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소프트웨어의 이상한 운명

2014-10-30     세바스티엥 브로카

협력적이고 공개적이며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프리소프트웨어. 2013년에 30주년을 맞는 프리소프트웨어운동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지식과 문화의 사유화에 더 강력하게 저항하고 있다. 수많은 프로그래머들은 자발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있다. 하지만 이 운동과 상권의 관계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밀접하다.

인터넷이 패닉상태에 빠졌던 2014년 4월, 컴퓨터 전문가들은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암호화코드 소프트웨어의 취약점을 발견했다. 이 프로그램은 검색 웹 주소창에 작은 자물쇠로 표시되는 보안 프로토콜을 작동시키는 프로그램으로, 예를 들면 전자상거래 결제 시에 사이트와 이용자 사이에 교환되는 정보의 기밀을 유지해준다. 소셜 네트워크, 상품판매 사이트와 서비스들은 제3자가 정보를 빼가지 못하게 이 프로그램을 서비스에 통합했다. 그런데 OpenSSL이라는 이름의 이 프로그램은 한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바로 프리소프트웨어라는 점이다.

보안 문제를 넘어서 이른바 ‘하트블리드’로 불리는 이 버그는 한 가지 문제를 제기한다. 어떻게 상거래 웹 관계자 -그들 중 일부는 수억 달러에 달하는 이익을 올리기도 한다- 대부분에게 결정적으로 중요한 소프트웨어가 소수의 자원봉사 프로그래머에 의해 만들어지고 유지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1) 이 버그가 2년 동안이나 발견되지 않은 것은 이 프로젝트에 기여하는 사람들이 소수였기 때문이다. 이는 프로그래머들이 수익에 대한 유혹보다는 프로그램 개발에 대한 열정으로 개발한 프리소프트웨어와 거대 인터넷 기업 사이의 불균형 관계를 잘 보여준다. 이 버그 문제는 또한 일부 좌파지식인들이 인터넷 상품화에 대한 저항세력으로 간주했던 컴퓨터 전문가 운동의 미래에 대한 문제도 제기한다.

빗장 테크놀로지에 반대하는 공개된 기술

1970년대 말까지 컴퓨터 프로그램들은 상품가치가 없었다. 하드웨어 생산자와 사용자들이 협력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던 프로그램들은 자유롭게 교환될 수 있었다. 1980년대 초 컴퓨터가 대량 보급되면서 상황은 변했다. 소프트웨어 산업 창업을 장려하고, 이것이 역사적으로 과학적 연구규범에 바탕을 둔 컴퓨터 전문가 문화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많은 프로그래머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신생기업에 흡수되었다. 프로그래머들은 정보기밀 유지 조항을 준수하여 소프트웨어 사용에 제약을 두고 판매되는 ‘사유’ 소프트웨어(마이크로소프트 같은)를 개발하는 데 동의했다.

이와 같은 변화에 대항하기 위해 당시 메사추세츠공과대학(MIT) 컴퓨터 기술자였던 리처드 스톨만은 1984년 프리소프트웨어운동을 창안했다. 프리소프트웨어는 누구나 소스코드를 알 수 있고, 사용, 복사, 변경, 재배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말한다. 그는 프리소프트웨어가 프로그래머들 사이의 공동작업, 정보의 순환, 사용자의 도구제어 가능성을 보호해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프리소프트웨어운동은 첫 단계에서부터 두 축을 따라 전개되었다. 한 축으로는 사유소프트웨어를 대체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생산해내고, 다른 축으로는 사용자의 자유와 지식의 공개라는 생각을 중심으로 전투적인 담론을 펴 나갔다.

1990년대 말에 이미 프리소프트웨어는 스릴을 즐기는 소수의 해커들이 개발한 난해한 프로그램과는 다른 것이 되었다. GNU/Linux는 견고한 운용체제가 되었고, 전문가들의 인정을 받았다. 인터넷의 비약적인 발전과 더불어 스톨만이 제기한 문제는 처음에 프리소프트웨어로 전환한 사람들의 범위를 벗어나 더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프랑스에서는 비판적 좌파 지식인과 활동가들이 프리소프트웨어에 매혹되었다.(2) 제롬 글레즈는 잡지 <뮐티튀드(Multitude)> 창간호에서 “그런데 어디까지 갈 것인가?”라고 자문하면서 거기에는 “한계가 없다”(3)고 대답했다. 글레즈는 소유자의 구속이 완전히 사라진 컴퓨터 세계를 꿈꾸었다.

비영리단체, 잡지, 노조들을 위한 사이트가 집결하여 논쟁이 벌어지는 사미즈다트네트워크(Samizdat.net)를 주도적으로 운영하는 사람들은 핵티비즘(hactivism, 정치적 목적을 가진 해킹)과 행동주의(activism)를 연결시킬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사회운동 내에서 수많은 프리소프트웨어(GNU/Linux, Apache, Sympa, SPIP[4]) 보급에 공헌했다.(5)

얀 물리에르 부탕, 앙드레 고르즈, 혹은 글레즈 같은 지식인들은 프리소프트웨어야말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도구로 간주되어 온 IT와 인터넷에 대한 비판적 좌파의 망설임을 넘어설 수 있는 성공의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스톨만이 창안한 운동은 디지털 세계에서 반대 세력의 가능성을 만들어냈다. 고르즈는 그것을 “자본주의적 사회관계의 실제적 부정”(6)이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그 부정은 새로운 ‘무형’ 경제의 핵심 분야에 둥지를 틀게 될 것이기에 더욱 의미심장했다.

이런 열광적인 해석으로부터 두 가지 생각이 주목받았다. 즉, 프리소프트웨어는 해방의 기술이라는 생각과 ‘무형’ 생산이라는 자본주의적 조직에 대한 저항을 구현한다는 생각이었다. 15년 가까이 지난 현재 상황은 어떤가?

프리소프트웨어운동은 기술적 목적보다는 사회적 목적을 가지고 있다. 프리소프트웨어는 그 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오픈소스운동과는 구별된다. 오픈소스운동 역시 정보코드의 공개를 지지하지만 지지하는 이유는 다르다. 즉, 더 경쟁력 있는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혁신적인 기업모델을 만들어내려 한다. 스톨만은 기술의 ‘해방’이 개인과 사회 자유의 장(場)을 확장시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프로그래머 벤저민 마코 힐은 “프리소프트웨어에 개의치 않는다. 자신에게 중요한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것은 사용자의 자유”(7)라고 강조했는데, 그의 이러한 주장은 소프트웨어를 해방시킴으로써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해방시키려는 의도를 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뒷받침하는 여러 논거가 있다. 예를 들어, 프리소프트웨어는 사용자의 개인정보를 위태롭게 하려 드는 식의 악의적인 잠재적 기능에 대해 면역체계를 갖추고 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소스코드에 접근하게 되는 순간부터 이런 기능은 손쉽게 제거될 수 있기 때문이다(그렇지만 ‘하트블리드’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소스코드가 정기적으로 검토, 점검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붙는다). 프로그램이 블랙박스가 되지 않도록 하면서, 일부 ‘프리소프트웨어주의자(libriste)’들은 자신에게 더 광대한 목표를 부여한다. 컴퓨터와 정보의 민주적 재소유를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 점에 대단히 민감했던 고르즈는 프리소프트웨어를, “사용자들을 노예상태로 만들고 그 조작을 프로그래밍하고, 생산품이나 서비스의 제공을 독점”(8)하는 ‘빗장 테크놀로지’에 반대되는 “공개 기술”로 간주했다. 그는 “프리소프트웨어야말로 사람들이 이해하지도 제어하지도 못하면서 기술을 사용하는 소비사회를 넘어설 수 있는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프리소프트웨어는 해방프로젝트의 매개수단으로 여겨졌다. 문제는 오늘날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배에 올라탔다는 것이다. 거대 인터넷 기업들은 그들의 서비스를 추진하고 그들의 거대한 기술 인프라를 작동시키기 위해 프리소프트웨어를 사용한다. 그런데 이것은 자유에는 그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네티즌들이 웹 기능 방식을 잘 이해하고, 개인정보가 정보기관에 전달될 수 없는 것은 구글이나 페이스북의 서비스가 리눅스 덕분에 제공되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사용자들은 수많은 프로그램에서 멀어지면서 하나에 집중되었고, 소셜네트워크가 증가하고 온라인 서비스가 메시지와 문서 저장 부분에서 발전하면서 프리소프트웨어의 자유보장 역량은 약화됐다.

중요 당사자들도 이런 변화를 피해가지 못했다. 일례로, 일부 ‘프리소프트웨어주의자’들은 그들의 운동 정신에 충실하기 위해 -그리고 좁은 의미에서만이 아니라- 구글을 사용하지 않는 식으로 투쟁방식을 바꿨다.(9) 다른 사람들은 대형 상업 소셜네트워크를 대체하는 서비스 솔루션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Identi.ca나 Diaspora의 예를 보면, 아직까지 그 성공은 미온적이다. 스톨만은 대단히 단순한 해결책을 추천한다. 대형 웹서비스 사용을 철저히 거부하는 것이다. 강직하지만 유머감각이 없지도 않다. 그는 학부모들에게 페이스북을 “당신 아이가 빠져들지 않기 바라는 일종의 갱단”(10)으로 생각하라고 충고한다.

구글과 페이스북 등을 거부하는 투쟁 방식

프리소프트웨어는 법제 차원에서 가장 큰 성공을 거뒀다. 1989년에 창설된 프리소프트웨어라이선스(GPL)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개인 소유화하는 메커니즘에서 벗어나게 해줄 수 있는 믿음직한 도구를 제공해주었다. 이 라이선스는 사용자들이 프로그램을 실행, 복사, 변경, 배포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 그러면서 의무사항도 덧붙였다. 이른바 ‘파생’ 소프트웨어버전 전체에 대해서 이런 자유가 보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프로그램 편집에디터는 프리 소스코드를 재활용할 수 없고, 몇몇 코드를 변경시켜 전체프로그램을 상품화한 다음 사유 라이선스로 판매할 수 없다. GPL은 매우 기발한 방식으로 프로그램을 상품화하지 못하게 한다. 게다가 CCL 같은 새로운 법제적 모델에 영감을 주었다. CCL은 예술 또는 지적 저작물의 저작권자가 저작권에 의해 원천적으로 금지되어 있는 일부 소프트웨어를 사용할 수 있게 허락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발명 속에서 새로운 생산모델의 실마리를 찾아냈다. 경제학자 물리에르 부탕은 정보소스 공개를 혁신의 가장 훌륭한 연료로 간주했다. 또한 프리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보여준 실험적 협력 작업 속에서 향후 경영 위계질서가 무너지는 신호를 발견하기도 했다.(11) 마찬가지로, 고르즈는 프리소프트웨어와 사유소프트웨어 사이의 전투를 더 넓은 차원에서 포스트자본주의-공개와 무상성의 비약적인 발전으로부터 추진력을 얻는-와 산업 당사자 -지적재산권의 관습적 소프트웨어에 절망적으로 매달리는- 사이의 갈등의 표현으로 해석했다.

실제로 인지자본주의는 위협요소로 여겨졌던 대안 법제에 순응했다. IT 기업들은 점차 몇몇 컴퓨터리소스의 개인 소유화를 포기하는 것이 경비 절감과 같은 이점을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다. OpenSSL을 사용하면 개발비를 부담하지 않는 소프트웨어의 혜택을 보게 된다. 리눅스 커널의 경우 소스코드 공개를 통해 연구개발 투자비 일부를 상호 부조할 수 있다.

소프트웨어 개선은 결국 대부분 더 경쟁력 있고 비용이 덜 드는 솔루션을 검토하는 대기업(구글, 오라클, 인텔 등) 직원들이 담당한다. 각 기업은 다른 기업들이 이미 만들어 놓은 것을 활용하면서 기업 활동에 특히 전략적이라고 판단되는 소스코드를 변경하기 위해 컴퓨터 기술자들을 고용한다. 개인 소유화할 수 없다는 사실이 경제적 효율성의 수단이 된다. ‘프리소프트웨어주의자’들은 그것이 그들의 원래 계획이라고 인정하지는 않지만 코드 공개가 지켜지는 한 크게 비난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결국 고르즈 같은 지식인이 생각했던 포스트자본주의적 전복과는 거리가 멀다. 리눅스 같은 거대한 협력계획은 그 직원들에게 더 많은 자유의 여지를 부여할 것을 기업들에게 요구한다. 그래도 직원들은 여전히 직원일 뿐이다. OpenSSL처럼 프로그래머는 직원이 아니면서도 경제적 가치를 만들어내지만 흔히 예술에 대한 사랑으로 일하는 것에 동의한다. 결국 소스코드를 개인 소유화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생산된 부의 재분배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다.

30년 전부터 달려온 여정은 분명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GPL과 같은 유형의 라이선스로 보호될 때 모든 사람들은 프로그래머들의 노동의 결실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다.(12) 이건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다. 지적재산권이 확장되면서 지식과 문화, 다시 말해 살아있는 것들 전체를 사유화하는 상황에서는 특히 더 그렇다.(13) 그리고 프리소프트웨어가 인터넷상에서 개인의 자유를 충분히 보장해주지 못한다 해도, 스톨만이 창안한 운동은 인터넷 거인들을 견제하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글·세바스티엥 브로카

저서로 <프리소프트웨어 유토피아. 정보기술 만들기에서 사회적 재발견으로>(파사제르 클랑데스탱, 뇌비 앙 샹파뉴, 2013년)가 있다. 

번역·김계영

파리4대학 불문학 박사. 저서와 역서로 <청소년을 위한 서양문학사>(2006), <르몽드 세계사3>(2013) 등이 있다.

 

(1) 하우세이 페글리어리, ‘당신의 인터넷 보안은 극소수의 자원봉사자에 의지한다’, CNN Nomey, 2014년 4월 18일, http://money.cnn.com

(2) 베르나르 랑, ‘프리소프트웨어에서 모든 사람들이 사용하게 되기까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1998년 1월호

(3) 제롬 글레즈, ‘프리소프트웨어 입문’, <뮐티튀드>, 창간호, 파리, 2000년 3월호

(4) 필립 리비에르, ‘SPIP 네트워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3년 10월호

(5) 아리스 파파테오도루 & 장 피에르 마스, ‘그들의 법과 함께라면 포기하는 편이 낫다’, 장 마르크 마나흐와의 대담, <트랑스페르>, 파리, 2000년 9월 28일

(6) 앙드레 고르즈, <무형, 지식, 가치 그리고 자본>, 갈릴레, 파리, 2003년

(7) 벤저민 마코 힐, ‘소프트웨어를 위한 자유가 아닌 사용자들을 위한 자유’, 2012년 12월 31일, http://mako.cc

(8) 앙드레 고르즈, <에콜로지카>, 갈릴레, 2008년

(9) 구피, ‘구글에서 해방되나? 좋다!’, Framablog, 2013년 5월 26일, www.framablog.org

(10) 리처드 스톨만, ‘페이스북’, 2011-2013, https://stallman.org

(11) 얀 물리에르 부탕, <인지자본주의, 거대하고 새로운 변화>, 암스테르담 출판, 파리, 2007년

(12) 프리소프트웨어 세계에는 이외에도 다른 라이선스들이 많이 있다. 그중에서 소위 ‘자유방임적’이라 불리는 일부 라이선스는 소스코드 사유화에 대해 전혀 방어책을 마련해두지 않는다.

(13) 제임스 보일, ‘제2차 인클로저 운동과 공공분야의 구축’, <벌과 현대의 문제>, 66권 1,2호, 더럼(미국), 200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