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범죄를 부정하는 일본 만화

2014-12-04     필립 퐁스

 

전쟁범죄를 부정하는 일본 만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전범들의 신주가 안치되어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공식 참배했다. 오래 된 역사 수정주의에 근거한 것이다. 역사 수정주의는 일본 만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필립 퐁스 | <르몽드> 도쿄특파원

 ‘대동아전쟁’(1930~1945)에 대한 일본의 책임을 강조하는 역사를 격렬하게 부정하는 ‘역사 수정주의’가 1990년대 중반부터 일본에서 확산되고 있다. 일제의 팽창주의는 1895년과 1910년에 대만과 대한제국의 합병으로 시작해서 1931년에는 만주에 만주국이라는 괴뢰국을 세워 청의 마지막 황제 푸이를 집정(執政)의 자리에 앉혔다.

역사 수정주의는 일부 주류 언론의 지지를 등에 업고 교과서 시장에서 영향력을 갖기 위해 모색 중에 있고 이미 대중 매체인 만화 시장에서는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수정주의의 만화 시장 침투는 수정주의 전면공격의 일환이다. 일본 우파는 언제나 과거 책임론에 반박했고 일본의 침략 사실을 부정했다. 일본군대가 저지른 만행도 부정하거나 최소화했다. 1950년대 중반에는 교육부가 좌파 성향의 교원노조에 대응하기 위해 교과서에 대한 검증제도를 재도입하기도 했다.

교육부의 ‘검열’에 반대한 이네가와 사부로 교수(1)가 소송을 제기했는데 32년 후인 1997년에 가서야 대법원에서 부분적으로 인정을 받았다. 하지만 이후에도 교과서를 둘러싼 갈등은 계속되었다. 돈이 되는 교과서 시장에 진출하려는 수정주의자들의 첫 시도가 실패로 끝났고 두 번째 시도도 성공하지 못했다. 2001년 8월 고등학교 교과서 선정을 책임지고 있는 지방교육위원회는 거의 만장일치로 수정주의 교과서를 채택하지 않았다.(2) 하지만 2000년대 초반에는 몇 번의 성공을 거두기도 한다.(3)

 

고바야시는 진보적 반체제 인사였다

 

역사 수정주의가 만화에 등장한 것은 ‘신오만주의’라 이름 붙여진 고바야시 요시노리의 만화부터였다. 신오만주의는 큰 성공을 거둔 요시노리의 여러 만화에 자주 등장하는 신조어다. 만화를 이용해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던 작가는 고바야시만이 아니다. 1920년대에는 프롤레타리아 만화가 있었고 전후에는 노동자와 억압받는 계급을 위한 만화가 있었다. 1960년대에는 미일안전보장조약 체결 반대투쟁과 학생운동과 사회투쟁의 시대로 계급투쟁의 관점에서 본 일본 역사를 소개했다. ‘참여’ 만화의 시대였다.

1970년대 만화는 이데올로기의 몰락으로 쇠퇴의 길을 걷게 된다. 대신 찬란한 일본 역사를 실어내는 도구로 전락하게 된다. 양적으로 질적으로 기념비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는 세키가와 나쓰오와 타니구치 지로의 ‘도련님의 시대’가 좋은 예이다. 이 만화는 20세기 초반 일본의 위인들을 친근한 인물로 소개해서 큰 인기를 얻었다.

2차 대전에 관한 주제가 만화에 등장한 것은 1960년대부터였다. 나카자와 게이지의 ‘검은 비를 맞으며’, ‘맨발의 겐’ 그리고 미즈키 시게루의 ‘도망일기’와 같은 평화의 메시지를 담은 만화는 이제 고전이 되었다.

1990년대 초반부터는 자위대의 지위 같은 첨예한 주제를 다루는 만화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가와구치 가이지의 ‘침묵의 함대’는 일본 잠수함 함장이 잠수함이 독립영토라고 선언한다. 하지만 본격적인 수정주의 만화는 격주간지 사피오에 1995년부터 연재된 고바야시의 ‘전쟁론’이었다.

‘전쟁론’이 처음 출간되었을 당시 고바야시의 나이는 42세였고 그때 이미 유명작가였다. 논쟁적인 주제를 주로 다뤘기 때문이다. 1990년대 초반 에이즈 바이러스에 오염된 혈액제제로 혈우병 환자들이 사망한 사건과 1995년 3월 옴진리교 신도들이 도쿄 지하철역에서 사린가스를 살포한 테러 사건과 관련해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고바야시는 1990년대 중반, 동경대학교 교육학과 후지오카 노부카츠 교수가 주도하는 역사를 자유주의적 시각으로 보는 학파의 역사 수정주의 조류에 합류했고 반서구와 외국인 혐오로 유명한 독일학 학자인 니시오 간지를 중심으로 1997년에 결성된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회원이 되었다. 유명한 TV 해설가이기도 한 그는 의도적으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감언이설로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고 있다.

고바야시는 태평양전쟁 후의 대만을 ‘신오만주의’ 시리즈의 소재로 삼았다. 최신작 ‘대만론’이 2001년 중국어로 번역되었는데 일본이 대만을 식민화한 것은 대만에게 좋은 일이었다고 한 것에 대해 모욕감을 느낀 대만정부가 고바야시를 몇 주 동안 기피인물로 지정하고 입국을 금지시켰다.

고바야시 만화의 성공은 같은 수정주의자인 후지오카 노부카츠 교수의 ‘교과서가 가르쳐주지 않는 것’의 성공과 마찬가지로 여러 이유로 설명할 수 있지만 무엇보다도 민족주의적 성향의 우파가 냉전이 끝나고 급부상했다는 것이다. 정치인과 지식인으로 구성된 우파는 재계, 종교계 그리고 산케이 신문과 같은 우파 언론의 지지를 받고 있다.

 

과거회복을 통해 ‘아름다운 일본’을 꿈꾼다

 

과거 회복은 일본의 우월성을 선전해서 젊은 세대에게 ‘애국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목적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역사에 대한 논란을 뛰어넘는 여러 쟁점이 숨어있다.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전쟁 포기를 규정하고 집단자위권을 제한한 일본 헌법 9조의 개정에 관한 것이다. 수정주의는 경제위기와 그에 따라 높아지는 사회 비용으로 어두워진 사회 분위기를 틈타 활개를 치기 시작했다. 취약해진 일부 여론은 과거 회복은 ‘아름다운 일본’의 전통적 가치를 다시 돌아보고 문화적 특수성을 주장하며 세계화의 물결에 저항하게 해준다는 문화적 메시지를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이 메시지는 일본이 19세기 개항할 때부터 계속 반복되어 왔다. 유능한 포퓰리스트인 수정주의자들은 ‘이야기’ 역사에 일본인들이 열광한다는 사실을 잘 이용했다. 일본 역사의 탐구자라 할 수 있는 시바 료타로(1996년 사망)의 엄청난 성공에서 볼 수 있듯이(4) 역사소설은 일본 대중문학의 심장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고바야시의 만화는 위대한 역사소설과는 거리가 멀지만 대중이 좋아할 만한 일화로 가득 차 있다. 역사가들이 일본 역사의 가장 어두운 시절을 연구하고 있는 지금 일본에 부족한 것은 언론이 앞다퉈 선전하고 있는 과거부정에 대응할 수 있는 대중을 대상으로 한 이야기다.

 

글‧필립 퐁스 Philippe Pons

<D’Edo à Tokyo, Mémoires et modernité(에도에서부터 도쿄까지, 역사와 현대성>(Gallimard, Paris, 1998)의 저자

 

(1) 저명한 역사가인 이에나가 사부로(1913~2002년)가 출간한 <신 일본사>는 검열을 받았다. 1930년대 일본의 중국 ‘침략’과 난징학살에 대해 기술했기 때문이다.

(2) Cf. Arnaud Nanta, ‘일본 수정주의의 역사’ Ebisu, n° 26, 2001년 봄-여름호, Maison franco-japonaise, Paris

(3) Tetsuya Takahashi, ‘야스쿠니 신사와 일본의 선택적 기억’,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7년 3월호

(4) <마지막 쇼군>, Philippe Picquier Poche, Arles, 2011년, <원숭이 주군 히데요시>, Philippe Picquier, Arles. 2012년 등이 프랑스어로 번역 출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