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는 스스로 사고하지 않는다

2014-10-30     에블린 클레망 외

 

   
 

1980년대 말, 핵물리학과 컴퓨터의 발달이 결합되면서 기능성자기공명영상장치(fMRI)가 탄생했고 인지신경과학이 눈부시게 발전했다. 인지신경과학은 신경생물학적 기전과 기능장애를 연구하는 학문으로서 여기서 ‘인지’라는 용어는 ‘사고’와 거의 동의어라고 볼 수 있다. 이때부터 국제 과학학술지에는 기능성자기공명영상장치에 대한 논문이 하루에 5~8건씩 실렸다. 언론에 큰 주목을 받은 일부 연구자들은 뇌 영상기술 덕분에 인간의 생각을 읽고 정치적 선호도를 유추하고 사회적 능력을 예측하며 성격을 파악할 수 있다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1)

르네상스 시대의 저명한 해부학자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가 정신이 뇌에 있다고 밝힌 지 약 3세기가 지난 후, 프란츠 조세프 갈(1758~1828)은 각기 다른 뇌 부위에서 담당하는 다양한 정신 기능을 구분해보였다. 골상학이라 불리는 그의 학설은 19세기에 유럽과 미국에 확산됐고 심리학의 실제 적용에 관한 학문인 심리공학과 범죄학, 과학수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리하여 범죄학 이탈리아 학파의 창시자인 체사레 롬브로소(1835∼1909)는 ‘선천적 범죄자’ 이론을 주장했고 알퐁소 베르티용(1853~1914)은 범죄자 식별을 위한 인체측정학을 탄생시켰다.

어떤 정신기능을 담당하는 뇌 부위 두개골의 돌기가 발달한 경우 그 분야에 재능이 있다는(가령 수학 천재들에게 고유한 두개골 돌기가 있다는) 설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반면 특정 뇌 기질에 상응하는 기본 구성요소들로 정신을 구분할 수 있다는 가설은 여전히 유효하다. 뇌의 해부학적 이상을 식별하여 손상 또는 종양을 진단하는 데에 필수불가결하게 사용되는 의학적 신경영상학과는 달리, 인지심리학과의 만남을 통해 탄생한 인지적 신경영상학은 뇌 부위들의 활동과 정신작용의 연관성을 밝히는 데에 주안점을 둔다. 가령 이제는 두개골을 손으로 만져보지 않고도 다양한 뇌 부위에서 신진대사 활동의 변화(대체로 산소의 소모)를 관측할 수가 있다.

인간의 모든 활동에 하나의 두뇌 활동이 상응한다면, 모든 학문은 신경사회과학, 신경경제, 신경마케팅, 신경법학, 신경윤리학, 신경교육학 등 ‘신경’과의 연계 속에 뇌 영상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뇌를 스캔하여 위험성을 측정하고, 시민의 선택, 범죄자의 성격, 학생의 학업부진, 경제주체의 결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전망은 기업가들과 정부기관들에게 분명 아이디어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신경영상학을 통해 무엇을 알 수 있는지 혹은 없는지에 관한 학문적 논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능력 또는 사회적 계층과 두뇌 활동 사이의 직접적 상관관계를 찾는 연구들이 증가하고 있다. 일부 연구는 빈곤층 출신 피실험자들의 두뇌활동이 전두엽 손상 환자들에게서 관찰된 것과 유사함을 보여주고 있다.(2) 또한 성인기 두뇌기능은 아동기에 부모로부터 받은 교육의 유형에 따라 좌우된다고 주장하는 연구도 있다.(3) 아울러 빈곤층 아이들은 감정의 인식 및 표현에 관여하는 부위인 편도선의 활동이 다른 계층 아이들에 비해 활발하다는 내용의 논문도 있다.(4) 뇌 스캐너를 이용해 심지어 지정학까지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스라엘 하이파의 한 연구진은 고통을 연상시키는 장면 앞에서 유대인과 아랍인이 보이는 두뇌활동의 차이를 연구하기도 했다.(5) 이처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분쟁이 마치 본성에 기인한 자연스러운 일인 양 설명하고 정치적 분석은 일체 회피하는 데에 신경영상기술이 사용될 수도 있다.

새로운 장르의 ‘과학적 증거’라 불리는 신경영상학은 지난 10여 년 동안 사법 분야에서 적용 사례가 크게 증가했다. 맥아더 재단이 미국에서 출범시킨 ‘법과 신경과학’ 연구 프로젝트(2007)나 영국 경제사회연구위원회(ESRC)의 지원을 받는 런던정경대 사회학 연구 프로젝트가 이를 방증한다. 이들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신경과학자, 철학자, 법학자들이 신경영상기술을 통해 얻어낸 지식을 법에 적용할 때의 적절성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어쩌면 자유의지란 과학의 발달과 동떨어진, 그저 민간의 케케묵은 믿음에 불과할지 모른다는 뜻이다. 프랑스에서는 2011년 7월 7일자 생명윤리법에 따라 신경영상자료를 법정에서 제시할 수 있게 됐다. 이러한 방식은 이미 전 세계의 수많은 재판에서 사용되었고 심지어 잠재적 범죄자를 색출하는 데에도 쓰일 전망이다.(6)

미국 의회가 ‘뇌의 시대’라고 선언한 1990년대 이후 신경영상학에 대한 재정적 투자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최근 두뇌연구 프로젝트 BRAIN(Brain Research through Advancing Innovative Neurotechnologies)을 출범시킨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두뇌지도 연구를 통해 인간게놈지도 연구에 준하는 막대한 규모의 투자수익률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유럽도 이에 질세라 치열한 두뇌연구 경쟁에 뛰어들면서 2010년부터 2020년까지 10억 유로의 예산이 책정된 인간두뇌프로젝트(Human Brain Project)를 내놓았다.

이처럼 신경영상학이 성공을 거두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오랜 철학적 물음의 대상인 몸과 정신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에 사람들이 뚜렷한 지적·학문적 관심을 보이고 있다. 아울러 신경영상학이 제공하는 증거가 지니는 명백성도 성공에 기여하고 있다. 그렇지만 신경영상이란 무수한 수학적 변형의 결과인 일련의 복잡한 측정치들의 시각적 재현에 불과하며, 그 근간을 이루는 가설들에 대해서는 아직도 전문가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하다.

세계 영상의학시장은 미국의 제너럴 일렉트릭, 네덜란드의 필립스, 독일의 지멘스, 3개 업체가 나누어 점유하고 있다. 자기공명영상장치의 대당 평균 가격은 150만 유로 정도이며 2015년 전 세계 매출액은 70억 유로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인지과학 기초연구 예산 가운데 신경영상학에 할당되는 몫은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2006년에는 2억 유로가 투입된 인지영상센터 ‘뉴로스핀’이 파리 근교 사클레에 문을 열기도 했다.

물론 금기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상황에서는 과학적 엄정성을 가지고 꼼수를 부리거나 데이터를 선택적으로 사용하거나 과학을 구경거리로 만들어버리거나 심지어 사기를 칠 위험이 높아진다.(7) 신경영상학이라는 복잡한 기술을 바탕으로 간단한 해결책을 제시함으로써 정부기관의 주목을 받는 것까지는 좋다. 하지만 뇌 영상을 통해 어떤 교육방법, 경제 모델, 법적 판단의 타당성을 증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이념·과학·정치·사회적 파행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 만일 범죄, 학업부진, 빈곤을 신경영상을 이용해 진단할 수 있다면야 교육·예방·사회적응정책 마련을 위해 막대한 투자를 하는 게 과연 무슨 소용 있겠는가?

‘뇌에 의한 증명’은 개인주의적 허상을 재생산한다. 다시 말해서 개인의 존재는 일단 생물학적으로 결정되어 있으며 상대적으로 부수적인 요소인 이력이 거기에 덧붙여질 뿐이라는 믿음을 확산시킨다는 얘기다. 뇌를 이용한 증명은 정신을 역사와 상황의 산물이라기보다 스크린 위의 건드릴 수 없는 데이터처럼 제시함으로써, 정신을 원래 그런 것인 양 ‘자연화’시킨다. 그러면서 문화·사회역사적 맥락이 사고의 발달과 사회의 발전에 기여하는 바를 감춘다. 또한 인간의 경험을 자연과학 용어로 새롭게 표현하면서 그것이 구축되는 과정의 주관적이고 자율적인 측면은 무시한다.

뇌는 우리의 정신활동의 물질적 기질을 이루지만 스스로 사고하지는 못한다. 오직 인간만이 사고한다. 그리고 그 사고의 내용물은 뇌의 외부에서, 뇌를 둘러싼 환경의 안팎에서 비롯된다. 뇌를 촬영한 영상을 통해 볼 수 있는 것은 생각 자체가 아니라, 인간이 이른바 사고라는 것을 할 때 발생하는 생물학적 상관관계이다. 이를 테면 전기적 활동이나 혈류 변화 같은 것 말이다. 뇌는 정신적 실재의 객관적 조건이다. 하지만 뇌를 만들어 내는 건 정신적 실재이다. 이 두 가지 사실을 망각한다면 그건 과학을 빙자한 신경신화(神經神話)일 뿐이다.

 

글·에블린 클레망 Evelyne Clément

파브리스 기욤 Fabrice Guillaume

기 티베르기엥 Guy Tiberghien

브뤼노 비비코르시 Bruno Vivicorsi

파브리스 기욤과 기 티베르기엥은 장이브 보두엥(Jean-Yves Baudoin)과의 공저로 <뇌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 뇌의 영상과 신기루>(그로노블대 출판사, 2013) 등이 있다.

번역·최서연 qqndebien@naver.com

 

 

(1) Cf. Michel Alberganti, ‘신경과학이 정신의학을 만나다’, <르몽드>, 2003년 9월 19일

(2) Rajeev D. S. Raizada & Mark M. Kishiyama, ‘Effects of socioeconomic status on brain development, and how cognitive neuroscience may contribute to levelling the playing field’, <Frontiers in Human Neuroscience>, vol.4, n°3, Lausanne, 2010

(3) Peter Gianaros(ed.), ‘Parental education predicts corticostriatal functionality in adulthood‘, <Cerebral Cortex>, vol.21, n°4, New York, 2011

(4) Pilyoung Kim(ed.), ‘Effects of childhood poverty and chronic stress on emotion regulatory brain function in adulthood’,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vol. 110, n° 46, Washington, DC, 2013

(5) David Brooks, ‘The young and the neuro’, <The New York Times>, 2009년 10월 9일

(6) Eyal Aharoni(ed.), ‘Neuroprediction of future rearrest’,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vol.110, n°15, 2013

(7) Cf. Pierre Barthélémy, ‘신경과학의 신뢰성에 대한 의혹’, 2013년 4월 14일, http://passeurdesciences.blog.lemonde.fr

(8) Gilles de Robien, ‘독서에 관한 기자회견’, 2006년 1월 5일, www.education.gouv.f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