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의하라, 하지만 어떻게?
노동, 기아, 월세 문제에 대해 청원하고 시위하며 파업을 벌일 뿐 아니라 폭탄을 설치하고 무기를 손에 드는 등의
항의 방식은 지배질서가 전 세계에 걸쳐 확장되고 있는 만큼 다양해지고 있다.
경제적 착취, 정치적 폭력, 이데올로기적 압력은 정당과 노동조합에서 조직화된 저항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지배에 항의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항의 방식이 동원되었다. 합법적이든 불법적이든, 폭력적이든 평화적이든, 집단적이든 개인적이든 항의의 형태는 시기와 장소, 정치체제와 목표에 따라 결정된다. 이처럼 이질적인 모습의 뒷면에는 하나의 공통된 의지가 숨어 있다. 해방을 위해 투쟁하는 식민지 민중이나 공장 폐쇄에 항의하는 노동자, 열악한 주거 환경에 이의를 제기하는 세입자들은 자신들을 희생자로 만든 체제와 맞서 싸우는 중이다.
각자 항의 수준에 차이는 있다. 어떤 사람들은 명령 불복종 등과 같은 평화적이고 소극적인 방법으로 항의하는데, 이런 경우에 공권력은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한다. 1976년부터 아파르트헤이트에 항의하기 위해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생산하는 아우트스판(Outspan, 남아프리카 일대에서 생산·판매되는 오렌지 상표 가운데 하나-역주) 오렌지를 불매하기로 결심한 사람들을 어떻게 진압할 수 있겠는가?
파업은 경제가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협력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보이콧과 유사하다. 시간을 지체하기 위해 이전보다 상품 제작에 공을 들이거나 기존 방식에서 우회하거나, 혹은 거칠게 다루거나 반대로 열정을 담아내는 등 다양한 방식이 동원된다. 현장에서 전개되는 다양한 형태의 파업은 특정 기업에 한정되거나 나라 전체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기업주 개인이나 국가를 상대로 벌일 수도 있다. 사회 진보를 이룩하기 위해 돈주머니를 뒤고 있는 쪽에 압력을 가하는 방식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이미 입증된 바이다. 프랑스에서 노동자의 권리는 대부분 노동운동 덕분에 발전했다. 1936년 파업은 마티뇽협약을, 1968년 파업은 그르넬협약을 이끌어냈다.
온건한 항의와 함께 불법적인 저항이 전개될 수도 있다. 이러한 저항 방식은 주동자들에 대한 탄압을 자초하게 된다. 영국 글래스고 지역 2만 명의 세입자, 그리고 1915년부터 1922년까지 4만 명에 달하는 멕시코 베라크루스 지역의 임대차농은 소유주가 요구한 과도한 월세 지불을 거부하여 추방과 벌금형의 위험에 처했다. 1960년 미국 노스캐놀라이나 주의 한 카페에 들어간 흑인 학생 네 명은 인종 차별적인 법 때문에 쫓겨났다. 1974년 4월, 포르투갈에서 수천 명의 사람들이 독재체제인 ‘에스타도노보(Estado Novo, 신국가체제)’를 타도하기 위해 거리로 쏟아져 나오자 권력자는 시위대에게 명령에 저촉되는 행위라는 혐의를 씌웠다.
하지만 탄압의 칼자루를 쥔 쪽이 반드시 이기는 것은 아니다. 영국과 멕시코 정부는 월세를 통제하기 시작했고, 미국은 시민권에 대한 법률을 통과시켰으며, 포르투갈에서는 ‘카네이션 혁명’이 일어나 독재자 살라자르의 뒤를 이은 마르셀루 카에타누 총리에 맞서 승리를 거두었다.
폭력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자들의 무기다. 완곡한 형태의 폭력은 먼저 사유재산에 대한 공격 양상을 띠는데, 이러한 폭력 행위는 매우 부당한 상황에서 나타나는 자발적인 반응이다. 예를 들어, 1965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일어난 와츠 폭동과 1992년 로드니 킹 구타 사건으로 촉발된 흑인 폭동 사건은 모두 인종 차별이 원인이었다. 또 1980년대에 라틴아메리카와 아프리카에서 벌어진 기아와 관련된 폭동은 현기증 나는 인플레이션이 원인이었다.
체제에 저항하기 위해 선택된 폭력 행위는 자기 신체에 대한 학대가 될 수도 있다. 간디가 대중화한 단식 농성은 알제리에서 프랑스 군대에 억류된 알제리민족해방전선(FLN) 투사들이나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포로들 사이에서 자주 벌어졌다. 단식은 요구 사항을 관철시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상대를 위협하는 행위로, 실제로 목숨을 잃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1965년 노먼 모리슨은 베트남전쟁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미 국방부 건물 앞에서 분신자살했다. 1969년에는 얀 팔라흐가 소련의 체코 점령에 항의하기 위해 같은 길을 갔다. 북아일랜드에서는 아일랜드공화국군(IRA) 단원이었던 보비 샌즈가 66일 동안 단식 투쟁을 하다가 1981년 4월 숨을 거두었다.
극단적이고 때로는 절망적인 항의 방식인 폭력은 난공불락의 적을 상대해야 하는 심각한 비대칭적 충돌 상황에서 등장한다. 이러한 폭력은 맞서 싸우는 세력에 따라 고려된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유고슬라비아 투사들과 프랑스의 레지스탕스, 그리고 알제리와 튀니지의 민족주의자들이 채택한 ‘테러리즘’ 혹은 1950년대와 60년대에 에리트레아 유격대원들이 벌인 게릴라 활동은 그들이 맞서 싸운 군사력의 막강하고도 정교한 탄압 무기 체계를 고려해야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뒷날 알제리, 튀니지, 에리트레아는 독립을 쟁취했다.
20세기는 자유주의 질서가 마침내 전 세계에 자리 잡은 시기이지만, 한편으로는 무수한 투쟁이 벌어진 무대이기도 하다. 애당초 힘의 균형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음에도 투쟁을 통해 민중의 열망은 승리를 거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