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생학을 차용한 국민전선

2014-12-04     파트릭 토르

 

우생학을 차용한 국민전선

 

국민전선의 당수였던 장-마린 르펜은 자신의 이론을 정당화하기 위해 알렉시 카렐의 인종주의 이론을 다시 꺼내 들고 양성 우생학(positive eugenics)을 선전했다. 양성 우생학은 우수한 지능을 가진 존재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파트릭 토르 | 철학자

 

‘카렐사건’은 90년대 초, 국민전선이 프랑스 의사인 알렉시 카렐의 복권 운동을 벌이면서 시작되었다. 알렉시 카렐은 나치 부역자였으며 혈관 봉합술 및 장기이식술 개발로 1912년 노벨의학상을 받았고 1935년에는 우생학점 관점에서 사회문제를 해결하자는 선언문인 <인간, 미지의 존재(L’Homme, cet inconnu)>를 쓴 인물이다. 국민전선은 알렉시 카렐을 ‘생리학의 아버지’이며 최고의 인문학자로 포장했다.(1)

알렉시 카렐의 복권 운동 뒤에는 노벨상을 받고 비시 정권의 인텔리겐차였던 인물을 전면에 내세워 세력을 확장시키고자 하는 국민전선의 기획된 의도가 숨어있다. 카렐의 신념, 공개적 발언, 제도적 노력은 반민주적이고 ‘생물학 지상주의’이고 무솔리니와 히틀러 파시즘과의 통합을 기도한 행위였다.

국민전선은 1991년부터 언론기사나 공개발언을 통해 카렐의 이론을 공격적으로 전면에 내세우기 시작했다. 이런 분위기를 참지 못한 프랑스 정신의학 창설자 중의 한 명이며 프랑스 남부에서 레지스탕스로 활약했던 뤼시엥 보나페는 알렉시 카렐의 본모습을 보여주는 책(2)을 출간했다. 이 책은 리용 출신으로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조국을 위해 다시 돌아와 페텡 원수의 실력자가 된 의사의 이름을 딴 거리나 공공건물의 이름을 바꾸게 할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알렉시 카렐이 비시 정권 하에서 친나치 정당인 프랑스 국민당 당원이었다는 사실을 아예 언급하지 않는 책들도 있다.(3) 몰라서 그랬을 수도 있고 아니면 조심스럽게 진행되고 있는 카렐의 복권 계획에 해를 끼치지 않으려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 미지의 존재>를 읽으면 카렐의 주장이 어떤 논리에 근거하는지 금방 이해할 수 있다. 1941년 미국에서 프랑스로 돌아와 페텡 정권의 지원을 등에 업고 인류문제 연구를 위한 프랑스재단의 수장이 된 카렐에 대해 자발적 출산을 장려한 양성 우생학자라고 말하는 것은 몰상식할 뿐 아니라 나치 희생자에 대한 씻을 수 없는 모욕이다.

카렐은 유태인들이 파리 북부에 있는 드랑 시 수용소에 강제 수용되고 있던 그 순간에도 재단의 ‘혈통 생물학’ 팀을 파리로 보내 파리와 파리 근교 이민 가정의 ‘생물학적 특질’을 연구했다. 1943년 재단의 기관지에 발표된 연구팀의 보고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잘 알고 있는 것처럼 프랑스는 많은 수의 이민자를 받아들였다. 바람직한 이민자들도 있고 그렇지 못한 이민자들도 있다. 생물학적 관점에서 바람직하지 못한 이민자들의 존재는 프랑스 국민에 위협이 되고 있다. 그래서 재단은 이민자들이 인종에 적합한 조건에서 살 수 있도록 하는 이민자 동화 방식을 모색하고 있다. 현재 이민자 일부, 특히 북아프리카, 아르메니아, 폴란드에서 온 이민자에 대한 인구조사와 거주지 조사가 진행 중에 있고 특히 이시-레-물리노에 살고 있는 아르메니아 이민자에 대한 심도 높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우생학 옹호자들은 우생학을 ‘양성’ 우생학과 ‘음성’ 우생학으로 구분하기를 좋아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냉혹한’ 학문이라고 비난받는다 해도 특정 우생학을 존중받을 만한 학문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우생학은 개념적으로나 실제적으로 ‘구분’될 수 없다).

 

우생학의 목적은 ‘열등한’ 개인의 생존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서 ‘우등한’ 개인의 증가를 장려하는 것이다

 

우생학을 좀 더 가까이 들여다보자. 우생학은 1860년 중반에 영국인 통계학자 프랜시스 골튼이 창시한 학문이다. 골튼은 자신의 친척인 찰스 다윈이 1859년 출간한 <종의 기원>을 읽고 크게 감명을 받아 다음과 같은 논리를 제안했다(다윈은 최종적으로 우생학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자연선택은 자연 상태에서 이로운 변화를 선택함으로써 종의 다양성을 보장하고, 가장 적합한 개체의 증가를 장려하고 동시에 가장 부적합한 개체를 도태시키는 것을 말한다. 같은 방식으로 인간사회에서도 지능과 관련해 자연선택 현상이 일어난다. 그런데 선진문명은 자연선택의 자유로운 기능을 방해해서 ‘열등한’ 존재를 보호하고 계속 재생산하게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퇴행의 위험을 초래하고 있다. 결함을 보완하고, 위험을 줄이고, 짐을 덜기 위해 인위적인 선택을 제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소위 말하는 좋은 우생학과 나쁜 우생학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관례적으로 ‘열등한’ 개인의 생존과 삶의 조건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서 ‘우등한’ 개인의 확산을 장려하는 것을 ‘양성 우생학’이라고 하고 반대로 ‘음성 우생학’은 생물학적 소질을 개선하기 위해 퇴행적이라고 여겨지는 개인이나 집단의 신체적 상태를 훼손하자는 주장이나 행위를 말한다. 이 행위는 번식을 금지시키는 것에서부터 단종(斷種), 전면적인 신체적 제거까지 다양하다.

 

우생학을 치료목적의 임신중절과 같은 의료행위와 동일시하는 것은 속임수다

 

‘음성’ 우생학은 몇몇 대상에게 신체적, 법적 훼손이나 다른 수단을 통해 강제적으로 생식 기능을 중단시키는 것이다. 골튼의 이론에 비추어 우생학의 기본제안을 살펴보자면, 양성 우생학과 음성 우생학의 구분은 필요가 없다. 골튼이 제안한 인위적인 선택은 언제나 몇몇 개인의 생식 기능을 제거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골튼식 엘리트주의의 지지자들과 칼 피어슨 같은 후계자들이 주장하는 것은 ‘좋은 혈통과 나쁜 혈통의 출산율을 조정하는 것’을 선택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현대 우생학의 유명한 창시자가 한 이 말에는 그 유명한 ‘구분’ 개념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현대 우생학의 수사적 모래성은 바로 우생학의 구분 개념 위에 세워져 있다.

우생학 옹호자들이 주장하는 또 다른 속임수는 우생학을 공중보건과 관련한 행위와 정책, 그리고 치료목적의 임신중절과 같은 의료 행위와 동일시한다는 데 있다(이와 관련해 우리는 무거운 역사적 대가를 치렀다). 현재 공중보건 정책의 원칙은 우생학의 원칙과는 달리 가장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계층의 신체건강을 지켜주고 병 앞에서 모두가 평등한 조건을 가질 수 있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치료 목적의 임신중절은 중대한 병리증상을 피하기 위해 매우 모호한 사법적 테두리 안에서 의사와 환자 사이에 개인적인 차원에서 논의되는 것이다. 최종 결정은 의사 개인의 윤리관에 달려있다. 그런데 치료 목적의 임신중절을 정의 그대로의 우생학 그리고 역사에서 경험한 우생학과 동일시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행위를 일반화하려는 작전에 불과하다.

 

록펠러 재단과의 연관성

 

카렐의 우생학이 독일식 우생학보다는 미국식 우생학에 가깝다는 주장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눈에는 1910년대 미국에서 시행되었던 단종법(斷種法)이 나중에 유럽에서 시행되었던 것보다 더 인간적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여기서도 ‘양성’ 단종법과 ‘음성’ 단종법으로 구분하자는 것인가? 어떤 무지로도, 어떤 기만으로도 록펠러 재단(카렐은 록펠러 재단 연구소의 소장이었다)과 독일의 에른스트 루딘 혈통과 인구연구소 사이에 교류와 재정적 지원이 있었다는 사실을 지울 수 없다(루딘은 1933년 인종위생학 소사이어티의 의장이었고 ‘강경파’ 우생학자이며 나치정권 하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했던 우생학 이론가 중 한 명이다).

찰스 다윈은 1871년에 우생학은 문명화된 인류의 본능적, 윤리적 진화에 반대되는 것이라 말하며 우생학과의 관계를 분명하게 부인했다.(4)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윈을 우생학의 아버지로 만들려는 한심한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를 반복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그들의 지성이 의심받을 만큼 충분하게 반박되었다.

 

글‧파트릭 토르 Patrick Tort

철학자, 인식론자. <Dictionnaire du darwinisme et de l’évolution(다윈주의와 진화 사전)>(Presses universitaires de France, Paris, 1996)의 저자이다.

 

(1) 당시 국민전선의 당 대표였던 브뤼노 메그레(Bruno Mégret)가 1991년 11월 2일 생리학에 대한 국민전선의 주장을 소개할 때

(2) Lucien Bonnafé, Patrick Tort, <인간은 미지의 존재인가? 알렉시 카렐, 잘-마리 르펜, 가스실> Paris, Syllepse, 1996년

(3) Cf. Alain Drouard, <사회과학의 미지의 인물. 알렉시 카렐 재단, 1941~1945년>, Maison des sciences de l’homme-INED, Paris, 1992년

(4) <The Descent of man>에서. Cf. <다윈과 다윈주의>. Presses universitaires de France, Paris, 1997년, <다윈을 위해>, PUF, 1997년