간단하다. 12명의 지원자들은 4달 동안 외부와 철저히 단절된 집에서 함께 생활하며, 지원자들의 제스처와 사건, 사고들이 집 안에 감춰진 카메라를 통해 방송된다. 시청자들은 집에서 나올 지원자들을 한 명씩 선택하며 마지막에는 단 한 명의 지원자만이 남게 된다.

(2) ‘팀’, ‘테스크 포스’, ‘인센티브’, ‘복리후생’을 가리키며 상여금 등 금전적 복리후생과 연수 등의 비금전적 복리후생이 있다.

(3) ‘조직 내에서 모든 구성원은 무능이 드러날 때까지 승진하려는 경향이 있다(유능한 사람을 승진시키다 보면 일을 감당할 수 없는 위치에까지 승진을 시켜 결국은 무능한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다)’는 주장으로 로렌스 피터와 레이몬드 훌이 1969년 발표함. 책은 2011년 리브르 드 포슈 출판사가 재출판했다.

(4) LIFO(Life Orientation)과 TMS(Team Management System), Leonardo345, CAPP, 16PF-R

(5) 미국의 유명 자기 개발 강사이자 연사로 수만 명의 청중 앞에서 쇼와도 같은 세미나를 진행한다.

(6) Eugene Enriquez, <기업 내 욕망과 권력의 게임> 중 ‘최후의 충고’, Desclee de Brouwer, 파리, 199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