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컨센서스 vs 베이징 컨센서스

달러 ‘트리핀의 딜레마'...위안화 파워 확대

2009-05-05     여경훈

주요 7개국(G7)으로 대변되는 선진국 중심의 국제질서가 재편되고 있다. 미국이라는 슈퍼파워를 정점으로 하던 기존 질서가 약화되고 중국이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상징해 바로 ‘G2’(미국과 중국)라는 신조어가 유행하고 있다.
세계 무대에서 중국의 파워가 부상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두말할 것 없이 미국의 대외전략과 경제전략의 실패였다.  
지속 가능한 체제와 자결주의 부각 


미국의 힘이 약화된 틈을 중국이 비집고 들어오고 있다. 중국 경제의 급성장을 배경으로 지난 2004년에 만들어진 ‘베이징 컨센서스’(1)가 다시금 주목을 받고 있는데, 이는 ‘워싱턴 컨센서스’라는 미국식 신자유주의 처방을 대체하려는 중국식 발전전략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첫째 동구권에서 실패한 ‘충격요법’에 반하는 개념으로서 점진적 발전전략, 둘째 발전의 유일한 측정 지표인 국내총생산(GDP) 개념에 대비되는 경제체제의 지속 가능성과 부의 공평한 분배,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책 결정의 자결주의(self-determination)로서 금융을 포함한 경제주권과 정치·군사 전략의 내정 불간섭이 주요 내용이다. 이들 원리는 미국식과는 다른 성장 패러다임을 제시함으로써 국제사회의 지지와 위상을 높이려는 중국의 의도가 숨김없이 들어 있다.
중국 파워의 원천은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성장한 중국의 경제적·사회적 지표들이다. 현재 중국은 일본 다음으로 세계 3위의 GDP, 세계 1위의 외환준비금과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대략 2025~2030년쯤에는 중국의 GDP가 미국을 추월할 것으로 예상된다.
 2009년 3월 기준 중국의 외환보유고는 1조9500억 달러에 달한다. 전세계 외환보유고 총액 6조7천억 달러의 29%를 차지하는 막대한 외환준비금은 중국이 미국 국채를 대량 구매하는 지렛대다.
미국 시장으로 향하는 수출의존 전략으로 중국이 쌓아놓은 외환보유고와 국채 때문에 이제는 거꾸로 미국의 대중국 의존도가 심화되고 있다. 중국이 급격하게 달러 표시 자산을 매도할 경우 초래될 달러 하락과 국채 금리 상승의 두려움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달러 매도는 ‘외부성’ 효과로 말미암아 외화자산 가치 하락을 염려한 다른 국가의 연쇄적인 매도를 촉발해 달러 헤게모니의 근간을 흔들 수도 있는 잠재력을 지녔다.
 
중국도 통화 스와프 확대 경쟁  
물론 중국으로서도 급격한 달러가치 하락이 반가울 수는 없다. 보유자산 가치의 손실을 감수해야 할 뿐만 아니라 국제적 신용경색과 미국 경제의 침체가 야기되면서 자국의 경제성장도 발목을 잡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달러가치가 안정적으로 관리되거나 서서히 하락하는 가운데 위안화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전략을 취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측면에서 최근 중국이 주변국들과 통화 스와프를 확대해나가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중국은 한국을 비롯한 6개 나라와 6500억 위안(975억 달러) 규모의 통화 스와프를 체결하고 있다.
중국이 통화 스와프 확대를 추진하게 된 계기는 지난해 10월 말, 미국이 달러 패권을 지키기 위해 한국과 멕시코 등 개발도상국으로 통화 스와프를 확대한 것에 자극을 받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미국에서 개최된 주요 20개국(G20) 회의에서 후진타오 주석은 지역 금융 협조와 유동성 공급을 강조한 바 있고, 달러가 필요한 국가들이 앞다퉈 통화 스와프 체결을 요구하면서 중국의 전략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고 있다.
물론 중국의 이러한 전략은 달러를 기축통화로 삼고 있는 현 국제 통화체제의 불안정성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1999년 유로화가 도입되고 2001년 이후 달러가치가 하락하면서 달러체제의 취약성은 더 분명해지고 있다. 현재 전세계 외환준비금에서 달러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1년 71.5%에서 현재 65%까지 하락했고, 개발도상국만을 놓고 보면 더욱 빠르게 하락해왔다.
특정 국가의 통화에 기초한 국제준비통화의 본질적인 불안정성은 이미 1960년대 초반 로버트 트리핀이 지적했다. 우선, 세계경제에서 달러 표시 자산을 만드는 여러 방식이 존재하지만, 미국 이외의 국가들이 달러 자산을 축적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미국이 국제수지 적자를 운영하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대외적자는 기축통화로서 달러에 대한 신뢰를 저하시키므로 달러를 다른 통화로 대체하려는 유인을 제거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달러가치 변동을 초래하고 있다. 결국 달러체제를 유지하려면 각국 중앙은행의 달러 비축을 위한 미국의 대외적자가 필요하며, 기축통화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미국의 대외흑자 혹은 균형이 필요하다. 이를 통상 ‘트리핀 딜레마’(Triffin Dilemma)라 부르고 있다. 
한편 중국 인민은행 총재는 G20 회의가 열리기 전에 특정 국가의 통화와 독립된 국제준비통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하면서 특별인출권(SDR)을 언급함으로써 미국을 깜짝 놀라게 했다. SDR는 이미 1950년대 후반부터 제안돼 1969년에 만들어진 것이지만, 현재 IMF의 회계 단위로만 존재할 뿐 사실상 기능이 정지된 상태다. 중국의 주장처럼 특정 국가의 통화가 국제무역이나 환율 결정에 벤치마킹 대상으로 더 이상 사용되지 않고 국제금융기구가 준비통화를 관리하면 경제적 불균형과 불공평을 조정하는 데 더욱 효과적일 수 있다. 물론 선진국과 달리 본질적으로 통화의 태환성이 부족한 개발도상국의 경우, 항시적인 외환위기에 시달릴 필요도 없을 것이다.

SDR 배분 증액 미국 반대로 불발 
그러나 SDR가 본연의 기능을 발휘하려면 IMF의 지배구조 개혁이 반드시 수반돼야 할 것이다. IMF 이사회는 이미 1997년에 기존의 SDR 배분(214억 달러)을 2배로 늘리기로 합의했다. 1981년 이후 IMF에 가입한 회원국들(전체의 20%)은 SDR를 한 번도 배분받지 못했고 세계경제 규모 증가에 비해 SDR 배분이 너무 작아 실효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합의가 효력을 발휘하려면 전체 185개 회원국 중 5분의 3(111개국), 총 투표권의 85%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현재 131개 회원국 77.68%의 투표권이 동의하고 있지만, 16.75%의 투표권을 지닌 미국이 동의하지 않아 효력이 발휘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의 IMF 지배구조를 개선하지 않고서는 SDR 배분과 기능의 확대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아울러 국제통화의 더 공평한 운영과 민주적 통제를 위해서는 1원 1표의 IMF에서 벗어나, 1인 1표의 유엔으로 권한과 논의의 중심축을 옮겨가는 일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1) 베이징 컨센서스는 <타임>의 국제관계 논설위원이자 골드만삭스에서 투자자자문을 맡았던 라모가 만든 개념으로, 영국의 대외정책 센터에서 발표한 ‘더 베이징 컨센서스’(The Beijing Consensus) 보고서에서 처음 등장했다. 

 
글/여경훈 
베이징대학교 경제학과 박사과정(정치경제학)을 거쳐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박사과정(정치경제학)에 있으며  현재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상임연구원으로 있다. 주요 저서로는 <신자유주의와 한국 경제>(공저) <베네수엘라, 혁명의 역사를 다시 쓰다>(공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