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침해하는 덫, '정보처리기술'의 민낯
정보처리과학의 발달로 대용량 정보의 처리와 축적이 가능해지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일대 혁신이 일어났다. 그러나 세계가 점점 더 기술발전에 의존하고 있는 가운데, 예측가능성과 투명성으로 포화된 사회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발달된 사회 조직망, 권력의 다원주의, 견제세력 작용이 기술 발달로 인한 자유 침해의 여지를 제거할 수 있다.’(1) 최대한 거리를 두고 신중하게 논의되어야 할 주장이다. 이 주장은 정보 분야에 있어서 우리 사회가 이제 막 선사시대를 빠져나왔음이 확실함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우리가 정보화의 결과에 대한 명확한 비전을 갖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 주장은 또한 임시법의 예외 조항 등을 통하여 유럽에서 민주주의가 잠재적 쇠락의 길을 걷고 있는 상황에서조차, 민주주의 권리에 기반한 국가가 영속될 것이라고 가정하고 있다. 이렇게 프랑스가 자유침해에 관한 한 의심의 여지도 없다고 한다면, 알제리 전쟁과 같은 민주주의 부패의 원인은 까맣게 잊어버린 것인가? 어떤 대답을 하기 전에 적어도 정보처리과학 분야에서는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다. 민주주의의 위력이라는 관점이 아닌 기술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이러한 주장을 펴는 것은 시기상조였다.
정보처리과학 논란에 처음 불을 붙인 것은 1973년 미국이 베트남에서 벌인 ‘피닉스 작전’이었다. ‘이 작전에 따라 블랙리스트(미국 정보국이 만든 용의자 컴퓨터 파일)에 오른 자들을 체포하기 위해 경찰과 군대식 조직이 도시와 농촌 마을에 투입되었다.’(2)
식민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당연히 우리가 더 이상 민주주의가 이러한 전쟁에 짓밟혀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과연 그랬을까? <르몽드>지 1975년 10월 12일자를 보면 프랑스 대외정보 및 대간첩활동국(Sdece)(3) 연간 예산 심의에 대한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Sdece는 연간 100여 명 정도의 젊은 인력 증강을 요청하였다. 엄격한 절차를 거쳐 선발된 젊은 인력들은 정보국이 정보수집과 인력 관리 현대식 중앙 파일 구축에 정보처리기술을 작용한 이래로 분석가, 프로그래머 컴퓨터 조종사 업무를 맡고 있다.’ 정보 자체가 부정확하다는 것도 우려스럽지만, 정보국과 자유의 관계에 대한 침묵, ‘사회 정보’에 대한 침묵이 더욱 우려스럽다.
자유를 침해하는 진짜 함정은?
Sdece에서 영토감시국(DST), 영토감시국에서 경찰정보수집부(RG)로의 전환은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기술 측면에서 진전은 정점에 달했다. 이제 수요만 일으키면 됐다. 경찰 정보처리 마케팅은 이미 존재했다.
한 주요 컴퓨터 제작업체가 사내통신문에 국내 치안 시장 침투 전략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우리의 전략은 선별한 국가기능분야(법률 강화, 사법 절차, 자동차 및 운전자 등록 등) 전체를 국가 치안 총괄 시스템에 통합시키는 것이다.”, “국민 통합중앙명부는 법적으로 불가결한 요소는 아니지만 다양한 행정부서에서 필요로 하고 있다. 단지 ‘사생활 존중’ 원칙으로 인해 정보화 실시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5)
피에르 노라와 알랭 맹크가 보고서에서 언급한 이러한 ‘자유침해 가능성’에 맞서는 견제세력은 무엇일까?
가까운 미래에 스웨덴과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덴마크에 이어 유럽위원회의 주도하에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 ‘정보기술과 자유’ 관련 법 체계를 갖추게 된다. 또한 각국 법은 공통으로 관할 법원의 설치, 정보에 등록된 시민들의 정보 접근권 인정, 정보파일 공시 관련 조치 등의 내용을 포함한다.
이러한 법 체계 확립이 괄목할 만한 진전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러한 법이 과연 문제의 본질을 다루고 있는 것일까? 엄격한 사생활 보호에 초점이 맞춰진 법의 목적 자체는 이미 시대에 뒤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생활 침해가 ‘더 이상’ 근본적 위협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어느 정도 개선만 된다면 이 법은 사생활을 ‘적당히’ 보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정보에 등록된 개개인이 법이 부여한 권리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단체 활동의 힘으로 뭉쳐야만 가능하다. 어찌 되었든 소비자 집단이 자신들이 전개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을 발견하고 또 다른 형태의 견제세력 역할을 맡게 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근본적인 문제를 은폐하는 기술들
여기에서 문제의 본질, 즉, 자유를 침해하는 진짜 ‘함정’이 무엇인지 알아보자. 문제는 대중을 관리하는 데에 ‘사회적 프로필’ 기술을 적용하는 것과 사회 정보화에서 기인하는 안전논리라 할 수 있다.
‘사회적 프로필’ 구축의 목적은 궁극적으로 각자의 특성에 맞게 개개인을 소위 ‘진로 지도’할 수 있도록 개인의 행동 가능성을 평가하는 데에 있다. 1970년 건강상으로 ‘위험에 노출된’ 어린이를 파악하기 위해 만들어진 ‘가맹(Gamin, 소아건강기록 정보화 처리) 파일’을 두고 격론이 벌어졌다. 프로그램 적용에 문제를 제기하게 된 다행스러운 논의였다고 할 수 있다. 이 기술은 질문-답변 일치 방식을 이용한다. 기술이 실질적으로 가장 발전된 형태로 프랑스에서 적용된 사례는 1977년 ‘툴루즈 의학정보처리기술의 날’에 소개되고 병역적합성을 평가하기 위해 군대에서 실제 적용한 기술일 것이다.(6)
첫 단계에서, 정상 상태(제1군)와 비정상 상태(제2군)를 추정할 수 있는 두 개의 주제군을 포함하는 표본에 근거하여 잠재적으로 군 생활에 부적합한 소집병을 추려낸다. 이후, 진로지도 연수기간 동안 소집병들이 기입한 질문지 답변을 처리해서 이를 바탕으로 제2군에 속하는 소집병을 다시 추려내고, 이 소집병들을 정신과 전문의에 의뢰하여 마지막 선별작업을 실시하기만 하면 된다. 만약 그 어느 누구도 제1군에 속한 ‘고도의 군대 일치성’을 보인 소집병을 같은 군의 ‘보통 혹은 약한’ 일치성을 보인 소집병 사이에서 구별해 내려는 시도만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최상의 진로지도를 핑계로 이 기술을 지지하려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위 기술들은 바로 제도를 개인에 적응시키는 근본적 문제를 은폐하고 있다. 기관 자체가 문제시되는 역사적 시기에 한 개인이 군 생활에 적합하다는 것은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을까? 무엇을 근거로 ‘사회적 정상상태’가 성립될까? 이 기술을 적용한 당사자의 설명을 예로 들어보자. “이러한 신경병 증세를 보이는 사람은 저널리즘이나 예술분야와 같은 특수한 생존 환경에서 불안전한 사회적응의 특혜를 받은 사람들로, 정상적인 군 환경에 편입될 경우 정신분열을 일으킬 위험이 있다.” 그럼 ‘정상적인 군 환경’이란 무엇일까? 알제리 전쟁이나 군인위원회와 같은 군사 환경을 말하는 것인가?
당사자들은 또한 기술 적용 범위를 확장시킬 경우 약물에 취약한 유형의 프로파일도 뽑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전문가에 따르면, 정보처리기술의 잠재성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일례로, 도서관의 자동처리화 파일을 이용하여 우파 혹은 좌파 성향 열람자의 유형을 파악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이에 더해 소위 ‘우파’ 작품을 열람하는 좌파 열람자를 가려내려는 시도까지 있었다. ‘진정한 우파 열람자는 겉만 우파인 열람자들이 읽는 작품은 읽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인도주의 국제기구 활동의 일환으로 독재정권 국가에 파견되었을 당시, 다행히도 아직 실험단계에 있었던 어떤 프로젝트에 대해 알게 되었다. 다양한 조직에 속한 정치범 표본을 바탕으로 고도로 정밀한 질문지를 이용하여 각 조직의 조직원 유형을 파악하려는 프로젝트였다. 이는 한 정치범을 체포했을 때, 정치범이 어떠한 조직에 속했는지 가늠하고 이에 적합한 질문만을 이용하여 ‘조사’의 효율성을 높일 목적으로 계획되었다.
혹자는 너무 극단적인 가정이라고, 기술 적용은 아직 신뢰할 수 없다고, 추구하는 목적에 비해 비용이 터무니없이 높다고 반대할 것이다. 그러나 그에 앞서 사회 정보화는 이제 막 선사시대 막바지에 왔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정보화의 부산물 중 하나로 여기던 ‘안전’은 이제 상품과 시장, 마케팅, 특수성을 갖춘 정보 산업 내 하나의 특화분야가 되었다. 초기에는 수해와 화재 등 비고의적 손해만을 다루었고 이제는 고도의 안전장치를 확보해주는 수준이 되었다. 그러나 본질은 다른 데에 있다.
1978년 스웨덴 정부는 국방부를 통해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최초로 가감 없이 공개적이고 총체적인 시각으로 정보화 사안을 분석한 ‘정보화 사회의 취약성’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예방차원에서 끊임없이 안전정치를 마련하지 않고서는 정보시스템으로 자동 규제되는 사회가 얼마나 취약해질 수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기계를 떠나서, 점차 안전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인간이다. 스웨덴 정부 보고서가 분석한 몇 가지 취약성을 언급한다.
- 재래식 전쟁과 같은 전쟁 와중에 정보시스템 파괴가 국가 간 공격 수단이 될 수 있다. 재래식 전쟁 중에는 정보 시스템의 극히 재한적인 부분의 폭파나 점령이 해당 국가에 결정타를 가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예방차원에서, 국민 정보파일 등 가장 민감한 시스템이나 나아가 다리, 도로, 하수도 건설 국토개발 관련 정보 등 전시 이외의 상황에서는 민감 자료로 분류되지 않는 정보시스템의 ‘자체 파괴절차’를 예상하는 것도 하나의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 바로 앞에 언급된 정보들은 공공설비 개발과 비교했을 때, 기밀 정보는 아니다. 그러나 이 정보들이 대규모로 처리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들 정보 또한 전시에는 기밀정보가 될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 주요 정보처리 센터에 중대 직책을 맡고 있는 인사가 침투하게 되면, 이는 시스템 파괴공작이나 간첩활동의 특효도구로 이용될 수 있다.
- 기술 인력 의존도 또한 심각하다. 노사 대립 같은 사회적 대립이나 전쟁 시, 기술 인력은 군의 ‘핵심인물 집단’이 된다.
시스템 간 상호의존도가 점차 높아지면서 위험성은 더욱 가중될 수밖에 없다. 어느 한 시스템의 손실은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다른 시스템의 전체 혹은 일부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사회정보화는 자유를 말살하는 내부 질서
위험 대응책은 치밀한 내부 규칙을 포함하는 위급상황 플랜을 갖춘 안전 플랜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지속적인’ 인력 감시(채용 시 ‘개인차를 고려한’ 선별, 빈번한 팀 구성원 교체, 내부감시회로 TV를 통한 통제와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자동통신교환기를 이용한 인력의 정보 접근과 이동 및 이동 시간 감시, 정상을 벗어난 행동을 보이는 모든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강화된 기밀 감시, 근거리 정보센터를 피하고 인력을 ‘유혹’에서 격리시키기 위한 원격처리 시스템 등)로 내부에 존재하는 고의적 악행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외부 안전은 전기공급 차단, 감시초소, 방어벽 등 군대의 전형적인 상징을 떠올릴 수 있다.
미 항공우주국(NASA)의 정보처리센터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면 위에 언급한 모든 예방책을 완벽하게 수용할 수 있다. 그러나 민간 시스템에까지 예방책이 보편화되는 것은 우려스럽다. 일례로, 국방 목적의 정보처리센터와 보험대기업의 정보처리센터 간의 차이는 서서히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계의 소멸은 피할 수 없는 수순으로 보인다.
우리가 거론할 정보처리기술의 특성 중 가장 알려진 단면인 개인감시 역량일 것이다. 사실 방대한 양의 정보를 거리와 상관없이 극도로 짧은 시간 내에 처리할 수 있는 정보처리기술의 특성으로 수동 시스템으로는 결코 낼 수 없는 실적에 도달할 수 있다. 자연스럽게 안전이나 질서유지 활동과 관련된 정보처리기술 적용을 떠올릴 것이다. 이와 달리 전화요금 청구와 같은 ‘가벼운’ 적용도 있다. 전화요금 청구의 자동정보처리는 해당 사용자의 동의하에 수신자 전화번호, 통화 시각, 통화 시간을 처리할 수 있는 자동교환시스템으로 가능하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이 전화도청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 상상해 보았는가? 특수한 정치적 상황이 발생할 경우, 통화유형을 추출해 내는 것이 기술적으로 가능하고, 이는 문제가 되는 인사의 통화기록에 나타난 번호로 추출해낸 수신자 목록을 이용한 선별적 도청을 더욱 용이하게 할 것이다. 길고 진절머리 나는 정보 선별작업을 피하면서 획기적으로 시간을 버는 동시에 이제 막 수집한 따끈따끈한 정보를 이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자유를 말살하는 ‘함정’일까? 적어도 사회 정보화와 함께 새로운 내부질서가 부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글은 1979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3월호에 게재된 기사이다.
글·루이 주아네 Jouis Joinet
고등 사법관. 프랑스 사법과노조 창립(1968년) 멤버이며, 본 기사 게재 당시(1979년 3월) 프랑스 국가정보 및 자유 위원회(CNIL) 초대위원장을 역임했다. 1980년대 사회당 총리 다섯 명의 법률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33년간 유엔 소속 법률전문가로 활동하였다. 저서로 <내가 생각하는 국가이성>(2013) 등이 있다.
번역·김수영 ksy_french@naver.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1) Pierre Nora, Alain Minc, <사회 정보화>, La Documentation française, Paris, 1987년
(2) Michael Klare, ‘미국과 남베트남 경찰’,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1973년 12월호
(3) 1945년 설치된 Sdece는 1982년 4월 2일 프랑스 대외정보국(DGSE)으로 대체되었다.
(4) RG와 DST는 2008년 7월 1일 프랑스 국내중앙정보국(DCRI)로 통합, 재편되었다.
(5) <Les Temps modernes>, 1975년 10월 351호 참조
(6) <Le Quotidien de Paris>, 1977년 10월 3일자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