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에서 궁지에 몰린 벌처펀드

2014-10-30     마크 바이스브로

 

   
 

소수의 미국 투기꾼들이 4천만 명의 아르헨티나 국민들을 인질로 삼는 것을 인정할 것인가? 이 질문에 최근 미 사법부는 “그렇다”고 대답해 투자자들에게까지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입장은 국가에 채무 부담을 경감시켜줄 수 있는 기반을 약화시키면서 전 세계 금융시스템의 균형을 깨뜨릴 수 있는 위협이 되고 있다.

최근 아르헨티나 정부가 투기 목적으로 부실 채권 매매를 전문으로 하는 ‘벌처펀드(vulture fund)’(1)에 벌이는 전투는 미국의 몇몇 TV 드라마를 연상시킨다. 미스터리, 정치적 음모, 반전, 미워할 수밖에 없는 절대 악인 등 드라마의 온갖 요소들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주목을 끄는 것은 마크 레이보비치 기자가 “홍합이 바위에 딱 붙어있듯이 워싱턴에 달라붙어있는 꼴”이라고 묘사한 고위공무원 출신 로비스트들이다.

드라마의 최신편은 미국 뉴욕 연방법원에서 토마스 그리사 판사가 2012년 11월 21일 아르헨티나 정부에게 폴 싱어가 운영하는 ‘엔엠엘 캐피탈’을 위시하여 여러 헤지펀드들에 13억 3천만 달러(10억 유로 이상)를 갚으라고 명령한 장면에서 시작된다. 이러한 결정의 영향은 한 나라와 금융시장 간 싸움을 빠르게 넘어선다. 이제부터 줄거리는 채무국들과 채권자들 간 국제적 역학관계 중심으로 짜여진다. 게다가 이 구조는 미국의 대외정책 책임자들 간에 괴로운 문제 하나를 놓고 벌이는 분열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문제는 바로 지정학적 독립을 요구하는 남미 국가들의 출현에 대해 어떤 대응을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종종 그렇듯이 드라마에서 최근의 전개 상황을 이해하려면 먼저 방영된 편들을 봐두어야 한다. 이야기는 2001년에 처음 시작된다. 당시 아르헨티나는 3년간의 경기후퇴 끝에 약 1천억 달러에 상당하는 채무를 갚을 여력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아르헨티나 정부는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했다. 오랜 협상 끝에 기존 채권에서 원금의 70%를 탕감하는 내용의 ‘구조조정’을 한 신채권으로 교환하는 방안이 제안되었다. 결국 2005년에 채권자 중 76%가 이 제안을 받아들였고, 이 비율은 2010년에는 93%까지 높아졌다. 채권자들은 빚을 잘 갚는 아르헨티나에 대해 더 이상 불평을 할 필요가 없었다. 적어도 벌처펀드들이 무대에 등장하기 전인 지난 7월 30일까지는 그랬다.

‘엔엠엘 캐피탈’이란 펀드의 주도로 들어온 벌처펀드들은 아르헨티나 정부가 디폴트를 선언한 채권들을 평균 80% 정도 할인된 가격에 사들였다. 즉, 이들은 원 채권액의 20%만 내고 채권을 인수한 것이다. 이들의 노림수는 무엇이었을까? 그건 바로 아르헨티나 정부를 고소하여 채무 전액 상환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이는 이자까지 포함하여 무려 1,600%의 투자수익률을 요구한 것이다(이에 대해 아르헨티나 정부는 300%를 제시했다).

다시 2012년 11월 21일 드라마 편으로 돌아오자. 뉴욕 연방법원 그리사 판사가 벌처펀드들을 도와 이들에게 우선적으로 채무를 상환하라는 명령을 내린 장면 말이다. 장면이 바뀌면서 미국 대법원은 2014년 6월 16일, 아르헨티나 정부가 낸 상고를 놀랍게도 기각하여 앞서 그리사 판사의 결정을 유효하게 만들었다. 한 달 보름 후, 아르헨티나 정부가 채무 조정한 채권자들 대상으로 지급한 돈이 동결되었다. 언론은 바로 아르헨티나의 새로운 디폴트를 전 세계에 알렸다.

IMF 총재마저도 아르헨티나 지지

하지만 아르헨티나는 채무국들을 위한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였다. 즉, 아르헨티나의 과도한 채무 부담을 줄여줘 경제를 회복시키고, 투자자들은 정기적으로 상환 받을 수 있는 모델이었다. 그러나 언론은 아르헨티나의 이런 낯선 정책을 용서하지 않았다. 이는 틀림없이 지난 10년간 아르헨티나가 언론으로부터 부정적 기사들로 고통 받아 온 배경일 것이다. 독립적 인플레이션 측면에서, 아르헨티나는 2002~2011년 기간 중 빈곤을 75% 넘게 줄였다. 불평등도 그만큼 줄어들었다. 즉, 2001~2010년 기간 중 소득계층에서 최상위 5%의 소득과 최하위 5%의 소득 간 비율이 32%에서 17%로 급감한 것이다.

2002~2011년 기간 중 아르헨티나는 국내생산을 거의 두 배 증가시키면서 그리스보다 경제 회복이 더 나았다. 그리스는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의 감독 아래 6년 넘게 경기후퇴를 겪으면서 극심한 실업과 보건 지출비 삭감을 당했다. 그리스는 다양한 구제 계획들을 받아들였지만 여전히 국가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170%이며, 앞으로도 국부 생산이 최소한 10년 내에 2007년 수준을 되찾을 것으로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지난 3년간 아르헨티나 경제는 여러 어려움을 겪었다. 인플레가 연간 38%에 달했고 암시장에서는 미 달러 환율이 공식 환율보다 70% 높게 형성되었다. 이에 대한 배경설명도 여러 가지다. 우선, 세계경제 성장률이 2010년 5.2%에서 2013년 3%로 둔화되면서, 아르헨티나의 양대 무역상대국인 브라질과 유럽도 이를 피해갈 수 없었다. 또한 벌처펀드들의 제소에 따라 아르헨티나는 국제 금융시장에서 차입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이는 아르헨티나를 국제수지 불균형에서 다른 나라들보다 훨씬 취약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언론의 경고는 아르헨티나에서 자본의 대규모 유출까지 부추길 정도였다.

그렇다면 그리사 판사의 동기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의 결정은 미국 사법제도의 기본 원칙 중 하나인 사유재산 측면에서 적절한 것은 아닐까? 그러나 채무조정에 응한 채권자들이 자신들에 돌아오는 몫까지 방해받은 점에서 그리사 판사는 이 원칙을 어긴 건 아닐까? 전 세계는 이런 판결을 이해 못하겠다면서 브라질, 멕시코, 프랑스, 그리고 남미국가연합까지 아르헨티나의 손을 들어주었다. 하지만 미 고등법원은 2심에서 그리사 판사의 결정이 유효하다고 판결하였다.

이 정도의 줄거리에서 시선은 워싱턴을 향해야 할 것이다. 처음에 미 재무부는 아르헨티나를 지지하였다. 2013년 7월 17일,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도 IMF는 미 고등법원에서 아르헨티나를 지지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돌연 7월 23일, 미국이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해온 IMF 이사회는 앞선 결정을 번복하여, 라가르드 총재와 IMF의 상당수 직원들을 분노케 했다. 다음날 열린 기자회견에서 윌리엄 머레이 IMF 대변인은 전날의 반전에 대해 질문을 받았다. 대변인은 “가서 미 재무부 사람들을 만나보세요. 답은 그들이 가지고 있으니까요!”라고 언짢은 표정으로 답했다.

워싱턴에서는 라가르드 IMF 총재부터 시작하여 많은 인사들이 그리사 판사의 명령이 내포한 위험을 헤아려 보았다. 7월 25일, 머레이 대변인이 “IMF 임직원은 동 결정이 내포한 광범위한 체계적 영향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고 선언했다.

심지어 전 세계 자본시장 주체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기구인 국제자본시장협회(ICMA)까지 우려를 표명했다. 2014년 8월 29일, ICMA는 벌처펀드의 ‘날개’를 자르기 위하여 국채 발행을 규율하는 협회 규정을 개정한다고 발표했다.

미국에는 대다수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채무 상환 능력이 없는 채무자들을 위하여 이들이 파산을 선언하고 새출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법제가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제도가 국제 수준에서는 채무국에 대해 존재하지 않는다. 이에 혼란스러운 공백을 피하기 위하여 국제금융 시스템은 협상을 통한 채무 조정에 기초를 두고 있다. 그런데 그리사 판사의 판결은 합의를 한다고 해도 그러한 조정 과정을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 전체 중 소수의 불만자들(또는 투기꾼들)만 있어도 조정 과정을 무산시키는 데 충분하기 때문이다.

벌처펀드의 하수인이 된 고위공무원 출신 로비스트들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즉, ‘앞서 미 재무부로 하여금 입장을 번복하게 해서 IMF에 영향력을 행사하게 설득한 주체는 누구인가’ 하는 점이다. 클루도(Cluedo) 게임(2)에서처럼 용의자들은 부족하지 않다. 벌처펀드들은 ‘아메리칸 태스크 포스 아르헨티나’라는 전담 로비 조직을 갖추고 있다. 이 조직은 과거 미 클린턴 정부 고위 공무원 출신들의 지원을 누리면서 2013년에만도 싱어의 소송을 방어하기 위해 백만 달러 넘게 지출했다. 앞서 입장 번복을 야기한 핵심 관계자 중에는 미 의회 신보수주의 대표자들, 특히 플로리다 대표의원단 중 반(反)쿠바 성향의 우파에 속한 의원들이 있음에 틀림없다. 이들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과 남미 간 관계개선 가능성을 엿볼 때마다 방해한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남미에서 브라질을 비롯한 진보적 정권들을 모조리 제거해 버리고 싶어 한다. 미국이 2009년 온두라스의 군사쿠데타를 은밀히 지원한 것부터 2013년 베네수엘라의 반정부 시위를 지원한 것까지 보면, 최근 역사는 이들 우파가 자신들의 우선순위를 강행하는 데 성공했음을 보여준다.

7월 30일부터 언론은 아르헨티나가 15년 만에 두 번째로 디폴트를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는 거짓이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예정된 모든 지급을 집행하였다. 다만, 이 지급은 그리사 판사의 명령에 의해 은행 수준에서 차단된 것이다. 이에 아르헨 정부는 미국 사법체제 밖에서 채권자들에게 변제할 수단을 모색했다. 아르헨티나는 조정 채권 보유자들에게 보유 채권을 아르헨티나에서 새로 발급되는 채권으로 교환해주기 위하여 이미 이러한 방향으로 입법 조치를 취하였다.

2014년 9월 9일, 유엔은 개도국 모임인 ‘77 그룹’과 중국이 국채 조정 제도를 구축하기 위하여 제안한 문안에 투표하기 위하여 총회를 소집하였다. 투표에서 미국 및 연합국(이스라엘, 캐나다, 호주, 독일)은 반대표를 던진 반면, 대다수 유럽국들은 기권하였다. 그래도 문안은 121개국의 찬성으로 채택되었다(반대 11개국, 기권 41개국).

개도국들이 채권을 미국의 사법 관할 외 지역에서 발행하기로 선택한 것이 틀린 일은 아닐 것이다. 그리사 판사의 결정은 개도국들이 미국 관할을 택할 경우, 수백만 명의 사람보다 몇몇 투기꾼들의 이익이 중시되어 예측 불가능한 재판의 결정에 처해진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2009년, 신흥시장 채권의 70%가 뉴욕에서 발행되었다.

영국과 벨기에는 그리사 판사의 결정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법률을 갖추고 있다. 국채 발행이 미국 밖의 금융센터들로 유출되기 시작하는 것을 지켜본다면, 이는 틀림없이 미국 의회로 하여금 미국 법률을 국제적 규범에 맞추도록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글‧마크 바이스브로 Mark Weisbrot

경제정책연구센터(CEPR) 이사 겸 저스트 포린 폴리시(Just Foreign Policy) 회장으로 활동

번역‧최원근 pijepa24@naver.com

파리1대학 경영학 박사

 

(1) 벌처펀드는 부실기업이나 부실채권을 헐값으로 사들여 고수익을 노리는 펀드자금. 마치 죽거나 병든 짐승을 노리는 대머리 독수리(vulture)의 행태에 비유하여 붙여진 명칭

(2) 클루도 게임은 가상 살인사건을 설정하여 범인, 흉기, 범행장소 등을 찾아내는 게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