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와 광고로 라틴 아메리카인의 정신을 사다

2014-12-04     아르망 마틀라르

 

TV와 광고로 라틴 아메리카인의 정신을 사다

  파쇼독재정권은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신뢰도 낮은 공식 정보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TV 드라마 같은 대중문화를 활용해서 소문을 퍼뜨렸다. 이러한 심리 조작은 저자가 살았던 브라질이나 칠레에서는 일반화된 것이다.

  아르망 마틀라르 | 파리 8대학 명예교수

 

라틴 아메리카의 군사정권은 계급동맹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가장 광범위한 계층을 소외시켰고 그 결과 강력한 사회적 기반을 구축할 수 없었다. 그래서 노동자와 농민이라는 ‘적’을 패배시킬 필요가 있었고 쁘띠 부르주아 전체를 규합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자 사람들의 생각을 통제하고 관리해야 했다. 그래서 심리전이 시작된 것이다. 심리전은 위에서 집중적으로 선전공세를 펼쳐 부족한 아래의 합의를 보완하는 것을 말한다.

이 시기 칠레에서 지출된 광고비용이 위의 주장을 증명하고 있다. 수도 산티아고에 소재한 한 광고회사의 1975년 매출은 2년 전보다 두 배가 증가했고 일간지 엘 메르쿠리오의 자회사이며 칠레 제1의 광고회사는 그해 250만 달러가 넘는 매출을 올렸다. 전년 매출은 27만4천 달러에 불과했다. 다음 해 1976년에는 350만 달러 가까운 매출을 기록했다.(1) 미국의 광고회사들도 국민통합당 정권의 떡고물을 받아먹기 위해 대거 칠레로 다시 돌아왔다. 1970년 아옌데 정권이 들어서자 칠레를 떠난 J. 월터 톰슨 광고회사도 이때 돌아왔다. 표현의 자유가 전혀 없는 나라에서 갤럽조사 같은 일반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설문조사가 급격히 증가한 것도 선전전이 강화되고 있다는 증거다.

칠레의 광고비 지출 증가는 광고회사 매출의 증가를 생활수준의 상승으로 연결하려는 시스템 경제학자들의 주장을 반증한다.

파시스트 정권의 화려한 외양을 지속적으로 과시할 수 없는 상황에서 펼쳐지는 선전활동의 소란스러운 구호 뒤에는 국민의 지지가 부재하다는 사실이 숨겨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전체주의 교리로 국민을 무장시키는 데 꼭 필요한 기초 조직의 부재 문제를 ‘정치 무관심’을 조장하고 ‘전통 가치’를 강조하는 선전활동을 통해 보완하려 하고 있다.

‘내부의 적’을 분열시키고 신뢰성을 무너뜨리기 위한 심리전의 새로운 무기이며,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도구는 하이테크만큼 중요한 ‘소문’이다. 1973년 칠레 군대에서 제작한 교육책자에 적힌 소문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소문은 중간층에서 시작된 소식으로 중간층 자체를 표적으로 삼고 있다. 소문은 믿을 만한 것이 못 되고 출처를 찾기가 불가능하다. 소문이 일단 두려움, 공포, 희망, 욕망, 증오와 같은 기본적인 감정과 결합되면 급속하게 퍼진다. 소문이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단순하고, 간결해야 하며, 상상력이나 기억을 쉽게 자극할 수 있도록 자세한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사실인 것처럼 단정적으로 말을 해야 하고 대중이나 표적이 되는 대상이 반응을 잘 할 수 있는 감정이나 기분에 호소해야 한다.”

심리전에서 소문을 다시 활용하는 것은 좌파세력이 지하활동을 할 때 채택한 새로운 형태의 투쟁의 변증법적 결과다. 독재정권의 소문 조작은 배포수단에 접근이 불가능했던 레지스탕스가 개발했던 새로운 정보배포 방식을 다시 활용한 것이다. 심리전의 이론가들은 미디어를 통해서든 입소문을 통해서든 조직적인 소문조작을 계획하면서 적이 사실정보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했다. 적은 정보가 사실인지 확인해주는 출처, 즉 권력에 접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위에서 언급한 군 교육책자에 인용된 적이 만들어낸 소문의 예를 보면 다음과 같다. ‘수천 구의 시체가 마포초 강 위로 떠올랐다’, ‘군인들이 고문을 하고 가택수색을 했다’, ‘여자들이 강간 당하고 살해당했다’ (…) ‘물가가 너무 높다’ 왜 이런 소문은 퍼뜨리지 않았을까?

 

적이 내보낸 정보의 신뢰성을 어떻게 무너뜨릴 수 있을까

 

정보의 기능을 재정의하고 있는 군 교육서의 한 구절을 보면 자유를 제한하고 적에게서 나온 정보의 신뢰성을 떨어뜨려야 할 필요성을 읽을 수 있다. “전쟁은 국민의 희생을 요구한다. 정보제한도 희생 중 하나다. 국가의 안전이 위협 받고 있기 때문에 예외적인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 (…) 이 조치 중 하나가 조국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의 시각에 힘을 주는 방식으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그 같은 조치는 부정적인 효과를 낳기도 하는데 정보가 독점되면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반응은 (적은 이 반응을 기회로 이용한다) 정보의 공식적인 출처와 상관이 없거나, 적어도 다른 의견을 표출하는 출처를 찾게 되고, 정보가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는 비공식 경로가 발달하게 된다. 이 방식으로 유통되는 정보는 과거에는 많은 사람이 신뢰했지만 지금은 현대적 커뮤니케이션 수단의 발달로 이 방식은 퇴조하고 있다. 지금은 비공식 경로로 배포되는 정보는 보통 ‘공식 정보와 반대 방향’을 취한다. 이것이 비공식 경로의 특징이고 정보내용에 열정이라는 요소가 덧붙여진다. 거기에 과장이 더해져 신뢰성과 권위를 가지고 있는 공식 배포 경로와 부딪히게 되면 속칭 ‘소문’이라 불리는 구두정보는 일반적으로 부정확하고 매우 저속해진다. 소문은 정보 조작의 한 요소로 간접 공격의 목적으로 소문을 활용하려는 사람들에 의해 조작되면 매우 위험한 것이 된다.”

라틴 아메리카의 모든 ‘예외적인’ 체제는 ‘국가안보’를 위해 ‘혁명전쟁’의 지지자, 다시 말해 ‘체제 전복자들’에 대해 심리전을 펼치고 있다.

전쟁의 합리성은 대중문화의 합리성과 모순된다. 이전에는 대중매체는 학교, 가족, 정당정치제도, 노조 등과 같은 안토니오 그람시가 ‘시민 사회’라고 부른 것의 일부로서 기능했다. 국가와 마찬가지로 대중매체는 독점이라는 폭력적인 힘을 숨기고 중개자 역할을 담당했다. 사회가 안정되었을 때 커뮤니케이션 수단은 대의기구가 조직되는 방식과 같은 원칙으로 조직된다. 여론이 커뮤니케이션의 기능과 의회의 기능을 정당화해준다.

지배 계급이 ‘집단적 의지’를 창출하고 지성과 도덕의 방향성을 제시할 능력을 잃은 상황에서는 자유국가의 고유 임무인 정보전달 기능이 사라진다. 그리고 시민사회 체제는 군의 규범과 부딪힌다. 이제는 더 이상 60년대처럼 ‘진보를 위한 동맹’(2)이 만들어낸 모호한 유토피아의 세계인 중산층이 기준인 소비모델에 국민을 참여시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모든 전쟁이 그렇듯 적을 패배시키는 것이 지상과제로 떠올랐다.

전쟁에는 당연히 적이거나 적이 될 수 있다고 의심받는 사람 또는 일군의 사람인 표적이 있다. 적대감 혹은 공격의 개념은 심리전의 기본이다. 심리전 이론가들도 인정하고 있다. “적대감이 유일한 공격무기다. 애국심과 정의감은 기본적으로 방어적이고 애국심과 정의감이 역동적이 되기 위해서는 공격성이 필요하다.” 유럽에서 파쇼주의가 발호할 때 조셉 괴벨스는 10년 전에 탄생한 미키마우스가 독일 땅에 들어오는 것을 금지할 수 있었다. 괴벨스는 미키마우스를 “미국 대중의 이미지를 본 뜬 퇴폐적인 캐릭터”라고 말했다. 하지만 시대는 변했다. 군부 독재자들은 대중문화의 또 다른 단계인 문화상품의 국제화의 시대를 살고 있다. 이제는 심리전의 극장을 폐쇄하기가 훨씬 힘들어졌다. ‘시민사회’에 속해있는 다른 현실을 보여주는 통신사의 기사, TV 드라마, 잡지, 만화가 지속적으로 계엄령이 내려진 나라들에서도 유통되고 있다. ‘예외적인’ 체제도 제국주의의 대도시와 문화적 교류를 막을 만큼 확고하지는 못하다.

대중문화는 계급동맹이라는 특이한 시스템 내에서 대의 민주주의의 규범과 합법성과 조화를 이루며 환상이기는 하지만 여가활동과 정신활동에 대한 접근을 민주화하고 여론의 관심 범위를 확장해야 할 필요성을 가지고 만들어진다. 소위 ‘민주적’이고 ‘여러 계급을 아우르는’ 프로그램으로 미디어와 대중문화의 메시지는 종교기관과 함께 검열에도 불구하고 사회모순을 공개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공간이 된다.

 

독재자에게는 조직된 지성이 필요하다

 

국민적 합의, 정당, 의회가 존재하지 않은 상황에서 군사독재 체제에 ‘조직된 지성’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는 미디어 플랫폼(TV, 신문, 라디오)은 자유국가의 유산과 선전활동과 이데올로기의 소비 행위 사이의 단절과 자유국가로부터 물려받은 조직의 형태의 무게가 부딪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자유국가에서 이데올로기가 모호한 미디어의 역할은 그람시는 합의를 만들어 내는 ‘교육하는 국가’로 정의했다. 미디어의 갈등은 칠레와 브라질 같은 나라에서 선명하게 표출되었다. 예를 들어, 기자 협회는 언론의 군사적 개념에 가장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국제적으로는 북남미 언론 소사이어티가 좋은 예다. 북미와 남미 언론사 사주들의 모임이고 그리고 아옌데 정권 반대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이 단체는 이제는 칠레와 브라질 군사정군에 설명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내부의 모순에 벗어나기 위해 미디어는 파쇼의 퇴행적 정책에 부합하는 프로그램을 더 많이 제작하고 군이 선전하는 가치와 태도와 정치와 도덕의 ‘쇄신’의 노력에 걸맞은 프로그램을 수입하고 있다.

 

고문은 심리적으로 개인을 파괴한다

 

실제로 TV에서 스포츠 중계, 게임쇼, 드라마 방영이 증가했다.(남미국가에서의 드라마 제작이 최근 두세 배 증가했다) 다국적 기업의 시각과 목표가 구현되고 국가에서 외국 자본이 원하는 개발 모델 주위로 사람들의 정신을 모아주는 문화의 콘텐츠를 ‘국유화’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된다는 것은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이 바로 다국적 시대에 대중문화의 세계화의 논리가 보여주는 모순이다.

라틴 아메리카에서 고문 관행을 말하지 않고 정보에 대해 논의할 수 없다. 고문 자체가 거대한 정보 생산 시스템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고문은 단순히 불법 조직망에 대한 정보를 캐내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체포된 투쟁가와 조직 사이의 연대감을 파괴하기 위한 것이다. 히틀러는 심리전에 대해 <나의 투쟁>에서 “우리의 전략은 적을 내부로부터 파괴하고 스스로 무너지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고문으로 받아낸 자백은 사람을 심리적으로 무너뜨리고 죄책감을 갖게 하고 소속된 조직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잃게 한다. 개인을 조직적으로 붕괴시키는 것은 국가 행위의 규범이 되었다. 국가의 이러한 조직적인 행위는 노동자와 농민을 더 착취하기 위해 필요한 개인주의의 붕괴 모델로 돌아가려는 의도에 기인한 것이다.

 

글‧아르망 마틀라르 Armand Mattelart

커뮤니케이션 학자이며, André Vitalis와 함께 <Le Profilage des populations(국민 프로파일링)>(La Découverte, Paris, 2013) 등을 출간했다.

 

(1) 미국 광고업계 전문지 <Adevertising Age>, 1977년 4월 18일

(2) Alliance for Progress, J.F. 케네디 대통령이 추진한 미국의 라틴 아메리카 개발 원조 계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