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속 개발의 그림자에 묻힌 다카르

2014-10-30     사빈느 스수

끝없는 자동차 체증, 금세 뚝딱 지어 올린 현기증이 날 듯 높은 건물들, 부동산 투기…. 다카르는 현재 급속도로 변하고 있다. 올해 11월 말이면 프랑코포니 정상회담(프랑스어권 국제기구, OIF-편주)이 열리게 될 세네갈의 수도는 거대 도시로 변모 중이다. 그로 인한 그림자도 커져간다.

“너무 많이 변했어요. 도시를 전혀 알아 볼 수가 없어요!” 이곳에서 ‘이탈리아에서 온 친구’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모두 로(34세)는 12년 만에 고국인 세네갈의 땅을 밟았다. 밀라노로 이민을 떠난 이후 이 기술자는 오래간만에 부모 집으로 돌아왔다. 부모 집은 다카르 북쪽 귀에디아와예 외곽의 모래 길 위에 있다. 그는 다카르를 다시 보면서 소년 시절의 다카르를 반추하게 하던 것들이 사라졌다고 고백했다. “혼잡시간 대에 택시를 탔는데 교통 체증에 막혀 두 시간이 걸렸다. 길을 어떻게 찾아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모든 게 변해버렸다. 집들도 2, 3층 이상이 대부분이고!”

오후 3시였다. 집 뜰에서 로는 친구들과 함께 세 개의 잔을 놓고 녹차를 마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디선가 라디오 소리와 양의 울음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로는 친구들에게 근황을 들었다. 32세의 비람은 영어를 전공한 대학 졸업자로 현재 실업자이다. 그는 지난 2014년 6월 선출된 귀에디아와예의 신임 시장이 내세운 계획에 대해 어떤 환상도 없다. “알리우 살은 현 대통령 마키 살의 형제인데 이름 없는 언론사 기자 출신이다. 이제 곧 자기 주머니를 채울 것이고 모든 문제는 제자리일 것이다. 여기 귀에디아와예 전체를 통틀어 하나뿐인 공립 고등학교, 단수, 단전, 실업, 교통 체증 등 문제가 많다. 그간 족벌정치와 싸워왔지만 다시 족벌정치가 시작되었다.”

귀에디아와예는 1972년 지방 분권화의 일환으로 다카르 플라토 구역의 빈민가 인구를 이주시키기 위해 수도로부터 18km 떨어진 곳에 세워진 신도시다. 해안가에 접한 이 외곽 도시는 1996년 다카르 지역의 4개 구 중 하나가 되었고 현재 80만 6천 명의 인구가 살 정도로 성장했다.

식민지 코뮌 중 하나였던 다카르

다카르 수도가 전 방위로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흰색, 노란색, 분홍색, 바둑 무늬의 타일로 뒤덮인 각양각색의 건물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기고, 오래된 길은 대로로 변하고 있다. 1902년 이후 프랑스령 서부 아프리카의 중심지였던 다카르는 생 루이, 고레, 뤼피스크와 더불어 식민지 지배자들이 부여했던 특별한 지위를 지닌 ‘4개의 코뮌(자치구)’ 중 하나였다. 이 곳의 거주자들은 프랑스 시민으로 프랑스 의회에서 의원을 통해 대표되었다. 1960년 독립 후 자치구의 인구는 3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10%에 달했다. 그러나 지금 이곳은 반도로 불어오는 해풍에도 불구하고 숨 막힐 듯하다. 세네갈 총 인구의 4분의 1에 달하는 3백만 명 이상의 인구로 포화된 상태이다. 현 대통령과는 아무 관련 없이 성씨만 같은 칼리파 살 시장의 말에 따라 세네갈의 심장이 뛰는 ‘머리만 큰’ 이 도시는 도시 폭발을 겪고 있으며 이는 전 대륙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박스 기사 참조).

새로 생긴 세네갈 관광진흥공사는 다카르를 ‘업무와 국제회의 중심 관광’의 메카로 키우려 한다. 다카르 공항은 2012년 170만 명 이상이 방문하는 남아공의 요하네스버그 공항에 이어서 사하라 이남에서 두 번째로 붐비는 공항이다. 2015년 이 지역 항공수송의 플랫폼으로 부상할 야심으로 가득한 블레즈 디안뉴 국제 공항이 문을 열면 그 순위는 바뀌게 될 것이다.

이렇게 새로운 주요 기반시설의 망을 따라가면 디암니아디오를 지나게 된다. 작은 시골마을인 이곳은 전 대통령 압둘라예 와데(2000~2012 재임)가 수도 다카르를 관통하기 위해 거점 도시로 공표한 곳이다. 다카르에서 35km 떨어진 사통팔달의 이곳에서 11월 말 새로 지은 국제회의장에서 프랑코포니 정상회담이 개최된다.

국제 컨설팅 그룹 ECA 인터내셔널에 따르면 다카르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물가가 비싼 10대 도시 중 하나다. 현재 공항 주변의 요프, 우아캄, 엔고르, 알마디의 번화가 등지의 땅값은 금값이며 끝없이 시멘트가 부어지고 있다. 경제 기관이든 개인이든 재력이 있는 자들은 150~1,500유로의 월세를 챙기기 위해 건물을 짓는다. 매달 재산이 늘어나는 것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사람으로 터질 듯한 이곳에서 부동산 투자는 더 이상 침체가 없다. 2002년부터 2011년까지 코트디부아르 내전으로 국제기구 공무원들과 각종 비정부기구들, 코트디부아르의 아비장에서 온 이민자들이 물밀 듯 몰려왔기 때문이다.

이 작은 도시는 더 이상 아프리카 독립 시기의 그림자가 아니다. 1970년대 및 1980년대 젊은이였던 사람들에게는 이전이 더 활기찼고, 더 우아했으며, 더 지적이었다는 것이 진짜였을지도 모른다. 그 세대는 풍자 신문 ‘르 카파르 리베레(Le Cafard libéré)’의 편집장이었던 파프 삼바 캔처럼 그 시대에 대한 일종의 향수를 갖고 있다. 파프 삼바 캔은 이렇게 썼다. “오늘날 다카르는 물질적 부에 휩쓸려 있다. 짤랑거리지만 공허하고 GM 자동차의 크롬처럼 번쩍거리지만 하루살이와 같은 부(富)이다. 텔레비전 위에 있는 커다란 선글라스처럼 천박한 휘황찬란함, 돈으로 가득찬 가방들과 함께 올라가는 거대한 건물들. 겉보기만 번지르르한 다카르, 일확천금의 다카르, 딱 붙는 청바지를 입은 아가씨들의 다카르. 멋진 레스토랑이 즐비하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영혼 없는 다카르의 이면이 공존한다오. 옛날 뒷골목이었던 이곳이 오늘날에는 중심지가 되었소. 꽤 그럴 듯하게, 그러나 뒤죽박죽인 채로.”(1)

다카르는 많은 것들로 빛난다. 수많은 대학들(18세 미만 인구가 전체 인구의 48.6%에 달하는 이 도시에서 학생 수만 7만 명), 고레 섬, 검은 아프리카 연구소(IFAN), 서아프리카 중앙은행 본부(BCEAO), 각종 국제회의들, 비엔날레 예술전, 그리고 다카르만의 도시 문화로 빛난다. 다카르 사람들은 전 세계 여러 도시에서 ‘블랙 패션 위크’를 여는 젊은 디자이너 아다마처럼 남다르다. 오마르 빅토르 디옵은 “여기서 자라면 여러 요소들이 매우 혼재된 심미안을 갖게 됩니다. 영화, 동양적인 요소, 미국 스타일, 아프리카 모든 것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죠”라고 말했다. 33세의 이 사진작가는 다카르에서 활동하는 예술가와 젋은이의 초상전을 전 세계에서 열고 있다.

그렇다면 그 이면은 어떨까. 다카르 인구의 3분의 1은 극도로 가난하다(공식 수치에 따른 전체 인구의 46.7%라는 국가 통계와는 다르다). 국가 경제 활동의 80%는 다카르 항구(아프리카에서 9번째로 큰 항구) 동쪽으로 안느 만을 따라 뤼피스크 도시까지 이어진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농촌 인구가 계속해서 유입될 뿐 아니라 기니, 말리, 나이지리아의 난민들까지 몰려든다. 매년 새로 유입되는 사람들은 피킨느나 귀에디아와예와 같은 외곽에서 판자촌에서 세를 얻는다. 8월 말 우기 때면 사람이 밀집된 이 지역은 늘 침수가 된다. 지역민들과 공무원들은 잠긴 물을 빼내느라고 애쓰고 이로 인해 말라리아와 콜레라의 감염 위험이 높아진다. 세네갈에서 가장 오염이 심한 지역인 안느 만은 2009년부터 정부의 특별 보건 프로그램의 대상이다.

주요 자금원은 남미와 유럽의 마약 밀매 대금

이와 같이 급속한 도시화는 어떻게 다뤄지는가? 프랑스식을 본뜬 행정체계상 의사결정 단계는 다중적으로 복잡해서 명확히 파악하기는 어렵다. 1996년 이후 다카르는 19개의 구로 정비되었다. 그동안 도시화로 인한 문제가 시급해지는데도 다수의 도시화 계획이 중첩되었다. 10년 동안 다카르의 인구는 5백만 명을 넘어서게 되었다. 2009년 선출된 사회주의 진영 시장인 칼리파 살은 1990년에 시작된 분권화 ‘3단계 계획’을 발표했고, 올해 시의 각종 관할권을 19개 구의 구청장들에게 양도했다. 그중에는 특별히 공공 시장에 관한 문제도 있었다. 그러나 칼리파 시장은 “재원 부족으로 시가 시작한 여러 프로젝트들이 ‘동결된 상태’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그는 국가와 시 사이에 이러한 관리를 두고 벌어지는 경쟁을 비난했다.

최근 몇 년간 코르니슈 도로를 따라 고급 부동산 건설 프로젝트가 난립하면서 해변을 사유화하여 대서양 해안 전망을 봉쇄하고 있다. 단체 리토랄 SOS는 ‘어린이들이 놀던 해변’을 점유하고 입장료를 받는 테루 비 호텔을 대상으로 소송 중이다. 유명인 유수 두르의 자매 중 하나인 여가수 아비 두르는 바닷가를 접한 이 구역의 최후 녹지 중 하나인 판 레지당스 로터리에 레스토랑을 지을 수 없게 되었다. 리토랄 SOS의 명예 의장이자 건축사인 피에르 구디아비는 지난 8월 여가수가 공공 녹지를 밀어버리기 위해 불도저를 보냈을 때 판 구역의 시장에 이를 알렸다. 전 시장이 이 공사를 허락했지만 현 시장은 이를 즉각 철회하였다. 구디아비는 “비상식적인 일이죠. 그러나 그 여가수는 모든 필요 서류를 다 갖추었고, 완벽하게 법적인 테두리에 있었어요! 돈이 생기기 때문에 시장들은 무엇이든 이렇게 나눠주고 자기들도 모르는 결정을 내렸죠”라고 탄식했다. 그러나 구디아비도 과거 와데 대통령의 측근이자 건설 회사인 ‘아테파’(건축가라는 의미의 세네갈어)의 사장이다.

많은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서 그렇게 많은 건물을 지을 수 있는 돈이 나올까’하고 의아해 할 것이다. 서아프리카의 자금 세탁 반대를 위한 국제행동그룹(Giaba)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세네갈은 남미와 유럽 사이의 코카인 밀매에 연루되어 있다. 보고서에서는 “특히 다카르와 관광지의 부동산 폭등세가 세네갈의 경제적 현실(2)과 양립 불가능하다”고 우려했다.

“우리는 마약에서 나온 돈은 원치 않습니다!” 아프리카 전역을 통해 유명한 건축 프로젝트로 유명한 구디아비는 이렇게 강조했다. 그는 중국 자본의 투자로 역 주변에 새로운 대극장(식민지 시대의 멋진 건축물) 건물을 디자인했다. 또한 토지를 대가로 북한 기업이 건립한 52m 높이의 기념물인 아프리카 르네상스 상(이 작품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제작에도 참여했다. “셍고르 대통령(3) 시절에는 매년 두 번 국가 도시화 자문위원회가 열렸다. 대통령부터 소방대원까지 모두 참석했다. 명쾌했던 셍고르 대통령은 자신이 도시화 장관이라고 말하곤 했을 정도였는데…. 하지만 그때 이후 30년간 자문위원회는 한 번도 열린 적이 없다. 그 결과 각자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되었다.” 이 건축가의 탄식은 계속되었다. 현재 그나 유수 두르와 같은 유명인들이 살고 있는 알마디와 같은 부촌도 혼잡하긴 마찬가지다. “사탕수수 사업을 하는 프랑스인 억만장자인 내 친구 밈란도 자기 집 정원 앞을 가로막고 8층 건물이 들어선 걸 보게 되었으니 무질서하긴 마찬가지다.” 이 건축가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러한 문제는 도시 교통관리에서 두드러진다. 지난 2008년 무슬림 정상회의(OCI)가 열렸을 때 와데 전 대통령은 고속 열차로와 교차로를 건설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늘 그렇듯 충분한 고려 없이 이루어졌다. 코르니슈 도로에 판 터널로 숨베디운느 어시장 앞에 있던 전통 마을 상인들은 관광객들을 좀처럼 볼 수 없게 되었다.

만일 이 운송로가 운하였다면 지역민들의 에너지와 자발적인 참여로 도시화 관리는 강점을 갖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건축가인 베카에 블롱댕 디옵은 “다카르는 큰 여러 마을들로 만들어진 곳이다. 요프, 엔고르, 숨베디운느 등 어디서든 여전히 그런 큰 마을을 볼 수 있다. 도시화 계획은 전체 인구의 필요도 중요하지만 마을 주민들의 생각도 고려해야 한다. 요프에서 엠보로까지 100km 이상 되는 북쪽 해안가의 가치를 잘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여전히 있다. 이제는 엘리트주의로만 개발 프로젝트를 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글‧사빈느 스수 Sabine Cessou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특파원

번역‧박지현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 졸

 

(1) ‘들끓는 다카르’(collectif), Clairafrique ­ Vives Voix, Dakar, 2010년

(2) Giaba의 2013년 보고서, ‘une structure de la Communauté économique des Etats d’Afrique de l’Ouest(Cédéao)’

(3) Léopold Sédar Senghor(1906~2001) 대통령은 세네갈 독립 후 최초의 대통령이었다. 시인이자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위원이기도 했다.

<박스 기사>

급증하는 아프리카 도시인구, 치솟는 임대료

지금부터 2040년까지 아프리카인들은 대부분 도시인들이 될 것이다. 전문가들의 전망에 따르면, 아프리카 도시 거주자들은 4억 명(2009년 기준)에서 2040년까지 10억 명이 될 것이다. 농촌 인구의 비율은 같은 기간 60%에서 40%로 줄어들게 될 전망이다. 2025년이면 나이지리아의 라고스는 1,800만 명, 콩고 공화국의 킨샤사는 1,400만 명으로, 미국 LA와 중국 베이징(1)을 추월하여 전 세계에서 11~12번째로 큰 도시가 될 것이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인구 수로 15번째 대도시인 다카르는 향후 10년간 연 13만 명씩 증가하여 2025년이면 5백만 명에 육박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세네갈의 수도 다카르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물가가 비싼 10개 도시 중 하나가 되었다. 1㎡의 임대료와 가격은 무섭게 치솟고 있다. 새로 지은 건물의 경우 1㎡가 1,500유로에 달한다. 코트디부아르 아비장의 듀 플라토 중심부도 비슷한 금액이다. 케냐 나이로비 중심가의 1㎡의 가격은 1,200유로, 나이지리아의 라고스는 1,300유로다. 가장 비싼 도시는 앙골라의 루완다로 1,700유로이며,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요하네스버그는 1,850유로에 달한다.

(1) 유엔 인간 주거 계획 보고서 ‘2014년 아프리카 도시 현황, 도시화를 재구성하다’, Nairobi, 20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